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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인간론: 목회상담적 평가 및 함의 1
이관직(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8/10/24 [11:10]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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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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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청교도 목회자이자 설교자였던 로이드 존스의 인간론에 대한 목회상담적 평가와 함의를 논하고 있다.

1. 시작하는 글

목회상담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는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접근이라는데 있다. 돌봄의 대상이 되는 인간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고 진단하느냐에 따라 돌봄의 내용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기독교 신학적 관점 중에서도 다양한 신학적 접근에 따라 목회상담의 뉘앙스는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20세기에 설교자로서 탁월한 영향력을 끼친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그의 설교에 나타난 그의 흔들림 없는 개혁신학적인 입장과 그의 탁월한 성경해석 및 적용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은 목회자들과 전문적인 목회상담사(기독교상담사 포함)들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주로 설교학의 입장에서 접근되었던 그의 설교에 대한 연구와 구별되게 목회상담학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연구도 유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이드-존스는 그의 설교에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의 특성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인류의 본질적인 속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할 것이며 하나님도 언제나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인간들로 구성된 세상 또한 근본적으로 항상 죄로 깨어진 채 진행되어 왔다고 보았다: “참으로 나의 근본적인 주장은 처음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이후 세상은 언제나 이 상태에 있었고 언제나 동일한 메시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성경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늘 같다고 말합니다. 어떤 변화가 발생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인간이 죄에 빠져 있으며 하나님과 격리된 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곤경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설교에서 그는 다시금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성경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고, 늘 최신판일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아직도 원죄 이후, 에덴동산의 타락 이후 지금까지 항상 그 모습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인용된 설교에서 잘 나타나듯이 그는 약 이천년 전에 종결된 성경계시의 인간이해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해함에 있어서 여전히 적합성과 타당성과 진리성을 담고 있다는 확신에 찬 전제를 갖고 설교했던 설교자였다.

그리고 로이드-존스는 문명의 발달 자체와 교육적 환경과 국제 사회의 인본주의적인 노력이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고 확신했다. 특히 복음의 필요성과 연결해서 그는 긍정적인 현대 인간 이해를 정면으로 배격하였다:

우리가 어느 세기에 속했느냐도 복음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현대인에게 이것은 아주 심한 충격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러면 20세기에 사는 우리가 1세기 때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도 다른 게 없습니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그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보세요. 우리가 그동안 지식에서 이룬 많은 발전과 진보를 한 번 보세요.”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죄로 타락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인본주의적인 노력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도 이 세상은 점점 악해지지 결코 선해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제가 똑똑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큰 확신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점차 좋아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진화와 개량과 진보에 관한 말은 모두 상상에서 나온 허구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이 상태로 가는 한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일반 심리학이나 사회학 또는 정치학과 같은 여러 학문의 접근이나 노력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일관성 있게 성경적인 인간이해와 세상이해를 주장한 로이드-존스는 인본주의적인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현대 목회상담 운동과 목회상담사들에게 도전을 준다. 필자는 성경적인 인간이해에 토대한 목회상담을 발전시켜 가는데 로이드-존스의 인간론은 탄탄한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1세기의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전문적인 목회상담사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존스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들이 자칫 심리학적 접근의 무용론이나 전문적인 목회상담의 필요성을 가치절하 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에서 지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설교가 한국교회 설교자들과 성도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왔기 때문에 그의 설교를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 입장에서 비판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혁신학에 기반을 둔 목회상담학자의 입장에서 그의 인간론을 통해 목회상담사들이 배워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의 한계를 지적할 것이다.

필자는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들을 읽고 인간론과 관련된 부분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분류하고 평가하며 목회상담 과정과 현장에 접목하는 문헌연구 중심적인 방법을 연구방법으로 사용했다. 선행 연구에 있어서 로이드-존스의 인간이해를 목회상담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논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점에 있어서 이 연구는 창의성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로이드-존스의 설교에 나타난 그의 인간론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의 인간론이 가진 장점과 한계점을 목회상담학자의 입장에서 지적하고, 목회상담 현장과 목회상담사들에게 접목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데 있다.

2. 로이드-존스의 인간론

로이드-존스의 인간론을 어떤 관점에서 다룰 것인가는 접근하는 연구자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필자는 개혁신학의 세계관인 ‘창조-타락-구속-영화’의 패러다임을 통해 접근하는 인간관을 틀로 삼아 그의 인간론을 살펴볼 것이다.

2.1 창조된 인간

로이드-존스는 인간의 죄성과 타락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의 유일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가치 있는 존재이며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그의 설교에서 분명히 드러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라는 것,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낱 동물이 아닙니다. 단지 즐기기 위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위대성과 독특성을 보십시오.” 특히 인간을 존귀하고 거룩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극상품 포도나무’를 포도원에 심었다고 표현한 이사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잘 지적하였다.

로이드-존스는 현대인들이 가진 물질주의적이며 진화론적인 인간론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배격하였다:

현대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이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말하는 진화론을 신봉합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주 긴급한 일입니다. 물론 인간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꽃이나 동물처럼 사라진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 속에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단지 먹고 마시며, 돈으로 쾌락을 사고 유명 인사가 되며, 사람들의 갈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영원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로이드-존스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피조 세계를 돌보며 가꾸며 다스리는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보았다. 무의미하게 그냥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다른 동물과 구별된 존재로서 인간의 임무와 가치를 강조하였다: “인간은 피조 세계의 통치자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큰 능력과 기질을 부여받은 피조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닙니다. 동물과도 같지 않습니다. 동물의 통치자이며, 동물과는 확연히 다르게 구분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더 나아가, 로이드-존스는 인간은 “어떤 특별한 기준에 의거해 살도록 의도”된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의도와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동반자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와 거룩함의 삶을 누리도록 의도”된 존재라고 그는 주장했다. 더 나아가 “바르고 깨끗하고 거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의 열매를 맺도록 의도”된 존재라고 말했다.

요약하면,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된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인간관을 견지했다. 그는 현대 과학의 진화론적 인간관을 철저하게 배격했으며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며 목적론적인 존재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원래 인간의 정체성임을 잘 드러낸 설교자였다.

2.2 죄로 타락한 인간

로이드-존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의 가치와 소중성에 대해서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죄로 타락한 인간의 무력하고 전혀 소망이 없는 인간의 처지와 상태를 부각하는데 그의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의 이와 같은 관점은 다음의 설교에서 잘 나타난다:

성경은 자신이 인간의 문제에 관해 아주 독특한 가르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처음부터 성경은(인간을 한 개인으로 생각하든 집단으로 생각하든) 이 세상과 이생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류 역사가 맨 처음 시작되던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로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 했으며, 그 결과 죄악 된 상태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지금까지 인간과 온 세상은 계속 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인간에 관해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심장한 사실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는 인간의 핵심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는 죄의 결과로서 수반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해가 가장 시급하며 중요한 처방책이라고 보았다.

로이드-존스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성과 구원에 있어서 전적인 무능력성을 확신했다:

원수는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성 안으로 들어와 성을 함락시킨 것은 물론, 그 안에 있는 건물들도 다 파괴했습니다. 성전도 파괴하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논쟁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 사실들에 직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영혼을 파멸시켰습니다. 성이 돌무더기로 변했습니다. 원수가 우리를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기다리고 있는, 복음이 직면하고 있는 과업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그런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타락했으며, 파괴되고 멸망하여, 돌무더기로 변했습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자력구원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실상에 대해서 설파했다: “여러분과 저는 이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반자이며,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는 악인입니다” “본질상 인간은 잃어버린 자이며 죽은 자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일으키거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로이드-존스는 많은 현대인들이 이 치명적인 상태에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는 대로 복음에 기반을 둔 설교를 하고자 애썼다. 심지어 그는 수십 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도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앙 생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기존 교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복해서 설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로이드-존스는 죄에 머물러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 상태에서는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유일한 처방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는 복음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로이드-존스는 현대 기독교인들 중에 일부가 갖고 있는 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대해서 비판했다. 그리고 죄의 심각성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대비하였다: “죄를 가벼이 여기면 구원도 피상적이 되고 그리스도인의 삶도 피상적이 됩니다. …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죄악과 어둠의 깊이를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알아야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로이드-존스는 사망을 가져오는 죄의 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아울러 인간의 마음에서 작용하는 정신역동 속에 마귀와 죄의 역동성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이[잘못된 교리의 교사들, 즉 심리학자들]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악마의 힘, 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죄를 인격화해서 이해하는데 죄와 마귀를 동일시하였다: “죄라고 하는 세력이 우리를 마비시키고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제압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존스는 인간의 핵심 문제인 죄는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피력하였다: “이것[죄]는 단지 어떤 자질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육이나 권면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더 많은 특별위원회의 설립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하나님이 해결방법인 십자가 복음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만 죄로 타락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2.3 구속된 인간

로이드-존스는 구원을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그 피는 여러분이 그 피를 믿는 순간 이미 완전히, 절대적으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서와 화해로 이루어진 구원을 미래적인 것인 동시에 현재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함께 이어받는 상속자라고 이해하였다: “우리는 그저 또 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것을 상속자가 됩니다.”

로이드-존스는 복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의 역동성이 이 세상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임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위대한 사도 자신의 경우만 보아도 단번에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죄의 정죄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죄의 영향력을 받고 있으며 죄와 싸워야 하는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임을 강조하였다: “우리 속에는 죄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한 죄가 계속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죄가 없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죄의 잔재는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영역과 지배와 통치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로이드-존스는 구속받은 성도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을 성화로 보았다. 그런데 그 성화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성화 ‘과정’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구속받은 자의 정체성이자 방향성이라고 본 것이다:

사도는 앞으로 나아가며 전진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한걸음씩 앞으로 계속 달려 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온전함이나 완전한 성화가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모임이나 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함이나 완전한 성화를 이루는 일과 그 일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온전함에 이르는 사도의 방법은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단계 한 단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연약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몸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연약하게 질병에 노출되어 살다가 결국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입니다. 우리는 원수들과 자신의 연약함과 안팎의 여러 문제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2.4 종말론적 존재로서의 인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인간만이 영혼을 갖고 있으며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과 연결되어 있다고 로이드-존스는 확신했다. 개인의 역사와 온 인류의 역사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목표 또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보았다. 보이는 현상적인 세계는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세계이며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 또한 매우 잠정적인 존재로 이해하였다. 이 땅에 나그네로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인간들의 실존을 강조하였다.

로이드-존스는 인간이 잠정적인 삶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지 못한 채 개인적인 종말이나 우주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을 설교자의 최대의 사명으로 보았다. 그는 이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이 설교자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무지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끝이 있고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인간은 원래의 자리에서 이탈했습니다… 하나님도, 자기 자신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도, 그 모든 것의 운명과 목적도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라는 이 한 구절을 통해 요한이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실존적으로 느껴야 할 구원에 이르는 두려움을 느끼도록 그는 지옥의 실재와 그 지옥에서 겪게 될 영원한 고통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안에 죽게 될지 모를 위험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 때문에 내 영혼이 지옥으로 가서 비참함과 고통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입니다.”

로이드-존스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경험할 ‘종말’은 영화롭게 되는 날이라고 보았다. 그날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자 영광의 날이며 영원한 기쁨과 복락의 날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 날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죽으면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 안에서 ‘이 사망의 몸’을 벗게 되며(롬 7:24), 욕심과 탐욕과 옛 사람의 잔재를 벗게 되고, 죄로 가득 찬 모든 것과 불완전한 모든 것을 벗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죄의 책임과 죄의 권세뿐 아니라 그 오염에서도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 궁극적으로 영광스럽게 해 줄 것을 보장하십니다. 죄의 요소가 전부 씻겨 나가는 날,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심판 받을 자에게는 사망의 냄새인 반면 구원 받은 자에게는 생명과 부활의 향기인 것처럼 심판의 날은 믿는 자들에게 승전가를 부르는 날이다. 이 종말의 날은 믿는 자들이 고대하며 사모하는 날이다.

3. 로이드-존스의 인간론에 대한 평가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로이드-존스는 성경 진리에 철저하게 바탕을 둔 세계관과 인간관을 타협 없이 견지한 탁월한 설교자였다. 인간이 죄의 보편성과 심각성을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처지를 여러 각도에서 강조했던 설교자였다. 이 장에서는 그의 인간론의 장점들을 살펴보며 한계점도 아울러 살펴볼 것이다.

3.1 진리와 교리에 근거한 인간론

로이드-존스의 인간론은 ‘위로부터의 접근’(From Above Approach)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자 탁월한 부분이다. 그는 일관성 있게 이 입장을 견지하였다. 필자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그의 입장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칼빈도 이 입장을 견지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안경을 쓰지 않고 인간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부분적이며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 로이드-존스는 이 점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하나님과 대면해야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하는 데 인생의 전적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출발합니다.”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접근’(From Below Approach)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다름없기 때문이다.

로이드-존스는 인간의 자기 인식이 중요하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자기인식이 제대로 되어야 이웃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기 자신부터 제대로 알고 분명히 알아야 이웃도 자신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직 하나님 앞에 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인본주의적인 자기 인식이나 심리학적인 자기 인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짓기를 함으로써 가능한 신본주의적인 자기 인식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다음의 설교에서도 하나님과 연결된 자기 이해를 잘 지적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무언가를 알기까지 우리 자신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게 됩니다.” 이 표현은 C. S. 루이스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에서 주인공이 인간이 자기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루이스가 강조한 것도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거울을 통하지 않고 인간의 참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만이 왜곡되지 않은 거울을 인간에게 비추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거울이 없이 세상의 지식이나 부모의 양육과 같은 거울로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왜곡이 심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이드-존스는 현대인들의 왜곡된 자기 인식에 대해서 잘 비판했다:

오늘날 세상에서 진짜 문제는 여전히 이것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단지 돈을 만드는[버는] 기계입니까? 단지 쾌락을 즐기는 동물입니까? 술 취하고 섹스에 빠지고 광란의 음악으로 미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입니까? 당신은 볼 수 없습니까? 사람들이 마치 농장의 동물들처럼 행동하기로 되어 있습니까? 쾌락이 사람들의 ‘주된’ 목적입니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인간이해는 항상 가변적이며 또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피조된 인간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 및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보지 않는 한 인간의 자기이해는 왜곡되거나 과장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적인 진리와 바른 교리에 바탕을 둔 로이드-존스의 인간론은 절대적인 기준과 표준에 토대한 인간이해의 필요성을 잘 강조했다고 평가한다.

3.2 지정의의 균형 잡힌 발달과 기능을 강조했음

로이드-존스는 진리와 교리에 바탕을 둔 인간이해를 강조하였지만 감정과 의지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복음은 지성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기능에만 역사하지 않고 전인격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머리와 가슴만 쓰고 의지를 쓰지 않거나, 머리와 의지만 쓰고 가슴을 쓰지 않거나, 가슴과 의지만 쓰고 머리는 쓰지 않는 것도 똑같이 잘못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위치는 삼중적인 것입니다. 세 가지를 다 사용해야 합니다. 세 가지를 항상 같이, 동시에 사용해야 합니다. 위대한 복음은 전인을 붙잡습니다. 복음에 전인이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 특징이었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가슴에 파문이 일며 삶에 변화를 추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자기 자신의 삶이나 가족의 삶에 대해서도 설교 중에 거의 언급한 적이 없지만 그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진리가 비추어질 때 청중들의 심령이 움직이며 회개와 회심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는 심정으로 설교한 설교자였다. 그는 설교자는 전인을 대상으로 설교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성에만 영향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감정에만 영향을 주려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의지를 밀어붙여서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인격 전체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설교 하는 것입니다.”

로이드-존스는 항상 지정의가 작용될 때 순서대로 일어나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진리를 깨닫는 지성의 기능이 제일 먼저 작동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감정과 심장(heart)에 호소하는 설교는 그 감정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은 항상 지각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정신이 첫 번째고, 마음이 그다음이며, 의지가 마지막입니다.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마음을 직접 공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다음의 설교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로이드-존스의 부정적인 입장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세상 사람처럼 침체하거나 동요하거나 불안해하거나 정신을 잃거나 어쩔 줄 모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비그리스도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을 잘 통제해야 합니다.

주지화 또는 합리화 또는 억압과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감정을 직면하지 않는 것이 자칫 영적 성숙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에 인용된 그의 말은 잘 걸러서 수용될 필요가 있다. 그가 잘 지적한 것처럼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침체하고 동요하고 두려움이 빠질 수 있다는 현실 자체를 부인해서는 곤란하다. 시편의 많은 신앙시들은 이 상태에 빠져본 신앙인들이 고백한 주옥같은 시들이다.

정리하자면,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 부분인 지정의의 기능을 균형 있게 강조한 인간관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감정의 중요한 위치에 대해서 잘 인식하되 지나치게 감정 중심으로 흐르는 신앙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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