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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우리시대에 기적(奇蹟, miracle)이 있나요?
우리시대에는 계시를 주기 위한 기적은 없습니다.
기사입력: 2018/07/02 [20:4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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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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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시대에 기적(奇蹟, miracle)이 있나요?

 

▲ 고경태 박사     © 리폼드뉴스
A.
기적이 있다혹은 없다는 세계정신사에서 구분해야 합니다. 18세기 유럽 철학에서는 이신론을 기초로 해서 기적이 없다고 확립했습니다. 20세기 현대 철학에서 기적이 있을 수 있다라고 유연하게 개방했습니다. ‘앞 기적뒤 기적은 같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기적과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기적이라는 용어 이해를 정립해야 합니다.

 

기적이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기사(기적)과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세 복음서에서는 기사라고 했고,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세 복음서에서 기사를 베푼 사역을 하셨는데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고, 표적을 베푼 요한복음에서는 한 제자가 십자가 밑에 마지막까지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적은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역사에 드러내는 방식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자기 나라를 세우실 것과 여호와 자신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17세기 이신론(理神論, deism. 自然神論) 체계로 세운 계몽철학(그리고 자유주의)은 성경 본문에서 비합리적인 내용인 기적불신 혹은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논문과 저술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모세가 홍해(Red Sea)를 바다를 가르고 건넌 것을 불가능하다고 해석하고 갈대바다(Reed Sea)’를 제언하기도 했습니다.

오경의 모세저작설 이해는 1950년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나뉘는 신학적 이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걷는 기적 등도 철저하게 부정했습니다. 그러한 근거로 예수, 기독교 이해를 시도했지만, 자유주의는 세계대전으로 몰락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부정하는 신학(철학) 사조를 반성한 적은 없습니다.

 

20세기 현대철학(현대신학)은 존재 이해로 전환했습니다. 하이데거는 대표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자이고, ‘존재와 시간(Seit Und Zeit)’(1927)을 저술했습니다. 신 존재에 대한 고민이 아닌, 신존재를 고민하는 인간존재에 대한 신비로 전환했습니다. 이러한 존재 이해를 현대 신학자들(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폴 틸리히)은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인간이 신존재를 고민하고 신인식을 하는 것을 기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기독교에서 거부한 신비주의가 대거 유입시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정착했습니다. 명상과 연계시킨 관상기도, 많은 기도를 주장하는 방언기도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통합 교단에서 요가와 마술전도를 금지 결의를 했는데, 한 인터넷매체에서 요가와 기독교 명상 운동을 연결하려는 글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대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유럽에서는 칼 바르트가 주창한 계시 이해는 성경66권의 충족성을 거부하며 신학을 만들었습니다. 1900년대 미국 아주사에서는 방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지역에서 전혀 다른 신학 체계이지만 계시의 충족성을 거부하고, 자유 혹은 열정을 주장했습니다.

 

우리시대에 기적이 있음과 없음은 크리스천에게는 매우 신학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에서는 수사학적, 농담 등으로 기적을 사용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기적을 신학적으로 사용하는지, 수사학적으로 사용하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수사학적인 기적을 신학적으로 이해할 때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신학 훈련이 약한 목회자들은 수사학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신학적 기적을 논의한다면 성경시대와 같은 기적은 우리시대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사학적인 기적이 우리시대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의 한계(능력과 인식)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해 기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적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겸손을 함양하게 됩니다. 기적의 반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14:12). 그래서 기적을 반복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를 전하는 능력(14, 1:8)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기적을 행함이 아니라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기적을 행했는데 복음 전하는 도구였고 심각하게 박해를 받은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적 행함을 시도하거나 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도르가를 살렸는데(9) 그 뒤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뒤에(10) 사도 바울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성경적 기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 기적으로 고난을 받고 박해를 받음, 그 자리에서 떠남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적으로 어떤 영예을 얻지 않았고 오히려 거부했습니다(14).

우리시대에도 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기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응답이 어떤 육적 유익으로 연결한다면 기적은 발에 착고를 채우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24:24-25). 표적과 기사를 실현했기 때문에 능력의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7:21-27).

 

우리시대에 기적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은 매우 소모적인 질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어찌되었든지 주 예수의 복음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며(1:18),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2, 8:28).

 

우리시대에는 계시를 주기 위한 기적은 없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직접 음성을 들었다면 마귀의 음성으로 단정해도 무방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가장하는 변화술을 쓰기에 능수능란한 거짓의 아비입니다.

오직 성경,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에 겸손하게 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봅시다. 그 기적이 겸손을 주는지, 자부심을 주는지 민감하게 평가한다면 복인지 시험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담임,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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