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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려의 왕 한명수 목사님을 추억한다
수원 창훈대교회에는 배려의 왕들이 있었다
기사입력: 2018/11/09 [09:5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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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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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처럼 은은하게 길이길이 여운을 남길 것이다.

    
▲  한명수 목사    © 리폼드뉴스

필자가 1983년 창훈대교회 한명수 목사님의 인도로 서울에서 수원노회에 내려와 햇병아리 목사로 노회에 출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회 회의 전에 예배를 마치면 기념촬영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행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 노회 어른으로는 안중섭, 채규락, 한명수 목사님 등등이었다. 한명수 목사님도 노회의 어른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당시로부터 수년간의 노회 회원 기념촬영 사진을 보면 한명수 목사님은 앞좌석 의자에 앉으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앞 줄 가상에 서서 촬영에 임했다. 검은 와이셔츠에 하얀 넥타이를 사용하는 것도 특이했지만 졸장부들이 그렇게도 탐하는 앞자리 의자에는 앉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피하곤 하신 것이다. 얼마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그 분의 한 면에는 이와 같이 좌석에 연연하지 않으시는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배려와 의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미국 훌러신학교 목회학박사이시면서도 수원신학교에서 학장자리를 다른 후배들에게 양보하시고 본인은 오직 강의만을 하신 것이다. 그 분의 정치력으로는 학장을 얼마든지 하고도 남지만 수원신학교에서는 그런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한 목사님의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필자가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가끔 한목사님을 뵙고 가곤하였다.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그 당시 유행하던 선물세트를 꼭 챙겨다 드렸다. 그런데 그 때마다 사택에는 보훈가족들이 와서 진을 쳤다. 창훈대교회가 보훈가족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였고 한목사님이 그들을 가족처럼 대하셨기 때문에 항상 집안에 그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내가 선물세트를 드리면 그 자리에서 풀어버린다. 그리곤 거기 모인 원호가족들에게 다 나누어 주시는 것이었다. 사택에는 하나도 남기지 않으셨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언제나 그렇게 하셨다. 그것이 보훈가족들을 살피고 돌보는 그분 한명수 목사님의 목회철학이었던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류도 하지 않았던 1990년에 한명수 목사님의 주선으로 중국과 백두산 선교시찰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한명수, 안중섭, 채규락, 변우상, 김영상, 김동권(진주), 이삼성(인천) 목사님들이 처음 중국 땅과 백두산을 밟기 위해 가는 여행이었다. 필자는 아내가 창훈대교회 출신이라서 창훈대교회의 사위라는 특권(?)으로 한목사님께서 가담시킨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문이 열리지 않은 시절이라 홍콩을 경유해서 상해, 북경, 연길, 장춘 등의 대도시와 만리장성, 백두산 등을 돌아보는 선교시찰이었다. 김영상 목사님은 반입이 거절된 태극기를 숨겨가서 백두산에 올라 펼쳐들었고 다 같이 찬송하고 남북통일을 위해, 중국과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였던 일이 생생하다.

 

10여 일 동안 시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상해로 홍콩으로 경유해서 서울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각자가 자기 집으로 출발하게 되었는데 한목사님께서 나를 부르더니 중국에서 사 온 빨간색, 파란색 등등 다양한 색깔의 볼펜을 주면서 딸아이들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어르신의 준비된 배려의 선물에 가슴이 찡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한명수 목사님의 후임으로 이훈복 목사님이 와서 목회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할까 훌륭하다 할까 어쩌면 저렇게 부전자전이라 할까 이훈복 목사님 역시 배려정신이 투철하여 한명수 목사님처럼 돌봄 목회를 아주 잘했던 것이다.

 

이훈복 목사님은 노회장이 되었을 때 노회를 돌보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었다. 그래서 노회장이 되자마자 성탄절이나 명절에는 노회 미자립교회에 쌀을 한 포대씩 배달하여 섬김의 동지의식을 돈독히 하였던 것이다.

 

이훈복 목사님이 노회장이 되고 목사안수식이 있었다. 목사안수식에서 안수 위원은 현 임원과 증경 노회장들 만이 하는 제도 아닌 제도가 관습처럼 되어 있었다. 필자는 증경노회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에게 와서 다정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목사님, 어르신 목사님을 안수위원으로 제가 모십니다. 안수위원에 동참하시어 안수해 주십시오.”

 

안수식이 끝난 후 안수위원에게만 주는 사례금도 챙겨주었다. 노회가 정회되고 식사를 할 때는 증경노회장단 만을 별도로 모시는 일이 있는데 필자도 거기에 초대했다. 이것은 한명수 목사님도 안하셨던 일이다. 그런데 이훈복 목사닝이 그때가지의 분위기상 불가항력적인 그 터부(taboo)를 깨버린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의 배려정신은 한명수 목사님의 배려 정신에 알파 풀러스였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명수 목사님이나 이훈복 목사님 같은 배려 정신이 있는 목회자라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 하실 것이고 그런 배려의 아름다운 여운은 계속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배려에 충실한 목회자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한다.


이석봉 목사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와 구약학자 최의원 박사의 문하생이다. 목사요 박사로 총회신학교와 총회연합신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했다. 총회신학교(학장/전 국회부의장 황성수 박사, 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5년,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하와이 브렌치(학장/티모씨 아이 한 박사)에서 13년, 수원신학교(학장/이근구 박사)에서 10년간 성경원어교수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쳤다. 리폼드뉴스(www.reformednews.co.kr)의 논설위원이며 이석봉 목사 칼럼의 칼럼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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