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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개혁신학자 최홍석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론’ 1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8/01/10 [09:5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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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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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웅 교수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총신대에서 수년간 조직신학을 담당한 최홍석 교수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분을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성선설적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서 타락이후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를 직시해야 하고, 오늘 사회의 문제들을 보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최홍석은 죽산 박형룡이 은퇴한 후의 총신에서 신학수업을 받았고, 화란유학을 다녀온 후 31년간(1984가을-2015가을) 모교에서 조직신학교수로 재직했던 개혁신학자이다. 긴 세월동안 교수로서 가르치고, 많은 논저들을 남겼지만, 최홍석은 총신과 예장합동 밖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신학자이기도 하다. 22년간 같이 재직하며 교내 활동 뿐 아니라 학회 활동을 부지런히 했던 송암 김길성과 달리 최홍석은 오로지 학교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최홍석은 재직 기간 동안 9권의 저술과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구원론을 제외한 조직신학의 여러 과목들을 가르쳤었다.

그의 신학적인 원칙은 죽산 박형룡이 천명했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굳게 서는 것이었다. 그가 조직신학의 제과목들을 가르쳤지만, 그가 중점적으로 가르쳤던 것은 인간론, 교회론, 신론 등이었다. 그 가운데서 인간론은 부임하던 첫 학기에 가르치기 시작하여 은퇴를 앞둔 학기까지 31년을 가르쳤으니 “시간이 말하듯이 인간론에 대한 그의 권위는 과연 독보적이다”고 평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강의를 맡은 초기부터 최홍석은 인간론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1991년에는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론 소책자를 출간했다. 이 책을 일별해도 개혁주의 인간론(과 죄론)의 주요 내용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론 분야에 있어서 그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2005년에 출간한 『인간론』교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론과 관련해서 보자면 최홍석의 교본은 죽산 박형룡의 『교의신학-인죄론』(1968) 이후 총신 교수에 의해서 처음 출간된 인간론이라는데서도 그 의의와 중요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홍석은 인간론의 주요 주제들을 제시하되 성경적 근거, 교리사적 발전,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교본 면면에 흐르는 그의 신학원리와 방법은 칼빈, 바빙크, 죽산 박형룡이 추구했던 개혁신학적인 원리와 방법이었다.

최홍석의 인간론 가운데 현저하게 강조되는 두 주제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본질로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방대한 논의와 다른 하나는 본고에서 논구해 보고자 하는 ‘인간의 구조적인 본성’(the constitutional nature of man)론이다. ‘인간의 구조적 본성’이라는 표현은 루이스 벌코프와 죽산 등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벌코프는 구조적 본성에 이어 하나님 형상론을 다루었지만, 최홍석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논구한 후에 이어서 구조적 본성에 대한 논의를 한다. 논의를 시작하면서 최홍석은 두 주제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전인을 통해 반영된다는 입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뿌리를 둔 것임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인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혼과 몸을 통해, 모든 재능과 능력을 통해, 모든 상태와 관계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처럼 전인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구조적 본성을 다룰 때에도 여전히 발견되는 진리입니다.

전인성을 강조하게 될 때에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문제’는 다름 아니라 ‘몸과 영혼의 상관관계’ 문제이고, 어떠한 입장에 서든지 간에 양자간의 관계가 ‘생명의 연합의 관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최홍석은 논의의 서두에서 말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을 밝힌 후에, 최홍석은 인간의 구조적 본성과 관련한 장문의 논의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첫 부분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본론 부분에서 다양한 견해들(삼분설, 이분설, 단일론, 영육의 유기적 통일체 등)을 소개하고, 결론을 맺는 형식이다. 이어지는 본론에서 우리는 그의 논의의 요점들을 차례대로 살펴볼 것이다. 그의 주저 『인간론』에 초점을 맞추되, 여러 개혁신학자들의 해당 저술들을 참고하여 그의 견해를 평가하는 작업도 함께 해보려고 한다. 최홍석이 유서 깊은 한 교단신학교에서 31년을 가르치고 은퇴했으나, 공적인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학문적인 검토와 평가 작업은 앞선 선대의 신학적인 기여를 귀하게 여기며 그 어깨위에 서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2 최홍석의 문제제기

최홍석은 일반적인 영역과 신학 영역이라는 두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한다. 몸과 영혼 혹은 ‘물(物)과 심(心), 곧 몸과 마음’의 관계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신학뿐 아니라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도 오랜 기간 논구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홍석은 양자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제안했던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해 주는데, 그에 의하면 크게 봐서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전자에는 유물론과 유심론이 속하고 후자에는 괼링크스의 기회론, 라이프니츠의 예설조화론, 실재론적 이원론 등이 속한다고 소개한다. ‘실재론적 이원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최홍석에 의하면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몸과 영혼을 ‘상호작용을 하는 구별된 실체들’로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최홍석은 몸과 영혼의 관계 문제는 ‘수 세기 동안 기독교회 안에서 논쟁거리’ 였음을 밝히는데로 나아간다.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관해 초대교회 때부터 두 개의 주요 입장이 제기되었는데, 이분설(dichotomy)과 삼분설(trichotomy)이 바로 그것들이다. 역사를 살펴볼 때 이 두 가지의 입장은 ‘강한 배타적 경향’을 보이면서 대립해 왔기 때문에 ‘제삼의 성경적 견해에 의해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다고 문제 상황을 정리한다.

최홍석은 현대적인 논의의 빛에서 다시 문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신약학자 조지 엘든 래드(George Eldon Ladd)의 『신약신학』(A Theology of New Testament)에서 제시된 바울의 인간관에 대한 논의를 참고로 삼는다. 래드에 의하면 바울의 인간관은 역사적으로 삼분설, 이분설, 그리고 단일론의 입장으로 각기 이해되어 왔다고 한다. 래드는 세 가지의 입장을 소개했지만, 최홍석은 구조적 본성에 대해 이러한 세 가지 견해만으로는 성경적인 답을 드러낼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하의 논의에서 이 세 가지 입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하고, 결과적으로 개혁신학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겠다고 논의의 순서를 밝히므로 문제 제기를 마친다.

3 구조적 본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이 절에서 최홍석은 ‘교리역사 속에 나타났던 대표적인 견해들’을 소개하고, 성경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간다. 우선 ‘역사적 전망’에서 삼분설과 이분설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으며, 19세기까지의 주요 대변인들에 대한 소개를 해줌으로 논의의 기본 윤곽을 먼저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그리고 이어서 삼분설을 먼저 다루고, 이분설 혹은 실체적 이분설을 소개한 후에 개혁신학적인 평가를 내리고, 또 이어서 단일론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를 내리는 순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 순서도 최홍석의 논의 방식대로 따라가면서 진행해 보려고 한다.

3.1 삼분설(trichotomy)과 실체적 이분설(sbustantial dichotomy)

최홍석은 삼분설에 대해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라고 정의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삼분설은 그리스 철학적 배경에 서 비롯된 것이며, 성경에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구절들이 있음을 말한다. 우선 그는 그리스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고, 혼은 ‘영과 육 사이에서 끼어서 둘을 중재’한다고 소개한다.

이 입장에 의하면 혼은 ‘영육적(geistleblich) 성격의 양면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우리가 여기서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최홍석이 말하는대로 그리스 철학자들, 그 가운데서도 플라톤이 삼분설자였을까 하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최근에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네 편의 논문을 발표한 송인규에 의하면 플라톤은 삼분설자가 아니라 이분설자이며, 영혼의 세 기능을 이야기했을 뿐이라는 점과 삼분설은 오히려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누스에게서 발견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넓게 보자면 삼분설 역시도 그리스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홍석은 철학적 배경뿐 아니라 삼분설자들에 의해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히브리서 4장 12절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14-15절, 3장 1절등이 유력한 증거로 활용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최홍석은 단순히 이분설이 아니라 ‘실체적 이분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이 입장과 다른 관점과 다른 입장을 취했던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삼분설 보다 이분설이 ‘훨씬 보편화’된 입장이었다. 최홍석의 판단에 의하면 특히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of Laodicea, c. 315-c. 390)의 견해가 정죄되면서 삼분설이 강했던 동방교회도 이분설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한다. 451년 칼케돈신경은 아폴리나리스를 정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성적인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심’을 교의화했다. 물론 이분설은 서방교회에서 주류적으로 지배했던 입장이며,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도 여일했다고 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홍석은 이분설을 삼분설과 연관하여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이분설을 변호하려고 제시된 논쟁들은 ‘삼분설을 반박하기 위해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홍석은 삼분설자들이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곤 하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혼과 영과 몸)의 본문과 히브리서 4장 12절(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 등은 삼분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한다. 오히려 신약 성경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삼분설 보다는 인간의 구조적으로 ‘두 국면’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한다(고전 5:5, 7:34; 고후 7:1; 엡 2:3; 골 2:5). 특히 ‘영’과 ‘혼’이라는 용어조차도 각기 다른 실체가 아니라 성경에서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수많은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고 주의깊게 해명한다(눅 1:46-47; 마 6:25, 10:28; 전 12:7; 고전 5:35, 7:34; 골 2:5; 시 31:5; 눅 23:46; 행 7:59; 창 35:18; 왕상 17:21; 창 41:8; 요 13:21; 시 42:6; 요 12:27; 계 6:9, 20:4; 히 12:23 등).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최홍석은 “서로 다른 실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일 뿐이라는 결론은 매우 타당하게 들린다”고 밝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분설적인 입장에서의 설명만으로는 아직 ‘인간의 구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다 드러나거나 표현된 것이 아니라고 최홍석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홍석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논평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까지의 진술 내용으로부터 성경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이분설과 실체적 이분설 사이의 갈림길이 있으며, 또한 실체적 이분설이 난관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최홍석은 삼분설과 실체적 이분설에 대한 개요를 제시한 후에, 두 입장에 대해 개혁신학적 관점에서의 평가를 내린다. 최홍석은 양 견해가 서로 배치되는 것 같아도 ‘모종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양자는 모두 ‘한결같이 영육 이원론의 철학적 전제와 깊이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홍석은 이러한 지론이 신학적으로 합당하다는 점을 굳히기 위해서 토를라이프 보만(Torleif Boman)이 제시했던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차이를 소개해 준다. 히브리적 사유의 특징에 대해 최홍석은 다음과 같이 소개해준다.

어떤 대상에 대해 히브리인들이 갖는 개념은 구체적인 개체 사물들이 나 개별적인 현상들로부터 연역된 추상적 성질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성질의 것으로서 그것은 개체 혹은 개별 사물 전체를 포함하는 실제적인 전체성을 가리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보편 개념이 그들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적 사유 속에는 ‘헬라인들의 사상 속에 놓여있는 영육 이원론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홍석은 이러한 논의에 바탕하여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쓰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적인 사유가 아니라 히브리적 사유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의 보편적 원칙’이라고 강조하는데로 나아간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여 그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본문들(살전 5:23; 히 4:12)에서 영, 혼, 몸 등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된 것은 각기 나누어질 수 있는 실체를 말하려고 하기 보다는 ‘전인적인 의미’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본문의 기자들은 해당 본문을 기록할 때에 “아마도 인간의 어떤 부분들이나 부분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전 국면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삼분설과 실체적 이분설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한 후 최홍석은 개혁신학적 입장으로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영육 통일체로서의 전인 개념’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입장이 ‘살아 있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개념’이라는 점을 성경적-신학적으로 제시하는데로 논의의 방향을 바꾼다. 우선 그는 첫 사람의 창조 경위를 밝힌 창세기 2장 7절 본문에 주목한다. 이 본문에서 생기는 영과 동어의이며,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자 인간은 생령(네페쉬 하야)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네페쉬 하야는 ‘인간의 유형성과 무형성 모두를 포괄하는 통전적 개념’ 혹은 ‘인간의 유기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전인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해석한다. 죽산 역시도 ‘산 실유를 가리키니 사람 전체의 묘사’라고 해석한 것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홍석은 문맥이 단어보다 우선하며 ‘문맥이 단어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제임스 바(James Barr)의 공시적 분석이론에 의지하여 인간의 구조적 본성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된 구약과 신약의 여러 용어들의 의미를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관점에서 살핀다. 구약의 바사르(basar)는 혼과 대치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구별되는 연약하고 덧없는 존재로서의 제한된 인간’을 가리키며, 네페쉬와 루아흐의 경우에도 ‘인간 그 자신’ 혹은 ‘전인’을 가리키는 경우들이 있다는 점을 예증하여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최홍석은 루아흐의 경우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 존재’를 의미하기 위해, 네페쉬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인간 존재’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는 차이점을 밝혀주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는 신약의 프쉬케와 프뉴마에 대한 공시적 이해에서도 입증되어진다고 최홍석은 해설한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거쳐 최홍석은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해 자신의 논평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신약에서는 인간을 몸과 혼과 영으로 구분하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경향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분명한 사실은 삼분설이나 실체적 이분설이 헬라 사상의 영육 이원론적 전제와 갚은 연관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입장을 가진 자들이 인용하는 성경의 근거 구절들은 성경 해석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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