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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와 사상 개관(2) 1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10/10 [12:0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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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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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상웅 교수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화란의 칼빈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1강연부터 6강연까지의 내용을 분석하고 고찰하였다.

1. 들어가는 말

서거한지 100주년이 차가는 화란 신학자요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벤저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 등과 더불어서 현대 3대 칼빈주의자로 꼽히운다. 또는 ‘제2의 칼빈’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만큼 개혁주의 서클 안에서 그의 기여는 매우 컸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가 그의 생애와 공적이력을 소상하게 살펴 보고 나면 왜 사람들이 그에 대해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들을 가진 사람”이라고 까지 평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19세기 중반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를 부흥하도록 이끌었 뿐 아니라, 정치, 교육, 언론 등 모든 삶의 제 국면에서 개혁주의적 원리에 따른 개혁을 추구했고 일정한 개혁을 성취하는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간지와 일간지의 편집장이었고, 반혁명당을 공식적인 당으로 창설했고, 개혁주의 원리에 기초한 학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자유대학교를 설립했고, 교회개혁을 위해 힘쓰다 돌레안치(Doleantie) 운동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가 출범하도록 지도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을 비롯하여 정치 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1901년에는 화란 수상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공사다망한 중에도 무려 260여권에 달하는 크고 작은 저술들까지 남겼으니 도대체 카이퍼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상을 가졌으며,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지금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개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서론적인 언급만으로도 우리는 카이퍼의 이력과 사상의 전모를 간략하게 개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한 사람이 다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작들 속에서 표현된 카이퍼의 신학사상은 특이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이퍼 당시에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그의 사후에는 교단 분열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는 카이퍼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더욱 더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공과 과를 분명하게 가려내야 하는 것이 학문적인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의 방대한 저술들 가운데 어디에서 부터 논구를 시작해야 할까 망연자실한 연구자들에게는 그의 신학사상을 포함한 개혁주의 사상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lvinism, Het Calvinisme, 1898)이 최상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비록 화란국교회 신학자였던 헨드리꾸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는 이 책을 ‘카이퍼 사상의 요약’(a summary of Kuyper’s thought)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했지만, 독일의 종교철학자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는 ‘근대 칼빈주의의 선언문’(Manifest des modernen Calvinismus)이라고 명명한 바가 있다.

그리고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논구한 박사논문을 출간한 피터 헤슬람은 본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카이퍼 사상에 대한 가장 완전하고, 일관성있고, 비전이 넘치는 표현”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더 이 강연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고에서는 카이퍼의 개혁주의 사상의 요약이 담긴 『칼빈주의 강연』을 분석하고 논구해 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본론(2절-7절)에서는 카이퍼의 여섯 개의 강연에 담긴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본고는 카이퍼의 사상의 개요가 무엇인지를 개관하려고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로 접근할 것임을 밝힌다.

2. 제1강연: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

첫 번째 강연에서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삶의 체계’(life-system), 즉 포괄적인 세계관(Weltanschauung, wereldbeschouwing)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카이퍼는 “두 삶의 체계, 즉 두개의 세계관이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고 있으며, 지나간 40년 동안 자신은 그와 같은 투쟁에 힘써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두 개의 삶의 체계, 혹은 두 개의 원리란 칼빈주와 현대주의를 말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주의란 ‘전 포괄적인 삶의 체계’이므로,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항도 전 포괄적인 삶의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칼빈주의가 딱 적격이라는 사실을 첫 강좌에서 입증하고자 한다.

2.1. 칼빈주의를 역사적으로 정의하기
 
카이퍼는 우선 오해를 많이 받고 있던 칼빈주의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그는 이 개념이 분파적인 이름으로, 교의적 편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 되거나, ‘칼빈주의 침례교’나 ‘칼빈주의 감리교’ 등과 같은 교파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온 것에 반하여,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의미에서 학문적 이름으로 사용되는 네 번째 견해를 소개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는 종교개혁이 루터파나 재세례파나 소키누스파가 아닌 방향으로 움직인 경로를 일컫는다. 철학적으로는 칼빈의 지도에 영향을 받아 인생의 몇몇 분야를 지배하게 된 체계이고, 정치적으로는 화란, 영국, 미국에서 입헌적 정치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했던 정치적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카이퍼는 ‘전세계적으로 인생과 사유에 독립적 형태를 발전시킨 독립적인 전체 경향’으로서, 즉 학문적 의미에서 칼빈주의를 청중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기독교 이념을 훨씬 순수하고 정확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이교(이방종교), 이슬람교, 로마교 등의 거대한 삶의 체계와 함께 칼빈주의를 나란히 놓을 수 있다고 본다.

2.2. 삶의 체계로서 칼빈주의의 세 가지 자격 요건

이제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통일된 삶의 체계를 제공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장하기 위하여 그 증거들을 제시한다. 삶의 체계로서 충족되기 위해서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근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에 대한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는 이교처럼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며, 이슬람교처럼 하나님을 피조물과 분리시키지 않으며, 로마교처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매개적 종교단체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위엄 가운데 계시지만, 성령 하나님으로서 피조물과 직접 교제를 맺으신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의 예정 고백의 핵심이며 진수” 조차도 “인간과 인간을 구분하거나 개인적 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내적 자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카이퍼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규정된다.” 이교는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거한다고 믿기 때문에, 신적 우월성이 인간 가운데 생겨나 계급을 만든다(일예-카스트 제도). 정반대로 현대주의는 모든 차이를 부인하고 모든 구별을 공통의 수준에 놓으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칼빈주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서로 동등한 자로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재능 외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권위와 재능을 주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이교는 때때로 하나님과 피조물을 동일하게 여김으로써 세계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이슬람교는 세계를 너무 낮게 평가하며, 로마교는 교회와 세계를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보았다. 로마교에 의하면 “교회는 성화되고 세계는 저주 아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세계는 교회의 보호와 훈계를 받아야”한다는 이원론적 사고를 표방했지만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고상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교회를 부패시켰고 교회는 세상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고 카이퍼는 비평한다.


반면 칼빈주의는 이러한 사상과 개념에 개혁을 가져왔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중되어야”하며, “구원을 이루시는 특별은혜와 창조주로서 자신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베푸시는 일반은혜가 있다는 위대한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세상 생활을 교회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 칼빈주의에 의하면 세상을 도피하여 수도원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삶의 모든 지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의무가 강조”되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의 맑은 정신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모든 생활을 다시 정복하는 일로 이어졌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또한 교회 안에서 세상의 유혹과 죄를 이기기 위한 힘이 결집되었다.”

카이퍼는 첫 번째 강연 말미에서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가 서구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을 상술하면서 결국 이 칼빈주의의 기치를 앞세우고 나갈 때에 승리의 소망이 있다고 청중들에게 호소한다. 후속되는 여러 강연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지만 1장 말미에서 카이퍼가 개요적으로 제시하는 칼빈주의의 역사적 공헌에 대한 언급을 보도록 하겠다.

세계사에 나타난 이런 반전은 인간 마음에 다른 원리를 심는 일이 아니고서, 그리고 인간 지성에 다른 사상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일이 아니고서 일어날 수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오직 칼빈주의에 의해 자유의 시편이 괴로운 양심에서 입으로 퍼져 나오게 되었으며, 칼빈주의가 헌법상의 시민권을 획득해서 우리에게 보장해 주었으며, 동시에 이와 더불어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후원하고 상업과 무역 그리고 아름다운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고, 중산층을 고귀한 지위로 격상시키고, 박애가 충만하게 하였고, 무엇보다 청교도적 진지함으로 도덕 생활을 고양하고 순수하게 하고 고상하게 한 저 강력한 운동이 서유럽에서 나왔음을 기억하라. (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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