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전도(복음)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2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7/11/29 [09:1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     © 리폼드뉴스

이 글은 김창훈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전도 설교에 대한 당위성, 한국교회 전도설교의 방향과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3) 구체적 제안

기존의 청중들에게 전도 설교를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회와 기독교 정체성을 세우며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복음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을 믿음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어떻게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일까?

먼저, ‘제대로 된 강해 설교’가 요구된다. 강해 설교의 핵심은 본문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고, 그것을 오늘날의 청중에게 바르고 적실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John Stott가 강조한 것처럼, 강해 설교는 본문으로부터 거기에 있는 것을 끌어내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노출시키는 것이고, 닫혀 있는 것을 열고, 불투명한 것을 명백히 하며, 매듭지어 있는 것을 풀고, 단단히 포장되어 있는 것을 펼쳐 주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 본문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강해 설교는 교회와 기독교 정체성을 세우고 회복하며, 신앙의 본질을 회복시키며, 기존의 청중들을 믿음의 영역으로 인도하는데 가장 적절한 접근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혹자는 강해 설교는 흥미 없고 딱딱한 설교이기 때문에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에 출석하는 청중들은 신앙이 있든 없든 계속해서 성경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에 성경에 익숙해 있다. 그런 청중에게 제대로 된 강해 설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과 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신앙의 표준이요 지침인 성경에 대해서 바르고 깊이 알게 해주기 때문에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며,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기존의 청중들에게 전도 설교로서 제대로 된 강해 설교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정체성과 믿음의 본질의 약화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제대로 된 강해 설교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모스 선지자의 탄식이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는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사회적 타락을 보면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하였다. 그러한 선지자 시대의 모습이 오늘날 전 세계 교회의 모습인데, Walter Kaiser, Jr.는 그것을 잘 지적하였다.

교회와 성경은 흥망성쇠를 같이 한다. 교회가 살면 성경이 산다. 그리고 성경이 살면 교회가 산다. … 전 세계 대부분의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회는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것은 온갖 인공 방부제가 들어있는 음식과 이상한 대용식으로 성도들이 양육되기 때문이다. …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선포의 부재로 인한 전 세계적인 영적인 기근은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 아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왜곡하는 일이 없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바르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제대로 된 강해 설교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절실한 요구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바른 말씀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스 7:10)”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던(느 8:8)” 에스라를 본받아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요구된다.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여 드러내는 설교이다. 다시 말해, 본문에 있는 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등을 설교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하나님 의도에 근거해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강해설교는 당연히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된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별도로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이 잘못된 접근으로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간 중심적(Anthropocentric) 접근’과 ‘도덕적(Moralizing) 접근’이다. ‘인간 중심적 접근’은 본문에 등장한 인물들에 우선적 관심을 두는 것이다. 성경에서 등장인물들은 일차적으로 그 인물들의 탁월함이나 악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선택된 자들이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역사를 주관하심 등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무시한 채 등장인물들을 부각시키고 그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서 본문을 접근한다. ‘도덕적 접근’은 인간 중심적 접근과 어느 정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데, 본문의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간과한 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훈 정도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설교와 도덕적 설교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왜곡할 뿐 아니라 신앙과 복음의 본질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세우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며 믿음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또한 탁월하고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건전한 구속사적 설교’가 요구된다. 구속사적 설교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원리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설교이다. 먼저, 성경 66권은 독립적 또는 단편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통일성과 점진성을 이루고 있다. 다음으로, 그 통일성과 점진성의 기초와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이라는 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과 목표와 사역은 인류의 ‘구속’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최고의 의무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전파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속사적 설교는 Chapell이 강조한 것처럼 우선적으로 모든 인간이 ‘타락한 상황에 있다는 것에 초점(FCF: The Fallen Condition Focus)’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견해에 동의한다면 하나님 중심적 접근은 당연히 구속사적 설교를 하게 한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고,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최고 관심이 인간의 구원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필자가 특별히 건전한 구속사적 설교를 강조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오늘날 한국 교회 설교는 전반적으로 세상의 복이나 치유나 삶의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이요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음 안에서 세상의 복들을 경험할 수 있고,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삶의 치유와 회복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우선적 관심이 아니고, 복음의 본질도 아니다. 다음으로 복음의 본질이 결여된 윤리적 삶으로의 변화를 강조하는 설교도 심각한 강단의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도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의 기초 위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단순한 삶의 변화는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방법이나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로마서나 에베소서에서 다소 어렵고 딱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특별히 로마서의 수신자들은 초신자들이었다), 먼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에, 그 기초 위에서 성도의 삶에 대해서 교훈하였던 것이다. 온전하고 순수한 복음이 부각되지 않는 설교는 당장에 청중에게 인기가 있을 수 있고, 또한 복음이 기초를 이루거나 강조되지 않고 윤리적이며 삶의 변화만을 추구하는 설교도 순간적인 효과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러한 설교는 장기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고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구속사적 관점에서 구원의 진리 또는 복음이 제대로 설교될 때 기독교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고, 또한 복음은 더욱 효과적이고 능력 있게 전하여질 것이다.

요약하면, 기존의 청중이 대상일 때 전도 설교는 본문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내되, 특히 구속사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일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2. 불신자를 초청한 특별한 경우

전도 설교의 또 다른 경우는 전도 집회나 주로 불신자들이 모인 특별한 집회에서 교회 출석이나 설교에 (거의) 경험이 없는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1) 모델로서 바울의 아덴에서의 설교

사도행전에는 다섯 번의 바울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네 번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설교이고, 한 번은 아덴에서 온전히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이다. 그런데 필자는 아덴에서의 설교는 접근 방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오늘날 교회 출석이나 설교를 들어본 경험이 없거나 미미한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 설교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덴에서의 설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덴에서 바울의 설교는 크게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결단)으로 구성되었다(행 17:22-31). 서론에서 바울은 두 가지를 언급한다. 먼저, 바울은 그들에게 종교성이 많다고 한다(22절). 이 말은 그들을 인정하면서 칭찬하는 말이다. 칭찬하고 인정할 때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의 분한 감정을 전혀 표시하지 않고(참고. 행 17:16) 그들을 인정해 줌으로 그들이 설교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그가 설교하는 주제가 ‘알지 못하는 신’에 관한 것임을 언급한다(23절). 이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아덴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아덴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사원들로 가득하였으며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신들과 우상들을 위한 신상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300개의 공식화된 우상과 3만여 개의 신상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그들은 혹시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지 못해 그들로부터 저주와 재앙을 받을까 염려하여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라는 제단을 쌓고 거기에서 제사를 지내며 제물을 바쳤다. 그러니까 ‘알지 못하는 신’에 관한 것은 설교를 듣는 당시 청중들이 가장 궁금해 하면서 최고의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주제였다. 이렇게 서론에서 알지 못한 신에 관한 언급을 한 것은 그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평상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언급되어지면 집중해서 듣는 경향이 있는데, 바울이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면서 본론으로 하나님을 소개한다. 바울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하나님을 소개하였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주의 창조주이시오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오 섭리자시며 무소부재하시고 완전하신 분임을 설교한다(24절).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고(25절),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신이심을 설교한다(26-28절).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만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제 결론으로, 회개를 촉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30-31절).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은 부활을 통하여 확실하게 증거 되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아덴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다른 곳에서의 설교와 내용과 접근 방식이 많이 달랐다. 왜냐하면, 다른 곳과는 설교의 대상도 달랐고 설교의 분위기나 상황도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서론에서 청중이 설교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였고, 본론에서도 회당에서의 설교와는 다르게 접근하였다. 회당에서의 청중은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청중들은 구약 성경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인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지만,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다신론적 신앙이 있는 아덴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바른 신관(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설교의 대부분을 그 부분에 할애하였다. 그리고 결론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초청하였다. 결국 오늘날 교회와 설교(또는 성경)에 익숙치 않는 청중들은 당시 아덴에서의 청중들과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아덴에서의 설교가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아덴에서의 설교가 교회 출석이나 설교에 거의 경험이 없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전도 설교를 위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먼저, 청중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에게 맞게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에게 맞게 접근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고전 9:19-22). 그래서 아덴에서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아덴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오늘날도 효과적인 전도 설교를 위해 청중 분석이 중요하다. 쉽게 이야기하면, 효과적으로 설교하기 위해 청중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청중 분석을 위해(즉, 청중을 알기 위해) 설교자에게 특히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먼저, 신문과 일반 서적들을 보아야 한다. 즉, 이 시대의 상황과 세상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그리고 깊이 알아가야 한다. 설교자들 가운데 믿지 않는 청중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 너무 피상적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늘에 뜬 구름 잡는 막연한 설교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청중을 알아가기 위해 청중과 직접 접촉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목회자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전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경험하고, 또한 그러한 경험을 통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음으로, 서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론의 주목적은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모든 설교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전도 설교에서는 아덴에서의 설교와 같이 청중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는 좋은 서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교회와 설교에 경험이 없는 전도 설교의 청중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설교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모든 사람(특히 불신자)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나 관심사로 설교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가능하면 공통의 문제나 관심사가 포함되어 있는 ‘스토리(들)’를 소개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스토리에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고 또한 스토리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에게 적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삼위 하나님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의 복음 전도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그런데 아덴에서 바울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성부 하나님을 전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바른 신관(유일신 하나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신앙생활의 경험이 없는 청중들에게 전도 설교를 할 때는 삼위 하나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천지를 창조 하시고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그리고 구원을 적용시키시는 성령님을 소개하고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승진도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전도 설교를 위해서 삼위일체적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설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삼위일체의 관점이 유용하다. 전도 설교는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불신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원 사역을 선포해, 그들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2) 고려해야 할 사항들

무엇보다도 먼저, 설교자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임을 늘 명심해야 하고 사모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 결코 효과적으로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다(고전 2:4). 뿐만 아니라 성경은 너무도 분명히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전 12:3). 물론 우리는 지혜롭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성령의 역사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다음으로, 복음(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온전하고 바르게 전해야 한다. 특별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 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하는 것처럼 기복주의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단순히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시는 분으로, 또는 단순히 삶의 문제의 해결자로, 또는 신앙을 기적과 표적을 경험하는 수단으로 오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했다(고전 1:21). 다시 말해, 바르고 온전한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또한 복음과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신앙의 온전한 본을 보이지 못하고 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함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은 청중의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복음이 주는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라. 다시 말해, 예수를 믿고 난 후의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을 통해 누리게 되는 삶의 긍정적 변화를 강조하라. 특히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경험한 신앙이야기, 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신앙생활의 유익에 대한 간증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설교자 자신의 신앙 이야기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복음이 자신을 얼마나 변화시켰고, 복음이 자신의 삶에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진정성 있게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변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강해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이야기식이나 주제를 중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전도 설교도 모든 설교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잘할 수 있는 형식으로 시도하고 또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가능하다면 귀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너무 강압적이고 무례하게 접근하지 말고, 함께 결론을 만들어 가고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V. 나가는 말

본고는 전도 설교에 관한 것이다. 본고에서 필자가 의미하는 전도 설교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를 대상으로 유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전도 설교가 왜 필요한 지, 한국 교회의 전도 설교 현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한국 교회에 전도 설교가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 논의하였다. 이어서 어떻게 전도 설교를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하였다. 특별히 기존의 청중이 대상일 때 전도 설교는 본문을 중심으로(강해 설교),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내되(하나님 중심적 접근), 특히 구속사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또한 전도 집회나 주로 불신자들이 모인 특별한 집회에서 교회 출석이나 설교에 (거의) 경험이 없는 청중들에게는 바울의 아덴에서의 설교가 좋은 모델이라고 제안하였다. 다시 말해, 좋은 서론과 청중 분석과 삼위 하나님 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무쪼록 본고를 통해 전도 설교가 바르고 능력 있게 행해지기를 소원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