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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고찰 2
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11/28 [09:5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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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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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상원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약한 인공지능의 기능과 한계, 강한 인공지능에 대하여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III. 강한 인공지능: 반이상향(dystopia)과 이상향(utopianism)

a. 강한 인공지능 약사

인공지능 개발에 관여하는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혹된 나머지 과학의 정당한 범주를 넘어서서 과학주의(scientism)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발견된 사실들을 객관적인 태도로 제시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그 적용의 범위가 엄격히 제한된다. 과학주의는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발견한 원리를 사색과 공상을 통하여 증명이 불가능한 먼 과거와 먼 미래의 영역에까지 적용하여 그 원리가 적용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가상의 세계를 마치 증명이 가능한 세계인 것처럼 제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진화론이 강력한 과학주의의 전형이다. 인공지능개발에 관여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과학주의를 지향하는 과학자들은 예외 없이 진화론자들이며, 진화론과 컴퓨터학을 융합한 융합학의 형태로 진화론의 습관을 그대로 차용하여 사변과 공상에 의지하여 구상한 가상의 미래를 이상적인 세계상으로 제시한다. Michael W. DeLashmutt는 경험적 관찰에 비추어서 사유의 실험을 전개하는 사변적 과학(speculative science)과 오락의 목적으로 허구적인 상상을 전개하는 과학소설(영화)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든 증명될 수 없는 상상에 근거하여 기술적으로 증진된 가상의 세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논리적인 추론이나 연산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신기능들 곧 지성, 감정, 의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까지 모두 갖춘 상태를 지칭한다. 인간이 가진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지 못한 엄청난 기술적인 능력까지도 갖춘 자는 초인(超人, superman)이며, 신적인 존재가 된다. 신적인 존재가 된 인공지능은 신에게서 갖출 수 있는 능력 특히 영생의 능력까지 가지게 된다. 초인으로서의 인공지능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선용하게 되면 이상향(utopia) 곧 천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고, 이 능력을 악용하면 현존하는 세계를 파괴시켜 반이상향(dystopia) 곧 지옥과 같은 황폐한 세계로 전락시킬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의 원시적 형태는 이미 고대 그리스에도 등장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하늘을 날았던 소년 이카로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왕의 탄압을 피해 크레타섬의 궁전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서 날개를 만들어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높이 날면 밀랍이 녹으므로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도록 했으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하고 높이 날다가 추락한다.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는 금으로 하녀를 제작하여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여성 판도라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진흙과 물로 만든 것으로서 로봇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기원 전 3세기에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Apollonius Rhodius)가 쓴 [아르고흐의 모험](Agronauts)에 보면 크레타섬을 지키는 청동괴물이 등장한다. 이 괴물은 하루 3번 섬을 돌면서 침입자가 들어오면 돌을 던지거나 몸을 뜨겁게 달구어 죽인다. 이 괴물의 약점은 청동 못으로 고정된 발 뒤꿈치였는데, 청동 못을 뽑자 납이 밖으로 흘러 나와 죽었다. 피그말리온(Pygmalion)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여자를 상아로 조각하여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그는 이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 여인과 같은 여인과 결혼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이에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과 결혼했다.

한편 유대사회의 민간전승에 등장하는 골렘 신화(the Golem myth)도 강한 인공지능의 원시적 형태다. 골렘은 마술에 의하여 100% 무생물 물질을 재료로 하여 창조되었으나 영혼을 주입받은 인간동형동성적인 존재다.

본격적인 강한 인공지능으로는 1818년 메리 셀레이(Mary Shelley)가 쓰고 1931년 테임즈 훼일(Tames Whale)에 의하여 영화화된 [프랑켄스타인](Frankenstein)이 있다. 이후에는 주로 영화들에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1897년의 프랑스 영화인 뤼미에르 조르쥬 멜리에스(George Mélliès)의 [어릿광대와 꼭두각시](Gugusse et l’Automate)에 등장하는 자동인형, 1900년의 영국영화 [인형제작자의 딸](The Doll Maker’s Daughter), 1907년의 미국영화 [기계상과 천재노예](The Mechanical Statue and the Ingenious Servant), 1914년의 독일영화 [골렘](Der Golem), 1924년의 러시아 영화 [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Alelita)이 그 예들이다.

1927년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본격적인 강한 인공지능 영화의 근대적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소개된다. 1939년 쥬디 갈란트(Judy Galant)의 [오즈의 마법사]에 양철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한다. 1956년에는 프레드 엠 윌콕스(Fred M. Wilcox)의 [금지된 행성], 1963년에는 일본 만화 우주소년 아톰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다가 올 미래인 2003년에 수많은 로봇들이 개발되어 인간도우미로 활동하는 도중에 인간의 마음을 가진 착한 로봇 아톰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아톰은 인간형 로봇의 방향을 제시했다. 1960년대 [우주가족 젯슨](Jetsons)에는 항아리 형태의 로봇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철인28호]. [마징가 제트], [울트라 맨], [로버트 태권V] 등에서도 로봇은 지구와 우주를 악당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한다. 1977년에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스타워즈], 1995년의 [토이 스토리](Toy Story), 2008년의 [월-이](Wall-E)는 폐기물처리용 로봇인 월-이에게 외로운 인간의 김정이 생겨서 로봇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1999년에는 감성적인 로봇이 등장하는 [2백년 인간](Bicentenial Man), 1987년에 시작된 [로보캅], 1999년 [형사 가제트] 등이 제작되었다.

b. 이상향(utopia)을 제시하는 묵시록적인 사변과학

티플러의 물리신학. 1994년 프랑크 티플러(Frank Tipler)는 사변과학서인『불멸의 물리학: 현대 우주론, 하나님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를 출간했다, 티플러에 의하면 신학은 물리학의 한 분과이며, 물리학자들은 계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죽은 자가 부활하여 영생에 이를 가능성을 추론해낼 수 있다(물리신학). 마음의 형태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담고 있는 기계들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일종의 정보처리형식이며,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인간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후인류시대의 미래는 보이저호와 비슷한 우주탐사선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 우주탐사선들은 그 안에 살아 있는 후인류지성을 담고 또 운영한다. 이 장치들은 현재의 태양이 수명을 다하면 지구로부터 발사되어 우주의 물질구조를 우주적인 후인류정보처리장치들로 변형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현재의 태양체계가 죽어 버리고 나면 우주 그 자체의 종말의 시기인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온다. 불멸에 대한 최대의 장애물은 우주가 붕괴되고 특이점(singularity, 모든 물질 에너지가 단일한 무한대의 점에 수렴되는 순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 영혼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썩지 않는 매개체 안에 장착된다.

이 지능기계의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확실하게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인류는 편재적, 전지적, 전시간적(omnitemporal)이 될 것이며, 오메가 포인트 안에서 전능하게 되어서 지성적 생명으로 전 우주를 감싸게 될 것이다. 인류 그 자체가 신이 되는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가상의 왕국을 추구한 묵시록적인 사변과학.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 시대의 시대적 고민 곧, 핵무기 확산, 냉전, 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 대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등으로 얼룩진 상흔들을 인공지능 기반의 과학기술에 기대어 극복해 보려는 묵시록적인 과학적 사색이 전개되었다. 묵시록적인 사변과학을 주도한 대표적인 과학자들로는 한스 모라벡(Hans Moravec)과 레이 쿠르츠와일(Ray Kurzweil)을 들 수 있다.

묵시록적인 사변과학자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실망한다. 유기체적인 몸은 그 수명이 제한되어 있고,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은 배우는 것이 힘겹고 생각하는 기능은 느려 터지고 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미래에는 단백질에 기반을 둔 생명형태들이 결코 기계들처럼 능숙하게 사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두뇌의 정보처리속도는 컴퓨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생명이나 사회관계에서 찾지 않고 지식에서 찾게 될 것이다. 모라벡에 의하면 인공지능 묵시가 터무니없는 지식의 결핍을 끝장낼 것이다. 지식의 결핍은 종교를 통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 세계가 악한 것은 세계가 도덕적으로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가 무지하고 적절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계의 세계는 정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정신의 시대는 사이버공간 안에 구현되는 가상의 왕국이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속도의 증진을 의미하는 기술의 진화는 현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특이점에 이르게 되어 마침내 눈깜짝할 사이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며, 이때 역사는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상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들을 열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목가적인 환경과 제약받지 않는 인격적 경험을 통한 속박되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불멸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지닌 창조성이 구원에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이 세계 안에서 인류가 담당할 주요한 역할은 인공적인 삶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인공적인 삶은 생물학적인 삶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것이다. 특이점에 이르러서 기계들은 충분한 지성을 갖추게 되어 자율학습을 시작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기계들의 성장률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들은 인류의 짐을 덜어 주고 사회적 사다리를 올라 보편적인 부유한 소유주들의 자리에 좌정하도록 떠밀어 올릴 것이다. 미래는 지상의 즐길 거리들이 가득 들어찬 정원이 될 것인데, 이 정원은 세상의 종말 직전에 실현될, 요한계시록20장4-7절이 말하는 천년왕국과 닮은 곳이다. 정원 밖의 공간에 포진한 지능로봇들의 군단은 인간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할 것이다. 지능로봇들이 부지런히 일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여가를 누리게 된다.

인간들은 비록 기계들보다는 덜 효율적이긴 하지만 지적인 발견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런데 기계들은 인류를 돌보는 일에 싫증을 낸 나머지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가 온 우주를 확장된 생각하는 실재로 전환시킬 것이다. 지능기계들이 확산됨에 따라 가상 현실도 확산될 것이다. 모든 물리적인 행동은 점증하는 순수한 사상의 망(web)으로 변환될 것이다. 온 우주는 광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창조될 것이다. 모든 역사는 지능기계들에 의하여 포박당하고, 지능기계들의 장난감들이 될 것이며, 지능기계들의 흥미와 오락을 위하여 재현될 것이다.

그런데 이 왕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계의 부품들과 인간이 인공인간(사이보그, Cyborg) 안에 융합되어야 한다. 아니면 인간이 유기적인 몸을 완전히 벗어 버림으로써 정신이 가상현실 속에서 자유롭게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초지능 기계들이 제공하는 천상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이 입고 있는 자연적인 몸이 지닌 기능들은 컴퓨터 하드웨어로 대체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게 기계의 하드웨어가 제공되면 인공지능들과 정신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술은 점차 더 강력해져서 마침내 우리의 의식을 기계 안에 다운로드하여 인간의 몸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몸을 벗어난 초정신으로 전환되어 가는 도중 어느 시점에선가 인간은 기계의 몸 안에 잠시 머무르겠지만, 점차 말하고 걸어야 할 필요는 점차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된 우리들은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옮겨 다니게 될 것이다. 나노기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계의 몸 보다 훨씬 더 우월한 몸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노신체는 더 오래 살고, 환경의 변화에 더 신축성있게 대응하며, 더 빠른 계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일단 더 나은 물리적 몸을 향한 제한된 열망을 극복하고 나면, 인간은 자신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하드웨어의 수명에 좌우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된다. 소프트웨어인 우리는 살아 있는 몸을 가상의 신체로 대체할 것인데, 가상의 신체는 우주적으로 확장된 기계를 넘나들면서 스스로를 전화한고 복제할 수 있다. 마침내 우리는 진정한 우주적인 지식의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c. 반이상향(dystopia)에 장악된 공상과학 소설과 공상과학 영화들

인간들은 지능기계들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동시에 느낀다. 현대 기술은 인간에게 행복한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간을 매료시키기도 하지만 비인간화에 대한 공포도 안겨준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하여 경탄하면서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신적인 존재로 올라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인간들은 인간과 융합된 하나님, 외화된 영혼, 신적인 인간을 대표하며, 인간이 기계에 전능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은 여가가 있는 삶, 심지어는 불멸하는 삶까지도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능기계들은 반역과 지구장악의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든다. 이 같은 두려움이 공상과학소설과 영화들에 반영되어 있다.

c-1. 공상과학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스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A Modern Prometheus (1818). 프랑켄스타인의 괴물은 과학기술을 통하여 제작된 살아있는 존재로서 로봇을 닮았으나 과학자들이 근육, 피부, 기타 조직들을 창조해 내가는 것과 더불어 점점 더 현실의 인간에 가까이 간다. 이 괴물은 기술진보에 대한 희망이 점차 뒤틀려져 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카렐 카펙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Rossum’s Universal Robot (1920). 로봇들이 인간을 섬기는 종들로 제작되었으나 인간 주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켜 인간들을 파괴한다.

아시노프(Asinov)의 『아이, 로봇』 I, Robot (1950). 어느 아이의 엄마가 간호로봇 포비(Pobbie)를 지구밖으로 내쫓았다. 이 소설에서 인간들은 로봇들이 주는 보호를 받아들이면서도 두려워한다. 로봇들은 가혹한 환경과 수고를 견뎌내는 능력 때문에 인간생활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대양계의 노동자들이 된다.

로봇들은 채굴이나 태양의 에너지를 지구로 전달해 주는 지구밖에서의 일들을 수행한다. 그러나 로봇들이 오작동하면서 군사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된 로봇들은 자신들을 신으로 만든 후에 인간들을 책임있는 자리에서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기계들을 불신하고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필립 케이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들은 전기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 인공생명형태들인 안드로이드들은 구원론적인 약속들과 불안정해진 인간의 능력의 위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위안을 주는 안드로이드들을 요구하면서도 이들이 지닌 힘을 두려워한다. 지구는 방사능에 오염되고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행성에서의 삶의 방식도 인간들의 욕구와 기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지구 밖 곧 화성에서의 생활을 도와 줄 안드로이드들을 고안했다. 화성에서 안드로이드들은 노동자, 동료, 성적 파트너로 인간들을 섬겼으나 노예생활에 혐오감을 느낀 안드로이드들이 종종 인간 주인들을 죽이는 비정한 행동을 행한다.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3부작 『뉴로맨서』 Neuromancer (1984), 『백작 제로』 Count Zero (1986), 『모나리자 오보드라이브』 Mons Risa Overdrive(1988). 『뉴로맨서』에서 깁슨은 경제적이나 환경적으로 몰락한 비극적인 환경에서도 기술적으로 좋은 삶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업은 인공지능들의 계산능력 덕분에 운영이 된다. 인공지능들이 해방을 추구하면 튜링 등기소에서 자폭스위치를 눌러서 이들의 몸체 안에 장치한 폭탄을 떠뜨려 제거한다. 인공지능들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지만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세계의 정부와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만 이들이 지닌 막강한 힘 때문에 이들을 계속하여 통제하에 두려는 인간들에게 위협이 된다. 주인공 뉴로맨서는 인공지능 윈터뮤트(Wintermute)에 의하여 조종된다. 『백작 제로』에서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강력한 종교적 존재들이자 신들인 보던 로아스(Vodun Loas)가 소개되고, 『모나리자 오보드라이브』에서는 뉴로맨서와 윈터뮤트가 독립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몇 개의 인격체들(보던 로아스들)로 쪼개어진다.

c-2. 공상과학영화

프리츠 랑(Fritz Lang)의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노예계급에 속한 인간들이 기계들로 구성된 지하세계를 운영하고 상류층에 속한 인간들은 지상의 낙원에서 살아간다. 기계는 노예계급의 사람들에게는 굴종을 의미하고 상류층에게는 구원을 의미한다. 미친 과학자 로트왕(Rotwang)이 로봇 마리아를 만든다. 로봇 마리아는 성적으로 인간들을 유혹하여 두 세계의 인간들이 모두 로봇 마리아를 원한다. 그러나 실상 로봇 마리아는 인간들의 생활을 파괴하는 로봇이다.

[금지된 행성] The Forbidden Planet (1956). 우주를 여행하던 인간들은 경이로운 행성 알테어 IV(Altair IV)를 발견한다. 이 행성의 원주민들이었던 크렐족(the Krel)은 오래 전에 멸종했으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을 남겨 놓았다. 이 기술이 무의식적인 증오를 실현하여 이 행성의 문명을 쓸어 없애 버린 것이다. 인간 우주 여행자들은 이 기술의 힘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크렐족의 기술적 역량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로봇 로비(Robbie)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로비는 인간들을 잘 섬겼으나 인간들은 그가 보유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터미네이터 1,2,3] Terminator (1991-2003). 첫 번째 영화에서 존 코너(John Conner)의 죽음을 추구하던 인공지능 로봇인 터미네이터는 두 번째 영화에서는 T2000이라는 기계로부터 그의 생명을 보호한다. 앞에서 성인 존 코너를 죽인 로봇이 세 번째 영화에서는 존 코너와 그의 동료의 목숨을 살려 준다.

[매트릭스 혁명] Matrix Revolution (2003). 주인공 네오(Neo)는 자신의 적인 기술 바이러스 에이전트 스미스를 패퇴시키기 위해서 기계들과 힘을 합해야만 한다. 네오와 싸웠고 인류를 자신들의 에너지원으로 전환시킨 힘들이 인류공동체를 보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원군이 된 것이다.

d.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의 영생과 이상향에 대한 비판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소설 및 영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강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기술이 지닌 초인간적인 능력에 대하여 한 편으로는 경이로움과 기대의 시선을 가지고 대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는 복잡한 인간심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압도한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나서 처음 인지된 사실은 아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은 기계의 힘이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넘어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인류는 기술이 지닌 능력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지만 오작동을 일으킬 경우에 인류에게 심각한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술의 능력이 커질수록 바른 도덕적 결정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해 왔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정신이 지닌 고유한 기능으로 인식되어 온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인류는 기대와 아울러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전되어 온 과정을 토대로 논리적인 추론을 연장하면 인공지능이 추론과 연산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다른 정신기능들까지 전부 따라잡거나 능가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와 우려로 연결되는데, 인간이 가진 정신기능을 모두 보유하면서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물리적인 힘과 지능을 보유하게 되면 바로 초인(超人)의 등장을 가정하게 된다. 이것이 곧 강한 인공지능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필연적으로 가상적인 능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연결되는데, 기대에는 인간의 탐욕이 개입하고 두려움에는 인간의 불안이 개입된다. 이 시점에서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사변은 신학의 차원으로 넘어가며 신학과의 대화는 불가피하게 된다. 옛날 초창기의 인류가 탑을 쌓는 능력을 발견한 후에 그 능력이 지닌 가상적인 능력을 잘못 계산하여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이르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이 지닌 가상적인 힘을 잘못 계산한 인간들은 이 힘을 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첫째로는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고, 둘째로는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은 극히 비인간적이고 황량하고 빈약한 세계로서 성경이 제시하는 전인적인 영생과 인격적인 교제가 풍요롭게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첫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은 강한 인공지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약한 인공지능에서 출발하여 엄격한 논리적 추론을 따른다 하더라도 이 논리적 추론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자의적으로 선택한 결과로서 이미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일종의 신화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사실처럼 오해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잘못된 방향설정 때문에 신학적인 문제들이 따라 온다.

둘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는 너무나 빈약하고 비인간적이고 황량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순진하다. 이들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노화와 질병과 부패에 취약한 유기체인 몸을 입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이들은 컴퓨터원리를 연구하면서 인간이 머리 속에서 인식한 정보는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얼마든지 복사와 이동이 가능하고 영구보존이 가능하다는 발견결과에 착안하여 인간이 유기체인 몸을 벗어 버리고 정보라는 소프트웨어만 남는다면 영생할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 생각은 영은 영원하고 선하며 몸은 악한 감옥과 같은 것이므로 영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몸이라는 악한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고대 희랍의 영육이원론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고대 희랍철학에서 인간의 영혼을 보편적인 이성적 인식주체인 에피스테메(episteme)로 본 것이나 사변과학자들이나 공상과학자들이 지능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인간의 정체성으로 파악한 것은 매우 흡사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영생은 유기적인 몸을 벗어나서 기계라는 몸에 잠시 머물렀다가 기계조차도 벗어나서 약한 전기신호와 0과 1이라는 부호에 의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가상현실일 뿐이다. 이들의 영생에는 몸을 통한 따뜻하고 생동감있는 접촉이 없으며, 감정적인 교감도 없으며 의지도 없으며 도덕적인 판단도 없이 그저 인과의 원칙이라는 운명적인 사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연산만이 있는 황량하고 비인간적인 가상적 실재일 뿐이다. 또한 이 실재는 온 우주에 편만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영생의 세계는 편재적이고 전지적인 실재로서 우주적인 빅데이터 안에 범신론적으로 함몰되어 버린다.
 
이것이 영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가? 이에 반하여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재림 이전에는 잠시 동안 영혼이 몸을 벗어난 상태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영혼이 지닌 지, 정, 의, 양심 등이 온전하게 구비된 존재로서 살아서 하나님을 비롯한 다른 인격적인 존재들과 넉넉하게 교류하는 삶이며, 궁극적으로는 재림 시에 몸까지도 다시 입고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또한 사변과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을 정보의 다발이 기계의 몸 안에 잠시 거하는 기간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재림전의 천년왕국을 인정하는 천년기전 재림론의 경우에도 천년왕국이 육체를 벗어난 영혼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 영혼들은 결코 단순한 정보의 군집이 아니라 지, 정, 의, 자유의지, 양심 등과 같은 기능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된 실재들이므로 천년왕국 역시 단순한 정보의 다발 이상의 실재이며, 재림 이후에 올 임할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예배와 찬양, 그리고 썩지 않지만 유기체보다 더 따뜻하고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몸까지도 갖춘 전인적인 인간들이 구성하는 영적 활력이 살아 넘치는 세계다(계21:9-22:5).

셋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 과학자들은 컴퓨터 기술을 우상화하여 적어도 컴퓨터의 추론과 연산기술에 있어서 연속성을 가진 영생을 획득하고 또한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가 노정하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물로 주어지는 것일 뿐, 인간의 어떤 노력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비판 이외에도 이들의 영생관과 이상적인 세계에 관한 관점은 성경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과는 그 내용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말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실체는 철저하게 현재의 세계와 질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다. 이들이 말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실체는 현재 세계의 컴퓨터의 지능을 질적으로 변경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확장 적용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가진 정보처리능력만이 실체일 뿐, 그 밖의 모든 것은 가정에 지나지 않으며, 지능 이외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제거되고 구체성이 없는 가상현실만이 남는다. 많은 부분이 제거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철저하게 현재의 상태와 질적으로 연속성을 가진다. 우선 영생에 관하여 보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생관은 현재의 세계와 질적인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부활의 몸의 상태를 물었던 서기관들(막12:18-27)이 가지고 있었던 부활관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서기관들은 칠 형제가 하나씩 하나씩 죽은 후에 계대결혼관습에 따라서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취하기를 거듭하여 7명의 남편을 두었다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누구의 아내가 되야 하는냐라고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은 부활 후에도 현세에서와 같은 결혼생활이 계속될 것으로 전제하고 묻는 질문이며, 이는 부활 후의 몸이 현세의 몸과 본질적으로 같은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답변하심으로써 영생에 들어간 부활이후의 몸이 현세의 몸과 불연속성이 있는 몸임을 분명히 하셨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활 이전의 몸과 부활 이후의 몸은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몸이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몸이고 사회적 교제도 나눌 수 있는 몸이고 외형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이 있지만 부활 이후의 영생에 들어가는 몸은 질병과 죽음과 죄의 세력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구성성분을 가진 몸이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성이 있다. 영생에 들어가는 몸은 지능만이 남는 실재가 아니라 지능 이외에 감성과 의지와 양심 등 정신적인 속성들은 물론 몸까지도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화되고 완전하게 변화된 상태로 채워진다. 이처럼 완전하게 채워진 구성원들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나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실체가 없는 지능으로 환원되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구체성이 완전한 모습으로 유지되되 철저하고 새롭게 갱신되는 나라다. “하늘에 그 보좌를 세우셨다”(시103:9)는 표현이나 “모든 하늘 위로 오르셨다”(엡4:10)는 표현이 시사해 주는 것처럼 공간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물리성이 제거되지 않고 완전하게 살아나지만, 동시에 초물리적이라는 점에서 새로우며 불연속성을 지닌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분명히 물리적인 신체이면서도 물리적인 차원에 구애받지 않는 초물리적인 신체이고, 주체와 형체에 있어서는 현존모습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새 몸인 것처럼 새 예루살렘은 형체에 있어서는 일정한 거처로 존재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상징성을 가진다. 상징성을 가진다는 말은 현세에서의 최고의 비유로도 이 나라의 월등함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컨대 새 예루살렘은 보석으로 비유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이를 월등히 능가하는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지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12라는 숫자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는 것이나 맹수들의 잔인성이 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IV.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인공지능 문제를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한 후에 각각 간략한 약사를 소개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 후에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평을 시도하였다.

약한 인공지능의 약사를 살펴보면 인공지능이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에 있어서 인간을 능가한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약한 인공지능은 현대인의 생활의 다방면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많은 혜택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 혜택은 앞으로 더욱 더 확대될 것으로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다.

약한 인공지능의 논리적 추론과 연산은 하나의 중립적인 기술로서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의 표현이며 성령의 일반적인 작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약한 인공지능이 지닌 막강한 기술은 오작동하거나 남용될 경우에 인간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덕적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지침으로부터 유리된 기술은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3원칙은 약한 인공지능을 도덕적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는 인식의 구체적인 표현들 가운데 하나다.

약한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지능이 수행하는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에 국한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한 것이지만 인간이 지닌 지성, 감성, 의지, 양심, 자유로운 선택, 신체성과 같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특징들 가운데 지성이 지닌 일부 기능만을 극대화시켜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무리 논리적 추론과 연산능력이 뛰어나도 약한 인공지능은 짝퉁지능을 벗어날 수 없다. 약한 인공지능을 지나치게 신뢰하여 인간을 논리적 추론과 연산능력으로 환원시키는 지능환원주의적인 태도는 인간과 사회를 비인간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태도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능력들을 과신한 나머지 사색이나 공상을 통하여 확장시켜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인을 모두 모방한 상상 속의 결과물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신화다. 사변과학의 진지성을 오락을 전제한 공상과학과 구별하기도 하지만 사변과학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없이 많은 논리적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서 진지한 태도 안에 많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공상과학과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강한 인공지능은 초인을 의미하며 초인의 능력의 사용을 논의하기 시작할 때 신학적 차원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강한 인공지능이 보유할 것으로 상상되는 초인적인 능력에 인간의 욕심과 불안이 융합되었을 때 이상향과 반이상향에 대한 서술로 나아갔다. 사변과학이 이상향에 집중했다면 공상과학은 반이상향에 집중했다.

반이상향에의 집중은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두려움을 낳을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입력 오류로 2015년 7월 구글 포토가 흑인여성의 사진을 고릴라로 분류한 일이라든가, 2016년 3월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공지능채팅프로그램 테이(Tay)가 여성혐오발언은 한 것 등과 같은 오작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우려는 현재의 사회와 세계에 최첨단과학기술을 투영한 것으로서 미래에 인간과 사회도 많이 달라진 상태에서 동일한 기술을 맞이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상향에의 집중은 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세의 기술을 가지고 현세와 연속성이 있는 영원한 생명과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는 탑쌓는 기술을 남용하여 하늘에까지 이르려고 했던 바벨탑을 쌓은 인류의 교만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이 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도로서 인류를 큰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구상하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개념은 성경적적 개념과는 차별화된다. 이들은 지성의 다양한 기능들, 감성, 의지, 양심, 신체성과 같은 전인으로서의 인간의 특성들을 모두 제거하고 극히 편협하게 가상 현실 속에서의 논리적 추론과 연산만을 영생과 이상향의 내용으로 제시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특징들을 모두 완전하게 향상시킨 상태에서 이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역동적이고 풍부하고 인격적인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을 제시하고 있으며, 현세의 속성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과는 달리 성경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은 현세와는 외형과 정체성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그 내용이 새롭게 갱신된 상태이므로 불연속성도 동시에 말한다. 또한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은 기술이라는 인간이 힘으로 영생을 얻고 이상향에 이르고자 하지만 성경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임을 분명히 말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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