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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이신칭의 교리 500년(3)
서철원(前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08/09 [21:0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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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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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철원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한 종교개혁으로부터 50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 교회가 지켜온 전통을 연구하여 제시하고 있다. 오늘 교회는 이신칭의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강조하고 있다.

5 20세기 후반 새 관점론자들이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영국 고교회 출신 성경학자들이 새로운 관점이란 이름 아래 이신칭의 교리를 버리고 믿음에다 행함을 더해야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므로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교리가 바울을 잘못 이해한데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래 율법을 잘 지켰는데 하나님이 예수 믿음을 내셨으므로 새로 내신 구원의 길로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준수도 하면서 예수 믿음을 가지므로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통상 새 관점 학파로 알려졌다.

이런 주장을 널리 펼치므로 이신칭의 교리를 폐기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신칭의를 유대교 신학으로 해설하는 자들도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5.1 E. P. 샌더스 (Ed P. Sanders)

5.2 제임스 던 (James N. Dunn)

5.3 톰 라이트 (N. T. Wright)

톰 라이트는 새 관점 학파에 속한다. 그래서 그는 칭의를 말할 때 전통적인 칭의 개념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개념을 도입하였다. 교회가 말하고 있는 칭의는 바울이 뜻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의 칭의 교리는 바울의 가르침을 벗어났다는 것 전통적인 칭의 교리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톰 라이트는 강조한다. 실수에 근거해서 전개되었고 칭의에 관련된 본문을 오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칭의론은 로마서에 나타난 칭의 개념을 잘못 전개하여 로마서의 본문에 폭력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본문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라이트는 주장한다.

라이트에 의하면 바울은 개인 영혼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세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칭의는 창조와 언약과 종말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칭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데서 찾고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What Saint Paul Really Said, 115-118, 131).

칭의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신 신실하심이라는 것 톰 라이트는 칭의를 하나님이 자기 언약에 신실하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에 신실하시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어이 이루어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함을 칭의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제창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마지막까지 그의 언약에 신실하셨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의라고 톰 라이트는 주장한다. 그러면 톰 라이트에게 있어서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는 것이 전혀 아니다. 톰 라이트는 복음과 칭의의 내용을 유대교 신학의 도식으로 바꾸는 것을 그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톰 라이트는 일관되게 주장하여 바울에게 복음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얻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맺은 언약을 다 지키신 신실하심이 칭의이고 복음이다.

톰 라이트가 말한 바울의 복음은 다음과 같다.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과 다른 악의 세력들 위에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또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세계를 도입하였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이 그치고 전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왕이 되었다. 또 예수가 전 세계의 주이고 참된 왕이 되므로 모든 무릎이 그에게 꿇을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시어서 이방 민족들이 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또 그로 말미암아 참 신으로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What Saint Paul Really Said, 25-60, 131-133).

그러면 톰 라이트의 새 관점 견지에서는 의롭다함은 주 예수를 믿으므로 그의 피로 죄용서를 받아 영생하게 된 것을 전혀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에 신실하시므로 예수 메시아로 언약을 다 이루시어 이스라엘의 포로를 그치게 하고 악의 세력들을 이기므로 세상을 바로 고치는 것이다.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다 이루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 언약에 끝까지 신실하심이 칭의이다. 그러면 칭의는 주 예수를 믿어 죄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에 신실하심이다. 곧 하나님을 의롭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칭의를 말한다, 271-274; What Saint Paul Really Said, 45).

칭의는 메시아 예수의 신실함이라고 함

톰 라이트는 바울 (Paul In Fresh Perspective)에서도 같은 사상을 전개한다. 그는 창조와 언약 관계로 바울의 신학을 개진한다. 하나님이 전 세계를 향한 한 계획을 가지셨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한 가족을 가지시는 것이다. 마침내 이 일을 율법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다. 율법은 이방인과 유대인들 간에 큰 벽을 세우지만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전 세계에서 한 백성을 이루신다. 칭의는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 새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새로 정의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은 토라로 아니고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다. 그러므로 의는 메시아 예수의 신실하심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새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표라는 것이다 (Paul In Fresh Perspective, 108-11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전 세계를 회복하려는 계획을 예수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신다. 그리고 전 세계의 회복에 그리스도인이 동참하여 한 가족을 이룬다 (Paul, 11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가족을 약속하셨는데 이 언약백성을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다. 이 일이 예수 메시아의 신실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예수의 신실함이 곧 의라는 것이다 (Paul, 115).

반론: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심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한 도구로 선택되었다

톰 라이트는 바울과는 반대되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여 한 가족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구원하신다. 이 일에 이스라엘이 도구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목적으로 이스라엘이 선택되고 한 민족으로 조성되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사람으로 오셔서 대신 속죄하시어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제사제도를 이스라엘에 세우시고 대신 속죄제사의 법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 오심의 통로와 대신 속죄제사로 세상을 구원하심을 알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에 속죄제사의 제도를 세우셨다.

의는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가족으로 편입시킨 메시아의 신실함이라고 함

톰 라이트에 의하면 의는 하나님의 신실함인데 이 신실함이 메시아의 신실함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메시아의 신실함은 그의 순종을 뜻하는데 그의 순종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함이 충분히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메시아가 해내셨다는 것이다. 메시아의 신실함으로 이방인들이 한 가족으로 편입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 세계가 하나님의 언약에 편입된 것이 의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합하여 아브라함의 한 가족 곧 새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언약백성에 가담은 믿음으로 된다고 하는 것을 톰 라이트는 빼지 않았다 (Paul, 120-122).

바울은 유대교 신학을 고수했다는 것

톰 라이트는 바울이 유대교의 신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바울이 유대교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바울 연구의 중심점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바울은 이방종교의 방식을 반대하여 유대교 고유의 방식을 고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바울 연구의 중심점은 바울이 유대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유대교식 종교의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울을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라이트는 강조한다. 라이트는 바울이 유대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예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로 아브라함과 율법과 선지자들의 삶을 따라 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둠의 세상 가운데서 빛의 자녀들로 사는 것임을 뜻한다고 하였다. 바울의 신앙방식은 율법을 떠나 이방종교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의 경우에서도 이방종교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방 제국의 위협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이방 민족들에서 선택된 사람들로 한 백성으로 살게 하였다는 것이다(Paul, 128).

톰 라이트의 주장의 핵심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메시아로 말미암아 선택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방 세계에 살아도 구약의 족장과 선지자들처럼 율법을 잘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적으로 바울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그의 유대교 신학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재 구상하였다는 것이다 (Paul, 128-129).

라이트는 유대교 신학 구도로 종말론을 해석

톰 라이트는 또 종말론의 도식에서 바울을 해석한다. 그는 바울의 유대주의 종말론을 새롭게 재 구상하면서 포로귀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왔지만 유배가 끝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시온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포로 생활의 시작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부터라는 것이다. 율법을 받으므로 아담처럼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살던 상황에서 메시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새 출애급을 이룬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메시아의 구속사역으로 이방인들과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 메시아의 구속사역을 이방세계에 전파하여 아브라함의 가족이 되게 하는 데는 영이 일하였기 때문이다. 이때는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고 예수 메시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아브라함의 가족이 된다.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이 세상을 교정하여 바로 세우게 되었다. 곧 예수 메시아와 영 (the Spirit)으로 세상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울은 종말론을 재구상하면서도 유대교 종말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교정하고 회복하는 계획을 율법으로 아니고 예수 메시아와 성령으로 이루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aul In Fresh Perspective, 130-153; What Saint Paul Really Said, 25-62).

라이트는 이스라엘이 할 사명을 예수 메시아가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새 관점이라는 것

톰 라이트는 칭의를 회심과 믿음으로 구원 얻음이라고 한 것은 바울에 대한 그릇된 옛 관점이라고 단정한다. 예수는 율법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으므로 바울과 예수를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참되고 궁극적인 종이다.

바울은 예수의 작업을 계속 수행하는 종으로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다시 민족들에게 빛이 되도록 하는 작업을 하게 부름 받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로서 일하면서 고난당한 것은 참된 이스라엘의 몫을 수행하므로 당하는 것이었지, 유대교의 변절자가 되었으므로 유대인들로부터 고난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메시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메시아 공동체를 세우므로 유대인들의 질투를 받은 것일 뿐이다. 바울이 이방세계에 전한 하나님의 복음은 언약이 성취되어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고 온 세상의 주님이라는 것을 전파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가이사가 주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메시아인 예수가 세상의 주님이라는 것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예수와 영으로 이 일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므로 메시아 공동체를 세워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구속받은 인류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메시아 공동체에 가입은 세례로 이루어진다. 세례로 믿는 자의 신분이 변하기 때문이다.

바울에 관한 라이트의 새로운 논의의 요점은 이방인들이 메시아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영적 특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라이트는 바울이 그렇게 강조하는 죄용서와 영생에 이름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았다.

예수 메시아를 중심으로 다시 정의된 하나님의 백성은 단일 가족이므로 사랑의 원리로 살아야 한다고 바울이 가르쳤다고 라이트는 제시한다. 유대인의 특권에 동참하는 것이면 율법으로 살아야 한다고 제시해야 하는데 사랑의 원리로 살아야 한다고 바울이 가르쳤다는 것이다. 예수 메시아를 중심하고 영 안에서 재 정의된 하나님의 한 가족 곧 이방인들과 유대인을 한 가족으로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바울의 실제 전략이었다고 톰 라이트는 제시한다.

라이트는 후기 유대교 신학으로 바울의 모든 행적을 설명

톰 라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바울의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후기 유대교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 유대교의 종말사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다. 후기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언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이 언약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계도 창조하신 것이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세계지배가 필연적으로 귀속된다. 그러면 종말에 하나님은 메시아 왕국을 필연적으로 세우셔서 유대인들로 세계를 지배하도록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이 톰 라이트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하나님이 세계를 교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라이트의 주장을 따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전개하면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을 위한 왕국설립을 위해서 오신 것이 된다. 그러면 톰 라이트는 율법준수를 하나님의 백성 되는 요건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주장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존하는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을 후기 유대교의 신학으로 풀어 교회를 유대인이 중심이 된 한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 정당한 이해인가? 이런 시도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 곧 세계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

톰 라이트만 고찰해도 바울을 새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복음과 칭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보인다.

5.4 유보적 칭의론

유보적 칭의론을 제창하는 주장이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있다고 들린다. 필자는 이런 주장을 제시하는 글을 직접 읽지 못해서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없지만 들은 것을 몇 마디로 옮기고자 한다. 주 예수를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고 이 믿음에 행함을 더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 관점의 핵심이다. 믿는 자의 행위가 다 끝난 종말 심판 때 칭의가 선언된다는 것이 유보적 칭의론이다. 믿는 자들의 행함이 다 끝나기 전에는 의롭다하는 선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 심판 때 최종적인 칭의가 선언된다는 것이다.

믿음과 행함으로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하면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은 행함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끝에 최종판단을 내려 구원 여부를 결정한다. 이 주장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대로는 역사의 끝에 세상을 바르게 한다고 주장하는 톰 라이트의 신학에서 빌려온 것 같이 보인다. 그러면 마지막 날 심판을 받기 전에 죽은 성도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심판주가 아직 판정을 내려주시지 않았으니 천국은 못갈 것이고 그렇다고 지옥으로 바로 간다고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사람들이 악만을 행하고 살지 않았고 열심히 선행을 하려고 애썼으니 그냥 지옥으로 갈 수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보적 칭의론자들은 옛날 로마교회의 연옥교리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최종판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은 후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종말 전에 죽은 사람들을 누가 연옥과 지옥으로 보낼 것인가? 유보적 칭의론에 의하면 심판주는 종말까지 심판을 유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 어떤 기준으로 의를 받기에 합당한 선행을 행했다고 판정할 것인가?

이신칭의 교리에 의하면 처음 믿을 때 받은 칭의가 종말론적인 칭의 선언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지금 죽어도 하나님 앞으로 직접 간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의롭게 되었으므로 죽으면 하나님 품으로 바로 간다. 심판과정을 거쳐서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보적 칭의론은 부질없는 사람들의 잠꼬대이다. 부질없는 주장이 한국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본 필자는 처음 구상에서는 새 관점을 시작한 E. P. Sanders와 James Dunn도 다루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톰 라이트 한 사람만 다루게 되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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