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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개혁신학자 최홍석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 2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01/17 [10:0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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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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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웅 교수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총신대에서 수년간 조직신학을 담당한 최홍석 교수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분을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성선설적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서 타락이후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를 직시해야 하고, 오늘 사회의 문제들을 보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2 단일론(Monism)

역사 가운데 양립해 왔던 삼분설과 이분설에 대해 개혁신학적인 관점에서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한 최홍석은 마지막으로 ‘단일론’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 단일론이란 ‘인간 존재를 여러 다양한 요소들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불가분적인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이해’하는 입장을 말한다. 최홍석이 주목하여 소개하는 단일론자들이란 1930년대에 ‘우주 법이념의 철학’(De Wijsbegeerte der Wetsidee)을 주창했던 자유대학교 법학교수 헤르만 도여베이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와 철학부 교수 폴런호번(D. Th. Vollenhoven)을 비롯하여 추종자였던 얀스(A. Janse) 그리고 자유대학교의 교의학 교수였던 베르까워(G. Ch. Berkouwer, 1903-1996) 등이다. 이들도 서구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간의 통일성을 곡해했던 영육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단일론의 입장을 견지했던 이들이라고 그 배경을 밝힌다.

단일론에 대한 논의를 읽어보면, 사실 어느 부분보다 최홍석의 논구 자세는 신중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앞서 소개한 단일론자들이 개혁주의 진영에 속한 이들이지만, 그들의 사상 가운데는 어떤 면에서는 문제가 될 소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홍석의 제안처럼 ‘앞으로의 발전적인 논의를 위하여’ 우리는 그가 ‘이원론’(dualism)과 ‘이원성’(duality)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세철학자 데까르뜨의 영육이원론을 비롯한 실체적 이원론에 의하면 몸과 영혼 양 요소는 대립과 긴장 관계속에 있지만, 이원성이란 ‘우주적 실체 속에 비록 두 요소 혹은 두 계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대립하거나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홍석은 인간의 구조적 본성을 규명하려는 개혁주의적 입장이란 이원론은 극복하되 ‘이원성과 함께 구조적 본성에 있어서 통일성을 드러내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면과 비물질적인 면의 양면성’(구조적 이중성)과 ‘인격의 단일성’을 동시에 취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소개한 단일론자들의 경우는 어떠하였을까? 최홍석은 단일론자들이 ‘인간 존재를 여러 다양한 요소들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불가분적인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성경은 창조시나, 타락의 구조 속에서나, 혹은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을 전인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론자들이 이처럼 전인을 강조하는 점이 성경적이긴 한데,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소위 ‘중간기 상태’(status intermedicus)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만약에 전인으로 살다가, 전인으로 죽는 것이라면, 죽음과 부활사이에 인간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여베이르트가 인간의 이원성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중간기상태에서 인간의 영혼은 수면인지, 멸절인지, 아니면 분명한 의식 상태에 깨어 있는지에 대해서 분명한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는데 있다. 매우 치밀한 논구 과정을 거친 후에 최홍석은 “중간기 상태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해 도여베이르트는 여전히 불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최선의 결론’이라고 밝힌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최홍석은 역사가운데 등장했던 이분설, 삼분설, 단일론 세 입장에 대해 평가하고 나서 그가 보기에 가장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입장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로 나아간다. 이미 앞선 논의 속에서 여러 차례 확인되었듯이, 최홍석은 영육 이원론을 반대하고, ‘영과 육의 유기적 통일체’라고 하는 입장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죄와 죽음’ (9장)을 논의하는 중 뇌사라는 실제적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그가 견지하는 개혁주의 인간론의 독특한 성격을 잊지 않고 적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영-육의 유기적 통일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을 둘 이나 그 이상의 부분들이 집적(集積)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본질적으로 단일한 존재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의 경우, 인격의 단일성과 구조적 이중성을 동시에 견지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죽음은 이와 같은 인간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 이후 중간기 상태에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최홍석은 절대적 단일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를 표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상술해 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죽음의 문턱을 들어서는 순간 멸절하거나, 영혼수면에 빠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헬라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영혼불멸에 이르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최홍석은 ‘본래적인 불멸성’을 가지신 하나님과는 차별적으로 우리 인간은 ‘부여된 불멸성’을 소유한다는 점을 긍정하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장래에 관해 성경이 보여 주는 교훈은 단순한 영혼이 불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몸의 부활입니다.”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천명한다. 최홍석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자신의 신학 원칙에 따라, 이 부분에서도 죽음 이후 지속되는 인간 존재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살펴본다.
 
성경은 분명히 프쉬케(psyche)나 프뉴마(pneuma)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마 10:28; 계 6:9). 최홍석은 육신의 죽음으로 영과 육의 분리 현상이 일어나며, 사후 중간상태에서 인간은 영 혹은 혼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육의 분리 현상은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죽음’이 올 때에 일어나는 것이며, 그러한 분리는 ‘잠정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힌다. 중간기가 가지는 잠정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에 적용하여 최홍석은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특이한 표현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조건적’(conditional)이라는 형용사를 부가함으로 그가 의도하는 것은 ‘절대적 단일론이 갖는 근본적인 오류와 약점’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밝히기도 한다.

최홍석은 자신이 제시하는 입장이 이미 바빙크에게서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바빙크는 인간론을 개진함에 있어서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석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과 몸의 관계에 대해서 해설하는 중에 이 문제를 언급했다고 본다. 이 문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빙크의 글을 인용해 본다.

“인간의 몸도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다. 계시를 알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철학은 항상 경험론이나 이성주의로 떨어지거나, 유물주의나 유심론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성경은 양자를 중재한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나, 그 영혼은 심리적으로 조직되어 본질상 육체에 거하도록 되어 있다.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것도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육체는 감옥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예술품이다. 또한 영혼과 같이 선하고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 영혼과 육체가 결속된 것은 불가사이한 것이지만 그것은 기회론이나 예설조화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다. 이 연합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고 물리적인 것이다(zij is niet ethisch, maar physisch). 너무나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본성, 하나의 인격을 이루며, 영육의 주체도 하나의 자아이다.”

최홍석은 이상의 바빙크의 진술 속에서 바빙크의 입장이 ‘유기적인 영-육 통일체의 인간’이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바빙크가 중간상태론에 있어서 개혁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견해를 종합하면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최홍석이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이라고 생각한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은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관’인데, 우리는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강조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통일체라는 것은 ‘인간의 인격의 단일성’을 가리키며, 이것과 더불어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구조적 이원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인격의 단일성’과 ‘구조적 이원성’을 동시에 견지하는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최홍석은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한국교회에 만연한 ‘영육 이원론’적 경향을 극복하고, ‘전인성에 대한 강조와 기독교 문화 창달에 대한 사명 고취’로 나아가야 할 것을 제언한다. 『인간론』전편에 나타나는 바이지만, 최홍석의 관심은 ‘교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데 관심이 그치지 아니하고, 늘 ‘신앙 윤리적 교훈’을 찾고자 추구했다.

4 나가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최홍석의 논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등장했던 이분설과 삼분설을 함께 소개하면서, 두 가지 학설의 배경에 놓여있는 그리스적 이원론을 드러내고 비성경적인 것으로 배척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도여베이르트를 비롯한 화란개혁주의자들이 주창한 단일론을 호의적으로 대하되 ‘절대적 단일론’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는 것도 살펴보았다.

성경적이고, 신학사적인 긴 논의를 진행한 후에 최홍석은 자신이 취하는 입장을 ‘유기적인 영-육 통일체’ 혹은 ‘조건적 영육 통일체’라고 공표하는 것도 보았다. 그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은 ‘인격의 단일성과 구조적 이원성’(영과 육)이 동시에 견지되도록 이해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성경적인 입장에 서야 한국교회에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그리스적인 영육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으며, ‘전인성에 대한 강조와 기독교 문화 창달에 대한 사명’을 고취시키는데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최홍석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을 살펴보면서, 그가 얼마나 성경본문에 굳게 터를 잡고, 개혁신학 전통에 따라 논의를 전개하고 답을 제시하려고 하는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에 기초하고, ‘성경의 유비’(analolgia Scripturae) 원칙을 중시하였으며, 칼빈, 바빙크, A. 호너흐, G. C. 베르까워, 안토니 후크마, 죽산 박형룡 등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에 충실하였다는 것을 이러한 논의에서도 다시금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그가 그루덤, 에릭슨, H. D. 맥도널드 등 복음주의 전통의 학자들의 논의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전통주의자가 아니라 성경 본문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신학적 발전도 도모했다고 말할 여지도 있음을 확인했다.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통일체’로 보되 구성에 있어서 이분법적(dichotomic)으로 보았던 벌코프나 죽산의 견해를 후크마나 베르까워의 견해에 힘입어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최홍석의 입장이 그러한 예라고 사료되어진다. 물론 최홍석은 절대적 단일론의 위험성을 잘 인식했고 경계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세웠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을 존중하되, 성경에 근거한 심도있는 신학적 숙고를 통해 신학적 논의들을 진전시키려고 한 그의 자세는 후학들에게 좋은 모범이라고 사료된다.

최홍석의 신학적 논의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정통’(orthodoxy)과 ‘정행’(orthopraxis)이 함께 가야 한다는 실천지향적 관심사이다. 그의 강조점은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바른 진리 인식 혹은 정통 교리에 대한 지식에 근거하여 바른 실천에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최홍석은 인간의 구조적 본성을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우 영육 이원론의 폐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하고 비판을 했고, ‘조건적 영육 통일체’로 이해할 때에 전인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전인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말해 주었다. 또한 전인적 구원과 총체적 구원관에 근거할 때에 영혼 구원만을 지향하지 아니하고 전인격적인 변화와 문화변혁에의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실천적 함의들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화란개혁주의의 전통에 터한 생각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국교회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서구적이든 동양적인 기원을 가진 영육 이원론과 성속이원론에 근거한 인간 구조적 본성론에 빠져 이런 실천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실패해 왔기 때문에, 어쩌면 오래되고 뻔한 내용일지 모르나 최홍석의 논의들은 그러한 잘못을 시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에 대한 최홍석의 입장을 평가하는 일을 마치면서 우리 후배들에게 남겨놓은 과제라고 생각되는 점을 한 가지 지적하고 마치고자 한다. 그는 신학적인 논의를 함에 있어서 성경 본문을 주해적으로 성실하게 살피고, 개혁신학의 주류적인 전통을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고, 때로는 자신의 전통이 아닌 철학이나 현대신학의 전통에도 때때로 주의를 기울이되 비판적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다양한 현대 신학자들의 주류적인 인간론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충분히 고려하되 역사적 개혁주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구약과 신약학자들의 인간론적인 논의들과 현대 심리학을 비롯한 관련 학문 분야의 연구물들과도 풍성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이것은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보완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관심있는 학자들간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인간론 연구서들을 한 학자가 다 커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개혁신학은 오직 성경으로의 원칙위에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다”고 한 칼빈의 확신에 근거하여 관련된 학제간의 대화나 연구의 진작을 추구해야 한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