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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롬 12:1-2
기사입력: 2018/01/13 [20:4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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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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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는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것도 아닙니다.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나 조건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구원을 감사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모습입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1)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권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

바울은 먼저 로마교회 성도를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형제(아델포스)는 혈통적으로 한 부모 혹은 동일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인 로마교인들에게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혈통, 언어, 인종,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기 몸(소마)은 단지 육체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격 전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J. Calvin). 즉 성도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물이라는 말은 인신제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제사 개념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몸은 인격 전체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산 제물은 중생한 성도의 몸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중생한 성도 자신을 말합니다.

특히 여기에 쓰인 ‘영적인’(로기코스)이라는 말은 ‘신령한, 영에 속한’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합리적인, 논리적인, 이성적인’등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하여 합당한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2a)

바울은 계속해서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a).

원문에는 그리고(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라는 말씀을 주고 나서 두 번째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세대는 본받지 말아야 하는 세대입니다. 즉 당시 로마의 시대상황, 시대정신을 말합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상황, 시대정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모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1절의 몸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즉 인간의 전인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말은 단지 외모만 바꾸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들고 다니고, 십자가 목걸이, 귀걸이를 하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적 성숙, 즉 성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변화를 받아”(메타모르포우스데)는 현재명령입니다. 계속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변화를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성화는 이 세상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엡 4:22-24).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2b)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b).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선 자체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윤리적 기준입니다. 세상의 성인군자가 기준이 아닙니다. 세상의 윤리, 가치가 기준이 아닙니다. 선 자체이신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세상에 실현될 때에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함은 성도가 추구할 윤리적 실천 방향입니다. 이 세상에 온전함, 완전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온전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며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윤리적인 기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도는 늘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분별력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세상의 여론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속죄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의 길입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비록 어리석어 보여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생각과 뜻과 마음을 모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칭찬과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