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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설교비평을 통한 개혁주의 설교실습교육에 관한 연구: 종교개혁과 청교도의 전통을 따라서 1
박태현(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설교학)
기사입력: 2017/12/06 [09:5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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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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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리폼드뉴스

이 글은 박태현 교수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설교비평을 통한 개혁주의의 설교실습교육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는 종교개혁과 청교도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 교육이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들어가는 글

20세기 ‘최고의 개혁주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Lloyd-Jones) 목사는 설교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설교자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설교자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가르쳐서 설교자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이드 존스가 설교자 훈련의 필요성을 거부하거나 무시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회심의 경험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소명을 교회의 승인을 통해 확인한 후에 설교사역을 위해 본격적인 신학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에는 일반적 훈련으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지식, 지적 훈련이 포함되고, 특별한 훈련으로서 성경과 신학, 교회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설교 훈련을 언급한다. 그런데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설교 구성법』, 『예화 사용법』, 『설교의 ABC』등의 설교학 책들은 설교자에게 ‘매춘 행위’와 같다고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이 말을 한 뒤에 곧이어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설교에 부차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설교학 책이나 기술들의 차원이 아니라 설교에 핵심적 요인이 되는 설교자의 기독교적 정체성, 사랑의 차원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향한 사랑, 영혼을 향한 사랑, 진리에 대한 지식,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이것이 설교자를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이드 존스가 말한 맥락과 핵심을 염두에 두면서, 설교자 훈련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토마스 롱(Thomas G. Long)은 설교란 “사실 예술과 기술의 혼합이며 또한 타고난 재능과 훈련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피아노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설교는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배우고 있는 것이다”라고 바르게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설교자는 소명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학교에서 길러지고 다듬어지고 훈련되어 말씀의 봉사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봉사하게 된다.

본고의 목적은 설교자의 설교 능력의 함양이라는 관점에서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설교 훈련에 관심을 갖는 분들께 하나의 실행 가능한, 그리고 구체적인 설교실습 모델을 제시하는데 있다. 아쉽게도 현대 설교실습을 위한 구체적인 모델이 공개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기에 필자의 모델 제안이 그 시작점이 되어 좋은 설교실습 모델을 논의하고 구축하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본고는 크게 순차적으로 네 가지를 다룰 것이다.

첫째, 개신교에서의 설교 훈련의 역사를 종교개혁시대와 영국 청교도 시대에 한정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둘째, 설교 훈련에 필수적인 설교 비평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셋째, 설교 비평을 위한 설교 비평의 과제들, 즉 설교문과 설교 행위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앞서 설교 훈련의 역사에서 살핀 방법론에 기초하여 오늘날 신학교에서의 설교 훈련에 유익한 하나의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모델은 종교개혁시대와 영국 청교도 시대에 유익하게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필자가 네덜란드 아펠도른신학대학교에서 경험했던 설교실습 모델, 즉 설교에 대한 상호간의 긍정적 비평을 통한 설교실습 모델에 기초한 것으로 수정, 보완한 모델이다.

2 펴는 글

2.1 개신교 설교 훈련의 배경과 역사

개신교 설교 훈련은 16세기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교의 설교는 거의 전무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당시의 설교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16세기 당시 로마교는 교부 제롬(Jerome, 340-420)이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 ‘평범한’) 성경을 성스러운 언어로 기록된 유일한 성경으로 주장하였고, 따라서 원문이 아닌 ‘불가타’ 성경에 기초하여 설교하였다. 따라서 예배에 참석한 일반 대중은 라틴어에 기초한 설교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처지였다. 둘째, 이런 상황보다 더욱 열악했던 것은 로마교회 설교자들 자신이 스스로 설교문을 작성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상적으로 설교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개신교 설교를 진작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고안되고 시도되었는데, 최소한 세 가지가 언급될 수 있다. 첫째, 자국어 성경 번역 사업들이 속속들이 시행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을 1534년에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 대중의 손에 들려주었다. 영어 성경으로는 틴데일 성경(Tyndale Bible, 1526)과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0), 흠정역(KJV, 1611) 성경을 손에 꼽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618-1619년에 개최된 도르트레흐트(Dordtrecht) 총회의 결정에 따라 원문에 기초한 화란 흠정역(Staten Vertaling, 1637) 성경이 번역 발간되었다.

둘째, 개신교 설교자들의 설교를 돕기 위해 설교집과 설교학 교과서가 출간되었다. (1) 설교집과 관련하여, 루터는 설교집(postille)을 발간하였고, 영국 국교회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1558-1603)에서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를 위시한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두 개의 설교집(Homilies, 1547, 1563)이 발간되었다.

(2) 설교학 교재의 발간과 관련하여, 개혁파 설교학의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히페리우스(Andreas Hyperius, 1511-1564)는 기존의 수사학에 기초한 설교학 대신 성경에 기초한 설교학 교과서, 『거룩한 설교의 작성에 관하여 혹은 성경의 대중적 해석에 관하여』(De formandis concionibus sacra seu de interpretatione sacrae Scripturae populari, libri duo, 1553, 수정 증보판, 1562)을 저술하였다. 영국에서는 청교도주의의 아버지인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가 설교자들의 설교문 작성을 실제적으로 돕기 위해 영국 청교도 최초의 설교학 교과서, 『예언』(Prophetica, 1592)를 저술하였고, 이 책은 그의 제자인 토마스 투크(Thomas Tuke)에 의해 『설교의 기술』(The Arte of Prophecying, 1607)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퍼킨스는 이 책을 저술할 때에 어거스틴과 히페리우스를 비롯한 많은 고대와 당대 신학자들의 저술들을 십분 활용하여 저술하였다. 이 설교학 교과서는 발간 이후 약 200년간 영국과 미국 청교도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개신교 설교 발전을 위해 고안된 제도는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에 의해 1525년 6월 19일 스위스 취리히(Zurich) 대성당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프로페짜이’ (Prophezei, ‘설교연구회’)를 언급할 수 있다. ‘프로페짜이’는 성경을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연구함으로써 개혁파 목회자들의 교육에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개혁파 교회의 말씀의 중심성을 드러내었다. ‘프로페짜이’는 고린도전서 14장 29-31절에 근거하여 성경을 강해하고 설교하는 ‘연속강해’(lectio continua) 형식의 목회자 설교 훈련 모임이었다. 16세기 당시 ‘예언’(Prophezei 혹은 prophecying)이란 용어는 주로 ‘설교’를 의미했으며, 비록 이 ‘프로페짜이’에 일반 교인들이 참여했다 할지라도, 목회자들과 목회자 후보생들의 성경 연구와 신학 훈련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기에 ‘설교훈련모임’ 혹은 ‘설교 세미나’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대우는 이 ‘프로페짜이’가 진행된 방식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한다.

‘예언연구회’ 모임은 예배일인 주일과 장날인 금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평일 오전 7시(겨울에는 8시)에 시작되었는데, 모임순서는 먼저 츠빙글리가 강단에 올라가 기도한 후, 학생 한 명이 라틴어 번역성경 불가타(Vulgata)를 낭독하면, 세 번째 사람이 동일한 본문의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하고, 네 번째 사람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인 셉투아긴타(Septuaginta)의 본문을 낭독한 후 본문의 의미를 요약하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다음, 다섯 번째 사람이 나와 낭독한 본문을 라틴어로 설명하면서 교육하고 나면, 여섯 번째 사람(대부분은 레오 유트(Leo Jud) 혹은 카스파르 메간더(Kaspar Megander)가 담당했지만, 때로는 츠빙글리 자신이 맡기도 했다)이 나와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일반 시민들을 위해 독일어로 설교하면서 구체적인 적용까지 제시했다.

종교개혁 초기에 개신교 설교자들을 돕기 위한 ‘프로페짜이’는 스위스 도시들과 독일 남부의 도시들, 그리고 멀리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유사한 제도와 기구들의 모델이 되었다. 취리히의 ‘프로페짜이’는 약 10년 후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과 존 칼빈(John Cavin, 1509-1564)에 의해 스위스 제네바(Geneva)에 도입되었고, ‘꽁그레가시옹’(Congregations)이란 이름으로 동일한 성격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꽁그레가시옹’은 매주 금요일마다 성 베드로 교회당(St. Pierre)에서 모였는데, 모든 목회자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만 했다. 특히 일반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주 ‘꽁그레가시옹’에 참여함으로써 미미하게 소극적으로만 참여했던 취리히 ‘프로페짜이’와는 대조적이다.

엘시 맥키(Elsie A. McKee)에 의하면, ‘꽁그레가시옹’에 참여한 목사들은 선택된 성경 본문을 강해하고 대중들에게 자국어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설교실습” 모임으로 이해한다. 제네바의 주간 성경 연구와 설교실습인 ‘꽁그레가시옹’이 지닌 목적과 절차는 1541년 ‘제네바 교회법’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어느 정도 1561년의 ‘제네바 교회법’의 기초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런 점에서 제네바의 ‘꽁그레가시옹’은 설교자들의 성경 연구와 설교 훈련을 제도화함으로써 더욱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취리히의 ‘프로페짜이’는 다시금 영국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47-1553) 통치 하에 영국 런던의 피난민 교회에서 목회하였던 존 아 라스코(John a Lasco, 1499-1560)를 통해 영국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영국에서는 취리히의 ‘프로페짜이’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프로페사잉’(prophesying, ‘설교연구회’)이라는 이름으로 설교자 훈련이 시행되었는데, 이 ‘설교연구회’는 일차적으로 목회자들의 성경 연구를 진작시키고 설교 사역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였다. 16세기 당시 영국 개신교회의 형편은 그리 녹록하지 못하였다. 로마교를 숭배하였던 ‘피의 메리’(Bloody Mary, 1553-1558)의 통치 하에 많은 개신교 목사들이 추방되거나 처형되었기에 설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대단히 부족하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1558-1603)는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따라 한 주(州, county)마다 출판된 설교문을 읽을 수 있는 서너 명의 설교자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목회자 훈련에 부정적이었다.

그녀는 캔터베리(Canterbury) 대주교인 에드먼드 그린달(Edmund Grindal, 1575-1583)에게 ‘설교연구회’를 억압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그린달은 오히려 ‘설교연구회’를 옹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거역하느니 차라리 지상의 여왕을 거역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여왕에게 호소하기까지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대주교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성도들은 교회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에 자연스레 가장 기초적인 기독교 교리조차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청교도들은 ‘설교연구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주교 공석’(Sede Vacante)시에 시작된 1575년 노르위치(Norwich)의 ‘설교연구회’ 규정은 이 모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설교연구회’는 노르위치(Norwich)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s Church)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개최되었고, 첫 번째 연사(speaker)에게는 45분이 할당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연사들에게 할당되었다. ‘설교연구회’에서 설교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자들의 이름이 서판(Table)에 기록되었고, 모든 연사들은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들은 본문을 쪼개어 성령의 의미를 드러내고, 그들이 언제나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은 나중에 잘 적용될 수 있고, 설교에서 교리나 방법에 관하여 보다 상세하게 취급될 것들을 간단히, 요약적으로, 그리고 명백하게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 일 후에 ‘설교연구회’에 참석한 나머지 사람들은 동일한 본문에 대해 언급하되, 앞서 언급된 동일한 순서를 따라 행하되 반복을 피하고 덧붙이는데 조심스럽고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언급해야 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논쟁하거나 다툼을 일으키려는 태도를 버리고 오로지 진리가 옹호됨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이단들은 쓸데없이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다시금 유행하는 이단들은 성경의 증거로 반드시 타도되어야 했다.

특히 설교에서는 건설적 논의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곤 라틴어나 헬라어, 히브리어를 쓰는 대신 반드시 영어로 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설교연구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차례를 따라 질서 있게 말할 기회를 얻어 공손한 마음으로 발언해야 했다. 약속된 두 시간이 다 지났을 경우, 첫 번째 연사가 교회 전체와 모든 사회적 신분들, 여왕, 추밀원을 위해 간략하게 기도하고, 여왕과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곧바로 끝내야 했다.

‘설교연구회’가 끝난 뒤, 후속되었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설교연구회’가 끝나고, 함께 모인 학식 있는 형제들, 그리고 첫 번째 연사는 잠시 따로 떨어져 있고, 그 당시 사회자 혹은 의장(그는 언제나 하루 전날 첫 번째 순서에서 말한 동일한 형제이거나 그의 부재시 지명된 사람이다)은 첫 번째 연사에 관하여 순서대로 형제들에게 질문한다: 먼저 그의 가르침이 건전한지, 그가 어떻게 본문을 붙들고 따랐는지, 그가 본문 어디에서 벗어났는지, 그가 성경으로부터 자신의 증거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주장했는지, 그가 규정된 설교의 순서를 준수했는지, 그의 말이 얼마나 명백하거나 모호했는지, 그의 발언과 제스쳐가 얼마나 조심성이 있었는지, 그의 전체 행동이 얼마나 확고하며 공손하며 온건했는지 혹은 어디서 실패했는지, 불확실하게 언급된 그의 어떤 말들이 너그럽게 강해되고 더 낫게 해석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것이 끝난 후, 첫 번째 연사는 나머지 형제들의 이름으로 사회자가 지시하거나 혹은 (필요한 경우) 권면할 때 하나님을 공경함으로 수용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주장한 이유들과 원인들을 지닌 것으로 동석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권면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필요한 경우 동일한 질문이 나머지 연사들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들 모두는 겸손한 마음으로 교만, 완고함, 혹은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고 형제들의 판단을 신뢰해야 한다. 만일 교만이 어떤 형제 가운데 발견되거나 혹은 무질서와 같은 어떤 것에서 발견된다면, 형제와 같은 권면을 따라 자신을 개선하지 않는 그 사람의 이름은 그가 개선될 때까지 서판(Table)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가 교회를 더욱 어지럽힌다면, 더욱 엄격한 권징이 요구되고,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는 모든 정당한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설교연구회’가 진행된 절차뿐만 아니라 참석한 자들의 경건한 태도를 목도할 수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니다. 마치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함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만든다(참조, 잠 27:17). 이런 권면이 있고 난 다음, 본문으로부터 정당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어떤 의심스런 문제는 학식 있는 형제들이 그 의혹을 풀어주어야 했다. 의혹이 충분히 풀리지 않았을 경우, 질문의 중대성에 비추어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그 문제는 다음 시간까지 연기되어야 하고, 다음 ‘설교연구회’ 일자의 연사가 자신의 연설 초두에 그 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충분히 다룰 수 없다고 판단되거나, 그렇게 중대한 문제 다루기를 겸손히 거절할 경우, 회합에서 형제들이 다시 검토해야 했다.

요컨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교회는 마치 사사시대 말기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다(삼상 3:1).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개선하려고 다양한 시도들을 펼쳤다. 이런 시도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일반 평신도들을 위한 독일어, 영어, 네덜란드어 등의 자국어 성경을 번역하였다. 둘째,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설교문을 스스로 작성할 수 없었던 설교자들을 위해 기독교 교리를 담은 표준 설교집을 간행하고 설교학 교과서를 저술하였다. 셋째, 설교자들의 실제 설교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설교연구회’가 세워지고 제도화되었다. 자국어 성경 번역, 설교집, 그리고 설교학 교과서의 출판이 개신교 설교를 위한 기초적, 원리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설교연구회’는 설교자들의 실제적 설교 훈련을 위한 플랫폼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설교연구회’의 목적과 방식을 따라, 특히 참여한 형제들의 조언과 비평을 통해 설교 훈련에 큰 유익을 얻었던 것처럼, 오늘 신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설교 실습을 위한 건설적인 설교 비평의 과제를 논의해 보도록 한다.

2.2 설교 비평의 제반 이슈들

2.2.1. 비평의 정의와 그 의의

먼저 ‘비평’이란 단어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 사전에서 비평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리킨다. 첫째,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다.” 둘째,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좋지 아니하게 말하여 퍼뜨리다.” ‘비평’의 첫 번째 정의는 중립적인 의미를 갖는 반면, 두 번째 정의는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비평’이란 주로 부정적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기에 ‘설교 비평’이란 용어 사용은 저절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는 우리의 과제를 위하여 ‘비평’의 첫 번째 정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회적 환경에 휘둘린 부정적 의미의 통념을 벗어나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해 그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의 첫 번째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는 비평을 통해 최소한 두 가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비평을 통해 우리는 실수를 되돌아보고 반복하여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 비평이 보여 주는 우리의 실수, 잘못, 단점 등 부정적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둘째, 비평을 통해 우리는 장점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비평이 보여주는 우리의 좋은 점, 즉 긍정적 요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우리는 비평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비평은 우리를 외적으로 성장시켜 주고 내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요소다.

이렇게 성장과 성숙에 필수적인 비평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은 아마도 자기 비평, 일종의 ‘자기반성’(self reflection)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혹심한 비평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자기반성은 성장과 성숙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로운 일인 동시에 필수적인 일이다. 이러한 자기반성은 개혁주의 신학의 독특한 특징이다. 그 일례로서 16세기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네덜란드의 ‘제 2차 종교개혁’(Nadere Reformatie)의 신학자들과 성도들은 교회의 개혁을 위해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고 주장하였다.

다른 사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자기 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엄격한 자기반성의 정신이 이 모토(motto) 속에 깃들어 있다. 20세기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지적하듯이 그 역(逆)도 성립되어, 항상 개혁되기 때문에 개혁교회의 특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자기 비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무리 긍정적 의미에서 수행된다고 할지라도 건전한 자기 비평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비평이란 개혁신학의 정신을 반영한, 성장과 성숙을 위한 지혜롭고도 필수적인 과제인 반면, 그 실제적 수행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2.2 설교비평

이 비평의 과제를 설교에 적용할 때, 설교 비평이란 필요한 과제이면서도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혹여나 어떤 사람에게 ‘설교 비평’이란 용어 사용이 부담스럽다면 우리는 ‘설교 분석과 평가’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분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경한(?) 자세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설교가 갖는 고유한 특수성 때문이다. 즉 교회에서 설교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16세기 스위스 취리히의 개혁자 불링거(H. Bullinger, 1504-1575)가 작성한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Confessio Helvetica Posterior, 1566)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Praedicatio verbi Dei est verbum Dei)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J. Calvin, 1509-1564)의 설교 이해이기도 하였다.

칼빈 전문가인 리샤르 스토페르(Richard Stauffer, 1921-1984)는 칼빈의 설교 이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평가하였다. “종교개혁의 대원리 Spiritus in Verbo operans(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활동하신다)가 Spiritus in Verbo praedicato operans(성령은 설교된 말씀을 통해 활동하신다)의 원리로 굴절하는 것이다(설교된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행동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이 된다.)” 이러한 설교 이해를 갖는 개혁주의 신학자들 혹은 성도들에게 ‘설교 비평’은 아무리 온건하게 ‘설교의 분석 및 평가’라고 표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한 분석과 평가로 오해되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고도 건전한 비평을 외면하게 만든다. ‘설교의 분석과 평가’라는 말 자체 속에 인간의 이성(理性)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설교를 판단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누가 감히 설교, 즉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해 반박하고 비평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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