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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논평] 박형룡박사, 서철원박사 교의신학 전집 출간
박형룡 박사 1973. 10. 29., 서철원 박사 2018. 6. 29. 교의신학 전집 출간
기사입력: 2018/06/30 [16:0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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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룡 박사가 교의신학 전집 출간 감사예배에서 답사하고 있다.      ©리폼드뉴스
  

19731029, 박형룡 박사 교의신학 전집 출판 감사예배

 

조직신학을 체계화 하고 기독교를 위한 신학적인 변증을 완성한 우리 기독교 신학계에 거성인 박형룡 박사가의 교의신학 완연간행 축하 감사예배가 19731029일 오후 2시에 당시 이환수 목사가 담임으로 있었던 청암교회에서 거행됐다.

 

사회는 박형룡 박사와 함께 해방 이후 교단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51인 신앙도지회 회원이었으며, 총회장이었던 박요한 목사가 사회를 맡았으며, 기도는 이수현 증경총회장이 맡았다. 설교는 51인 신앙동지회 회장이었던 정규오 목사가 전통적인 교의신학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황성수 박사의 서평 박찬목 목사의 교의신학의 유래’, 노진현 목사, 유인식 장로의 축사와 박형룡 박사의 답사로 진행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답사를 통해 기독교 변증은 신학의 주변에서 움직이는 노력이었으며, 조직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것이 중심적, 근본적인 것이라는 것을 느껴 교의신학을 발간하게 된 동기이다라고 하며 주석 번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신학의 심층에 담겨져 있는 근본교리를 파 해치는데 주력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1964년에 교의신학 서론을 발간한 이래 67년 신론, 68년 인죄론 70년 기독론, 72년 교회론, 말세론을 간행함으로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출판감사예배의 발기인 대표는 김윤찬 노진현 박성겸, 박요한 이환수 정규오 황성수 목사 등이었다. 발기인은 80명이었다.

 

박형룡 박사는 전질을 출간한 후 정확히 5년 후인 19781025일에 소천하였다.

 

2018629,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전집 출판 감사예배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전권이 출간된 지 45년 만에 서철원 박사가 교의신학 전권을 출간하고 감사예배를 드렸다. 출판감사예배는 629일 대전시 계룡스파텔에서는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전집 출판감사예배 준비위원회(위원장 소강석 목사)’ 주관으로 드렸다.

▲ 서철원 박사가 교의신학 전집 출간 감사예배에서 답사하고 있다.     ©리폼드뉴스

한기승 목사(준비위 총무)의 사회, 기도 김관선 목사(준비위 부위원장), 박영기 목사가 봉독한 에베소서 1:21~23절 말씀을 통해 소강석 목사(출판감사예배 준비위원장)교회를 세우는 두 기둥, 신학과 경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서철원 박사는 답사에서 이 책을 쓸 때 마음에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복음 선포로 돌아가기를 염원했고, 현대신학의 공격으로부터 전통적인 신학과 신앙을 지켜나가기를 원하는 마음이었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당시 박형룡 박사의 출간 감사예배는 전 총회적인 인사들이 참여하여 진행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서철원 박사의 출간 감사예배는 과거 개혁신학연구원 출신의 목회자들 중심의 호남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형룡 박사와 서찰원 박사의 성경신학

 

박형룡 박사와 그의 시대는 분명 자유주의 신학, 신복음주의 신학, 현대주의 신학과의 투쟁을 위해서 조직신학적 접근에 의한 변증작업은 정통보수신학을 지키기 위한 유익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신학보다, 조직신학이 상위 개념의 신학으로 극찬 받은 시대였을 것이다. 이는 정규오 목사의 박형룡 교의신학 전집 출간 기념설교(19731029)에 잘 나타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총회를 진두지휘하는 어떤 이사는 조직신학 보다는 성서신학이 보다 중요하다는 발언 등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유력한 장로는 박 박사님에게 당신이 목사이냐 당신이 한국교회와 총신을 망쳐 놓았다고 주먹질을 하는 장로를 나는 목도했다. 어떤 목사교수는 박 박사의 입장을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바 있다.”(박형룡 교의신학 전집 출간 기념설교(19731029일)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에 소홀하여 오로지 조직신학 관점이 상위개념의 신학으로 인정하고 있던 그 시대였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은 철저히 성경신학과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집대성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서철원 박사가 조직신학을 전공했으면서 그러한 조직신학의 지평속에서 성경에 대한 주해에 대한 작품으로 창세기를 비롯해서 많은 성경 주해서를 발간했다는 점은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를 믹서 해 놓는 듯한 학문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서철원 박사와 호남의 정통보수신학, 개혁신학

 

초기 호남지역인 전라(전주와 나주)도는 후발주자인 미국남장로회 선교회의 선교지역이었다.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은 선교지 교회와 성도들의 신학과 신앙의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호남지역은 철저히 보수적이고 정통신학을 대변하는 지역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해 왔다.

 

이눌서(레이놀즈)는 호남선교회 책임자로, 평신학교 조직신학교수로 45년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인의 삶에 감동을 주었던 그는 성서 번역위원회의 정회원이었고, 한국의 표준성경사전의 책임 편집인 이었으며, 대요리문답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번역한 번역자였고, 한국 장로교 총회장이었으며, 총회 조직 당시 설교를 하고 사회를 보았던 인물이다.

 

1906년부터 강의를 시작하여 1916년에 들어서면서 정교수 5인을 정하여 완전한 교수진을 구성할 때 이눌서는 이때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1937년 은퇴하기까지 이눌서는 평양신학교 전임교수로 재직했다. 이눌서는 1908년에 신학박사학위(D.D)를 수여받았고, 모교인 햄든-시드니 대학에서는 그의 성경번역작업의 업적을 기리며 1924년에 법학박사(LL. D)를 수여하였다.

 

이러한 이눌서 박사는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할 때 그는 역사적인 전천년설을 주장하여 박형룡 박사도 이눌서 박사와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서철원 박사는 이같은 입장을 거부하여 무천년설 입장이다.

 

호남의 정통보수신학은 선교사들로부터 전수받았으며, 박형룡 박사와 함께했던 그 시대 51인은 나주 남평교회에서 ‘51인 신앙동지회를 조직하여 함께 호남신학과 총회신학을 보수해 왔다. 그 이후 호남의 건출한 신학자인 서철원 박사의 등장으로 신학적인 초석이 든든히 세워져 갔다.

 

서철원 박사에게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제자라는 그런 개념의 제자가 아닌 박사학위 논문으로 조직신학을 전공하여 총신대학교에서 서철원 박사를 지도교수로 하여 조직신학으로 논문을 쓴 고경태 목사(전남노회, 주님의교회)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적인 서철원 박사의 제자는 호남지역에서 고경태 목사는 호남의 정통 개혁신학의 뒤를 이을 것이다.

 

서철원 박사에게서 배웠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 받으려고 한다면 설교가 복음에서 이탈하면 안된다. 어쩌면 서철원 박사의 조직신학이 서철원 박사의 제자들이라고 주장한 자들을 정죄할 수도 있다는 점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규오 목사:19731029일 박형룡 박사 교의신학 전집 출간기념예배 설교

 

정통주의 교의신학의 사명(디모데서 3:12-17)

 

오늘 박형룡 박사님의 필생의 역작이신 교의신학 전질을 출간하고 이 출간을 축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저 하는 이 모임이 불충불의하고 감히 머리를 들 수 없는 벌레 같은 이 죄인이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시간 잠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하는 제목은 정통주의 교의신학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저 한다.

 

1. 정통주의 교의신학의 사명은 교회부흥의 사명이다.

 

나는 지난 704월 일본의 신호루터신학교에 초청을 받아 l개월 동안 체재하며 강의를 하면서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발전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에 대답하기를 한국교회의 발전이라 하지만 장로교회를 제외한 다른 교회는 그렇게 경이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가 없으며 우리 장로교가 뛰어난 발전을 했는데 그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한국을 찾아온 장로교 초대선교사들이 정통신학에 입각하여 순수한 복음의 씨앗을 한국인의 마음 밭에 뿌렸기 때문에 한국교회 아니 한국장로교회는 세계에 그 유래를 볼 수 없이 발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한국장로교는 주로 신학사상의 문제로 몇 갈래로 분파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같은 장로교이면서도 부흥하는 교회, 발전하는 교회, 독립하는 교회, 은혜 있는 교회가 어느 교회이냐 할 때에 정통신학에 입각한 우리교회들이 전국 각지에서 부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까닭에 부흥하는 교회, 은혜 있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정통신학의 교의신학에 확고해야 한다.

 

2. 정통교의신학의 사명은 성경의 절대무오를 확신하는 데 그 사명이 있다.


나는 왜정 때 젊은 시절을 금융계에서 보낸 일이 있다. 그때에 내가 모시고 있는 김순배 목사님을 통해서 박 박사님의 저술인신학난제선평을 사서 보았다. 그때 내 나이 22세였다. 나는신학난제선평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죄송한 말씀 같으나 아마 저자이신 박 박사님보다 제가신학난제선평에 한해서 더 잘 알런지도 모른다.

 

해방 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서울에 올라와서 입학한다고 한 것이 조선신학교였다. 그 당시 김재준 목사에게서 구약개론을 배우면서 고등비평을 배웠고, 송창근 박사에게서 신약개론을 배웠다. 이때에 나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된신학난제선평은 나에게 힘이 되였고 능력이 되었고 좌우에 날선 검이 되여 그들의 그릇된 성경관을 반박했다. 조선신학교 51인 학생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은 박 박사님이시요, 우리는 박 박사님의 하수인들에 불과했다.

 

박 박사님의 교의신학 제1권 제l장 첫 서문에정통적인 신학사상에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 및 주권과 그 자신의 무오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확인함이다. 바른 교의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의 질서 있는 논술을 제출하기를 추구한다고 했다.

 

우리는 올바른 성경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절대 무오함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체계화되어 있는 조직적인 기독교 진리를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정통적인 교의신학의 사명인 것이다.

 

3. 교의신학의 셋째 사명은 하나님을 향한 영광과 주권에 있다.


정통적인 개혁주의 교의신학은인간의 구원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보다 근본적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예속시킨다.” 사람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학인 것이다. 어찌하여 인간의 구원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예속되느냐 할 때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인간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절대자시요, 인간은 부족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피조 되었기 까닭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사상이요, 교훈이요, 진리이다. 이 진리, 이 사상은 바울 사도, 어거스틴, 칼빈에 이르러 체계화, 신학화 되었고 하지, 워필드, 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메이첸 박사 등을 거쳐서 우리 박 박사님께 이르렀고 우리 모두 그의 문화생들이다. 이제 박 박사님의 천신만고, 필생의 역작대작 노력으로서 정통적인 개혁주의 교의신학의 완간을 보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하나님께 영광이요, 조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은혜와 축복이 아니되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우리 조국 장로교회는 성경적이요, 전통적인 보수신학을 지키고 발전하고 나아가는가? 지금의 우리 신학교는 박 박사님의 가르치신 보수적이요, 정통적인 칼빈주의 신학을 지키고 나아가는가 할 때에 한줄기의 불안이 없을 수 없다. 지교회의 부흥과 그 발전은 그 지교회 담임하고 있는 목사에 달려있고 유능한 주의 종을 배출하는 것은 주의 종을 양성하는 선지학교에 있다.

 

한 교단의 신학적 태도와 신앙수준은 그 교단에서 경영하는 신학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교단의 흥망성쇠는 우리 총회가 경영하는 선지학교에 있다. 우리 총회가 경영하는 선지학교는 과연 정통신학이요, 칼빈주의 신학을 견지하고 있는가? 우리 총회신학교는 과연 신앙생활면에서 한국교회의 본이 되는 진실과 성실이 있는가 생각할 때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첫째, 1948년 조선신학교 문제가 생기고 기장이 갈라져 나갈 때 많은 교인과 교역자들은 지방싸움, 교권싸움이지 신학적 문제 신앙문제는 아니라고 떠들었다. 20년이 경과한 오늘 조선신학이 신신학 자유주의신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다.

 

둘째, 1960년대 통합 총회측이 분리해나갈 때 지방싸움, 교권싸움이라 연막전술을 쓰면서 에큐메니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결코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한국교회 교역자 성도들을 미로에서 방황케 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