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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어거스틴 이전의 기독교 역사에서 칭의 교리의 소외에 관한 연구 3
박영실(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기사입력: 2018/06/13 [14:5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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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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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박영실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어거스틴 이전의 신학적 조류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 어거스틴 이전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나는 칭의 교리의 소외에 대하여 연구하여 제시한다.

3.4 라틴교부(Latin Father)

서방에서는 특별히 펠라기안 논쟁을 거치면서 비관적인 인간의 이해가 더욱 고착화되었다. 인간의 도덕적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일 수 있는 인간의 원죄와 부패에 관한 주장은 라틴 교부들에게서 나타난다.

인간과 인간 구원이라는 주제는 3세기에 이르러 동서방 교회 간에 분명한 간극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방신학의 선구자 터툴리안(Tertullian. 155?∼240?년)은 비관적인 인간타락에 대한 이해를 표명하였다. 먼저 동방교부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자유의지에 관한 그의 견해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그는 마르시온(Marcion of Sinope. 85?∼160?년)에 반대하여 분명하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변호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피조되었다. 바로 그런 실존적 조건의 인간에서만이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되어 있다. 터툴리안의 시대에 분명히 영지주의적 경향을 보인 말시온주의가 만연되었고, 또 그 말시온주의는 결정론적 운명론을 조장했을터이니, 터툴리안이 인간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이해가 된다. 서방에서는 터툴리안의 등장과 더불어 처음으로 구원론이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서방 신학에서의 구원론의 출발점은 바로 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은 왜 선보다 악을 행하는가? 터툴리안은 바로 원죄의 교리를 가지고 인간의 이 경향성을 설명해 가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세상을 타락시킨 자인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여 행동하도록 부추긴다. 그런 인간은 이제 죽을 운명이 되었고, 또 그 인간은 그런 자신의 유산으로 온 인류에게 부패와 저주를 심게 되었다. 하지만 터툴리안의 원죄교리에는 아담과의 연대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직 불충분 교리였다. 거기에서는 그런 결핍성이 어린 아이에게는 현실태라기 보다는 가능태의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인류의 아담과의 연대성이 이후에는 동방보다 서방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년)의 아담과의 연대성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 아담은 우리 모두 안에 있었고, 그 첫 사람 아담의 죄의 본성적 유산이 우리 모두에게 전가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모든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라틴 교부들의 죄의 연대성(solidarity) 이해도 아직 충분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라틴 교부들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것은 그의 죄과 자체가 아니라 죄의 경향성이라고 믿었다. 앞에서 나온 암브로시우스가 그렇게 생각했고, 최초 바울 서신들의 주석가로 간주되는 암브로시에스터(Ambrosiaster)의 설명이 그런 것이었다. 양자는 최후에 심판받는 것은 아담의 죄과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그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들 모두 최후 심판시에 처벌받는 것은 아담의 죄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죄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서방에서의 공로신학 부상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터툴리안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채무는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 준다(reddens unicuique quod suum est)는 고전적인 틀 안에서 인간의 선행으로 충족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도덕주의가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리베룸 아비트리움(liberum arbitrium. 자유의지)을 비롯된 여러 라틴어 신학용어들의 서방에서의 정착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터툴리안은 공로신학의 핵심 용어일 수 있는 “공로(meritum)”나 “만족(satisfactio)” 같은 용어를 사용한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암브로시에스터도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공로를 쌓을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대로 터툴리안의 공로신학적인 견해에 근접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요약하자면 라틴 신학에 등장하는 원죄의 개념과 아담과 연대성의 이론은 바울의 칭의론의 핵심 개념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개념들이 충분히 발전되지 못하였다. 일테면 아담과의 연대성의 이론은 죄의 경향성은 유전되지만 아담의 죄과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바울의 칭의론적 강조점과는 아직 괴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선행이나 공로, 자유의지의 강조들은 바울의 칭의론과 크게 배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헬라교부의 구원론적 이해가 바울적으로 수정이 되기 위해서는 신학적 천재라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을 기다려야 했다.

4.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

4세기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죄과 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흐름들이 있었다. 이 두 견해와의 사이의 충돌이 5세기에 펠라기안 논쟁(Pelagian Controversy)으로 비화되었다. “당신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라는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년)의 기도는 펠라기안들을 자극했다.

펠라기안 논쟁의 핵심에는 원죄에 관한 교리가 있다. 펠라기안들은 전통적인 원죄를 부인한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범죄는 오로지 아담 자신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서 보여 지듯이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왔다고 저들은 주장하였다. 이런 견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매우 낙관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 반하여 어거스틴은 전통적인 원죄 교리를 수용한다. 사실 어거스틴 이전에도 라틴 신학에서는 원죄 교리가 라틴 신학의 뿌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심플리키아누스에 대한 질문』(Quaestiones ad Simplicianum. 396-7)에서 펠라기안들을 반박하면서 아담의 죄는 그 후손에게 전해져서 인류는 “정죄받은 덩어리(massa damnata)”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의 초기 주해자로 인식되는 암브로시에스터(Ambrosiaster)가 로마서 5장 12절: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라는 구절을 오독한 결과 사도바울의 언급 “그 안을” “아담 안에서”라고 해석한 것을 그는 아담의 대표원리의 근거로 받아들인다. 이후 어거스틴의 원죄 교리는 히포의 주교로서 이른바 3대 논쟁들, 마니교,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 논쟁을 해 가면서 자신의 죄론과 은총론을 더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펠라기안 논쟁의 또 하나의 주요 쟁점은 자유의지의 교리이다. 근엄한 영국수도사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년) 역시 384년부터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매우 낙관적인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면서 인간 본성의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을 매우 축소시키고자 하였다. 펠라기우스, 켈레스티우스(Caelestius), 그리고 에클라눔 줄리안(Julian of Eclanum)으로 이어지는 펠라기안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조건으로 옹호하고자 했다. 펠라기안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이 복음처럼 소중했고 사실상 행위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가장 유능한 펠라기안이었던 줄리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만으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는 펠라기우스의 『의지의 자유 변증』(Defense of the Freedom of the Will)에 잘 나타나 있다.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양방향 즉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다. 그 방향은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 의지의 향방에 따라 다양하게 산출될 수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사실 우리에게 의지의 자유가 있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의지를 죄짓는 고착화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은혜에 의해서 자연이 고쳐질 수 있다고 본다.” 오로지 인간에게는 은혜만이 선행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에게는 인간의 것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이 없다는 주장이 분명하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 인간의 의지가 죄짓는 데 편향되어 있다는 그의 설명은 매우 바울적인 이해인 것이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원죄와 그 원죄의 유전, 아담과의 대표성 강조 등을 다 포함시켜서 사실상 자신의 칭의론을 바울의 그것과 일치시키게 되는 시점은 그가 펠라기안 논쟁을 거치고 난 이후였다. 죄와 은혜라는 바울의 칭의적 도식이 교회의 역사에서 특히 서방 교회의 역사에서 원래의 충분한 형태로 복원된 것을 은총의 교사 어거스틴에 이르러서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어거스틴이 자신의 15권에 이르는 펠라기안 논박 작품들 여러 곳에서 바울의 서신들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데서도 확인된다고 하겠다.

요약하자면, 어거스틴의 신학적 전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펠라기안들은 사실상 인간의 자력 행위 구원을 지지하면서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의존성을 극소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거스틴에게는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치명적인 오류였던 것이다.

5. 나가는 말

본 연구의 논제인 “어거스틴 이전 시대에서의 칭의론의 소외에 관한 연구”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가온다는 시사성을 고려해서 정한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업의 출구는 일반적으로 바울의 칭의론적 설교에서 찾았고, 또한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정경되게 하는 기준(Principium Canonicitatis)”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바울 이후 3세기 반 동안 즉 어거스틴 등장까지는 바울의 칭의론이 소외되었던 점에 주목하여 그 역사적 사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의 결과를 정리해 보면서 본 논문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첫째로, 개신교 구원론의 갱신은 칭의론의 회복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루터 자신이 칭의를 교회의 존폐를 결정하는 믿음의 조항으로 여겼던 데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 칭의론의 원전은 사도바울의 통찰력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루터 자신의 칭의 체험이 보여주듯이, 칭의론의 태동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같은 바울의 목회 서신서 연구와 더불어 이뤄졌으며 그 칭의론의 성격도 바울의 목회 서신서의 연구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규정되어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바울 이후 어거스틴에게 이르기까지 3세기 반 동안은 바울의 통찰력이 소외되어 온 것은 사실이었다. “이것은 어거스틴 이전의 신학적 조류”를 고찰해 보면서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적 교부들, 변증가들, 그리고 헬라교부들에게서는 윤리적 권고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라틴 교부들에게 오면 원죄의 교리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도 바울의 칭의적 개념들이 온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바울의 통찰력의 소외는 결정론적 운명론의 부상 때문이었다. 이런 운명론을 조장했던 영지주의와 그 영지적 성격이 두드러진 마니교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학 사상의 형성기인 1∼3세기에 아직 어린 교회를 가장 괴롭히는 세력이 바로 영지주의요, 유사 영지주의인 마니교였던 것이다.

다섯째, 이런 운명론적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영지주의의 경향성에서 기인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지주의는 어떤 단일 사상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사상들이 혼재된 것이다. 그것은 혼합주의 양상을 띠고 다양한 분파로 나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던 것이다. 영지주의 사상의 이런 경향성은 3세기 중반 이후로는 역시 영지주의적 속성을 지닌 마니교에 의해서 이어졌던 것이다.

여섯째, 이런 바울의 칭의적 통찰은 신학적 천재 어거스틴에 이르러서야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인간에 대한 펠라기안들의 낙관적 견해에 반(反)하여 비관적 견해를 주장한 것이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언급된 바울의 칭의론은 역사신학에서 350년 동안 소외되었다가 어거스틴에게서 회복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본 연구를 통하여 지금 한국 교회가 취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가? 한국 교회의 침체 분위기 속에서 윤리성을 회복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놓치지 말아야할 본질은 윤리적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이다. 인간의 회복, 교회의 회복, 사회의 회복은 인간의 의로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바로 고대교회가 그 시대적 상황이었던 결정론적 운명론이 무서워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흐려놓았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죄인인 인간 행위의 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의 의(롬 1:17)에 기초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구원론의 갱신을 명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의 500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국교회, 그 어느 때보다 침체되어 있는 한국교회가 지금 들어야 할 메시지일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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