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권세와 복종, 로마서 13:1-7

본문 / 로마서 13:1-7

소재열 | 기사입력 2020/08/21 [06:30]

[설교] 권세와 복종, 로마서 13:1-7

본문 / 로마서 13:1-7

소재열 | 입력 : 2020/08/21 [06:30]

 

 

본 설교는 소재열 목사의 로마서 강론 중 로마서 13:1-7절 내용입니다.(편집자주)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단순히 로마에 보낸 서신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바울의 서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곧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입니다.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신약성경의 계시를 완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맥락에서 살펴야 합니다. 즉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신 구원의 말씀이라는 대 전제하에서 살펴야 합니다.

 

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부터 11장까지 복음을 설명합니다. 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 복음을 위해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도는 그 아들에 의해 은혜가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직분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직분의 출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은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도는 11장까지를 마친 다음에 12장에 와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면서 11장까지의 말씀을 마친 후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12장 말씀은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명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나서 13장으로 넘어옵니다. 13장은 12장 1절애서 언급된 ‘그러므로’라는 말씀의 연속입니다. 연속된 말씀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권세와 복종이라는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첫째,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을 언급합니다. 여기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앞뒤 전후 문맥을 보면 ‘국가의 권세 잡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다스리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통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에는 ‘칼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칼을 차고 있다는 것은 심판하는 권세를 말합니다.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법관을 가리켜 칼을 차고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1절). 하나님의 사역자들입니다(4절). 하나님의 일꾼입니다(6절). 본문은 이런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복종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1절에 ‘각 사람’이라고 합니다. 각 사람이란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2절 말씀에 보면 이같은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으로 판단하여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과 같이 심판한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란 왕권신수설이라는 사상은 아닙니다. 왕권신수설이란 17세가 절대주의 국가를 옹호했던 정치사상입니다. 왕권이 신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왕은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인간은 저항권 없이 절대 복종하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신하인 국민이 왕에게 반역하는 것은 곧 신에게 반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은 왕권신수설을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1603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실은 술렁거렸습니다. 여왕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없어서 누구를 영국의 왕으로 세워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제임스 1세가 여왕의 먼 친척이므로 그를 영국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1세는 여왕과 다르게 전제주의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은 신이 내리는 사람이니 국민들은 왕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런 왕권신수설을 지지하는 본문은 아닙니다. 간혹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주의 종으로 하나님이 세웠으므로 목회자를 대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다”라며 전제주의 왕권과 같은 권력을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역시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목사가 곧 교회이다”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목사직에 대한 오해의 주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본문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란 국가의 통치자들이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비단 국가 통치자들만을 말하는 본문이겠습니까? 이 땅에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국가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구성된 다양한 단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구성원인 사람이 존재합니다. 국가를 비롯하여 모든 단체들은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권세자들, 권위자들을 세웠습니다. 국가의 백성이나 단체의 구성원들은 그러한 권세자, 권력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순종이라 하지 않고 복종이라 하였습니다.

 

복종은 강제성이 있습니다. 4절의 말씀대로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고 합니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탐닉해서는 안됩니다.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은총에 의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해 쓰임받은 권력이므로 그 권력을 통해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낼 경우, 권력 남용 죄로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역활동을 합니다. 국가는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고 이를 종결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국가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선을 베푸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기에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지 아니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에게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 신자들이 정치적인 신념으로 국가가 제시하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한 예방수칙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 고통은 본인에게로 돌아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복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왜냐하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권세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이 통치자를 세웠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국민을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서 세웠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영역주권 사상을 말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친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구원과 관련된 특별은총의 범주에서 이해되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은총의 범주인 사회와 국가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국민이 선택한 정부나 통치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해서, 혹은 국민들과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위해 섬기는 자들로서 세웠습니다. 물론 통치자들도 자신의 권세과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통치자 입장에서 언급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장에서 그 통치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문 말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통치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은 하나님이 주신 권력이요, 자신 위에 권세와 권력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선한 권력행사를 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입니다.

 

모든 권력과 주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이를 믿는다면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진행된 내 주변의 모든 사건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해 세워진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셋째, 복종하지 아니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2절에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권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한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하니하므로 받은 형벌 심판과는 다른 것입니다. 위에 있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하지 아니할 때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러한 고통은 스스로 ‘자취’하는 것입니다. 아것을 심판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4절에 의하면 위에 있는 권세자들의 통치에 복종하지 아니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는 말씀과 같은 심판입니다. 복종하지 않고 불법을 행할 때에 벌을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집행할 것입니다.

 
2. 복종과 불복종

 

첫째, 어떤 자들이 통치자들을 두려워 합니까?

 

사도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권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권세에 복종하였을 때와 복종하지 아니하였을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본문 3절에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자들, 즉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치자들이 두려움이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들, 즉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 공권력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자들은 무엇인가 양심에 반한 불법을 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복종하지 않는 결과로 두려움이 찾아오고 실제적으로 고통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도는 이미 1장에서 11장까지에서 우리들의 구원은 우리들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행위란 율법행위를 언급합니다. 율법이란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독특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율법이란 불순종한 자들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해 주는 하나님의 약속, 즉 언약입니다. 이러한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 유대인들은 믿으라는 예수는 안믿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특별은총(구원)을 위해 일반은총을 수단으로 이용하십니다. 세상 국가나 정부, 그리고 그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속한 하나님의 축복들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해 주어진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들, 옳은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그 통치자들이 두려움이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범한 자들은 통치자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실현시켜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 공연히 칼을 갖겠습니까?

 

본문 4절에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고 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합니다.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국가와 세상 정부에게 권세를 주어서 악을 처단하고 제재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선을 베풀게 합니다.

 

만약에 악을 행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주어진 검을 통해 그들에게 진노로 갚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악한 영들을 통해서도 심판하십니다. 역사를 통해 심판합니다. 독재권력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독재권력을 회초리로 사용한 후에 그 독재권력을 비참하게 처단하십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백성들이 국가에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권력자들이나 백성들은 공히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셋째, 복종할 때 복종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입니까?

 

본문 5절에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권세에 복종하되 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 선한 양심은 국가의 권력과 권세가 두려워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양심에 따라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은 누구에게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저항하자고 할지라도 나는 내 양심에 따라 판단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 양심을 억압할 수 없습니다.

 

3. 조세와 관세

 

사도는 이제 구체적으로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모습으로 조세와 관세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본문 6절에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고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위해 쓰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재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민은 조세, 즉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는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 통치권자들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 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워 하게 될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지 않더라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존경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나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정인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사태로 대다수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이 일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일로 일반 불신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전도의 문이 막히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에 따라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종하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결탁하면 그것은 타락을 가져온다는 점은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고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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