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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총신대 전 총장 김영우 목사, 권력의 뒤안길
이사 취임에서 이사장 직무대행, 이사장, 총장 직위해제까지 15년
기사입력: 2018/10/13 [21:51]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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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폼드뉴스

총신대 전 총장인 김영우 목사가 총신대학교 법인 이사로 취임한 이후 15년만에 완전히 총신을 떠나게 됐다. 15년 만에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총신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총장 직위해제는 김영우 목사가 법정 구속된 후 8일만에 일어났다.

이사취임에서 총장 직위해제까지의 역사의 뒤안길을 추적해 본다.

◈ 김영우 목사의  이사 취임과 이사장 직무대행자가 되다.

김영우 목사는 2003년 11월 9일에 총신대학교 법인 이사로 취임하면서 총신대학교에 진입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10년 11월 5일에 법인 이사회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이사회를 장악하게 되었다.

2008년 11월 21일에 재단이사회가 소집됐다. 당시 김인환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총장을 선출하지 못한 가운데 김삼봉 목사가 재단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총신대학교 총장직무대행으로 선출됐다.
 
법인이사회의 2008. 11. 21. 회의록에 의하면 “김삼봉 목사가 이를 수용할 뜻을 밝히는 동시에 이사장 직무 사임의사를 표하고 이사 김영우 목사를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지명함으로 이사 김영우 목사를 이석케 한 후 이사 김영우 목사를 이사장직 대행으로 지명하기로 이사 박해석 장로의 동의와 이사 안명환 목사의 재청으로 만장일치 가결하다.”

“이사장 직무대행 김영우 목사의 사회로 이사장 김삼봉 목사의 이사장 직무 사임을 받기로 하다”로 결의됐다.
 
2008년 12월 4일 권영식 장로 외 3인의 이사가 11월 21일에 소집된 법인이사회 소집통지서에 소집 목적을 명시하지 않는 건인 총장직무대행을 선출한 행위가 정관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정서를 제출하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시정을 지시했다.

2009년 1월 14일에 권영식 장로가 소집 대표자가 되어 총신대학교 609호실에서 소집한다는 통지서와 이사장 직무대행인 김영우 목사가 소집한 이사회는 2층 회의실에서 소집한다는 소집통지서가 이사들에게 각각 전달됐다. 이때에는 김영우 목사 측과 권영식 장로 측이 반목하며 서로 갈등 관계속에 있었다.

소집 예정시간인 2009년 1월 14일 오전 11시에 김영우 목사를 비롯한 이사들이 2층 회의실에 모였고 6층에서는 권영식 장로를 비롯한 이사들이 각각 모였다. 그러나 11시가 되자 2층 회의실에서 모였던 이사들이 609호실에 소집된 이사회에 전격적으로 참여하여 이사회가 진행됐다. 

권영식 장로의 사회로 예배를 드린 후 권영식 장로의 사회로 이사회 회무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1시간 동안 갑론을박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정회한 후 식사 후에 속회하기로 하고 회의가 중단됐다. 

식사 후 속회되자 가장 연장자인 홍광 장로를 임시 사회자로 호선하여 회의를 계속하여 이사회 소집통지서에 회의 목적으로 명시된 안건을 처리했다. 이어서 재단이사장 직무대행 선출에서 김영우 목사가 8표에 1표가 부족하여 재단이사장직무대행은 선출되지 못했다. 총신대학교 총장 직무대행 투표에서 김삼봉 목사가 8표를 얻어 총신대학교 총장직무대행에 선출했했다. 

▲ 2009. 2. 5.재단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선출된 김영우 목사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리폼드뉴스
2009년 2월 5일 총신대학교 종합관 이사회실에서 법인 이사회가 소집됐다. 이 소집은 홍광 장로를 임시사회자로 하여 이사장 직무대행 선임의 건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날 재단이사회는 정수 15명 전원이 참석하였다. 임시사회자인 홍광 장로의 인도로 회의가 진행됐지만 11시에 시작한 회의는 두 번의 정회를 거듭하며 무려 5시간 동안 법리적인 갑론을박으로 논쟁이 이어졌다.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대립과 갈등으로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는 회의장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회의를 진행했던 홍광 장로는 권영식 장로와 함께 “총회장 명의의 총회 본부 공문인 김영우 목사와 이경원 목사에 대한 재단이사직 해임 조치에 대한 지시의 건”과 “총회 결의에 따라 총회장에게 사임서를 제출한 김삼봉 목사, 안명환 목사, 정준모 목사에 대한 사임서를 처리하라”는 “사임서 사본을 재단이사회에 통보한 건”에 대한 공문의 정당성 주장과 이 공문대로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경원 목사와 김영우 목사를 비롯해서 이사들은 공문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홍광 장로로 하여금 재단이사장 직무대행을 선출할 것으로 촉구했다. 수적 열세인 홍광 장로측은 재단이사장 직무대행을 선출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이사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 김영우 이사장 직무대행시 안명환 목사는 서기였다.     © 리폼드뉴스
홍광 장로 반대측에서는 회의를 더 이상 진행시켜 나가지 않는 사회자에 대한 성토가 계속됐다. 무려 5시간 동안 이러한 상황은 계속됐다. 결국 회의를 파행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짙게 보이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홍광 장로 반대쪽 감영우 목사 측 이사들은 결국 사회자 불신임안을 냈다.

사회자가 불신임안에 동의와 재청에 대한 가부를 묻지 않자 이때에는 동의자가 가부를 물을 수 있다는 법리적 유권해석에 따라 동의자인 이경원 목사가 가부를 물어 불신임안을 의결했다. 다시 회의 임시 사회자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에 들어가 9표를 얻은 이경원 목사를 임시 사회자로 선정하여 이사장 직무대행 선출에 들어갔다.  

◈ 김영우 목사 직무대행 딱지 떼고 이사장이 되다.

2010년 새해를 맞이했다. 1월 4일에 김영우 이사장 직무대행의 이사회 소집은 폭설과 이사인 김경원 목사가 섬기고 있는 교회 청년들의 단기선교지에서 사고로 인해 참석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참석하기 위한 배려로 이사회는 유회하고 1월 15일에 재소집 되었다. 

이날 재단이사회는 이사장을 먼저 선출하기로 하고 이사장 선출에서 김영우 목사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이사장에 당선됐다. 12명의 참석에 기권 1표를 제외한 11표를 얻었다. 2010년 1월 15일 총신대학교 이사회실에서 소집된 법인이사회에서 이사장 선출이 있었다. 김영우 목사가 “직무대행”에서 정식으로 “이사장”이 되었다.  

이제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원> 법인이사회 제16대 김영우 이사장 체제가 들어섰다. 권력은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이 알게 된다고 했던가? 김영우 목사에게 이사장이라는 또 다른 권력이 주어지자 그 주변에는 또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력 앞에서 인간의 본능은 치사해 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김영우 이사장, 총신대 총장이 되다.

이사장 김영우 목사는 당시 총회장이었던 백남선 목사와 합의하여 2015년 7월 10일에 총신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백남선 목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김영우 중심의 이사회를 총회 중심의 이사회로, 이사와 법인 정관을 총회중심으로 개정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던 때였다.

백남선 총회장과 총신대 이사장인 김영우 목사가 2015년 6월 30일 광주 모처에서 회동하여 총신대 정상화를 위하여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총회 측과 총신 측의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김영우 이사장을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등과 관련된 내용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   백남선 목사와 김영우 이사장과 합의 내용과 각서   © 리폼드뉴스

이 합의서는 총신대학교 정상화와 총회 측과 총신 측과의 화해를 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총회의 직영신학교로서의 이사회 구성과 이사회 정관을 총회와의 관계 속에서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99회 총회 결의를 반영한 합의라고 볼 수 있다.

김영우 목사가 총장으로 선출될 경우 그 임기는 길자연 총장의 잔여임기인 2년 6개월이 되며, 이사장직과 이사직을 사퇴하고 이사회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총신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총신대 이사로 취임한 이후 법인 이사장을 거쳐서 총장 까지 두렵 섭렵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의 권력앞에 가로막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제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쟁취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온갖 전략이 필요했고 그 전략은 처음에는 먹히는 것 같이 보여졌지만 그 전략은 권력의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다.

◈ 학생들과 연대한 교수회 앞에 무너지면서 법정 구속되다

김영우 목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이 되면서 총장이 되기 전 백남선 목사와의 합의사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법인 이사의 선임과 정관 변경은 총회와 무관한 방향으로 갔다. 총회와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갔다.

총장과 법인 이사회는 총회는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립학교법을 잘 숙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학생들의 동요였다. 김영우 총장은 학생 자치회의 대표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할 때만 해도 얼마든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총장과 법인 이사회의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더구나 학생들과 연대한 교수회의 적극적인 시위와 성명서들은 여론을 김영우 목사 측에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이제 총신대 문제는 어느 한편이 희생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어가고 있었다. 

김영우 목사는 총장직을 유지하면 300만 성도와 1만 3천여 개처의 교회를 구성원으로 하고 있는 예장합동 교단의 총회장 자리를 바라보면서 부총회장에 출마했다. 깨끗하게 총장직을 사임하면서 부총회장직에 출마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총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총회장에 출마하자 여론은 총신대 까지 장악하면서 총회권력까지 장악하려고 한다며 여론은 김영우 목사를 돕지 않았다. 김영우 목사 입장에서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부총회장에 출마했다가 부총회장 선거에서 낙선하면 총장과 부총회장 다를 잃게 되는 상황에서 부총회장에 당선되면 총장직을 사임하려고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믿는 총회 구성원들은 많지 않았다.

교권에 집착하게 되면 실수의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얻지도 못하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은 당시 총회장인 박무용 목사에게 2천만 원을 제공한 사건으로 이어졌다. 김영우 목사는 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얻는 데 실패했다.

박무용 목사는 3천만 원을 가지고 검찰에 배임증재로 고발하자 검사는 이를 기소하게 되었고 김영우 목사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결국 2018. 10. 5.에 배임증재로 법정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됐다.

◈ 학생들의 맺힌 부르짖음 - 총신대의 변화를 기대하며

총신대학교와 신대원의 학생 자치기구는 적극적으로 김영우 목사 중심의 총신 측과 맞섰다. 더 정확한 표현은 법인 이사회와 총장,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일부 교수들과 직원들과 맞서는 싸움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들을 교권에 빌붙은 부역자들이라고 폄하하면서 일명 총신대 사태를 유발케 했다. 총신대 전산실 긴급 점거와 총장 퇴진, 그리고 총회를 배제한 학교 운영을 위한 정관변경을 취소하고 원래 상태로의 되돌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학생들과 김영우 목사 반대 측은 줄기차게 교육부에 민원을 넣었다. 교육부는 민원 해결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실태조사 후 의혹 제기들은 사실로 드러났다. 법인 이사회에 총장을 비롯한 일부 교수들과 직원들을 중징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이러한 요구를 교육부가 제시한 기일까지 시행하지 않았다.

▲ 총신대학교 학교법인 관선이사회 2차 모임    ©리폼드뉴스

이런 경우 사립학교법에는 이사취임승인을 취소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사들의 취임을 취소해 버리고 대신 관선이사를 파송했다. 관선이사회는 지난 2018. 9. 28.에 첫 모임을 갖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인 김동욱 교수를 이사장로 선임했다. 총신대 역대 이사장 사진 밑에서 이방인이 이사장 자리를 찾지하며 이사회를 주제하는 비운이 찾아왔다 

제2차 관선이사회가 2018년 10월 13일에 소집되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아젠다에는 교원징계위원회, 직원징계위원회 구성의 건, 교원임용의 건, 교육부실태조사 결과처분에 따른 중징계대상 교원의 직위해제의 건, 총장직무대행 지정의 건, 직원징계 재심의 건, 그리고 법인 추경 등의 건이었다.

교원이 징계의결 요구 중일 때 법인 정관 제45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교육부에서 징계 처분 주문이 내려진 13명의 교원에 대한 직위해제를 결정했다. 13명 중에는 총장의 파면을 포함한 중징계가 8명이며, 징계가 5명이다.

김영우 총장의 직위해제로 총징직무대행자를 지정할 필요성이 발생되었다. 법인 정관 제91조에 의하면 "부총장은 총장을 보좌하며, 총장 유고시에는 부총장이 대행한다"는 규정이 있다. 부총장이 총장직무대행자가 되므로 정관에 부총회장은 3인을 두도록 되어 있으므로 그 가운데 누가 직무대행자가 되느냐가 관건이었다.

정관에 직제상 3인의 부총장에 대한 서열 순위를 정하지 않고 있다. 정관에서 부총장의 순서를 신학대학원 담당, 대학담당, 대학원 담당으로 열거하고 있으므로 이 순서를 직제상 서열 순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에 의해 신대원 부총장은 중계징(해임) 처분 대상, 대학부총장은 중징계 처분 대상, 교육대학원장은 경징계 처분대상을 받았으므로 유일하게 일반대학원장만은 징계 처분 대상자가 아니다. 따라서 일반대학원장이 정관에 따른 대학원 담당 부총장으로서 차차차순위자로 총장직무대행자의 자격을 갖추게 되어 총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했다.

이사회는 일반대학원 부총장인 심상법 교수를 총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하되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인간으로 결정되었다. 3일간의 총신대 총장 직무대행자가 된 것이다.

김영우 총장은 직위해제됨으로  2003년 11월 9일에 법인 이사로 취임한 이래 15년 만에 이사장과 총장을 거쳐 총신대를 떠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15년 동안 총신대학교에서 머물러 있는 동안 총회와 갈등, 학생들과 교수들과의 갈등은 결국 총신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의 특징은 나누어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어 갖지 않는다. 김영우 목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총신교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자기사람이라 생각되는 인사들을 총신과 이사회 전면에 내세웠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을 만들어왔다.

아닌게 아니라 김영우 총장이 무너지자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다 무너지고 말았다. 전부를 가지려다 전부를 잃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소재열 목사(리폼드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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