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잠언의 해석학적 렌즈로 본 잠언 12장 연구(5)

김희석(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20/12/12 [17:34]

[논문] 잠언의 해석학적 렌즈로 본 잠언 12장 연구(5)

김희석(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김순정 | 입력 : 2020/12/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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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구약신학교수인 김희석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잠언의 해석학적인 렌즈를 가지고 12장을 연구하였다
.

 

20-22: 의로움과 언어생활

 

20-21절에서는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 대신 의로움/악함의 주제가 다시 부각된다. 20절은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있으나, 평강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다라고 말한다. 15-19절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절에서 속임수라고 번역된 미르마17절에서 거짓된 증인은 속임수를 내뱉고 고한다라고 할 때 언급되었던 동일한 단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20절 역시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을 꾀하는 것과 평강을 의논하는 것 역시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21절은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주어지지 않겠으나, 악인은 악으로 가득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의 결과가 어떠하게 될 것인지 결과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결과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본론 I에서 자주 지켜보았는데, 본론 II에 다시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 특별히 언어생활에 드러나는 의로움과 악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 그 내용이 22-23절에 소개된다.

 

22절은 거짓말하는 입술은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나, 신실함을 행하는 자는 그의 기쁨이 된다라고 말하면서 언어생활의 주제를 이어나간다. 우리가 22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12장에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는 두 번째 용례이다.

 

첫 번째 언급은 서론(1-3)2절에 나타났었고, 22절에서 두 번째 언급이 나오는 것이다. 거짓된 언어생활이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바가 된다는 것이며, 신실함을 행하는 자는 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실함으로 번역된 단어는 에무나로서, 17절에서 진실을 내뱉고에서 진실로 번역된 원어이다.

 

22절 하반절에서 신실함을 행한다는 것은 신실함으로 행한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자신이 말한 것을 행함으로 옮기는 것 즉 언어생활의 신실한 실천을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22절은 언어생활의 주제 가운데 여호와를 언급하면서 본론 II의 논의를 사실상의 절정으로 이끌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분 앞에 의로움과 악함이 언어생활의 측면에서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23: 지혜의 소중함

 

23절은 본론 II를 마무리하는 구절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감추어 두지만, 미련한 마음은 미련함을 외쳐댄다라는 내용인데, 사실 지금까지의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와는 사뭇 다르다. 지혜로운 자는 진실과 의를 말하여 여호와의 은총을 얻고, 미련한 자는 분노와 거짓을 말하여 여호와의 싫어하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22절은 지혜의 주제로 복귀하여, 참된 지혜가 감추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슬기로운 사람이 지식을 감춘다는 것은 지식 곧 지혜를 모른척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 여기서 감춘다라는 말은 숨긴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소중히 간직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23절은 지혜자는 자신의 지혜를 감추는 것처럼 소중히 간직하지만 미련한 자는 그의 미련함을 마구 드러낸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지혜자가 가진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설명하려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23절은 본론 II의 마지막 지점에서 지혜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소결론

 

본론 II (14-23)은 본론 I처럼 지혜로움과 의로움을 연결시켜서 다룬다. 본론 I이 지혜와 의로움을 연결시켜 만족함/풍족함이라는 삶의 주제로 풀어냈다면, 본론 II는 지혜와 의로움을 연결시켜서 언어생활이라는 삶의 주제로 풀어내었다.

 

먼저 14절은 언어생활의 주제를 도입하면서 본론 I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15-19절은 지혜로움의 주제를 언어생활 측면에서 풀어내었고, 20-22절은 의로움의 주제를 언어생활 측면에 적용시켰다. 23절은 이러한 언어생활 측면이 언어생활 자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소중함을 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본론 II 역시 지혜의 주제가 의로움의 주제로 연결되어 일상생활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본론 III (24-27):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II

 

본론 III(24-27)은 본론 I(4-13) 및 본론 II(14-23)보다 적은 분량인 네 절로 이루어져 있다. 본론 I이 풍족함/부족함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고 본론 II가 언어생활의 주제를 다루었다면, 본론 III는 부지런함/게으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24절 상반절과 27절 하반절에 부지런함의 주제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24절 하반절과 27절 상반절에 게으름의 주제가 언급된다.

 

24-27

 

24절은 부지런한 자의 손은 다스리게 되지만,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게 된다라는 내용을 통해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조시킨다. 24절의 전후 문맥에서 지혜로움/미련함이나 의로움/악함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지만, 부지런함과 게으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25절은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것을 없애도록 하고, 좋은 말로 그 근심을 기쁘게 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본론 II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던 언어생활의 주제와 연결이 되기는 하지만, 언어생활 자체가 25절의 핵심은 아니고, 오히려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고 돌보아야 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24절과 25절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면 부지런한 자가 될 수 있고,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지 못하면 게으른 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6절은 의인은 그 이웃을 인도하지만, 악인의 길은 자신을 방황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26절이 의로움과 악함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잠언 12장 전체의 흐름 가운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며 살펴온 의로움이나 지혜로움의 주제가 본론 III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인/악인은 어떤 자들인 것일까?

 

24-25절과 연결을 시켜보면, 26절이 말하는 의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아서 부지런하여 다른 이들을 다스리게 된 자들이며, 그 다스림을 통해서 이웃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된 자들일 것이다. 26절이 말하는 악인이란 자신의 마음의 근심을 돌보지 못하여 게을러짐으로써 다른 이들을 이끌기는커녕 자신조차 멸망의 길로 가게 된 자들일 것이다.

 

27절은 이 모든 내용들을 요약하면서 24절이 명시적으로 언급했던 부지런함/게으름의 주제를 다시 명확하게 드러낸다. ‘게으른 사람은 잡은 것도 내버려두지만, 사람의 귀한 부는 부지런함이다라고 말하면서, 부지런함 자체가 귀한 부이며, 게으름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게 될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결론

 

본론 III는 부지런함/게으름의 주제로 시작하고(24) 마친다(27).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의로움/악함의 주제는 명확하게 26절에 언급되어 있다. 25절 하반절에는 언어생활의 주제가 간단하게나마 다루어진다. 그렇다면, 왜 본론 III는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 것일까? 이 문제는 12장 전체의 결론인 28절과 연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계속)

 

요약 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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