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와 총신대의 신학적(신조) 정체성 확인의 조건

소재열 | 기사입력 2021/02/23 [05:13]

총회와 총신대의 신학적(신조) 정체성 확인의 조건

소재열 | 입력 : 2021/02/23 [05:13]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1907년에 독노회(獨老會)’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가 설립되었다. 이때 노회에서는 대한장로교회 신경을 채택했다. 독노회(1)에서 대한장로교회 신경은 레이널즈(W. D. Reynolds, 李訥瑞)의 보고와 번하이슬 (C. F. Bernheisel, 片夏薛)의 동의로 1년 동안 임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회의록 참조). 이 신조는 이듬해인 1908년에 제2회 노회에서 완전 채택 되었다.

 

대한장로교회 신경의 전문(全文)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 회록(1)’, 24-33쪽에 수록되어 있다. 2회 독노회에서 완전채택되었으나 회의록에는 누락되었다. 1910년 제4회 독노회에 이르러 회의록 부록에 신경 전문이 첨부되어 있다.

 

곽안련은 독노회 제2회 회의록에 신경의 전문이 기록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서기의 실수라고 보고 있다(곽안련, 장로교회사전휘집, 51).

 

2회 공의회(1902, 회장 이눌서)는 후에 노회가 조직되면 제안할 헌법준비위원과 규칙준비위원을 선정했다. 이 위원회는 신경과 규칙을 준비했다. 1905년에 먼저 신경을 공의회 연례회의에 제출했고 공의회는 이것을 채택했다(‘13차 대한예수교장로회공의회 연례회의 회의록’, 1905).

 

곽안련에 의하면 이 신조는 인도장로교회의 12조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 경위에 대해 神學指南(통권 제2(1), 1919.4)의 글(77)에서 朝鮮耶蘇敎長老會信經論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공의회위원(右公議會委員) 등이 각종신경(各種信經)을 참고연구(參考硏究)하고 새로 신경(信經)을 제정(制定)코져 하였는데 적회(適會) 새로 조직(組織)한 인도국연합장로회신경(印度國聯合長老會信經)을 본즉 조선교회형편(朝鮮敎會形便)에 제일적합(第一適合)한지라 고()1905년에 해위원(該委員) ()이 공의회(公議會)에 여좌(如左)히 보고(報告)하였나니.”

 

 총신대, 1969년 가을 사당동 초창기 총신의 원로교수들과 함께 서 있는 박형룡 학장(위 사진 윗줄 왼쪽부터 안용준, 이상근, 박윤선, 박형룡, 명신홍). © 리폼드뉴스

 

인도장로교회는 1904년 개혁교회와 장로회 정치체제를 가진 스코틀랜드장로회(The Church of Scotland), 미국 북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북미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미국개혁(네덜란드)교회(The Reformed(Dutch) Church in America) 12개 장로교회 조직들이 참여하여 인도 연합장로회를 조직하였다.

 

공의회가 채택한 신경은 1904년 인도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India)가 작성, 채택한 12신조를 서문만 변경한 채 그대로 가져왔다.

 

대한장로교회 신경은 서문과 12개 조항의 본문, 인가식(認可式)으로 구성되어 있다. 12개 조항의 내용은 성경,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창조, , 그리스도의 속죄, 성령, 구원과 예정, 성례, 신자의 본분, 부활과 심판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신조를 포함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1회 총회(1922)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을 공포하여 출간하였다. 헌법의 구성은 신경(信經), 성경요리문답(聖經要理問答), 조선예수교장로회정치(朝鮮예수敎長老會政治), 예배모범(禮拜模範), 권징조례(勸懲條例) 등이다. 이때 헌법의 신경은 앞서 살펴본 대로 1907년에 임시 채택하고 1908년에 완전 채택한 대한장로교회 신경을 그대로 사용했다.

 

우리의 헌법은 교리적 부분(신조, 성경요리문답)과 관리적 부분(정치, 예배모범, 권징조례)으로 구분한다. 신조는 헌법 내용에 포함되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신학적 뼈대로 삼고 있다. 이 신조에 규정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교단총회가 조직되었고 운영되며, 계승되고 있다.

 

이같은 신조에 의해 총회와 총회가 설립한 직영신학교가 운영된다. 헌법에 규정된 이 신조를 변경하지 않는 한 이 신조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표현한다. 이 신조를 신규약 성경의 교훈과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선서하지 않으면, 목사와 장로 집사 등의 직분자가 될 수 없다(정치 제15장 제10, 13장 제3).

 

역사적으로 장로회 신조 제1조를 거부할 경우, 본 장로회 소속 목사가 되는 것을 거절해 왔다. 우리 총회(합동)는 그동안 이러한 신학적, 교리적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이를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고백과 신조에 의해 본 총회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총신대학교가 운영되어 왔다.

 

총신대학교의 정체성이 총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총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총신대학교의 정체성이 되어왔다. 특히 1978년 총신이 좌경화되었다며 복구총신과 교단총회가 분열되었다. 당시 총신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학적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신학적 입장 역시 본 장로회 신조를 벗어나지 않았다.

 

2020년에 이르러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5회 총회는 총신대학교 학생활동에 대한 신학사상에 대한 조사와 총신대학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인해 달라고 헌의했다. 이를 총회신학부에 위임했다. 무엇 때문에 학생들의 활동과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인해 달라고 했는가?

 

이러한 청원과 헌의가 총신대 사태를 유발한 전 이사회를 반대한 자들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차원인지를 제105회기 총회 신학부는 밝혀야 할 것이다. 헌의 내용이 정치적인 냄세가 난다는 평가다. 헌의한 노회와 정치부의 심의, 본회에서 유인물대로 그대로 채용한 과정을 추적해 보면 드러날 수 있는 문제이다.

 

교단총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총회 교권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우리는 총회와 총신대의 교권을 위해 개혁주의를 이용했던 전례가 있다. 자신들의 교권을 개혁주의로 포장하는 일들이 있었으며, 총신 120년 역사에 그 유명한 총신대 사태를 유발했다. 이제 그 총신대 사태를 유발한 행위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정치적 수를 경계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본 교단의 신조와 신학적, 교리적 입장은 지켜져야 한다. 구호로만 정통보수신학를 말할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총회의 정책에서, 교회 운영에서, 목회 현장에서, 각종 설교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교단의 뜻있는 인사들의 고민과 염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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