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정교분리론(3)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1/25 [18:56]

칼빈의 정교분리론(3)

김순정 | 입력 : 2020/01/25 [18:56]

 

4. 정부의 형태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원죄 하에서 출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한 상태로 살아간다.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죄악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의한 정치는 모두 타락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칼빈은 귀족 정치가 또는 귀족 정치와 민주 정치를 결합한 제도가 다른 형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J. Calvin, Inst, IV. 20. 8).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칼빈이 귀족 정치 자체가 좋다고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주장한 것은 항상 공정하며 바른 생각만을 하는 자제력이 강한 왕은 드물기 때문이며, 뛰어난 총명과 지혜로서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아는 왕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결함이나 실패 때문에 여러 사람이 정권을 운영하는 편이 더욱 안전하고 보다 견딜 만하다고 했다.

 

칼빈은 “주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민주 정치에 가까운 귀족 정치를 제정하셔서 그의 권위로 이 점을 확인하셨다. 주님께서는 다윗을 세워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실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좋은 형태 아래 두려 하셨다(출 18:13-26; 신 1:9-17). 또 나는 자유를 적절한 절제로써 조절하고 견고한 기초 위에 바르게 확립하는 정치 제도가 가장 좋다고 인정하며 이런 형태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8).

 

칼빈이 집권자들의 직책을 설명하는 목적은 그들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집권자들은 무엇을 하며 어떤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임명하셨는가를 알리려는 것이다. 집권자들은 공중의 무죄와 겸손과 예절과 평온의 보호자와 옹호자로 임명되었으며 사회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집권자들이 악인들의 침해를 받는 선한 사람들을 지켜 주지 않고 압박받는 사람들을 보호하지도 원조하지도 않는다면 이 직책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거나 깨뜨리는 노골적인 악인들과 범죄자들을 엄격하게 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무기로서 받았다(롬 13:3).

 

5. 집권자들의 강제력

 

칼빈은 “집권자들의 강제력 행사는 경건과 양립한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0). 하나님의 법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금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으리라고 예언했다면 어떻게 집권자들은 경건하면서도 동시에 피를 흘리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집권자가 벌을 주는 것은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평을 실시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이 문제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다. 주의 율법은 살인을 금지한다. 그러나 살인자는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입법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군들에게 칼을 주어서 모든 살인자를 벌하게 하신다. 경건한 자들을 해하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경건한 자들에게 가한 고통이 주의 명령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해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칼빈은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서 사람의 경솔한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고 모든 일을 명령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서 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는 동안은 우리는 바른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악행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정의를 억제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어떤 법을 강요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일군들을 비난하려고 하는가? 바울은 그들이 공연히 칼을 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위해 보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롬 13:4). 그러므로 군주들과 집권자들이 그들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가납하실 만한 경건과 의와 정직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이 임무를 전력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0).

 

관용은 군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선물이다. 그러나 집권자는 관용에도 주의해야 하고, 과도한 엄격함에도 주의해야 한다(J. Calvin, Inst, IV. 20. 10). 그러므로 집권자는 양편 모두를 공정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관용으로 때로는 엄격한 공의로 행해야만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공의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

 

6. 국가의 전쟁수행권

 

칼빈은 정부의 전쟁 수행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왕과 국민은 공적 보복을 위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목적으로 수행하는 전쟁을 합법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칼빈은 “그들에게 영토 내의 평온을 유지하고 불온한 사람들의 선동을 억제하고 압제를 받는 사람들을 돕고 악행을 처벌하는 권한이 부여되었다면 개인의 평안과 모든 사람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나 선동적 소란을 일으키는 자나 남을 폭압하며 학대하는 자들이 있을 때 그들의 광증을 억제하는 것보다 더 그 권력을 적합하게 사용할 기회가 있겠는가?”라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1).

 

칼빈은 “집권자들은 공정한 처벌로 개인들의 비행을 무력으로 억제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맡아 지키는 영토가 적의 공격을 받을 때는 전쟁으로 방어해야 한다. 성령께서도 성경의 많은 증거를 통해 이런 전쟁을 합법적이라고 선언하신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1). 적들이 들어와 나라를 황폐하게 하고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집권자들은 그들을 향하여 전쟁을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적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방어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합법적인 전쟁으로 인정한다.

 

칼빈은 신약에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을 해도 좋다는 증거나 전례가 없다고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첫째, 전쟁을 해야 될 이유는 옛날과 같이 지금도 있으며 집권자들이 그 지배 하에 있는 주민을 방위하지 말라는 이유도 없다. 둘째,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말을 사도들의 글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그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었지 정부를 조직하려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 점에서는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않으셨다는 것이 성경의 언외에 나타나 있다”라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2).

 

여기서 조금이라도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는 것이 모든 집권자들의 의무이다. 법을 주어야 할 때라도 격분에 휩쓸리거나 증오심에 사로잡히거나 무자비한 가혹으로 해서는 안된다. 또 그들은 벌을 받을 사람의 특별한 과실만을 보지 말고 그에게 있는 공통된 본성에 동정해야 한다. 또 적에 대해서 즉 무장 강도에 대해 무장해야 할 때에도 그렇게 할 기회를 찾아서는 안되고 절대 필요하지 않다면 주어진 기회도 피해야 한다. 칼빈은 여기서 “두 가지 경우의 어느 쪽에서도 집권자들은 사적인 감정에 지배되어서는 안되고 국민을 위한 고려만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받은 권력을 남용하게 되고 이것은 심히 악한 일이다”라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1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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