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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복음 전파의 당위성
고전 9:16
기사입력: 2018/03/10 [17:4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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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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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강력하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처럼 사도의 권리를 이용해 생활을 할 수 있으나 바울은 그것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입니다(12).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한 다음에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15).

이것은 바울의 겸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과 같이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하고 살아갑니까?

1.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16a)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16a).

여기 “복음을 전할지라도”(유앙겔리조마이)라는 단어는 원문에 현재가정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내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부르시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 11:13).

그러므로 바울은 지금까지 그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대단히 강조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있지 않다’(우크 에스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솔직한 심정을 보여줍니다.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하고 뽐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고 그것을 높이 자랑합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에게 박수 받고 영광 얻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말하는 전도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은 늘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신자의 전도는 당연한 것입니다.

2. 부득불 할 일이다(16b)

바울은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16b).

원문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르)로 시작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왜냐하면 내가 부득불 할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원래 부득불(아낭케)로 번역된 단어는 강제, 법적 의무, 필요성 등의 의미입니다. 즉 반드시 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을 만나주시고 회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헛된 구원을 찾던 바울에게 참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더구나 그에게 큰 사명, 사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입고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구원의 조건, 영광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3.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다(16c)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16c).

원문에는 이 구절도 역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르)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화라는 것은 저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화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그럼에도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할 때 교회의 힘은 약해지고 악한 세력이 교회를 삼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하고 복음을 자랑스러워할 때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 믿음과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