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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이승희 목사(부총회장), 캄보디아 국왕 공로훈장 받아
캄보디아 선교를 위한 수련회 및 사랑의쌀 나누기 행사 가져
기사입력: 2018/05/26 [22:41]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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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반야월교회   ©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부총회장인 이승희 목사는 지난 521-24. 34일 동안 캄보디아 선교사들의 영성수련과 현지 교회 전도 및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가졌으며, 국왕으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고 돌아왔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개최된 캄선교사협의회주최로 열린 한국선교사들과 캄보디아 선교사들을 위한 영성수련회를 인도했다. 그리고 현지 교회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인도하기도 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인 선교사 30여 가정과 캄보디아 현지 목회자 40 여 가정을 비롯하여 함께 방문한 방문단 등 총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승불교가 95%를 차지하고 있는 현지에 복음의 씨앗을 심는 데 초석을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 사진 제공 반야월교회     © 리폼드뉴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아시아 대륙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프놈펜이다. 크메르족이 90%와 베트남인 5% 나머지는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는 크메르어이며 종교는 소승불교가 95%이다. 인구는 1천 500만 명(2016년)이다.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 및 여러 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수도인 프놈펜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은 12세기에 왕조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이 시기는 앙코르와트, 바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톰으로 알려진 거대한 사원 건축물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400년에 걸친 쇠퇴기 후에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고,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1975~79년 나라는 농촌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황폐화되었다. 크메르루즈 집권기 동안 최소한 150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이 피살되었거나 사망되기도 했다.

 

▲     © 리폼드뉴스

1990년대 이 나라는 정치적 자치를 회복했고 헌법에 기초한 정부를 재수립했다. 이어서 보통선거를 시행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1990년 기독교가 공식 예배 허가를 받게 되면서 15년 동안의 절망기를 거쳐서 정부로부터 기독교의 존재를 다시 인식 받았다. 그 이후 기독교는 매년 200-300% 성장을 해왔고, 교회 개척과 기독교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불교는 1989년 이미 다시 국교로 천명되었고, 그 세력을 확장해 왔다. 폴폿 괴뢰정부 때에 불교도 예외 없이 약25,000명의 승려(Monks)가 살해당했고, 많은 절이 파괴되었다. 현재 다시 5,000(혹은 7,000) 가까운 절이 복구되었고, 엄청난 속도로 절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  이승희 목사가 사랑의쌀을 전달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이런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위해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이승희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대구 반야월교회가 준비한 쌀 20,000kg 을 현지인 1,000여명에게 나누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지역민 섬김 전도행사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반야월교회 당회원들고 함께 참여했다.

 

이날 쌀 나누기 행사에는 현지 도지사를 비롯해 정부관계자, 군 지도부, 경찰관계자 등이 대거 참여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이 행사에서 이승희 목사는 캄보디아 왕실로 부터 감사의 뜻으로 공로 훈장을 수상했다.

 

캄보디아 국왕이 수여하는 이 훈장은 국가에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이번 이승희 목사가 받은 공로 훈장도 이에 속한다. 기독교 복음전도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러한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는 기독교 복음 전도와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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