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드뉴스 사설] ‘일등 공신은 없다’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20/12/11 [15:28]

[리폼드뉴스 사설] ‘일등 공신은 없다’

리폼드뉴스 | 입력 : 2020/12/11 [15:28]

 

총신대학교 신대원 양지캠퍼스 교사가 마련되기까지 당시 총회와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또다시 언급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아픔의 과거 추억이 괴물로 10년만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영국의 역사철학자 콜링우드(Collingwood, 1889.2.22.-1943.1.9.)가위와 풀의 역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나 관찰자가 자신의 의도를 따라 역사를 편집한다. 자신이 특정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여 역사를 편집하며 기록한다.

 

기록할 때 가위와 풀을 가지고 자신이 의도한 역사를 편집한다. 이는 주관적인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역사관은 각 교단마다 자신들의 입장을 역사를 해석하고 집대성한다. 이 역시 가위와 풀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총신대학교 신대원 양지캠퍼스 교사가 마련되기까지 당시 총회와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또다시 언급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아픔의 과거 추억이 괴물로 10년만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를 지켰던 구성원들은 모두 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어 이를 지켜보고 있다. 감개무량함이 아닌 울분을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이 장학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는 좋지만 교육환경에 대한 문제는 영원히 숙제로 남는다. 학생들의 개인적인 혜택을 보자고 이처럼 싸웠던가?

 

공신(功臣)이란 특별한 공훈을 세웠다고 인정된 사람에게 주는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뼈아픈 과거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양지캠퍼스의 선지학교의 교육환경이 훼손당하는 대가로 받은 장학금 30억 원을 받아내는 자들을 공신의 반열에 세워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장학금 30억 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을 공신의 로비에 의해 받아냈다면 한전 입장에서 보면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금원을 지급했으니 담당자는 업무상 배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임의 책임은 묻지 아니할 터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결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마치 자신의 장기를 팔아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을 받아낸 사람이 공신이 될 수 없듯이 그 어느 누구도 30억 원을 받아내는 데 일조하였다고 하여 공신이 될 수 없다. 선지학교의 교육환경과 맞바꾼 30억 원 장학금을 받아낸 것이 절대 공신이 될 수 없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인 선지학교의 의지와 상관없이 학교의 교육환경을 유린하는 한전의 행정집행을 눈물과 금식으로 아무런 힘없이 바라보아야 했던 당시의 울부짖음을 누가 보상한다는 말인가? 훼손된 교육환경은 어찌하라는 말인가?

 

한전은 무슨 커다란 선심으로 아량을 베푸는 양, 30억 원을 전달하는 전달식까지 했다고 한다. 한전이 공짜로 준 것이 아니라 법원 판결의 강제력에 의해 준 것이 아닌가? 거창한 사진 속의 민낯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해야 하는가? 30억 원 지급에 대한 계약체결 문서에 양측 쌍방이 합의하여야 공개할 수 있다는 문안 초안이 한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에서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고 부르짖는 것 같이 총회가 왜 이래라고 울부짖고 싶은 것은 과민 반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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