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논단] 목사와 장로가 교회 희망의 문을 막아서는 안된다

2019년 새해에 교회,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소재열 | 기사입력 2019/01/01 [20:07]

[새해 논단] 목사와 장로가 교회 희망의 문을 막아서는 안된다

2019년 새해에 교회,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소재열 | 입력 : 2019/01/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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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2019년은 이 땅에 1884년 개신교 복음이 전래 된지 13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07년에 조직된 장로회 독노회와 1912년에 조직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4회를 소집하지 못하였기에 2019년 새해는 제104회 총회가 된다.

 

또한 금년은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우리 선조들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본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펼친 날로부터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삼일운동은 1919. 3. 1.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 전국의 9개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면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2개월 간 약 2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가담한 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었다.

 

3월 1일부터 5월말까지 일제에 의해 학살된 사람이 7,979명, 부상자 15,961명, 검거된 사람이 46,948명에 달했다는 것이 일제가 후대에 남긴 역사의 기록이다.

 

삼일운동 당시 한국의 인구는 2천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 중에 기독교인은 약 20만 명 정도였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는 1%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에 기독교와 교회는 민족의 희망이었다. 1920년대 일제가 만든 비밀 문건 속에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체가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이다”라는 정보 분석 보고서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한 ‘유일한 단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과연 이 민족에 유일한 희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교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이 시대, 이 민족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라는 점은 우리들이 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 시대 역사가 그렇게 평가해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오늘날 교회 구성원들은 포악해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에 일정한 적극적인 저항세력들이 있다. 이들의 폭력성과 과격성은 교회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교회의 존립 기반을 무너지게 한다.

 

2019년 새해에도 변함없이 교회에 닥쳐올 태풍은 분쟁이다. 이제 그 태풍을 예견하면서 준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은혜로, 성경의 원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불행한 시대를 맞이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 시대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다.

 

이제 교회는 성경의 원리로부터 문제와 분쟁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약육강식의 비정한 원리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힘이 없으면 무너진다는 세속적인 해결책을 교회에 도입하여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세력화 하여 힘을 키운다.

 

교회의 소속 노회와 교단은 교회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 편에 교권의 힘을 제공해 주면서 달콤한 꿀을 얻어먹는다. 이러한 형태의 교회 분쟁은 모든 교회에 내재해 있다. 은혜의 원리, 섬김의 원리,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말은 성경에서나 하는 이야기라고 비아냥하면서 교회에서의 자신들의 교권을 자신들의 욕망의 분출구로 이용한다.

 

교회가 무너지는 일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고 자신들이 권력을 잡지 못한 일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한다. 자신들의 욕망과 교권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하나님마저도 이용할 수 있다는 사탄적인 발상들이 교회를 허물고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이제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성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 교회에서 성경공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인들의 성경공부는 둘째 치고 목회자들이 성경을 전혀 공부하지 않는다.

 

설교를 위해 골방에서 진을 짜내는 수고가 필요 없다. 이제 서재도 필요 없고 성경을 공부하지도 않아도 된다. 설교 자료는 홍수를 이루고 있다. 자신이 했던 설교를 자신의 부정한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짜깁기했기 때문이다.

 

설교는 그 설교자의 성경이해의 지평과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고있는 신지식과 연관되어 있다. 그 신지식은 신앙과 삶의 실천적 행위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설교를 통해서 드러난 목회자의 성경이해와 신지식에 대한 한계는 전혀 다른 기독교로 변질되게 한다.

 

그러니 교인들에게 무슨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상대를 트집잡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형국이 돼 버렸다. 설교의 타락은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타락한 일상이 노출될 뿐이다.

칼빈은 그토록 중요시 했던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고백, 교리,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이 시대 우리 교회가 다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교회의 운영을 위한 교회법이다. 칼빈은 중세교회가 천년 동안 집대성한 교회법을 20년에 걸쳐 집대성했던 그 교회법은 세계 장로교회의 운영체계와 원리로 삼고 있다.

 

교회 운영을 위한 교회법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은 교회를 성경의 원리나 합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교회에 적극적인 저항세력의 등장을 어찌 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목사와 장로가 변하지 아니하면 한국교회, 아니 본 교단 예장합동 교단은 희망이 없다. 2019년 새해에는 목사와 장로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준엄하게 말씀하신 내용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식이 용감하다는 어리석은 말을 듣지 않도록 배워야 한다. 교회 운영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불법적인 행위들이 언젠가는 목사와 장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나중에 피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겸허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꿇고, 교회 운영을 위한 교회법으로 자신의 마음에 경찰관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교회법이 없어도 합리적으로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천사와 같은 목회자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무엇이 원칙인지를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도 목회를,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만큼 교만한 마음은 없을 것이다.

교회는 여전히 이 시대 희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이 그 희망의 문을 가로 막아서는 안된다. 특히 목사와 장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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