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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종교개혁기념주일) 차별없는 하나님의 의
롬 3:19-22
기사입력: 2018/10/27 [18:5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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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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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1주년이 됩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마틴 루터(M. Luther)가 비텐베르그 대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함으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 판매와 공로사상, 막강한 교황권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루터는 성경에 근거해서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습니다. 이후에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쳤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스도 중심, 은혜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모든 운동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해 가는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종교개혁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즉 성경적 신앙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1.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된 인류(19)

로마서 3장은 사도 바울이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던 유대인들도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1-8).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 아래에서 출생함으로 모두가 죄인입니다(9-20). 따라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우리에게 유일한 구원의 통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소개합니다(21-31).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율법의 기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19).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모세5경만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좁게는 유대인을 넓게는 인류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담의 원죄 하에 출생하는 모든 인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게 될 수 없습니다. 즉 원죄와 스스로 범하는 죄에서 누구도 자유롭게 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2.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기능(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20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0).

여기에 쓰인 ‘그러므로’(디오티i)는 존 머리(J. Murray)에 의하면 결론을 나타내는 접속사가 아니라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시편 143:2를 간접 인용한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 143:2).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 즉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이방인, 유대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도덕적 양심의 행위도 포함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으로 출생한 인간은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할 수 없고,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즉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율법이라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제한적인 기능만 가집니다. 깨닫는다는 말은 헬라어 에피그노시스입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을 말합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 하나님께 회개하고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율법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오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그분을 믿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율법을 자세히 연구하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해줍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진 의(21-22)

따라서 바울은 21-2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를 전합니다. 21-22절을 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21-22).

이것을 신학에서는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율법으로는 죄인이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방법, 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성별, 인종, 연령, 학벌과 상관이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를 다시금 강조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은 면죄부를 사거나 교황의 명령을 지키거나 공로를 행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됩니다. 이신칭의의 교리가 성경적인 것이며 종교개혁자들의 강조점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설교와 가르침은 알맹이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진리에서 떠난 시대에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그 진리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고 거짓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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