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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이머징 설교에 대한 비평과 개혁주의적 대안에 관한 연구 2
김경덕 · 김창훈(총신대학교, 설교학)
기사입력: 2018/01/31 [09:4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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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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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경덕, 김창훈 교수가 공저하여 개혁신학회에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들은 현대 교회에서 유행중인 이머징 설교에 대한 비평과 개혁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4 이머징 설교의 비평적 평가

4.1 탈신학적 경향

오클랜드는 이머징 교회가 통합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의 변화를 추구하려 시도하고 있고, 전혀 새로운 종류의 믿음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평한다. 오클랜드는 맥클라렌의 저서인 “관대한 정통 신앙”(A Generous Orthodoxy)을 근거로 이머징 신학이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 사상들조차도 모두 허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클랜드는 이머징 교회의 신학을 ‘상황 신학’(Contextual Theology)이라 말한다. 상황 신학은 신학이나 진리를 재는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경을 빚을 수 있도록 하는 신학을 뜻한다. 이 신학의 주장은 성경을 문화, 인종, 역사 등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조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성경을 상황에 맞추기 위해 진리를 왜곡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불변하기에, 상황화의 대상은 성경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과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오클랜드의 지적과 주장은 타당하다. 오클랜드에 따르면 신학적 경계선이 없는 이머징 교회는 모든 믿음과 신학을 다 포용한다. 이머징 교회는 속죄를 거부한다. 모든 피조물은 이미 구원 받았으며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머징 교회의 영향 속에 많은 사람이 관상과 신비주의적 기도를 시행하면서 체험에 기초한 영성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은 주관적 체험에 기초한 믿음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오클랜드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믿음이나 교리보다 인간의 수고와 행위에 더 많은 비중을 실어주는 개혁은 문제가 있다. 올바른 믿음과 교리에 바른 수고와 행위들이 따라오는 것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4.2 탈모더니즘적 경향

이머징 설교자들은 믿음의 형성 과정에 관하여 모더니즘적 배경과 다르게 인식한다. 존 보해넌(John S. Bohannon)에 따르면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함으로써 믿음이 생성되고 그 믿음이 행동과 삶의 변화로 연결된다는 것이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적 배경에서 출현한 이머징 설교자들은 개인에게 경험된 주관적 진리가 행동으로 연결되고 공동체적 행동이 믿음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객관적 진리가 아닌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이러한 사고의 차이는 설교 방식과 철학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이 세대를 포스트모던 세대로 규정하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다.

카슨에 따르면 탈모더니즘을 주장하는 킴볼을 포함한 이머징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모더니즘적 유산으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해체’를 주장한다. 이들은 교회가 포스트모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멸될 것이라 주장한다. 카슨에 따르면 이러한 흑백논리와 포스트모던에 대한 규정은 과장된 수사와 신학적 탈선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머징 교회가 생각하는 모더니즘은 특정한 인식론적 접근 방법에 얽매여 인식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카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자체가 모더니즘 사상의 한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모더니즘 사상의 다른 한 흐름이 대중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이머징 교회의 기독교 인식은 모더니즘 영향력 아래 있는 기독교는 합리주의적이고 정서적이기 보다 지성적이고 절대론으로 인하여 오만에 빠져있는 것으로 폄하하고 있다. 카슨은 이머징 지도자들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에 대해 경계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상관물들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제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문화 현상에 대하여 특정한 해석적 집단의 관점이 지나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카슨의 비평은 타당하다.

4.3 탈권위적 경향

이머징 교회의 포스트모던에 대한 강조는 탈권위적 경향으로 연결되어 교회의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난다. 패짓은 이머징 교회에서는 목회자로서의 권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에 권위의 근거를 두는 관계 중심적 교회에서 목회자의 위치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패짓은 그의 탈권위적 사고에 근거하여 전통적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목회자의 상에 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우리 교회의 구조에서 우리는 성직자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유급 목회자로서의 지위에서 나오는 어떤 특별한 권리를 누리지 않는다.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은 성도들과 의견에 있어서 동일한 권한을 나누어 가진다”라고 말한다. 김종희에 따르면 칼빈은 성경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교회의 권위는 공동체가 아닌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교회의 영적 권위의 근거를 공동체에 두는 패짓의 사고는 진리의 전달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의 영적 권위를 약화시켰고, 이는 설교의 권위에 대한 필연적 약화를 가져왔다.

4.4 탈성경적 경향

탈신학적이고 탈권위적인 이머징 교회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벗어나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성경을 탐구하고 그 의도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영적 권위로 선포하는 설교의 방식 대신에, 고대와 중세의 영성 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영성 훈련의 방법론들을 무비판적으로 취한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는 본문을 중시하는 강해설교를 성경을 중심으로 한 설교로 정의하며 강해설교는 성경적 설교와 동의어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다루지 않고 주해하지 않는 설교는 본문을 무시하는 비성경적 설교로 분류한다. 이머징 설교의 탈성경적 경향은 본문을 경시하는 이머징 교회의 비성경적 태도를 드러낸다. 오클랜드는 이는 기독교 믿음의 근본을 성경에서 찾는 전통에 대한 도전이라 비평한다. 이러한 이머징 교회의 탈성경적 경향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겨난다는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설교 전통의 근간을 뿌리채 흔든다.

이머징 교회가 성경 중심의 전통적 설교에서 탈 성경적 이머징 설교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하게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머징 교회 내부에서 진행되는 설교에 대한 제 논의는 포스트모던적 함의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교회론, 이머징 교회 운동, 신 해석학, 신 설교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성경 해석, 설교의 목적, 설교자의 위상, 청중에 대한 이해, 설교 방법론 역시 변화되고 있다. 독자 중심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은 텍스트와 의미를 분리 시켰고, 포스트모던 교회론은 성경 해석의 주체를 공동체로 전이시켰으며, 포스트모던 설교관은 설교의 권위를 해체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5 개혁주의적 대안

5.1 강해설교의 철학

청중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머징 설교자들 인간의 영원하고 진정한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로이드 존스(D. Martin Lloyd-Jones, 1899-1981)는 “인간의 진정한 필요와 성경이 전하고 선포하는 구원의 성격을 고려할 때 바로 이부분에 대해 설교하며 선포하는 것, 즉 인간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밝히며 그 유일한 해결책 내지 치료책을 밝히는 것이야 말로 교회의 주된 임무”라고 말한다. 죄로 인해 부패한 인간의 궁극적 필요는 용서와 구원이며 이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경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설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의 완전성과 내적인 연속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설교해야 한다. 성경은 설교의 유일한 주제이며 설교자가 끊임없이 일해야 할 유일한밭이다”라고 한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의 말은 성경 중심적 설교에 대한 적실한 교훈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는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설교자에 대한 여섯 가지 상(像) - ‘통보자’, ‘씨 뿌리는 자’, ‘대사’, ‘청지기 또는 가정관리인’, ‘목사 또는 목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 - 이 설교자가 어떤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 있는 종이며, 다른 사람의 말의 전달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설교자가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진리를 전달하는 존재임을 교훈한다. 이는 철저한 성경 중심적 설교, 즉 강해 설교에 대한 철학적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5.2 주제 설교의 적실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은 설교 형식에 있어 청중들의 삶의 문제들을 다루는 주제 설교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머징 설교 신학에서 확인되듯이 청중의 필요와 요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본문에서 멀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티모시 워렌(Timothy S. Warren)은 설교란 권위를 지닌 성경 본문에 기초해야 하며, 동시에 특정한 청중을 위한 적시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설교자는 본문 중심적인(text-centerd)인 동시에 청중 지향적이어야(audience-focused)한다고 말한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돈 스누키안(Don Snukjian)은 성경적인 주제적 강해설교는 서로 다른 여러 구절에서 파생된 성경적 개념을 병렬로 나열하거나 단계적으로 확증해 가면서 그 주제에 관한 성경적 개념을 전달하는 설교라고 말한다. 스누키안은 많은 설교자들이 이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설교 주제에 맞추어 그 본문에서 성경 저자가 의도했던 것과 다른 주제를 끌어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것이 주제 설교의 약점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렇게 되면 성경 저자의 의도와 다른 주제로 본문을 끌어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말한다. 성경적으로 올바른 주제 설교를 하려면, 설교자는 자신이 택한 주제에 관하여 성경 저자가 진정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 올바로 확인하기 위해 각각의 구절들을 본래의 맥락에서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설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5.3 내러티브 전달 기법의 활용

이머징 설교자들의 목적은 이머징 세대인 청중들의 필요와 관심을 충족시키는 설교에 있다. 때문에 성경의 권위와 명제적 진리 선포를 거부하는 이머징 설교는 그 전달에 있어서 이야기식 방식을 취한다. 명제를 감춘 채 플롯 중심의 내러티브로 이어지는 설교 방식은 청중의 관심과 주의를 끄는 수사학적 효과를 가지나, 여기에는 설교신학적 주의를 요한다.

이야기 중심 설교 전달은 해석학적 약화를 가져올 수 있고 플롯 중심의 전달은 성경 메시지의 명확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 자체이기에, 그 전달 방식과 구조에 있어서 내러티브 방식과 플롯 중심의 구성을 따른다 할지라도 성경 본문 자체의 권위와 설교의 권위가 손상되어서는 안된다. 캘빈 밀러(Calvin Miller)는 청중에 대한 관심은 결코 설교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식 설교는 신 설교학이나 이머징 설교자들이 새롭게 고안해 낸 방식이 아니다. 밀러는 이야기식 설교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던 사람은 최초의 설교학자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라고 말한다.

그레이다누스에 따르면 이야기체 장르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성경의 중심적 메시지와 연관되기 때문이며, 그 메시지를 이야기체 만큼 잘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창훈은 이러한 관점에서 내러티브 강해설교(Narrative-Expository Preaching)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내러티브 본문에서 본문의 플롯을 그대로 드러내고 활용하는 성경적 방식이다.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이야기식 설교는 청중들의 흥미와 긴장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사학적 장치만이 아니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모든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이 타락한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그 내용과 필요성을 밝혀주는 드라마라고 말함으로써 성경의 모든 내러티브의 목적과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 그 이야기가 청중들에게 효과적으로 들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설교학적 의미를 상실한 수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텍스트를 잘 해석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거기에 찾아오게 마련이다.”라고 한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말처럼 가장 효과적인 전달방법이요 가장 강력한 수사는 성경 텍스트가 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6 나가는 말

설교는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영향 아래 등장한 이머징 교회의 설교는 전통적 설교 신학 안에서의 방법론적 변화가 아닌 설교 자체에 대한 근본적 재고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 이머징 교회의 영향력이 아직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으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새롭게 개척되는 교회들의 경우 이머징 교회적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류응렬에 따르면 영혼의 변화를 위한 설교의 목적은 설교자에게 두 가지 사명을 부여한다. 첫째,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해석학적 안목이며 둘째, 시대와 청중을 바르게 이해하는 통찰력이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전하지 못할 때 이는 설교의 기본 목적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적 설교라 할 수 없다고 말한 류응렬의 주장은 타당하다. 장기화되는 침체 속에서 한국 목회 토양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청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설교 신학을 포스트모던에 맞추어 상황화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이머징 설교 신학에 동의하기 어렵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머징 설교의 도전 앞에서 미래 세대를 청중으로 설교해야 할 한국 교회 강단은 그 철학과 형식과 방법론에 있어서 성경중심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동시에 변화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청중의 삶의 필요에 대하여 성경적 해답을 선포하는 성경적 방식을 추구할 때 성령께서 개혁주의 강단의 쇠퇴를 막는 일에 한국 교회를 사용하실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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