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논단/논설
[논단] 교단총회, 게하시의 정신 배격
시리아 왕과 나아만의 금품 공세를 거절한 엘리사 정신
기사입력: 2018/11/20 [20:0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소재열
배너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1938년)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신앙과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강요된 신사참배를 결의하여 치욕의 총회가 되고 말았다. 물론 1946년에 총회를 다시 복구하면서 이를 회개하기는 했지만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은 무너졌던 역사가 바로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교회의 역사기록이다.


1901년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평양에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신학교가 세워졌다. 이를 평신학교, 혹은 평양장로회신학교라 한다.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선교사들은 평양신학교를 폐쇄하였다.


▲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1901년 5월): 장로교선교연합공의회에 소속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장로교 신학교육을 위하여 평양에 설립한 신학교로서, 훗날 결성된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교단 신학교로서 많은 조선인 장로교 목사를 양성했다.    © 리폼드뉴스


신학교를 계속 폐쇄할 때에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설립된 평양신학교의 재단법인이 문제였다. 당시 평양신학교는 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법인을 설립한 상태였다(참조, 소재열 “일제시대 종교단체 법인론” 참조).


신학교를 폐쇄할 경우 평양신학교의 재단법인의 재산은 조선총독부에 귀속된 상황이었다. 학교 재단법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폐쇄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신사참배 결의 반대와 신학교 폐쇄는 학교 재산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학교 폐쇄를 결정하는 단안을 내렸다.


평양신학교 재단이 조선총독부에 귀속되자 후평양신학교(교장 채필근)가 그 교사를 임대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재산과 금권 앞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학교 재단의 재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까? 돈 앞에 신앙도 무너지는 듯한 교단총회의 현실 앞에서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1938년) 임원회 ; 신사참배를 결의한 총회장 홍택기 목사(앞줄 중앙)와 그 오른 쪽이 김길창 목사.     © 리폼드뉴스


역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미국에서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많은 원조가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원조로 설립된 병원이나 학교의 재단들이 많았다. 특히 미국에서 보내온 원조를 그동안 선교사들이 관리하여 집행해 왔지만 이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 그 관리권을 넘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59년 제44회 총회는 누가 총회임원이 되느냐에 따라 그 많은 원조에 대한 집행 기득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이를 빌미로 미국과 선교사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WCC화 된 총회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를 위해 제44회 총회(1959년)를 앞두고 총회 임원을 자파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선교사들의 선거 운동은 치열했다.


그러나 WCC를 반대하는 인사들은 이를 구경만 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결국 선교사들은 그 많은 미국의 원고로 형성된 모든 재단을 가지고 WCC를 찬성하는 연동 측(지금의 통합 측)으로 가지고 가 버렸다. WCC를 반대했던 승동 측(현재 합동 측)은 초라한 모습으로 초기 선교사를 통해 전수된 정통보수신학, 개혁신학을 지키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CC문제로 연동측으로 분열된 후 선교사들은 통합측과 함께 WCC총회가 되었다. 그러나 WCC를 반대로 승동측(합동 측)은 교세와 총신이 어려울 때 박형룡 박사와 함께한 정규오 목사는 총회와 총신을 지켰다. 당시 광주중앙교회는 총신을 위해 특별연보를 하게 되었다. 이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는  정규오 목사와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그 정체성을 계승하는 교회라고 주장한다.   © 리폼드뉴스


여기에 최전선에서 지휘했던 박형룡 박사와 해방이후 교단총회의 신학을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진리 투쟁을 했던 51인 신앙동지회와 회장인 정규오 목사와 그와 함께한 그 시대 선각자들이 앞장서서 나섰다.


WCC를 반대한 승동 측은 1960년에 약화된 교단 세를 불리기 위해 1951년에 신사참배 청산 문제로 분열된 고신 측에 합동하자고 하여 합동하였지만(이런 이유로 ‘합동 측’이 됨)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며, 역사의 흔적만 지저분하게 남기고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돈과 권력, 재산은 신앙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였고 무시되기도 하였다. 교권은 무섭고 교회를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하지만 그러나 때로는 그 교권은 신학과 교리를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돈과 재산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지만 때로는 교회와 교권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교회와 총회 안에서 그 돈으로 교권을 가지려는 것이 문제이다. 그 때에는 거룩한 명분을 내세운다. 때로는 인간의 본능에 따른 교권 쟁취를 위해 거룩한 명분으로 포장한다. 그때 돈과 재산은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힘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1인 보수가 탄생된다. 교단총회의 교권의 흐름을 보려면 누가 돈을 쓰고 있느냐를 보면 된다.


돈 앞에 신앙의 자존심, 목사와 장로라는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 자존심을 담보로 돈을 써서라도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교단총회의 교권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돈을 제공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선거 전에서 표를 모아 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더 큰 문제이다.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 남산의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     © 리폼드뉴스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이 있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한센스 병에 걸리고 말았다. 종으로 잡혀온 한 소녀가 이스라엘에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데 그는 이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시리아 왕은 나아만 장군의 손에 금은보화를 들려 엘리사를 방문하게 하여 치료를 받도록 한다. 그러나 선물과 돈이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시리아 왕과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엘리사는 시리아의 왕과 나아만 장군의 권력으로 병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권력과 무관한 행동을 했어야 했다. 엘리사는 요단강을 이용하여 그 요단강을 통해 섭리하였던 하나님의 기적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 요단강을 이용한다.


나아만은 결국 이방인 중에서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선물공세나 금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엘리사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병을 고쳐 준 후에도 선물과 돈에 의해 병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 선물과 금권을 거부한다. 이것이 선지자 엘리사의 정체성이었다. 오늘 우리 목사와 장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가 거부한 선물을 가로챘다. 그러자 게하시에게 나아만에게 임했던 한센스 병에 걸리므로 나아만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 게하시는 이방인의 입장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은혜를 돈으로 환산하여 받아내려는 게하시의 정신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세상적인 방식이 동원된다. 하나님은 이런 정신에 철퇴를 가한다.

▲제1회 총회(1912)부터 9회 총회까지 역대 총회장     © 리폼드뉴스

대한민국에서 개신교의 최대 교단은 본 교단(예장합동)이다. 전국의 1만 2천 교회를 관리ㆍ감독하는 교단총회의 임원이 되는 것은 대단한 교권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리아 왕과 나아만, 그리고 게하시와 같은 사고방식의 인사들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엘리사와 같은 지도자는 없다는 말인가?


전국의 각 노회에서 총회 총대가 되기 위한 혈전, 총대가 되었을 경우 총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교권을 행사하려는 인간적인 권력욕,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권을 쟁취하려는 사탄적인 사고방식은 여전히 본 교단의 지배정신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들이 많다.

▲ 200년 10월 당시 생존해 계신 신앙동지회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이들의 교단 신학을 지켰다. 총회는 이분들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맨 좌측이 필자   © 리폼드뉴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지배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금권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에게 아부를 떨어야 그 교권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다는 비정한 지배정신은 본 교단 총회의 정치와 선거전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또 어떤 자들이 교단총회의 교권을 가지려고 하나님의 일을 금은보화로 선물공세를 펼쳐 쟁취하려는 못된 시리아의 왕과 나아만 장군과 같은 사고방식, 돈과 함께 망했던 게하시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교단을 혼탁하게 하는지를 지켜보자.


▲ 2005년 제90회 총회에서 구개혁측과 합동했다. 신학과 신앙이 같아서 1979년에 분열된 이후 2005년에 이르러 합병했다. 그 합병 정신에 따라 동일한 신학과 신앙을 지켜내고 있는가?      © 리폼드뉴스


그런 자들이 교권을 가질 경우 그 교권을 통하여 망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인줄 어떻게 알겠는가? 돼지를 제값 받고 팔기 위해 먼저 잘 먹이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세워진 사울왕은 악한 왕으로 등장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하여 악한 왕인 사울 왕을 세워 악하게 이용당한 사울왕과 같은 “쓰임 받고 버림받은 지도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해 보자.


주여! 교단총회를 긍휼히 여기셔서 금은보화면 다 된다는 생각들을 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돈을 받고 재판을 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뇌물을 받고 총회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않게 하옵소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려지는 십자가 정신이 총회의 지배 정신이 되게 하옵소서.


소재열 목사(리폼드뉴스 발행인)

배너
배너
배너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