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산책(4) 2:12-17/ 세상과의 교제

김순정 | 기사입력 2013/07/11 [12:56]

요한일서 산책(4) 2:12-17/ 세상과의 교제

김순정 | 입력 : 2013/07/11 [12:56]

 

12절에 보면 요한은 이것을 쓰는 것이 그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행하지 말고 빛 가운데 행할 것을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12절의 수신자 대상이 자녀들이라고 나옵니다. 이를 문자적으로 자녀들에게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수신자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1절과 같은 방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아비들과 청년들이라고 수신자들이 나옵니다. 아비들은 교회 안에서 나이 많은 이들을 의미하고 청년들은 젊은이들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기 때문에 이것을 쓴다고 합니다. 이들은 오래 신앙생활을 한 자들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이것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이겼다 nenikhvkate는 단어는 헬라어 성경에 완료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이겼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청년들이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14절에 요한은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여기의 아이는 파이디온 paidivon으로 ‘유아, 아린 아이’를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아버지는 육체의 아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비들에게는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는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들이 흉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고 반복합니다.

15절에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악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과 그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합니다. 요한은 강조하면서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고 합니다. 이 둘은 공존이 불가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랑치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관계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부에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교회생활, 예배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쪽에서는 예배와 교회생활에 방해된다면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참을 듣고 보니 둘 다 타당성이 있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 속한 자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직장을 선택하고 예배를 포기하는 이들은 직장을 자기 힘으로 구했다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직장을 포기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다른 직장을 주실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16절에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는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욕과 자랑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과 세상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을 택해야 합니까? 흔히 학자들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여기서 찾습니다.

창 2: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3장에 가면 뱀이 여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여자는 뱀의 말을 듣고 나무를 보았습니다. 창 3: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나무를 보니 먹음직했습니다. 이는 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리고 보암직했습니다. 이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처음 언약에서 아담과 하와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다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일한 시험을 줍니다.

마 4장에 보면 40일 동안 굶주리신 예수님께 사탄은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육신의 정욕입니다. 두 번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사자들을 통해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려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이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은 영원히 거한다고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정욕은 지나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지나가다 paravgw는 원어를 보면 ‘사라지다, 떠나다, 없어지다’는 의미입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거한다 mevnw는 원어는 ‘머물다, 거주하다, 계속해서 있다, 지속하다,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가 본문에서는 현재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거주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약속입니까? 이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오늘도 세상의 유혹에 지지 말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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