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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제501주년 종교개혁기념 주일 아침에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대하 34:1-8)
기사입력: 2018/10/28 [02:21]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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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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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폼드뉴스

종교개혁 501주년 기념 주일이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이었다. 과연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대하 34:1-3)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1-3절)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로 예루살렘에서 31년을 통치하였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의 조상 다윗을 본받아 오직 한결 같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겼다.


요시야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왕이 된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왕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으며 4년 후에는 죄로 더렵혀진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이 하는 정결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산당과 아세라 여신상과 그 밖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요사야와 백성들의 종교개혁 실천(4-7)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4-7)

  

백성들은 요사야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알제단을 헐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향단을 찍어버렸다. 아세라 여신상과 그 밖의 모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었다. 그 가루를 우상들에게 제사하던 사람들의 무덤 위에 뿌렸다.


또한 이방 제사장의 뼈를 그들이 제사하던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요사야는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의 모든 성들과 황폐한 그 주변 일대에도 가서 산당들을 헐어 버렸다. 그리고 아세라 여신상과 그 밖의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모든 향단을 찍어 버린 후에 예루살렘을 돌아왔다.


성전 수리(대하 34:8-13)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8절)


요사야는 왕이 된지 18년에 그 땅과 성전의 정결 작업을 마치고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서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예루살렘 성주 마아세야와 요아하스의 아들인 서기관 요아를 뽑아 세웠다.


“그들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헌금한 돈을 그에게 주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9절)


그들은 성전에 들어온 헌금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주어 확인하도록 했다.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사람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 그리고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둔 것이었다. 모두가 동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공사를 감독하는 자들의 손에 넘기니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일꾼들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10절)


그런 다음 그들은 그 돈을 성전 수리 담당자들에게 주었다.


“곧 목수들과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성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11절)


목수들과 건축자들의 임금으로 지불하고 또 목재와 다듬은 돌을 사서 유다 왕들이 폐허가 되도록 내버려 둔 성전 건물들을 수리하게 하였다.


“그 사람들이 성실하게 그 일을 하니라 그의 감독들은 레위 사람들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들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감독하고 또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이 함께 하였으며.”(12절)


인부들은 성전 수리 담당자들의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게 일을 잘하였다. 이 성전 수리 담당자들은 므라리 자손인 야핫과 오바댜, 그리고 고핫 자손인 스가랴와 무술람이었다. 이들 레위 사람들은 모두 음악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 목도꾼을 감독하며 모든 공사 담당자를 감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13절)

 

이들은 자제를 운반하는 짐꾼들을 관리하고 인부들의 일 하나하나를 감독하였다. 또 다른 레위 사람들은 서기 업무를 보고 작업 일지를 쓰며 문지기 일을 맡았다.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대하 34:14-21)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이르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또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돈을 쏟아서 감독자들과 일꾼들에게 주었나이다 하고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14-21)


성전 수리 과정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다시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이다. 요시야 시대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501년 전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도 그들이 ‘말씀으로 돌아가자’였다. 이는 오날날도 여전히 종교개혁은 원래 맺어놓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어 놓은 관계성을 우리가 다시한번 재조명하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관계 재조명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외에 모든 것을 섬긴다는 것은 종교의 타락을 의미한다. 패역의 시대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 외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상의 통치 안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그 통치의 문화는 바벨탑 문화이다. 세상 문화이다. 이같은 문화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소외문화이다. 바벨탑 문화는 하나님 여호와를 찾고 그를 섬기는 문화가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모든 질서와 이를 보존하시고 섭리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가 다스리려는 자율성의 문화이다. 이러한 자율성의 문화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심판을 받는다. 심판받은 소외된 그들은 그 소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쾌락과 향락의 문화를 발전시킨다. 그러한 문화는 최종적으로 죽음과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섬기는 문화는 바로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회복하고 그 안에서 여호와의 통치를 받아 누리며 사는 문화이다. 그 문화는 하나님과 동행한 문화이다. 그러한 문화를 발전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간다. 이같은 문화는 미래의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무법과 불의와 횡포와 착취 속에서는 살롬을 상실해 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현주소요, 교회의 현실이다. 이제 교회가 세상과의 구별이 희미해져 버렸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하나님 말씀을 외면한 결과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자세히 가르치면 지도자들이 자신의 뜻을 교회에서 펼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 이유는 교인들이 똑똑해 지기 때문이다. 교회 문제는 성도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주입하는 것도 아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의 마음에 성경에서 이탈된 더러운 마음을 주입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갖고 있는 일탈된 마음을 묵인하거나 그것을 자구 미화 하거나 그것이 마치 옳은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요, 교회를 타락하게 만든다.

 

해결 방법은 결국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가르치면 교회가 성장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 건강한 교회가 될 경우 내가 권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 같아 차라리 현재의 상태가 좋다며 변화를 외면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제는 그런 식의 교회는 설 자리가 없다.


이제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 대안이 없다. 그렇다면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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