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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이신칭의 교리 500년(2)
서철원(前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08/01 [10:2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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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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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철원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한 종교개혁으로부터 50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 교회가 지켜온 전통을 연구하여 제시하고 있다. 오늘 교회는 이신칭의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강조하고 있다.

3 로마교회의 이신칭의 교리 부정과 반대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으로 세워진 종교개혁교회를 박멸하려고 사력을 다하였다. 종교개혁교회는 굳게 섰고 이신칭의를 교리로 확정하므로 무너질 수 없는 교회로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교회는 트렌트 종교회의를 열어 이신칭의 교리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므로 종교개혁을 무산시키기로 하였다.

이 일을 위해 비종교적이고 비기독교적 단체인 예수회 (Societas Jesuitorum)를 바울 3세가 1540년 합법적인 종단으로 인허하였다. 예수회는 종교개혁을 이단으로 몰아 박멸하기 위해 공회의를 열어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황은 트렌트 공회의 (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를 소집하여 이신칭의 교리를 박살내는 결정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예수회가 마지막 회기에서는 공회의의 결정을 주도하였다.

트렌트 공회의의 결정 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3.1 종교개혁의 신뢰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칭의를 가져올 수 없고 다른 행동들이 필요하다.

트렌트 공회의는 종교개혁이 주장하는 믿음은 신뢰믿음 (Vertrauensglaube) 이어서 죽은 믿음고백이므로 그 자체로는 의롭다함의 충분한 준비가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에는 믿음과는 별도의 행동들이 요구된다고 결정하였다 (Tridentinum, sessio 6; cap 7; Michael Schmaus, Katholische Dogmatik (KD), III/2, 333). 칭의 상태를 준비하는 행동들은 통회, 두려움, 신뢰, 소망과 시작하는 사랑과 회개라고 하였다 (Ibid.).

3. 2 믿음은 의롭다함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믿음은 구원 얻음에 있어서 의롭다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칭의를 위한 준비일 뿐이다. 믿음은 칭의를 위한 준비행동일 뿐이다 (Schmaus, KD, III/2, 306).

신뢰믿음은 의롭다함에 불충분하다. 내용 있는 고백신앙이 칭의에 이르게 한다. 칭의는 신뢰로만은 안 되고 오히려 이 신뢰믿음을 배제한다고 주장하였다 (Schmaus, KD, III/2, 306-308). 그러므로 신뢰믿음으로 얻는 의는 생소한 의 (justitia aliena)일 뿐이다. 그런 의는 사람 밖에 있고 내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공회의가 결정하였다 (Schmaus, KD, III/2, 308).

종교개혁은 믿음만으로 의롭다함과 죄용서를 받는다고 주장하여, 공로나 행함은 무익한 것이라고 확정하였다. 로마교회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여 믿음으로만 아니고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근거라고 결정하였다. 곧 신뢰믿음만으로는 의가 내 것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3.3 믿음은 준비이고 사랑의 열매가 있어야 구원 얻는다.

트렌트 공회의는 행위들이 의롭다함에 필수적이라고 하여 사랑의 행동이 믿음에 더해져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사랑의 덕은 의롭다함의 준비이고 칭의의 열매가 아니다.

트렌트 공회의는 이신칭의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하여 신뢰믿음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고 결정하였다. 세례 전에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Schmaus, KD, III/2, 306, 308). 신뢰믿음은 의롭다 함에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고 결정하였다 (KD, III/2, 315).

믿음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길의 시작이고 끝이 아니다. 곧 믿음은 구원의 시작이고 의롭다함의 뿌리와 기초일 뿐이다. 칭의를 준비하는 믿음은 하나님에게로 돌이킴이고 또 사랑으로 채워져야 한다. 사랑 없는 믿음은 공허할 뿐이라고 트렌트 공회의는 결정하였다 (KD, III/2, 317-318).

믿음은 준비일 뿐이다 (KD, III/2, 318). 또 믿음은 칭의로의 성향일 뿐이다. 믿음은 칭의를 위한 준비 곧 하나님을 받으려는 준비이다. 믿음은 의롭다함의 시작이고 출발점일 뿐이다 (KD, III/2, 322). 참회, 떨림, 시작하는 사랑, 의와 또 다른 행동들은 믿음의 수행방식이고 현현형식이다. 소망과 사랑 없이는 믿음은 영생을 주지 못한다고 트렌트 공회의는 결정하였다 (KD, III/2, 322).

3.4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계명들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

계명들을 지킴이 그리스도 앞에서 영생을 얻게 한다. 믿음만으로는 하나님 앞에 상속자로 세워질 수가 없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명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의 말씀들을 수행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KD, III/2, 324).

3.5 믿음과 회개의 열매로 구원에 이른다.

트렌트 공회의는 믿음은 구원의 기초이고 회개는 구원의 도구적 원인이라고 결정하였다. 회개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애통을 가져야 하고 회개의 열매를 가져야 한다 (KD, III/2, 326). 믿으면 회개로 방향이 정해진다. 반면 회개는 믿음의 구체화이다. 회개하고 세례 받으므로 구체적으로 가시적인 된 믿음을 갖게 된다. 세례 받음에서 개인의 믿음이 구체화된다. 회개는 믿음의 표시이고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KD, III/2, 330).

3.6 신뢰믿음은 그 자체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지 못하므로 칭의를 위해 선한 행위들이 요구된다.

트렌트 공회의는 신뢰믿음 그자체로는 의롭다함을 얻게 하지 못한다고 정죄하였다. 칭의를 받으려면 믿음과 행위들이 요구된다고 선언하였다. 참회와 두려움과 신뢰와 소망과 시작하는 사랑과 회개가 칭의를 준비하는 행위과정이다 (KD, III/2, 333). 의롭다함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통회와 회심을 말하였다.

3.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정하였다.

트렌트 공회의는 야고보서를 인용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정하였다 (약 2:17).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어서 결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결정하였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되므로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KD, III/2, 334-5). 이로써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의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과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였다.

3.8 행함이 없는 믿음은 빈 믿음이다.

가장 정통신앙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런 추상적인 믿음은 머리로 믿는 믿음일 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추상적으로 참이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빈 믿음이다 (KD, III/2, 335). 그러므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가치를 가진다고 단언하였다 (KD, III/2, 335).

3.9 의롭다함은 믿음에서 나오지 않고 행함에서 나온다.

의롭다함은 믿음에서 나오지 않고 행함에서 나온다. 칭의는 행함에서 나온다고 단정하였다 (Schmaus, KD, III/2, 336).

3.10 자유의지는 은혜를 저항한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선행을 할 수 있고 선행으로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의 은혜는 의지의 저항을 받으면 역사하지 못한다고 하여 자유의지를 확고히 하였다. 트렌트 공회의는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만 강조하였지 자유의지의 역사는 부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KD, III/2, 339-340).

3.11 사람의 자유의지는 범죄로 상실되지 않았다.

아담이 범죄한 후 사람의 자유의지가 상실되고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자는 배제된다고 트렌트는 결정하였다 (5 canon 6 sessionis concilium Tridentinum).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에게 자유의지를 수여하시어 창조된 신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잃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수여하시므로 자기의 의지를 따라서 걷도록 하시고 (KD, III/2, 341-343), 자유의지의 수행을 확실하게 보장하신다고 하였다 (Schmaus, KD, III/2, 275).

3.12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지 않았으므로 은혜 없이도 선행을 할 수 있다.

트렌트 공회의는 사람이 구원 얻는 일에 은혜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뿌리까지 썩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정하였다 (KD, III/2, 279). 원죄도 인간본성을 전적으로 부패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자유는 본래 인간본성의 한 요소이므로 강압 아래서도 다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KD, III/2, 281). 사람은 은혜 없이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윤리적 선을 행할 수 있다. 타락한 인간도 은혜 없이 도덕적 선을 행할 수 있다. 사람에게 선으로의 성향과 의지의 자유가 남아있으므로 자유의지는 상실되지 않았다고 정하였다 (KD, III/2, 282).

3.13 사람은 자유의지로 하나님도 반항한다.

트렌트 공회의는 사람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에게서 온 운동도 저항한다고 정하였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자유로운 결단으로 대답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심지어 효력 있는 은혜 아래서도 사람은 자유롭다고 정하였다(Schmaus, KD, III/2, 341). 사람은 자유하므로 하나님을 반항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붙들고 있으므로 하나님에게 반항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 (KD, III/2, 357, 363). 아담의 범죄 후에도 사람은 자유를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그릇 행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선행이나 악행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배제된다고 트렌트 공회의는 정하였다. 사람은 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종교개혁이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은혜의 힘과 사람의 자유를 증거한다고 트렌트는 결정하였다 (5, 6 canones, 6 sessio, concilium Tridentinum; KD, III/2, 341).

3.14 자유의지가 계시진리이므로 자유를 소홀히 하는 것이 불가하다.

사람의 자유는 계시진리이므로 이 자유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트렌트는 단언하였다. 자유의지를 소홀히 하는 자는 사람에 대해서도 실패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성과 사람의 자유 둘 다를 보존해야 한다고 정하였다 (Schmaus, KD, III/2, 352, 354).

트렌트의 결정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자유로이 선을 실행하도록 창조하셨다. 자유는 선택의 자유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악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의 의미 있는 실현이 아니고 자유의 오용이라고 하였다 (KD, III/2, 355).

행함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보증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우리의 자유가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고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유를 목표하고 이루어진다고 정하였다 (KD, III/2, 356).

3.15 트렌트 공회의는 칼빈의 선택과 유기 교리를 배척하였다.

트렌트는 칼빈이 사람을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로 나누는 것과 선택자들의 선한 행실들은 단지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을 지시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배척하였다. 따라서 의롭다함의 은혜가 예정된 자들에게만 타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름 받았으나 은혜는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배제된다고 결정하였다 (canon 17; KD, III/2, 358).

3.16 하나님의 만인구원 의지는 인정하지만 무조건적인 구원은 부정하였다.

트렌트는 하나님이 만인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의지를 가졌다고 확정하였다 (Schmaus, KD, III/2, 359). 그러나 영원구원으로의 예정은 거부하였다. 곧 사람이 자기가 선택되었다는 것에 무조건적 확실성을 가진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KD, III/2, 366). 악에 머무르는 사람은 구원에서 배제되고 구원을 준비한 사람만 구원에 이른다고 결정하였다 (KD, III/2, 367, 369, 372).

3.17 선행은 공로라고 확정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세례 받은 자가 맺는 열매는 그의 새로운 신분의 표현이고 성취라고 가르쳤다. 이에 반해 트렌트 공회의는 이 열매는 공로라고 확정하였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공로라고 확정하였다. 하나님은 선행과 공로들에 대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선행들에 대해서 영생으로 확실하게 갚으신다고 결정하였다 (KD, III/2, 411-413). 곧 사람이 공로를 이루어 구원을 얻는다고 확정하였다.

이 트렌트 공회의의 결정들은 종교개혁을 이단이라고 박멸할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 결정들로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박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얻고, 행함으로는 결코 구원 얻을 수 없다. 트렌트 공회의의 결정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 배치된다.

4 종교개혁교회의 일부가 이신칭의 교리를 버리고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로마교회의 주장으로 돌아감

종교개혁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굳게 붙들고 믿음생활을 잘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개혁교회에 속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다 행함을 더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믿어 로마교회의 신학으로 돌아갔다.

요한 웨슬리가 일으킨 감리교회는 믿음으로 의롭다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행함을 더해서 완전해지면 그것에 근거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 후 2세기가 지나 종교개혁교회 중에 일부가 로마교회의 방식으로 완전히 회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사역을 이루었으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곧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믿음은 구원의 한 조건에 불과하고 사랑의 선행으로 이루어진 성화가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주창하였다. 이렇게 하여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가 웨슬리와 감리교회에 의해서 완전히 폐기되는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감리교회의 믿음과 행함을 합쳐서 구원에 이른다는 가르침은 로마교회의 가르침보다 더 과격하게 종교개혁 정신을 벗어났다. 로마교회는 자유의지로 선행을 하되 구원은혜의 도움으로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웨슬리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은혜의 도움으로 자유의지가 선행을 하고 믿음을 결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진 일반은총 곧 선행은혜 (先行恩惠)의 도움으로 선행 (善行)을 하고 믿음을 결단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유의지가 일반은총의 역사를 입어 믿기로 작정하고 회개하고 성화작업을 한다. 성화작업으로 완전성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에 근거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것은 은혜의 종교를 넘어 자연종교 영역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웨슬리의 가르침의 주요점들을 살펴보자.

4.1 선한 행위들로 구원 얻는다.

웨슬리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에 이르려면 곧 의롭다함을 받으려면 선한 행위들을 행해야 한다. 즉 선행이 구원에 본질적이다.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선행을 소홀히 하면 결코 칭의를 받지 못한다 (The Works of John Wesly, VI, 48).

4.2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구원 받는다.

웨슬리에 의하면 회개가 믿음에 절대적으로 앞서간다. 회개의 열매들은 선행하는 은혜의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오기 전에도 행동해야 한다. 열렬한 순종, 훈련된 삶, 자기부정과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함이 없이는 완전성화는 불가하다 (The Works of John Wesley, VI, 50). 그러나 완전성화와 의롭다함을 얻기 위해서 믿음이 조건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Works, XI, 494).

회개가 칭의의 조건인데 선행하는 은혜가 회개하게 하고 확신하게 한다. 이것이 구원의 첫 단계여서 참 칭의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W., VIII, 46-47).

4.3 선행은혜와 협동으로 구원을 성취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 얻는 것은 특별은혜, 구원은혜로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미리 주어진 은혜 곧 선행은혜로 된다고 한다. 이 선행하는 은혜와 협동하여 사람은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낸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전에 하나님에게로 가는 운동이 시작하는데 이 운동은 선행은혜에서 나온다 (W., X, 358-360).

4.4 구원은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

웨슬리에 의하면 구원 얻는 일은 불가항력적 은혜 곧 구원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구원도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가 필수적이기는 하나 불가항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Works, VI, 511-512; I, 427).

4.5 칭의는 선한 행위들 곧 성화로 받는다.

웨슬리에 의하면 칭의를 받으려면 내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 내적변화는 칭의 전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의롭게 되는 것은 성화로 이루어진다. 거룩하게 된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신다. 곧 의로워진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다 (Works, V, 56-57). 웨슬리는 주장하기를 선한 행위들을 게을리 하면 결코 칭의 받지 못한다고 반복한다.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이 믿음과 함께 칭의에 필수적이다 (Works, VI, 50). 회개와 그 열매들이 믿음에 절대적으로 앞서간다고 하고서 회개의 다소와 열매들의 유무로 칭의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Works, XI, 494).

웨슬리는 칭의는 의롭게 되어 짐과 성화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Works, VI, 71). 의가 주입되어서 내재적이 되고 (Works, IX, 343), 또 사람이 실제적으로 거룩해져서 내적으로 거룩해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인 칭의에 이른다 (Works, X, 271-283).

위의 내용을 웨슬리의 말로 요약하면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Works, VI, 511-513).

4.6 믿음은 단지 사랑의 수단일 뿐이고 사랑의 선행으로 칭의 받는다.

웨슬리의 가르침에 의하면 믿음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고 목표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다. 사람이 얻어야할 목표는 사랑이다. 믿음은 단지 사랑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다 (Works, XII, 78-79). 사랑의 선행들 곧 합당한 회개의 열매들이 칭의에 필수적이다 (Works, VI, 48). 최종 칭의는 계속적인 선행과 마음의 거룩에서 나온 순종으로 된다고 한다 (Works, I, 321; VIII, 47).

그러면서도 웨슬리는 믿음 없이는 아무도 칭의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믿음이 칭의의 유일조건이라고 말한다 (Works, VI, 48). 또 믿음이 구원의 직접적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Works, VI, 49-54; VII, 236-238). 그러나 믿음으로 칭의가 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웨슬리는 말한다. 선행은혜를 소홀히 하면 결코 칭의를 기대할 수 없다. 믿음 없이는 칭의를 받지 못하지만 회개의 정도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회개와 회개의 열매가 칭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Works, VI, 48).

4.7 완전성화로 칭의 받는다.

웨슬리는 가르치기를 구원과 성화도 선행하는 은혜로 시작하고 완전성화로 칭의 받는다고 한다 (Works, VI, 44). 칭의는 선물이 아니고 획득사항이므로 성화하지 않는 자를 칭의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되지 않는 자는 칭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된 자를 칭의하신다. 왜냐하면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의롭게 되어졌기 때문이다 (Works, V, 57).

종교개혁교회 중에서 특별히 개혁신학 전통에 선 교회가 웨슬리의 가르침과 개혁운동으로 칭의를 인간의 획득사항으로 만들었다. 사랑의 선행으로 완전성화를 이루면 칭의를 얻는 것으로 정하여 로마교회의 한계를 벗어나 자연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회개와 회개의 열매들이 구원은혜의 도움으로 아니고 선행은혜 곧 일반은혜의 역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완전성화도 선행은혜로 시작하고 그로써 종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유의지로 선행은혜의 역사를 입어 완전성화를 이루고 그로써 칭의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잘못된 것임을 뜻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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