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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경기북노회 제51회 정기회, 노회 분립 청원키로
경기노회부터 분립 후 26년 만에 다시 노회분립 청원을 헌의키로
기사입력: 2018/04/15 [19:5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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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북노회 제51회기 임원과 구 임원   © 리폼드뉴스

경기북노회는 제51회기 정기회를 410일 양주시 소재 두언교회에서 열고 신임 노회장에 송교익 목사(두언교회)를 선출했다. 그리고 제103회 총회에 이미 임시노회에서 결의한 경기노회부터 분립 후 26년 만에 다시 노회분립 청원을 헌의키로 했다.

 

또한 상회비와 의무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은 교회의 서류를 규칙대로 보류하고, 추후 납부하면 임원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두언교회 당회장 송교익 목사가 청원한 이충원목사(성은교회)4명의 송교익 목사 명예훼손에 대한 사법 고소 건(의정부지방검찰에서 혐의 없음으로 판정되었고 고등검찰에서 항고 각하된 사건)은 고소자 이충원 목사와 진술서를 쓴 정남훈 목사(가능중앙), 권혁주 목사(포천제일), 김경호 목사(철원은혜), 김종환 목사(노곡제일)에 대한 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재판권을 제외한 전권을 주어 처리키로 했다.

 

조사처리위원은 배종근, 김용갑, 송정의, 최형화 목사, 박기화, 홍정덕, 홍원종 장로 등을 특별위원으로 선임했다.

 

교단 헌법 개정안에 대한 수의에서 일부 개정을 확정했다. 새로 구성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 송교익 목사(두언교회), 부노회장 최달순 목사, 박효서 장로, 서기 양상숙 목사, 부서기 최형화 목사, 회록서기 송정의 목사, 부회록서기 김광균 목사, 회계 정윤구 장로, 부회계 홍원종 장로.

 

경기북노회가 금번 제103회 총회에 분립을 청원할 경우, 104회 총회에서 분립이 확정되므로 경기북노회 모든 지교회의 법률행위는 경기북노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경기북노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77회 총회(1992.9.22) 때 경기노회에서 분립하여 탄생된 노회이다. 이듬해인 1993426일 오후 6시에 의정부성암교회에서 고인인 최승강 목사의 사회로 분립예배를 드림으로 정식으로 출범됐다. 분립당시 노회 이름은 북경기노회였다.

 

분립예배에 이어 동일 장소에서 첫 노회가 개회되었다. 첫 노회 장면을 회의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분립위원회 서기 최승강 목사의 사회로 회무가 시작되어 제77회 총회에서 은혜스럽게 분립이 허락되었음을 설명하고 사회자가 기도하다. 사회자가 회원을 호명하니 목사회원 41, 장로총대 31, 합계 72명이 출석하여 성수가 되므로 개회를 선언하다
 

분립위원회 서기 최승강 목사가 신임 회장 김장환 목사에게 고퇴와 성경과 헌법책을 주고 신임회장 김장환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신임임원들의 임원취임인사가 있고 김인환 장로의 성암교회 휘장 감사패 증정 제의가 결의되고 지시위원 이영섭 목사, 흠석 사찰위원 윤두태 목사를 회장이 자벽하고 박인영 목사의 규칙수정보고가 있었다."

 

경기북노회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경기노회에서 분립된 노회이다. 경기노회의 역사적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노회라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장로와 조사가 선교사들과 함께한 공의회 시대에 경성소회(小會)(1901-1906)가 독노회 시대(1907-1911)에는 경충대리회가 되고 이 경충대리회가 총회시대의 개막인 1912년에는 경기충청노회로 발전한다.

 

1924년에 이르러서야 그 경기충청노회가 경기노회와 충청노회로 분립되어 경기노회 시대가 도래되어 그 뿌리에서 경기북노회가 탄생되었다. 1995년 제80회 총회에서 북경기노회에서 경기북노회로 노회 명칭이 변경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