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어린 나귀와 예수 그리스도

요 12:12-19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4/25 [19:40]

[김순정목사 설교] 어린 나귀와 예수 그리스도

요 12:12-19

김순정 | 입력 : 2020/04/25 [19:40]

  © 리폼드뉴스

 

우리는 종종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성화를 보게 됩니다. 그 그림에서 우리는 어린 나귀에게 눈을 돌립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겠는가? 성인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어린 나귀를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어린 나귀처럼 헌신하자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어린 나귀의 헌신이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대로 성경을 이해하면 안됩니다.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 그리고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1. 이스라엘의 왕(12-13)

 

이스라엘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 명절은 12:1에 나오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구원의 날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며 예배하는 날입니다(출 12:27). 그 날에 애굽을 심판하는 죽음의 사자가 어린양이나 염소의 피가 발라져 있는 문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구원이 주어진 것입니다. 큰 무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갔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개선장군이나 왕에 대한 경의의 행동이었습니다.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내용을 기록한 마카비상서에 보면 171년 2월 23일에 유다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하고, 비파와 꽹과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침공한 시리아의 군대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이스라엘에서 퇴각한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습니다(마카비상서 13:51).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13) 호산나는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의 감탄사입니다. 누구를 찬송한다는 말인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메시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왕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왕들의 하나가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분(호), 곧 이스라엘의 그(호)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2.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14-16)

 

그래서 원문은 정관사를 썼습니다. 그토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왕이 왔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가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들이나 황제가 타는 백마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14). 이상한 일입니다. 왕이고 구원자라면 화려하게 입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초라하게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하기를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되어 있습니다(15). 이스라엘의 메시야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9:9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이를 표적이라고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메시야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왕들처럼 백마나 멋진 말을 타고 화려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주 독특하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이것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16).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단지 어린 나귀의 희생이나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야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메시야는 자신에 대해 예언된 대로 표적(세메이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메시야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표적 중 하나가 바로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17-19)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했습니다(17). 그들은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려주시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여겼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사건을 목도한 그들이 증언했습니다. 이에 무리가 예수님을 환영하며 맞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18).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메시야이신 줄 믿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주는 강력한 왕이 오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착각입니다. 구약성경을 잘못 이해했던 결과입니다. 오실 메시야 즉 초림하시는 메시야는 로마에서 해방과 독립을 가져오는 왕이 아닙니다. 그 일을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니라 죄와 사망,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에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에 죽어야 했습니다.

 

사 53:5-6절에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합니다.

 

결론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에게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의 구원자로 믿어야 합니다. 이 구원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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