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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전도(복음)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1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7/11/25 [07:2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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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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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김창훈 교수     © 리폼드뉴스

이 글은 김창훈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전도 설교에 대한 당위성, 한국교회 전도설교의 방향과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I. 들어가는 말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 정체성 회복’과 ‘신앙의 본질 회복’이다. 또한 이를 위해 강단에 요구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바르고 온전히 전하는’ ‘전도 설교’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물론 바르고 온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모든 때와 상황에서 선포되어야 하지만, 교회가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그것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확인된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복음이 제대로 선포될 때 항상 교회는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 개혁도 한마디로 바르고 온전한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기독교 정체성과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고, 위기가 극복된 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I. 전도 설교란?

본고에서 필자가 의도하는 ‘전도 설교’의 의미를 먼저 규정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전도 설교는 대상과 내용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해되고 있다. 먼저, 전도 설교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설교’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전도 설교의 정의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Ramesh Richard는 “전도 설교란 어떤 불신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원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대중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덧붙여서 그는 전도 설교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가 아니며, 또한 성도들을 구비시키거나 세우기 위한 설교도 아니라고 한계를 분명히 하였다. 같은 관점에서 James Packer는 전도 설교는 하나님의 존재나 도덕법에 관한 일반 진리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상 특별한 시점에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이며, 또한 전도 설교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할 것과 그분 없이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반면 영국의 탁월한 청교도 설교자였던 D. Martyn Lloyd-Jones는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전도 설교란 무엇보다 “하나님(즉,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영광)을 선포하는 것(살전 1:9-10)”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오직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해 주어야 한다(요 3:16)”고 하였다. 그가 그렇게 전도 설교를 이해한 것은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수년 동안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착각하였는데, 그것은 그 때까지 전도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목회를 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안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전도 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정리하면, ‘불신자 뿐 아니라 기존의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믿도록 하는 것’이 Lloyd-Jones의 전도 설교에 대한 정의이다.

위에서 Richard와 Packer는 대상과 내용의 범위를 좁혀서 전도 설교의 정의와 방향을 제시했고, Lloyd-Jones는 전도 설교의 대상과 내용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좁은 의미에서 전도 설교는 단지 불신자를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의 전도 설교는 불신자와 성도 모두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로 이해될 수 있다. 본고에서 필자의 관심은 넓은 의미의 전도 설교이다. 다시 말해, 필자가 본고에서 의도하는 전도 설교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이다.

III. 전도 설교의 당위성과 한국 교회 전도 설교 현황

1. 전도 설교의 당위성

그렇다면, ‘왜 강단에서 전도 설교가 선포되어야 하는가?’ 먼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의 존재 이유요 부르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고(출 19:5-6), 이방의 빛이 되도록 부르셨다(사 42:6; 49:6. 참고. 행 13:47).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소위 ‘대 위임 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하셨고(마28:18-20), 땅 끝까지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유언으로 명령하셨다(행 1:8). 또한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고 하셨다(벧전 2:9-10).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이라고 고백하였다(고전 9:16).

다음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구원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다(눅 15장). 그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손해 보면서까지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가장 효과적이고 분명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는 수단이요 도구가 바로 설교다(롬 10:14-15; 고전 1:21).

세 번째로 복음의 메시지는 설교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결과들의 궁극적 요인이요 근거이기 때문이다. 설교에는 다양한 기능과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치유, 성화, 삶의 문제 해결, 영적 에너지 공급 등도 설교의 기능이요 목적이다. 그런데 만약 복음에 근거하지 않고 치유나 성화나 삶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설교한다면,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단순히 강의나 세미나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 성화, 삶의 문제 해결의 열매를 맺는 능력이 있다.

네 번째로, 복음의 메시지는 기독교 정체성 회복과 신앙의 본질 회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구별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레 19:2; 벧전 1:15,16).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매력이 상실되었고 교회는 침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을 바르고 온전하게 전하는 전도 설교는 기독교정체성과 신앙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방편이다.

2. 한국 교회 전도 설교 현황

위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설교의 본질이요 사명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 설교는 한국 교회 강단에서 많이 부족하고(횟수에 있어서) 서툰(내용에 있어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은 대체적으로 소위 ‘목회적 설교’(치유, 위로, 회복 등에 초점을 맞추는 설교나 성화, 충성, 헌신을 강조하는 설교)는 많이 하고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전도 설교는 그렇지 않다. ‘한국목회자협의회’가 2013년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하여 조사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 주일 낮 자신의 설교 내용이 어느 쪽에 가깝느냐?’는 문항에 대해 응답자의 46.4%가 ‘신앙 성숙, 교훈,’ 22.0%가 ‘위로와 축복,’ 19.0%가 ‘결단, 사명, 소명,’ 12.6%가 ‘죄와 회개’라고 답했다. 이렇게 복음의 메시지가 부족한 한국 교회 강단의 상황을 곽선희는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였다.

여러분의 설교를 놓고 냉정하게 비판해 보십시오. 과학적으로 비판해 보면 85%가 복음이 없습니다. 윤리적 설교, 사회적 설교, 생태계에 관한 설교, 인권에 관한 설교 등 복음 외의 설교가 많습니다. 복음 없는 설교를 들으러 바쁜 현대인들이 교회에 와야 합니까? 부흥회다 노방 전도다 하여 사람들을 모으려 하지만 복음만 있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그들이 옵니다.

3. 전도 설교가 부족한 이유

그렇다면 전도 설교가 부족하고 서툰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목회자들이 복음(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오해하거나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목회자들 가운데 복음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왜곡되게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다음으로, 현실적으로 목회 현장이 치유(위로) 설교나 성화(헌신) 설교를 요구한다. 따라서 전도 설교를 많이 해보지 못했다.

세 번째로, 목사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다. 따라서 불신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네 번째로, 교단의 신학적 배경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즉,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간의 수고와 노력 부분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오늘날 권위나 절대적 진리에 대해 부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환경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쉽지 않게 한다.

여섯 번째, 교회나 목회자나 성도의 부정적인 모습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전도 설교를 어렵게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IV. 전도 설교의 구체적 방법

위에서 전도 설교는 크게 두 방향으로 이해되어 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전도 설교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두 방향으로 나누어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두 영역에 겹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1. 기존의 청중이 대상인 경우

1) 기존의 청중에게 전도 설교가 행해져야 하는 이유는?

필자는 이미 교회를 출석하는 청중에게도 전도 설교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전도 설교가 행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Lloyd-Jones가 청년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아직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치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13년 현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했다’는 확신이 있는 교인의 비율은 63.2%였다(1998년에는 73.2%, 2004년에는 77.1%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3명 중 1명은 아직 그리스도인으로서 내면적 신앙 고백이 없다는 것인데(36.8%), 이것은 1998년 같은 조사보다 13.9% 하락된 수치이다.

이러한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의 결과로 당연히 나타나는 것은 쉽게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한국인의 종교 실태, 인식, 의식 등을 주제로 1984년, 89년, 97년, 2004년에 이어 2014년까지 총 5차례 조사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현재 개종 경험이 있는 응답자에게 이전 종교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불교가 33%, 천주교가 10%, 기독교가 52%로 응답하였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비종교인 가운데 개신교에서 이탈한 사람은 68%, 불교에서 이탈한 사람은 22%, 천주교에서 이탈한 사람은 10%로 조사되었다.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 신자의 이탈율이 가장 높았는데, 그것은 지난 30년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다음으로 전도 설교는 교회와 성도를 복음의 본질 위에 바르게 세울 뿐 아니라 계속해서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앙의 본질 또는 복음의 본질에 벗어났다는데 있다. 역시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1998년에는 신앙생활의 이유가 구원과 영생이 47.1%였고, 마음의 평안이 38.2%, 건강, 재물, 성공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6.5%였는데, 2013년에는 구원과 영생이 31.6%였고, 마음의 평안이 38.8%, 건강, 재물, 성공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18.5%였다.

신앙생활의 이유가 1998년에 비해 구원과 영생은 16% 포인트 정도 감소되었고, 세상적 축복은 12% 포인트 정도 증가하였다. 또한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종교를 믿는 이유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의 대답은 마음의 평안을 위해 45%, 죽은 다음의 영원한 삶을 위해(즉 구원을 위해) 26%로 조사되었다. 물론 다른 종교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믿는 비율은 낮고(불교 73%, 천주교 63%) 구원을 위해 믿는 비율은 높았으나(불교 5%, 천주교 12%), 전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본질과 핵심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전도 설교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신앙의 부침을 경험한다. 또한 삶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좌절과 낙심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르고 온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신앙을 회복시키고 문제를 극복할 영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정창균은 기신자들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을 얻은 사람이 구원을 취소당해서가 아니라, 그 구원 사건을 다시 확인시키고 그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상태로,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되었으며, 그래서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복음의 차원에서 다시 확인하게 하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다시 신자의 활력 있는 삶을 시작하게 하는 일은 수시로 필요하다. 그것이 복음의 본질을 다시 확인시키는 작업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전도 설교의 범주에 포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전도설교는 단순하게 불신자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2) Calvin Miller의 ‘장터 설교(Marketplace Preaching)’ 평가

여기에서 Calvin Miller가 제안한 ‘장터 설교’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Miller는 오늘날 설교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설교의 내용과 목적이 교회 내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강단의 회복을 위해 ‘장터 설교(Marketplace Preaching)’를 제안하였다. 그는 교회의 사명과 존재 이유가 설교의 사명과 목표와 동일하다고 하면서, 장터 설교는 오늘날 설교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장터 설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먼저, 장터 설교는 ‘전도 중심적’ 또는 ‘전도 지향적’ 설교이다. Miller는 설교의 우선적인 기능이 전도 또는 증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설교자는 그 목적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모든 성도들이 그 위대한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장터 설교는 범위와 영향에 있어서 사회를 향하고 사회를 바꾸는 설교(transsocial preaching)이다. 설교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든 밖에서 행해지든 상관없이 설교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교회 안에 갇힌 설교, 또는 성도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교회에만 관심을 갖는 설교는 성도들의 이기주의만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장터 설교를 위해서는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그들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밖의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설교는 성도들에게도 만족을 줄 것이고, … 교회 밖의 사람들의 갈증을 채우는 설교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갈증도 채울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로, 장터 설교는 장터 언어(Market language, 그는 장터 언어를 또한 ‘벌케이트[Vulgate]’라고 하였다)로 설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터 설교는 성도들만 이해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 언어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설교하는 것이다. 또한 장터 설교는 친근감과 따뜻함을 전하는 스타일로 평상적이고, 구어적이며, 삶과 관련성이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장터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장터 설교는 제단 중심적 설교(altar-centered sermon)이다. 제단의 특징은 두 가지인데, 먼저는 설교가 제단의 일반적인 특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단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장터설교는 소위 사회적 설교나 도덕적 설교와는 다르게 청중들이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설교이고, 제단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존재와 실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설교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제단은 신비의 장소이기 때문에 장터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신비스러움과 우리 믿음의 신비스러움을 부각시키는 설교라고 하였다.

정리하면, Miller가 주장한 장터 설교는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전도에 관심을 갖고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도 중심적(지향적) 설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주장에는 설교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무시한 극단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치유와 성화와 헌신에 집중하고, 복음의 메시지가 빈약한 오늘날 강단에 많은 도전을 준다.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도설교를 위해서 설교자가 세상 사람들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관심(즉, 정치 경제 문화 등)을 가져야 하며,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어려운 단어들을 가능한 한 자제하며 쉬운 언어(즉, 장터 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설교자들에게 각성과 도전을 주는 유익한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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