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한 모델로서 정근두 목사 설교 연구(7)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8/29 [19:19]

[논문]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한 모델로서 정근두 목사 설교 연구(7)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김순정 | 입력 : 2020/08/29 [19:19]

 

  © 리폼드뉴스

 

3) 야고보서 4:1-3

제목: 궁극적인 관심사

 

(1) 서론(본문의 개괄적 설명)

오늘 본문은 싸움과 분쟁의 원인을 말하고, 이어서 욕망이 지배하는 삶의 결과를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구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2) 본론

I. 싸움과 분쟁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까? 여러분의 지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II. 욕망이 지배하는 삶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삶에 달관한 분이 우리 모습을 보면 정말로 한심할 것입니다.

 

III. 삶의 궁극적 목적(선택)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왜 그렇게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하는지 도대체 야고보 선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달라고 하면 될 것인데, 왜 그렇게 싸우는지 아이들 키워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달라고 하면 엄마아빠가 얼마든지 주려고 하는데 왜 동생이 가진 것을 꼭 빼앗아야만 됩니까?

 

(3) 적용: 원리적 적용: 핵심은 내 욕망을 충족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지 그게 늘 문제인 겁니다. 생의 궁극적 선택은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것인지, 되는대로 욕망을 따라 살 것인지 택일하셔야 합니다. 구체적 적용: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그 일 때문입니까?

 

위의 설교도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와 전개가 논리적으로 연결되며 진전이 있는 전개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 목사는 로이즈 존즈가 바람직한 설교를 위해 강조하였던(물론 필자도 강조하고 있는 바이다) 통일성, 논리적 연결 그리고 생각(사상)의 진전을 이루는 탁월한 설교의 구조와 전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제는 있다. 이러한 논리적 연결생각의 진전을 추구하는 설교가 간단명료한 소위 삼대지 설교에 익숙한 성도들에게는 어렵고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근두 목사도 설교 사역을 하면서 계속 그 어려움에 직면한 것 같다. 야고보서 설교에서도 종종 그러한 설교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 자리에 발걸음을 옮기신 여러분, 그렇습니다. 제 설교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처럼 재밌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런 프로그램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교훈 하나도 얻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 없이 교회에 나와서 까지 의미 없는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교회는 여러분에게 별로 맞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지루할 것입니다. 특히 진리 안에서 자라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이에게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마음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하는 강해 설교는 전개 방식에서 주제 설교처럼 대지를 뚜렷이 나누는 식이 아니다 보니 듣다가 다른 생각을 하면 따라잡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조금 더 은혜를 사모하는 열심이 요구됩니다.”

 

물론 정 목사의 이러한 고민과 부담은 바람직한 설교를 위해 모든 설교자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예화 또는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을 좀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4. 아쉬운 점

 

1) 설교의 핵심 주제 그리고 설교의 구조와 전개에 있어서 헬라어 구문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문법적 관계가 분명하다. 다시 말해, ··격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고, 수식관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설교할 본문의 문법적 수식관계를 도표(diagram)로 정리해 보는 것은 본문의 핵심 주제와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고 필요하다. 다시 말해, 주 문장과 보조 문장 그리고 수식어와 수식구 등의 문법적인 관계를 고려해서 본문을 도식해 보면, 단어들의 관계, 절과 절의 관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함으로 본문의 주제와 구조 그리고 설교의 구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본문을 도식할 때 원어(히브리어와 헬라어)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최소한 영어로는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 1:2-4와 야고보서 1:5-8을 구문론적으로 분석해 보자.

 

(1) 야고보서 1:2-4

My brothers and sist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any kind, consider it nothing but joy,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produces endurance; and let endurance have its full effect,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lacking in nothing(NRSV).

 

본문에서 주 문장은 두 개의 명령형이다. , 1) consider it nothing but joy(오직 기쁘게 여기라)2) let endurance have its full effect(온전한 인내를 가져라). 따라서 본문은 시험을 맞이하는 자세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해적(진정한) 설교또는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위해서는 설교의 핵심 주제와 설교의 구조와 전개에 이러한 본문(원어)의 구문론적 분석이 반영되어야 한다.

 

(2) 야고보서 1:5-8

If any of you is lacking in wisdom, ask God, who gives to all generously and ungrudgingly, and it will be given you. But ask in faith, never doubting, for the one who doubts is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and tossed by the wind; for the doubter must not expect to receive anything from the Lord(NRSV). being double-minded and unstable in every way,

 

위의 본문에서는 두 개의 명령이 주문장이다. , 1) ask God(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2) ask in faith, never doubting (믿음 안에서 의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시험 때에 기도할 것(그 결과는 응답받을 것이다)과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로서 믿음 안에서 의심치 않고 기도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구문론적 분석이 설교의 핵심 주제와 설교의 구조와 전개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 때 강해적(진정한) 설교또는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될 수 있다.

 

2) 본문 선택 범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흔히 본문을 선택할 때는 하나의 중심적이고 통일적인 주제가 도출될 수 있는 단위(A Single Unit of Thought)’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 의미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pericope)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문의 단위가 설교자의 취향이나 관점 또는 청중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한 단위를 여러 번 나누어서 설교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정 목사는 야고보서를 연속적으로 강해 설교할 때 1절을 4회에 걸쳐서 설교하였고, 야고보1:12-18도 함께 이해되어야 하는 하나의 의미의 단위이지만 네 번(1:12, 13-16, 16-17, 18)으로 나누어서 설교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나의 의미의 단위를 여러 번 원자적으로 나누어서 설교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나누어서 설교하는 모든 부분에서 그 단위의 전체 핵심 주제를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본문이 의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근두 목사의 설교 가운데도 그러한 부분들이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정 목사는 야고보서 1:19-21을 두 번 나누어서 설교하였고, 21절의 의미를 넓혀 설교하였다. 그러나 19-21절은 의미의 한 단위이고 21절은 19-20과 연결하여 그 결론으로 설교되어야 한다. 417절도 마찬가지이다. 417절은 4:13-17의 결론이다. 따라서 417절을 독립적으로 접근하여 의미를 부가하기보다는 13-16절과만 연결하여 그 결론으로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설교일 것이다.

 

III. 나가면서

 

정근두 목사의 설교를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참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필자가 강조하는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한 모델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느낌이었다. 다만 그의 설교 사역이 한창 진행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아무쪼록 한국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회복되어 한국 교회가 새로운 도약과 부흥을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