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산책(1) 1:1-4/ 요한일서의 저작 동기

김순정 | 기사입력 2013/07/03 [14:25]

요한일서 산책(1) 1:1-4/ 요한일서의 저작 동기

김순정 | 입력 : 2013/07/03 [14:25]

 



요한일서는 저자의 이름, 편지 집필 순서를 반영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요한의 첫 번째 편지’ Iwannou epistolh A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내사본의 표제를 사용한 것입니다. 다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요한의 첫 번째’ Iwannou A라고 기록합니다. 레기우스 사본은 ‘거룩한 사도 요한의 공동 서신’이란 표제를 붙였습니다. 이 성경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요한2서와 3서의 장로 요한을 사도 요한과 다른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장로 요한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본서를 스승 요한의 저작으로 밝히고 인용합니다. 그의 제자 이레니우스 역시 이를 지지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인 클레멘트, 오리겐, 터툴리안도 모두 사도 요한으로 저자를 인정합니다.

또한 본서 곳곳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사도 요한의 저작임을 말해줍니다. 4:2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요 1:14에 나옵니다. 1:2에 나오는 ‘그리스도는 생명과 진리’라는 용어도 요 5:26에 나옵니다. ‘빛과 어둠’이라는 용어도 요 12:35에, 4:9의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도 요 3:16에 나옵니다. 3:23의 ‘사랑의 계명’은 요 13:34에 나오고, 2:24의 ‘신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심’도 요 6:56에 나옵니다. 이것만 보아도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의 저자임은 확실합니다. 저작연대는 AD 90년 전후로 봅니다. 그가 밧모섬으로 유배되기 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중에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후기 연대를 지지합니다.



1절에 보면 “태초부터 있는” h\n ajp! ajrch'"에 해당하는 헬라어를 보면 “있는”이란 단어가 엔이란 동사입니다. 이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4; 14:6).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요한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들었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고 자신들의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실제로 세상에 오셨고 실제로 사셨고 실제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음을 증언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참된 증인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렇게 실제로 역사 속에 시간 속에 들어오신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 속에서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까?

얼마 전 어떤 여학생이 카톡에 기말시험 때문에 힘들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기말고사는 힘이 듭니다. 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에 배운 것을 성실하게 점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최선을 다해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으로 오셨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우리 앞의 문제들을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이 생명이 나타나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다는 말입니다. 이 생명은 1절의 생명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말씀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성육신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증언하여 성도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 영원하신 생명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바 된 분입니다. 성자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3절에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성도들에게도 전하는 것은 사도들과 성도들 사이의 교제 koinwnivan를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과 교제(사귐)은 성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것입니다. 이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단절되고 끊어진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금 회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다리를 통해서만 다시 하나님과 우리의 끊어진, 단절된 교제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엡 3:12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절에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것은 바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얻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함받고 죽은 영혼의 살림을 받은 구속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단절된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 성경을 쓰는 것입니다. 이를 소개하고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구속의 기쁨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근심이 있습니까? 우리를 구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내어놓기 바랍니다. 그분이 주신 기쁨과 구속의 은총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치유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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