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구논문: 박종삼 목사의 생애와 51인 신앙동지회

발제자: 윤희원(진주효성교회 담임목사)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5/15 [09:36]

공적연구논문: 박종삼 목사의 생애와 51인 신앙동지회

발제자: 윤희원(진주효성교회 담임목사)

김순정 | 입력 : 2021/05/15 [09:36]

 

▲ 제33회 총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한 대구를 방문한 신앙동지회 회원(대구 팔봉산, 원 안이 박종삼 목사), 뒷줄 왼쪽부터 이노수, 엄두섭, 강용서, 이치복, 차남진, 앞줄 왼쪽부터 손치호, 정규오, 이성권, 박종삼, 최윤조). 이성권 목사는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와 제105회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총회 훈장 상훈위원회), 총회역사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교단 발전과 위상을 세운 지도자들에 대한 공적연구발표 세미나가 2021.4.16.()에 새에덴교회당에서 열렸다. 공적연구발표 세미나에서 발제한 논문들을 요약하여 소개해 본다.

  

1. 51인 신앙동지회 발단의 배경

 

조선신학교 51인 신앙동지회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를 조선신학교 학우회에서 문제 삼기 전에 일본 청산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온 목사(김재준, 김영주, 김춘배 목사)들에 의해서 이미 제기되었고, 더욱이 이때에는 이미 한국교회에 신앙적으로 이용도, 백남주, 한준명, 이호빈, 황국주를 제 22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결정하였음을 보아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이 시기에 매우 혼탁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혼탁한 가운데 조선신학교는 19385월에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의 문제로 문을 닫고(무기 휴학 상태가 됨)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다 철수하게 되자 “1939년 초에 함태영, 김대현, 채필근, 송창근등 여러 교역자들이 서울에서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향 각지의 장로회 교회지도자들의 호응을 얻어 동년 327일에 장로회 신학교 설립 기성회 실행위원회를 조직함으로 시작되었다.

 

조선신학교 설립 취지서에 나타난 교육이념을 보면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단순히 대치하는 신학교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보수주의 정통신학 교육과 그 방법을 고장난명(孤掌難鳴)”으로 표현하여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듯이 이제는 선교사들의 힘으로는 신학교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파했음을 표현하고, 더 깊은 뜻으로 서로 같으니 싸움이 난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 신학과는 전혀 다른 신학을 해야한다는 의미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송창근, 함태영, 한경직, 조희염, 윤인구, 김관식, 채필근, 김재준 목사가 설립위원이 되었고 교수와 간사의 역할을 하였다.

 

2. 51인 신앙동지회의 활동의 의미

 

김재준 교수는 조선신학교를 개원하면서 교육이념 5가지를 발표하였는데 이 이념 속에 신학교육의 수준 향상과 학문연구의 자유와 성서 비판학의 수용을 천명하면서 이러한 신학교육이 가장 보수적이며, 경건을 동반하는 것으로 캘빈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새사람이라는 잡지에 글을 실은 김재준 교수는 정통신학은 신신학보다 더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며 정통적 이단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이 시기에 51인 신앙동지회 사건이 터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점을 알게 된 51인 신앙동지회는 총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조선신학교 51인 학생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를 총회는 1947418일에 심사위원 이자익, 계일승, 이창규, 김원희, 함태영, 문승아, 노라복, 노해리 8인을 선출하여 사실 여부를 심사케 했고 동년 528김교수가 성경무오교리를 부인한다는 심사보고서를 신학교 전체 이사회에 제출하였다. 그러자 김재준 교수는 1947. 7월에 성명서를 발표했고 조선신학교 교지 조선신학보에 편지를 대신하여라는 논설에서 선교사들의 신학교육 방법 비판, 조선 신학 설립의 경위, 정통파 비판, 메천파 비판, 자신의 신학사상과 진퇴문제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진정서 날인의 주모자로 정규오, 엄두섭, 이노수, 송치호, 이성권, 이치복을 퇴학 처분하였다. 신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김재준 교수는 자신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퇴학 처분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51인의 김재준 교수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를 총회에 진정하게 됨으로 결국 1953(38회 총회) 기장 측이 분열해 나갔다.

 

3. 51인 신앙동지회 박종삼 목사의 사상과 삶

 

당시 51인 중 가장 선임이었고, 연장자였던 박종삼 목사는 1947년 조선신학교 제 6회 졸업생으로 문익환, 지원용 목사와 함께 졸업한다. 그리고 경북노회 소속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경북노회 칠곡시찰인 약목교회 담임목사로 1951215일에 위임식을 거행했고 경북노회 제 5134)에서 신학부 서기를 맡았고, 칠곡 시찰위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54.3월 광주 양림교회에 부임하여 제 12대 당회장으로 1957.8.2.일까지 시무)하였으며 광주 양림교회에 시무하면서 1955. 광주 신학교(야간, 현 광신대학 전신), 3대 교장으로 1956. 3대 이사장으로 봉직했다. 그리고 1957. 8. 23.-1962. 4. 여수 제일교회 제 8대 당회장으로 시무하였고, 1964년 광주 숭일 고등학교(양림동) 교목으로 1967년까지 후학을 양성하였다. 광주 숭일고등학교 교목으로 있으면서 1966. 3. 6.일부터 1982. 12. 31. 광주신학교(야간, 광신대학교 전신)교장으로 봉직하며, 광주 성림교회를 개척시무하여 70세 정년이 되는 해 1982년 은퇴해 미국 펜실베니아 영생장로교회(이용걸 목사 시무)에 출석하셨다. 1987. 9. 21.에 소천하였다.

 

4. 박종삼 목사의 설교집 영양록에 대해

 

박종삼 목사는 출간의 변을 다년간 광주 신학교의 실천신학 분야에서 설교학을 담당해 오면서 어떻게 하면 일선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구상해 오던 ˹영양록˼을 만들어 보았다. 이 영양록은 성경 본문에서 제목과 대소지를 뽑고, 이것을 하나의 설교의 초안으로 만들어 본 것이요, 전도자들이 설교를 작성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영양록에 나타난 박종삼 목사의 설교는 제목 설교로 서론, 본론, 결론이 분명히 있고, 모든 소제목에는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이 적어져 있어서 그가 얼마만큼 설교작성에 성경만을 묵상하며, 성경으로만 설교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다.

 

5. 박종삼 목사의 제자 사랑의 본

 

박종삼 목사는 이렇게 평생을 조선신학교 51인 신앙동지회 때 가졌던 그 정통보수 신앙과 개혁신앙을 견지하며 경북 칠곡의 약목교회, 경산의 자인교회 그리고 전남 광주의 양림교회, 여수 제일교회에서 목회하시면서 이 과정 속에서 광주 숭일고등학교 교목, 광주 신학교 이사장과 교장으로 또 광주 성림교회를 개척하여 섬기셨다. 이때 집에서 쫓겨나 어렵고 힘들게 고학으로 신학교에 다니는 소강석 학생의 스승으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시며 목회의 꿈을 심어주었다.

 

6. 박종삼 목사와 총회 훈장 추서에 대하여

 

박종삼 목사는 총회의 훈장을 받아야 할 뚜렷한 총회적 공적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장 큰 것이 있다. 그것은 정말 그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소강석 목사에게 섬김의 목회를 가르치고 몸소 보여 주었다는 것이며, 결국 그의 목회적 삶을 통해서 작은 섬김이 더 큰 섬김의 지도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종삼 목사는 목회자의 섬김의 본을 보여주었고 그 섬김의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첫째, 박종삼 목사는 조선신학교에서 김재준 목사에게 배웠지만 그의 자유주의적 성경관과신학사상에 동조하지 않았다. 둘째, 박종삼 목사의 신학이 결실한 것은 광주신학교에서의 후학들을 양성한데 있다. 그는 지역의 목회자이면서 끝까지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셋째, 박종삼 목사는 제자들의 가슴에 성경적이며, 개혁적인 목회관을 심어주었다.

 

박종삼 목사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 목회자로서 목회자의 본을 보이며 이름도, 빛도 없이 소명자의 삶을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의 궤적을 아는 후학들 특히, 그가 가르치고 기른 제자들에 의해서 지금도 조용히 교회사랑, 성도사랑으로 실천되고 있기에 총회는 올바른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며 목사의 본이 된 박종삼 목사에게 마 10:41절의 말씀대로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참 목회자를 길러낸 자에게 목회자상 또는 은사 보답상을 총회가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신앙인의 섬김은 미학인 동시에 숨김과 드러냄의 연출인 것을 이 을 통해서 우리는 목회의 현장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을 때 세속적인 것들이 성스럽고 거룩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숨어 있으므로 감사했던 것들이 드러나므로 거룩한 것이 되는 그 황홀함을 모두가 맛볼 수 있다면 총회는 박종삼 목사에게 목회자상 또는 은사 보답상을 추서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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