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칼빈주의 교회론(3)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1/02 [20:19]

박윤선, 칼빈주의 교회론(3)

김순정 | 입력 : 2019/11/02 [20:19]

 

(박윤선 박사는 「신학지남」에 칼빈주의 교회론에 대해 상세하게 연구하여 발표했다. 조직신학자가 아닌 성경신학자의 시각에서 칼빈주의 교회론에 대해 연구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칼빈주의 교회론을 다시 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VI. 은혜의 방편

 

은혜의 방편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말한다. 그런데 그 작용은 어떤 것인가? 로마교는 은혜의 방평으로서 성례가 그 자체에 은혜를 보관하고 있다고 잘못 말한다. 그리고 신비가들은 성령의 직접적 사역을 강조하며 말씀과 성례는 심령 속에 은혜의 역사를 비유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는 위의 두 가지 견해를 반대하고 하나님은 은혜의 방편에 절대적으로 메이지 않으셨으나 그가 그것들을 그의 기쁘신 뜻대로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은혜의 방편의 한계는 교회, 신앙, 회개, 기도도 은혜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은혜의 방편을 실시하는 자이고 방편 자체는 아니며 회개, 신앙, 기도 등도 은혜를 받은 결과로 생기는 신자의 주관적 행위이고 은혜의 방편은 아니다. C. Hodge는 기도도 은혜의 방편으로 생각하나 L. Berkhof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은혜의 방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의 범위

이것은 인격적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께서 직접 나오는 계시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기록된 말씀을 가리킨다. 주로 증거자의 입으로 전파되는 때의 그것을 말하나 그 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자들을 접촉하는 그 말씀도 가리킨다.

 

(2)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

개혁자들은 성경 말씀의 능력있는 역사를 무인격한 마술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늘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와 연락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성령은 무인격적 능력이 아니고 늘 말씀과 함께 하시며 말씀으로 활동하게 하시되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역사하시지는 않는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이 말씀으로써 역사하시고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혹은 강퍅하게 하시고 혹은 일어나게 하시고 혹은 넘어지게도 하신다. 그가 이 말씀으로 역사하시되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하시는 것은 아니다.

 

(3)말씀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의 관련

율법주의는 말씀 사역만 강조하고 성령의 역사를 필요하게 느끼지 않는 반면 반율법주의는 성령의 역사만 강조하고 말씀의 역사를 등한히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말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의 동반을 주장한다. 성령께서 말씀없이 역사하실 수도 있으나 보통으로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

 

(4)말씀의 두 가지 부분

율법과 복음은 말씀의 전 내용이다. 그런데 율법과 복음은 언제나 서로 정반대되는 것인가? 첫째, 바울이 말한대로 그 둘이 서로 정반대된다는 것은 율법의 정죄 사역 방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복음을 믿도록 하여 주고 또 복음대로 살도록 성결의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점에서 율법이 복음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과 복음은 서로 동반되어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그러하다.

 

2.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세례

 

(1)말씀과 성례의 비교

첫째, 말씀은 성례없이는 스스로 존재를 유지하며 또 스스로 완전하나 성례는 말씀없이 스스로 완전할 수 없다. 둘째, 말씀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며 믿음을 견고하게 함에 필요하나 성례는 다만 믿음을 견고하게 할 뿐이다. 셋째, 말씀은 세계 그 어디든지 가지만 성례는 진실한 신자들만 상대한다.

 

(2)성례의 종류

첫째, 세례

세례와 침례에 대한 반론. 침례는 물속에 몸을 잠금이고 세례를 물로서 머리를 조금 적심이다. 침례만이 정당하다고 하는 학자들은 롬 6:3-4의 말씀에 근거해 세례받는 자를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게 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롬 6:3-4에 기록된 말씀은 이 성례가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침례를 보장하지 않는다. 칼빈주의 신학은 이 성례가 정결케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고 물로 적시는 표식만으로도 그것을 베푼다. 그 근거로는 구약의 결례에서 추론된다. 구약의 결례도 그저 비유와 표식으로서 물을 뿌리거나 적시는 것으로 시행되었다.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 유아세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유아가 할례받은 사실에 근거한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 이유는 양자가 다 영적 의미를 가지고 같은 계약에 참여한 자를 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계약은 구약의 것의 계속이다. 중보자가 같고 축복받는 조건도 같고 축복 내용도 같다. 사도 바울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계약이 변치 않는다고 힘써 변증했다(롬 4:13-18; 갈 3:15-18; 히 6:13-18).

 

합법적 세례. 이것은 목사만 시행하며 교회적 규례로 신자들이 모인 공석에서 시행되어야 하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식은 물로 베푼다.

 

둘째, 성찬

성찬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에 대한 해석들. 로마교는 화체설을 주장하여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고 한다. 덕과 포도주의 속성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그 본질은 예수님의 살고 피로 된다는 것이다. 이 근거는 마 26:26과 요 6:50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루터파는 예수님의 인성이 그 신성과 연합되었으니 신성의 무소부재 속성에 따라 인성도 편재하게 된다는 원리를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찬의 물질에도그리스도의 인성은 섞여 있다고 한다. 떡과 포도주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존설이다. 이것도 예수님의 말씀을 억해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신 것이지 “이것은 내 몸과 동반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쥥글리는 성찬이 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다만 그의 신성이 그 행사에 임하는 것뿐이고 그의 몸이 실제로 거기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 불린저는 그가 형성한 제2헬베틱 고백서에서 성찬이 다만 표식뿐이란 사상에 반대했다. 이것을 보아 쥥글리도 성찬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칼빈은 “성찬을 시행할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능력적으로 임재한다. 이는 마치 태양이 하늘에 있으면서도 그의 빛과 열이 땅에 임함과 같다.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의 중재에 의해 그 영향력이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그것은 성령의 영향력과는 다르다.”고 했다.

 

성찬은 어떤 방법을 그 참석자들에게 은혜를 주는가? 로마교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새로운 희생 때문에 참석자들에게 은혜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 참여하는 자들에게 신앙이 있든 없든 성찬은 그들에게 은혜를 준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절대 완전성을 무시함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의 희생은 완전하여 중복적으로 다시 희생되실 필요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단번에 죽으셨다.

 

칼빈주의에서는 그것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가 영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성찬은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이것을 행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하나님 말씀의 역사가 임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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