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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고난주간) 고난당하신 예수님
사 53:4 "우리의 질고를 지신 예수님"
기사입력: 2018/03/24 [18:0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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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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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고난당하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실 메시야는 세상의 왕들이 누리는 영광과 명예와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철저하게 버림당하시고 고난당하시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실 분입니다. 이러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작 오셨을 때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 고난받으실 하나님의 종 메시야(1-3)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합니다(2). 연한 순이라는 것은 어린 나무라는 의미입니다. 즉 새싹과 같이 연약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메시야는 정치적 통치자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고운 모양이나 풍채는 예수님의 외적 모습들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런 매력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으로 화려한 황제나 군주로 등장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으로 오실 것입니다(2). 또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도 그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3).

멸시, 버림, 간고, 질고 등등은 모두 메시야께서 당하시는 고난을 달리 표현하는 용어들입니다. 즉 오실 메시야는 영광과 존귀와 사람들의 환대를 받기 보다는 멸시와 버림과 여러 고난을 당하게 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 간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문에 복수형(마크오보트)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통들, 슬픔들, 괴로움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2. 우리의 질고를 지신 예수님(4a)

메시야께서는 질고와 슬픔을 다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당하신 질고와 슬픔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4a).

원문은 아켄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확실히, 진실로, 정확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성경은 “실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오실 메시야는 확실히,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당하신 온갖 수모와 질고와 슬픔은 그분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 26:37-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얼마나 고민하고 슬퍼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고민과 슬픔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잘못과 예수님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3. 우리의 착각(4b)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착각을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착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b).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했다고 모함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마 26:65).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막 14:64).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지했다고 고발했습니다.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죄를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눅 23:2).

이러한 죄목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는다고 착각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이미 이렇게 오해를 받아 죽으실 것을 700년 전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으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복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죄악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결론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범하고 있는 온갖 죄악을 회개합시다. 교회와 우리 민족이 범하는 수많은 죄악들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합시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