[김순정목사 설교]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약 4:1-10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4/10 [09:04]

[김순정목사 설교]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약 4:1-10

김순정 | 입력 : 2021/04/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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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4장에서 교회 안에서의 분쟁에 대해 언급합니다. 1-5절에 보면 교회 내부에서의 분쟁은 정욕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정욕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욕으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또 세상과 벗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6-10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겸손하고 마귀를 대적합니다. 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청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1. 다툼과 정욕(1-5)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다툼에 대해 언급합니다. 싸움과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는가? 그것은 바로 정욕입니다.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1). 원래 이 정욕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헤도네'입니다. 이것은 감각적 '기쁨, 열망, 향락'을 말합니다. 남의 유익보다는 자기 기쁨, 자기 열망,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욕입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2).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전부 다 얻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정욕을 채우려 노력하고 애써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2-3)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게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정욕을 위해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계속 자기 정욕을 채우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인들에게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지적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4). 여기 간음하는 여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결국 자신을 위해 사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같이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5)

 

2.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6-8)

 

하나님은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십니다. 사모하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유사한 구절이 창세기 6:3-5, 출애굽기 20:5, 이사야 60:1-2, 스가랴 8:2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키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6). 이것은 잠언 3:34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대로 사는 자들을 하나님은 멸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여기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이나 죄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7). 마귀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믿음 안에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세상의 주술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8).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마귀를 가까이 하고 정욕대로 살 것인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겸손하게 살 것인가? 어느 것이 성도의 길인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3.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9-10)

 

야고보는 슬퍼하고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합니다(9). 여기 슬픔, 애통, 울음이라는 단어들은 모두 회개를 나타냅니다. 자신의 죄를 한탄하고 슬퍼하는 것이 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 낮춘다는 말과 높인다는 말이 나옵니다. 낮추다(타페이노오)는 겸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어가 바로 높이다(휩소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이 높임은 우리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것은 영광입니다.

 

시편 147:6에서는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23:12).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5:6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참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자기 정욕을 구하고 정욕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참 성도입니다.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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