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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 역대 졸업 기수 원칙, 재정리 돼야!
어떤 원칙에서 2009년 졸업이 총신 102회인가?
 
리폼드뉴스 기사입력  2009/05/28 [15:12]
1959년 3월 6일 총신졸업은 총신 몇 회인가? 1959년 9월 24일에 개회된 제44회 총회에서 통합측과 합동측이 분열되면서 총신과 장신으로 분열되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1959년 3월 6일에 총신을 졸업한 학생들은 총신기수가 같아야 한다. 그런데 통합측인 장신에서는 제52회라고 하고 합동측인 총신은 제53회라고 한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면 통합측에 속하든, 합동측에 속하든 졸업 기수가 같아야 하는데 다르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2007년에 와서는 통합측인 장신과 합동측인 총신의 졸업은 제100회로 같다는 점이다. 졸업 회수가 의도적으로 짜맞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신은 1949년 남산장로회신학교 제2회 졸업생을 총신 제42회로 했다. 그리고 나서 1950년 장로회신학교 제3회 졸업을 총신 제44회로 했다. 1949년 제42회, 1950년을 제44회가 되었다.

합동측 총신은 1952년 전기 졸업과 후기 졸업을 총신 제46회로 하면서 1953년 3월 25일 졸업은 제47회로 1953년 9월 2일 졸업은 제48회로 계산한다. 그러나 통합측 장신은 1953년의 모든 졸업을 제47회 하고 있다. 통합측 장신과 합동측 총신은 공히 1954년은 졸업생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1955년 졸업은 통합측 장신은 제48회로, 합동측 총신은 제49회로 졸업기수를 잡고 있다.

1938년 9월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평양신학교를 폐교하여 무기휴학에 들어갔지만 그 후에 평양신학교를 복교하지 않았다. 평양신학교를 복교하지 않자 채필근을 교장으로 한 평양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재개했다. 이 신학교를 후평양신학교라고 하는데 1940년부터 1949년까지 이어진다. 이 후평양신학교의 교장은 채필근, 김인준, 이성휘 박사로 이어진다. 통합측 장신은 이 후평양신학교를 학교 연혁에 삽입하여 역사적인 정통계승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합동측 총신은 학교 연혁에서 후평양신학교를 역사적인 정통성 계승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총신 기수에 후평양신학교 졸업생을 포함시킨다. 이상한 역사기록이다. 후평양신학교인 1940년 제35회부터 1949년 제44회 까지를 총신의 역대 졸업을 총신의 역대 기수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렇게 후평양신학교 졸업생을 총신 전체 졸업기수에는 포함시키면서도 역사적인 정통계승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결국 합동측 총신은 박형룡 박사를 교장으로 한 남산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1948. 7. 9)을 전체 총신 제41회로 계산했다. 1948년 남산 장로회신학교를 1938년 폐교되기 전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 신학교로 역사를 기록한다. 중간에 후평양신학교를 총신 역사의 계승으로 삼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총신 졸업기수는 후평양신학교를 포함해서 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 이상한 역사 계승이다. 역대 총신 기수를 다시 바르게 잡아 정리해야 한다.

합동측 총신은 1938년 9월 이후부터 1948년 7월 이전까지 근 10년 동안의 역사는 공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총신 역사 연혁에서 1938년에 1948년으로 건너뛴다. 그러나 통합측인 장신의 학교 연혁에서는 1938년 9월에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었다고 보지 않고 휴교했다고 본다. 따라서 1940년의 후평양신학교를 다시 재개하는 것으로 보면서 1940년부터 시작된 후평양신학교를 현재 장신의 역사계승으로 본다.

총신의 전신인 평양신학교가 1901년에 설립되고 첫 졸업생은 1907년 6월 18일에 7명이 졸업하여 제1회 졸업생이 된다. 1년에 1회씩 해서 졸업기수가 정해진다면 2007년에 총신 100회가 된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2007년 졸업생을 제100회가 된 것이 아니라 짜맞추다 보니 100회가 된 것뿐이다.

언젠가는 총신 졸업 기수에 대한 정확한 정리가 있어야 한다.
 
1959년 분열 후 평양신학교로부터 역대 학교 교적부를 소유한 분이 총신의 관련 당사자에게 접근하여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총신쪽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장신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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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28 [15:12]  최종편집: ⓒ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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