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⑥] 총회와 총신대, '몰락의 시작'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20/09/14 [22:19]

[기획특집⑥] 총회와 총신대, '몰락의 시작'

리폼드뉴스 | 입력 : 2020/09/14 [22:19]

 

▲ 이사장 직무대행인 안명환 목사와 총장인 김영우 목사(우)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창간 12주년 기념으로 총회와 총신대라는 주제로 기획특집 연재를 준비했다(편집자 주). 

 

【(리폼드뉴스)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1회 총회(2016.9.26.)를 앞두고 교단의 미래를 위한 중요 이슈가 있었다. 총신대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김영우 목사는 제2차 부총회장에 도전했다. 2016. 6. 10. 김영우 목사가 총신대학교 총장 신분을 유지하면서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등록했다. 현직 총신대학교 총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느냐는 것과 총회결의 위반에 대한 제재 사유가 김영우 목사에게 적용되는지 여부였다.


2016. 7. 22.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심의분과위원회(위원장 김정훈 목사)는 총회임원과 상비부, 기관장 입후보자들에 대한 자격에 대해 심사했으나 부총회장 후보에 입후보한 김영우 목사에 대해 심의분과 위원들간에 1시간 넘는 장시간 토론을 갖고 “이중직 문제로 후보를 반려하는 의견서"를 전체회의에 제출키로 했다.


2016. 8. 26.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백남선 목사)는 26일 총회회관 임원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갖고 제101회 총회 총회장 후보에 부총회장인 김선규 목사(평양제일노회, 성현교회)를 확정했으며, 그동안 최대한 관심사로 논란이 되 부총회장 후보에 입후보한 정용환 목사(목포노회, 목포시온성교회)와 김영우 목사(충청노회, 서천읍교회)에 대해서는 후보 확정을 보류했다. 정용환 목사의 상대 입후보자인 김영우 목사가 정용환 목사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했기 때문에 이를 조사한 후 9월 1일에 전체회의에서 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상대의 약점을 걸고 넘어지면 단독후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 앞에 선후배도, 목사의 품위도 상실되고 만다.


2016. 9. 8. 정용환 목사가 선교회에 제공한 상당한 금액은 부정선거를 위한 금품수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보고였다. 즉 순수한 선교모임과 회원으로서의 의무로서 선거법 위반이라고는 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이후 이 일로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조사위가 무혐의 보고를 하면서 무고죄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김영우 목사는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할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 확정을 보류했고, 정용환 목사에 대한 고발건이 무혐의 처리되었다. 백남선 목사는 김영우 목사에 대한 부총회장 후보에 대한 확정에 대해 가부를 묻지 않았다.

 

2016. 9. 20. 전체 선관위에는 위임목사이면서 동시에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총회임원인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한 김영우 목사의 이중직 문제와 정용환 목사와 김영우 목사가 상호 선관위에 제기한 후보 자격 하자에 대한 이의제기와 고발장을 서로 취하하기로 합의한 등의 문제로 선거법에 규정한 담합여부에 대한 문제가 치열했다.


위원장 백남선 목사는 첨예하게 대립된 가운데 회의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자 “회의를 마치겠다”고 하자 위원들 일부는 위원들의 허락 없이 폐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위원장 불신임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권재호 목사를 사회자로 선출하여 계속 회의를 진행하여 정용환 목사와 김영우 목사의 부총회장 후보를 확정했다.


위원장 해임에 참여한 선관위 위원들은 권재호(서울남) 홍승철(동대구) 문찬수(경신) 이호현(함남) 윤여웅(황해) 강의창(서대전) 박석만(서수원) 박종화(동부산) 이순우(경중) 박찬섭(경북), 그러나 이에 참여하지 않는 위원은 백남선(광주) 김정훈(남부산남) 김종택(경기서) 변충진(관서) 이호영(서울강남) 등이었다. 위원회 서기이며 백남선 위원장을 해임하고 임시 사회자로 선정된 권재호 목사는 제101회 총회 총대가 아니므로 총회 회의장에 입장이 불가능하다.

 

▲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한 김영우 목사는 본회에서 최종 후보 자격을 얻지 못했다.  © 리폼드뉴스


2016. 9. 26. 제101회 총회가 개회됐다. 임원선거가 첫째날 저녁회무 시간에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백남선 목사) 위원장으로 하여금 선거 사무를 진행하도록 했다.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선거관리위원회의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부총회장의 이중직에 대한 문제, 입후보간 담합 문제 비상정회 문제로 위원장을 해임하는 문제에 관해서 설명보고 하였다. 위원장의 보고가 끝나자 총회장은 토론에 들어갔다.

 

윤두태 목사(경기북노회)는 발언권을 얻어 "선관위가 후보를 확정하지 않고 본회에서 후보를 결정한 것은 법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선관위원장을 해임하는 쪽의 입장에서 발언했다. 그러나 심요섭 장로(전서노회)는 김영우 목사는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부총회장 후보에 입후보한 것은 이중직이며 정용환 목사와 합의한 것은 담합이라"고 주장하며 "후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찬수 목사는 "변호사에게 의견서를 받았는데 이중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으며, "선관위에서 후보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관위 심의분과장인 김정훈 목사는 발언권을 얻어 "심의분과가 결정보고가 전체선관위에서 결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김영우 목사는 부총회장 후보등록에 관해서 총신대 총장은 교원으로 분류한다, 김영우 목사는 교수와 같은 신분이다, 사립학교법이나 총신대학교 정관에도 총장은 교원으로 분류한다, 총회가 결의한 이중직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총회가 결의하여 금한 이중직에 해당되며, 선관위의 규정도 이중직을 암시하는 규정으로 봐도 이중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도 위임목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총신대 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이중복무를 하는 것은 후보자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총장은 전임교수의 범주에 속하며,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위임목사직을 수행하는 것은 위법이며, 소속노회는 기관목사임에도 위임목사 신분을 부여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심의분과의 결의는 "김영우 목사는 후보자가 될 수 없으며 등록후보 서류를 반려하기로 결의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정용환 목사와 김영우 목사의 양자 합의사항은 담합이라고 보고했다.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발언권을 허락받은 후 "그동안 총회 결의시행을 심혈을 기울여 총회를 운영하며 섬겨왔다"고 언급한 뒤 "총신의 문제가 해결되면 총회도 온전히 갈 수 있으며, 제100회 총회에서 모든 불의를 해결하고 모든 짐을 책임지고 가야 하며, 본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선관위원들의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고 했다.


총회장은 "어떤 분이 금품 수수 문제로 검찰에 고소한 고소장을 가지고 왔다"고 고백했다. 이 고소사건이 김영우 목사를 징역형 선고를 받게 한 형사 사건이다. 두 입후보자를 후보자에서 탈락하는 것을 현장에서 결정하며 공포했다. "아니요"라는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자 일어선 사람은 과반수를 넘지 못하였다. 두 입후보자의 후보 탈락을 현장에서 묻자 많은 총대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 호남중부실행위에서 전계헌 목사와 나학수 목사가 후보로 선출되었다.  © 리폼드뉴스

 

총회장은 선관위원들로 하여금 선거업무 진행을 허락했다. 본회는 현장에서 전계헌 목사와 나학수 목사를 후보자로 선정하여 투표에 들어가 투표결과 총 1544명 총대 중에 1294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전계헌 목사 757표, 나학수 목사 534표를 얻어 전계헌 목사가 부총회장에 당선됐다. 총신대학교 총장인 김영우 목사가 배임증재(형법 제357조 제2항, 제1항)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민사 소송에서는 대리인 변호사가 출석하여 공판에 임하지만 형사재판은 피고인으로 직접 출석하여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 사건은 제101회 총회가 제100회 총회장이었던 박무용 목사에 대해 고발한 사건이 검찰에 의해 기소된 사건이다. 김영우 목사는 2016. 9. 15. 14:10~15:40.경 대구 베니키아 수성호텔 1층 커피숍에서 총회장인 박무용 목사에게 “선거관리위원회가 파행으로 가고 있어 위원들이 부총회장 후보를 확정하지 못하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결국 부총회장 선거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고유권한이니 총회 현장에서 다룰 수 없다는 이유로 도로 그 문제를 선거관리위원회로 보내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2,000만원을 제공하여 김영우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사무를 처리하는 박무용 목사에게 총회 회의 진행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하고 재물을 공여하였다.”고 판단하여 기소했다.

 

 박무용 목사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총신대 이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직전 총회장인 백남선 목사의 뒤를 이어 총신대 이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 리폼드뉴스


총신대 상황은 전혀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학생들은 김영우 총장의 2000만원 사건에 대한 배임증재 혐의에 대해 직접 사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김영우 총장은 총장실에서 나와 학생들 앞에서 배임증재 혐의에 대해 부인하며 그동안 꾸준히 주장한 “뇌물을 준 적이 없으며 법정에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현재 법원에서 관련 사건을 조사 중이어서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영우 목사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 이사장에서 총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3년 전 총신대 법인 이사장직을 유지하면서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하였다가 백남선 목사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법인 사장직에 이어 총신대학교 총장직까지 올인하게 되었으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정치적인 감각을 갖고 총회의 중요 교권의 한 축인 총신측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에 총회측의 견제와 늘 갈등으로 대립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교단의 정치적인 각개전투에서는 언제나 승리할 정도로 정치력은 대단했다.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와 총장직을 두루 섭렵한 후 이제 김영우 목사의 인생 마지막 목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총회장이 되는 일이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총회장에 당선되어야 한다. 부총회장이 되면 자동적으로 차기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추대되어 취임한다. 더구나 이번 부총회장에 당선되면 이듬해인 2017년 12월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총회장이 된다. 그러나 김영우 목사의 교권은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있었다. 이제 정권교체로 총신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권교체와 더불어 총신의 교권도 교체를 바라보며 김영우 목사는 추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 김영우 목사가 총장 취임에 선서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김영우 목사의 교단 정치 인생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김영우 목사는 70세 정년까지 부총회장에 출마할 당시 3~4년을 남겨놓고 있었다. 은퇴 후에 계속 교단정치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총회장과 총회장에 이어 증경총회장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경총회장이 되어야 총회 언권회원이 되어 기력이 쇠약하기 전까지 총회에 참석할 수 있고 교단 정치의 막후 실세로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부총회장 후보와 부총회장에 당선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꿈과 이상을 갖고 있었다면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추천을 받을 때 총신대학교 총장직을 사임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막상 총장직을 갖게 되니 그 총장직에도 미련이 있었을 것이다. 총장으로서 총신대학교를 개혁신학의 마지막 보류로 성장시켜보고자 하는 꿈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총장직을 그만 둘 수는 없었으며, 부총회장직도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더 나은 가치인 부총회장직을 위해 총신대 총장직을 사임할 용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장직을 사임하고 부총회장직에 올인하고 싶어도 이러다가는 총장직을 사임한 후 부총회장 후보도 될 수 없다는 가장 안좋은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불안이 선뜻 총장직 사임을 결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 교훈으로 모두를 가지려다 모두를 다 잃은 경우가 바로 이 경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영우 목사의 실패 요인으로는 핵심 참모들이었다는 것이 교단 내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인사들을 핵심 참모로 두면서 그 참모들이 김영우 목사와 함께 "우리가 총신을 지킨다"는 말은 "총신이 당신들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총신의 법인이사회의 핵심자리를 그들이 독식하게 되자 총회 구성원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단에서 각개전투의 정치력에서는 언제나 총신측으로 분류된 김영우 목사측이 원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600여 명의 총대들이 한 곳에 모인 총회에서만큼은 이기지를 못했다. 그 현상이 제101회 총회 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부총회장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총대들의 결정은 김영우 목사에게 치명적이었다.
 
제101회 총회 현장에서 김영우 목사가 후보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총대들은 기립하라고 하자 일부에 불과했다. 이렇게 부총회장, 총회장이 되려는 꿈이 좌절되었다. 이같은 좌절은 향후 교단 정치에 직접 깊숙히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었다는데 실망이 컸을 것이다.
 
당시 제101회 총회는 향후 교단 교권정치의 10년의 향방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총회는 서서히 새로운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교권이 형성되어 총회가 새롭게 재편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과연 누가 지는 별이며, 뜨는 별인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학생들의 총장실 난입   ©리폼드뉴스

 

9월 총회에서 부총회장 후보에 좌절당한 김영우 목사는 이제 학생들로부터 우겨쌈을 당했다. 학생들이 김영우 총장의 총장실에 난입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2016년 11월 8일 총신대학교 운영이사회 이사장 강진상 목사 취임예배를 전후하여 총신대학교 제1종합관 앞에서 총신대 총학생회(회장 최대로)가 “즉각 퇴진, 우리는 총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영우 OUT”이라는 피켓을 들고 “김영우 총장은 퇴진하라”는 구호와 함께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는 운영이사회 이사장 취임감사예배를 마치고 예배에 참석했던 관계자들과 함께 2층 총장실로 이동하자, 총장실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했다.


점차 총신대학교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법인이사회는 이사 사임과 임기가 종료로 인하여 이사회를 소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긴급처치리권자를 지명하여 이사선임을 요구해도 이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제3차 통보로 2016년 12월 27일까지 모든 이사들이 임기가 종료되어 재단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자 임기종료된 이사들로 하여금 긴급 처리권으로 후임이사를 선출하여 보고하도록 통보했다. 자파 세력(총회측과 김영우 목사 측)을 이사로 선임하려는, 선임되게 하려는 치밀한 눈치 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2016년 12월 27일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가 소집될 당시 종합관 1층 로비에서 학생들과 일부 교수들이 시위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하지만 2016. 12. 27.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로 개회되지 못하고 교육부의 요구사항인 후임이사를 선출하지 못했다. 모처럼 총회측과 총신측의 관계자들이 합의하여 소집된 27일에 법인이사장 직무대행인 안명환 목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정족수 1인이 부족하여 개회 되지 못하자 기자회견을 통하여 자신의 울분을 토로하고 돌아가버렸다. 그의 뒷 모습은 총회의 참담함을 보는 듯 했다. 

 

당시 총회 관계자들을 비롯한 참석한 이사들은 한결같이 불참한 이사들에게 연락하여 출석케 하여 정족수를 채워 학교운영과 졸업에 대한 학사 문제, 재정결산과 예산승인 문제, 이사 선출 등의 현안 문제를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 의논해야 함에도 이를 거부하고 돌아가 버리자 이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를 사랑하기 때문에 법인 이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안명환 목사의 명분론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교단 역사 기록에 길이길이 남게 될 사안이었다. 만약에 이날 정족수가 되어 이사회가 개회되었더라면 총회와의 관계속에서 이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정족수 요건이 충족될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사회는 개회되지 못하자 총회와 이사회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 2017. 2. 3. 이사회는 언론에도 중요 이슈였다.  © 리폼드뉴스


2017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총신은 밝은 새해가 되지 못했다. 이사회가 2월 3일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 소집되었다. 교육부가 총신대 이사회의 임원취임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2월 6일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소집일을 3일 앞두고 소집된 이사회였다. 이날 출석한 긴급처리권을 갖고 있는 이사들은 10명이었다(① 안명환 목사, ② 고영기 목사, ③ 김승동 목사, ④ 김영우 목사, ⑤ 김정훈 목사, ⑥ 배광식 목사, ⑦ 유병근 목사, ⑧ 이완수 장로, ⑨ 이승희 목사, ⑩ 한기승 목사)


개방이사와 일반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결의정족수는 이사정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사 정수가 15명이므로 과반수는 8명이다. 8명이 찬성해야 이사로 선임된다. 개방이사 선임을 위한 1차 투표에서 4명 중 2명만이 선출됐다(이덕진, 백동조). 이사회는 재투표에 붙여 2인을 추과로 선출하여 개방이사 4명을 선출했다. 추가로 충청권 2인인 윤익세 목사와 오정호 목사는 배제되고 대신 영남권 2인인 김승동 목사와 박병석 목사가 선출됐다.

 

이어서 일반이사 선출에 들어갔다. 일반이사 추천된 11명의 후보자 소강석 목사(중부호남), 박재신 목사(중부호남), 서한국 목사(중부호남), 권순웅 목사(서울서북), 고영기 목사(서울서북), 김종준 목사(서울서북), 김희태 목사(서울서북), 배광식 목사(영남), 이승희 목사(영남), 김신길 장로(영남) 양대식 목사(영남) 등이었다.

 

그러나 일반 이사는 단 한 명도 선출되지 못했다. 출석이사 10명 중 이승희 목사는 바쁜 일정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이사 8명이 찬성해야 이사로 선출된다. 이제 9명의 이사 중에 2명만 반대해도 이사가 선임되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날 참석한 복수의 이사에 의하면 "투표를 진행 중에 이사장 직무대행인 안명환 목사가 다른 한 이사(실권을 가진 긴급처리권 이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후 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이승희 목사가 떠나자 9명 중에 2명이 반대하면 7명이 되어 당선표인 8표에 1표가 모자란다. 이날 무기명 비밀로 일반 이사 선출에서 계속 2인이 반대하여 선출되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승희 목사만이라도 끝까지 참석하여 투표하였더라면 이사회는 총회 중심으로 정상화 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해야 할까? 총회와의 관계속에서 이사회 운영을 거부한 세력들은 꾸준히 정상적인 이사회를 거부하는 길만을 찾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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