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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잠언 11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2
이관직(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7/11/15 [09:2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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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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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관직 교수     ©리폼드뉴스

이 논문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잠언 11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을 하며 그 의미를 목회상담적 관점에서 해석, 적용해 주고 있다.

10. 덕스럽고 근면한 사람에게 오는 좋은 결과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11:16-17).

이 두 절이 서로 평행을 이루는 구절이라고 볼 때 개역개정판의 번역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는 내용보다는 NIV 성경의 번역, “무자비한 남자는 단지 재물만 얻느니라”는 내용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유덕한 여자와 인자한 자가 평행을 이루면서, 무자비한 남자(a ruthless man)와 잔인한 자(a cruel man)가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자냐 남자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덕함(the kindhearted)과 인자함(kindness)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심을 얻게 하며 결국 그 사람 자신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대인관계에서 너그럽고 인자하지 못한 사람은 재물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상담적용 6: 오늘날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과도하게 아껴서 재물은 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족과의 관계도 멀어지며 마침내 외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졸부들이 있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증상 중의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가 굳이 아니지만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이다. 검소한 삶은 미덕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검약한 삶은 재물에 대한 안전감을 누리려고 하며, 통제의 욕구가 강하며,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 몇 그루만 보는 미성숙한 성격장애임을 알려주는 증상일 수 있다. 재물과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웃과의 관계에서 친절하며 너그럽게 재물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을 것이다. 상호적인 삶 속에서 밥도 사고 베풀기도 하는 삶을 적절하게 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삶이며 그런 삶에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11. 공의로운 삶의 긍정적 결과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11:18-19).

이 두 절은 A-B-B’-A’의 구조로 이루어진 잠언이다. 악인과 악인을 따르는 자와 공의를 뿌린 자와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가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허무한 것과 사망에 이르는 것이 연결되며 확실한 상과 생명에 이르는 것이 연결된다.

한 음절 단어인 ‘삯’과 ‘상’은 차이가 있다. 삯은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한 당연한 댓가이다. 삯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악인에게 주어지는 댓가는 허무하다는데 있다. NIV 성경은 ‘기만적’(deceptive)이라고 번역하였다. 우선에는 유익한 삯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망하게 하는 삯이다. 김정우(2007, 379)는 악인은 “사기 치고 공갈 협박을 하면서 ‘악의 씨’를 고통스럽게 뿌리지만 그에겐 참된 보상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석하였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이 연결된다. 악인의 삶을 계속 살게 되면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반면에 상은 자신이 반드시 노력한 것에 대한 당연한 댓가가 아니라 은총이다. 이 은총은 얻기 위해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공의의 씨를 뿌린 자에게 주어지는 인정과 칭찬이다. 공의의 씨는 당장에 발아하여 열매를 거두지는 못하지만 순종하여 뿌릴 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생의 결과가 오는 것이다. 씨를 뿌리거나 물은 준 하나님의 동역자들에게 각각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고전 3:8). 그리고 이 상은 확실한 것이다. 신실한 하나님이 분명히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라고 인정하실 것이다.

달란트 비유와 연결한다면 이 본문의 악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마 25:26). 적극적인 악을 행한 것은 아니지만 소극적으로 그는 주인이 어떤 분인지를 오해했고 삶에서 모험하며 주인의 뜻을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악한 자이다. 그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 25:25)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생명에 이르는 근심과 두려움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멸망에 이르는 근심을 하였다.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오해하며 자신의 악함을 하나님께 투사하는 자이다.

치명적인 일곱 가지 죄들 중에 나태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으름과 나태는 신앙인들의 삶에 치명적일 수 있는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으른 자의 삶에는 아무런 열매가 달릴 수 없다. 자신도 유익하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공의를 뿌린 자와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이 세상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핍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둘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순교자들은 당장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목숨을 내놓는 것은 세상적으로는 어리석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자신의 생명도 지켜주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 하며 자신이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일제 치하에서, 공산 치하에서 순교를 선택한 성도들은 분명히 영생을 선물로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아까워하며 신사참배를 합리화하며 우상숭배에 앞장섰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구원을 얻어도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상담적용 7: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합리적 정서요법에서도 단기적 유익보다는 장기적 유익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이 세상에서의 유익만 좇는 것은 악이며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받는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잠정적인 유익을 포기할 줄 아는 자가 지혜롭다.

1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얻는 구원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11:20-21).

이 본문은 A-B-A’-B’의 문장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이 굽은 자와 악인이 연결된다. 행위가 온전한 자와 의인의 자손이 연결된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 것과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연결되며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 것 과 구원을 얻는 것이 연결된다.

마음이 굽은 자와 행위가 온전한 자는 대조적이다. 행위가 온전하다는 것은 삶의 방식에서 의를 좇아가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을 걷는 자이며 그 길에서 순종하는 자이다. 반면에 굽은 마음(perverse heart)을 가진 자는 자기 고집대로 사는 자이다. 순종할 줄 모르는 자이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며 혐오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이런 인생을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처벌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벌을 받지 않고 살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이중 부정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당장에는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순식간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우주적인 종말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기치 않은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며 이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노아의 홍수도 그렇게 임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그렇게 임했다. 우리는 경고를 받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상이 되는 인간이 되는 것은 복이 있다. 그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NIV성경은 “그들은 자유롭게 행할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의롭게 사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거칠 것이 없다. 청문회 앞에서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은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13. 내면이 추한 미인의 참 모습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11:22)

NIV 성경은 삼가는 것을 ‘신중함’(discretion)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단어는 잠언 1장 초두에서 NIV성경이 잠언의 목표를 언급하면서 ‘신중함’(prudence)과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즉 잠언의 목표인 신중함이 전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을 금고리를 코에 끼고 있는 돼지에 비유한 것이다. 돼지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을 자신과 비교한 것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고마울 것이지만 아무튼 자신이 어리석은 동물인 것처럼 비하한 표현에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돼지도 똑똑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돼지는 돼지다. 돼지 코에 금고리를 끼운다고 해서 멋있는 돼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적용 8: 신중함이 없는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할 때 연결되는 모습은 연극성 성격장애와 경계선 성격장애의 일부 모습이다.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이며 외모가 받쳐주는 여성이지만 내면적인 자기는 허약하여 주목과 관심을 끄는 것에서 자기 이미지를 확인하는 심리적 수준을 가진 자라면 불쌍한 존재이다. 지속적으로 외모를 통해 관심을 끌려고 하거나 성적으로 유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 모습이 창녀 수준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 성격장애적인 면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내적 자기가 불안정해서 별 볼 일이 없는 남성조차 좋게 보면 이상화하며 성적으로 충동적이어서 쉽게, 짧은 시간에 충동적인 성관계까지 맺는다는 점에서 동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충동적으로 구매하며 앞뒤를 가리지 않고 신용카드로 백화점 물건을 마음에 드는대로 구입하거나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좋아 보이는 물품들을 충동구매하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집안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이 본문의 표현처럼 코에 금고리를 끼고 있는 돼지와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4. 의인의 소망과 악인의 소원의 결과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11:23).

‘의인의 소망’과 ‘악인의 소원’으로 표현된다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NIV 성경에서도 소원을 ‘desire,’ 소망을 ‘hope’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는 전체적으로 볼 때 소망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소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deceitful desires)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라고 권면하면서 부정적인 욕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옛 모습이라고 지적하였다.

본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서 의미를 살펴본다면 의인의 욕구는 의로운 욕구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의로우면 그 마음에서 생기는 욕구도 의롭다. NIV성경은 “의로운 자의 욕구는 단지 선한 것으로 종결된다”고 번역하였다. 반면에 “악인의 소망은 단지 진노로 종결된다”는 것이다. 김정우(2007, 383)도 “악인의 소망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라는 의미보다는 “악인이 기대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뿐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주석하였다. 의로운 자의 욕구는 선한 열매가 달리는 순기능적인 욕구이다. 먹어도 마셔도 주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은 선한 욕구이다. 그러나 악인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15. 이기적인 부자 vs. 이타적인 부자의 결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11:24-26).

본문은 역설적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부자가 되려면 절약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절약한 만큼 재산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도할 정도로 절약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도 재산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통제하고 저축하고 아낀다고 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가난하게 될 수도 있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재물에 목숨을 거는 삶을 어리석다. 과도하게 아껴도 재물이 날개를 달고 일순간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흩어 구제할 줄 알며 재정적으로 타인들을 향해 너그러운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재물이 더 풍족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한다. 김정우(2007, 383)는 잠언의 세계관에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베푸는 이들에게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결과가 올 것이라고 주석하였다. 샘물을 길어내면 더 맑은 물이 더 많이 고이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고 샘물을 아끼느라고 잘 사용하지 않으면 그 샘은 점점 고갈될 것이다. 하나님이 내신 원리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 재물이 가난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흘러가도록 하는 자에게 재물을 더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십일조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산술학적으로는 십일조를 내면 그만큼 가정 경제가 위축될 것 같지만 믿고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서 내어놓으면 하나님은 하늘 창고를 여시고 더 재정적으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것을 바라고 십일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천해보면 그 약속이 진리임을 경험할 수 있다. 구제도 마찬가지이다. 은밀한 중에 구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를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며 그에게 더욱 물질적으로 부어주신다. 이기적인 동기로 재물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재물을 맡기시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구제하는 자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이 찾아온다. 약한 자, 가난한 자가 자신을 통해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을 볼 때 삶의 의미와 보람, 자신의 가치를 더욱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흉년 때에 백성들이 곡식을 사고 싶은데 곳간을 열지 않아 값이 폭등하도록 기다려 폭리를 취하는 왕이나 지도자나 기업가가 있다면 백성들의 원망과 저주를 듣게 될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은혜로 베풀어주신 곡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의 원망과 저주에 응답하셔서 원인 제공자를 처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흉년에 곡식을 적절한 가격에 파는 것은 남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와 이런 기업과 이런 국가를 윤택하게 하신다. 성경적인 정신에 따른 기업윤리와 국가윤리를 지키면서 사업을 하며 무역을 하는 것은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는 것이다. 자원을 독점하여 가격에서 폭리를 취하거나 추운 겨울에 송유관이나 가스관을 차단하여 상대국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상담적용 9: 가정 경제를 관리하는 것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수입과 지출을 잘 맞추어서 관리하는 것은 자아(ego)가 건강하게 발달된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반면 수입보다 지출을 반복적으로 많이 하며 과소비를 하여 빚을 지거나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은 자아의 기능이 미성숙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를 들면, 경계선 성격장애의 증상 중의 하나는 충동구매이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증상들 중의 하나는 과도할 정도로 검약한 생활을 하며 타인에게 베풀 줄 모르는 것이다. 적절하게 쓸 줄 알면서 미래를 위해서 약간의 저축을 하며 필요한 경우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기쁨으로 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경제 생활 모습이다.

16.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 vs. 보물을 땅에 쌓는 자의 결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11:27-29)

이 세 절의 본문을 문장 구조로 분석하면 A-B-B’-A’-B’’-B’’’로 이해할 수 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와 의인이 연결되며 은총을 얻는 결과와 푸른 잎사귀와 같이 번성하는 결과가 연결된다. 김정우(2007, 386)는 ‘번성하다’는 동사는 ‘싹이 돋는다’의 의미이며, 따라서 마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새싹이 겨울의 추위와 어려움을 이기고 갑작스럽게 솟아나고 나무와 온 산을 가득 덮어가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고 주석하였다. 그러나 악을 추구하는 자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연결되며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와도 연결되며 미련한 자와도 연결된다. 악이 임하는 것과 패망하는 것이 연결되며 바람과 같은 소득과 지혜자의 종이 되는 것과 연결된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곧 선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팔복의 하나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다(마 5:6). 이런 사람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자이다. 이런 사람은 가뭄이 와도 견뎌낸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서 그 잎사귀가 청청하며 열매를 맺을 것이다. 위엣 것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반면 악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기의 재물을 믿고 사는 자는 반드시 잠정적인 대상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날, 여러 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쌓아두고도 그 날 밤 죽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나사로와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부자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다. 넓은 길, 쉬운 길, 세상적인 길, 세속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며 사는 자는 자기 가족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 자가 부모가 되면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가르쳐서 자녀들의 영적인 생명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돌아올 유산은 바람과 같다고 본문은 말한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신기루와 같은 것을 추구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도서 1장에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라고 선언한 다음에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a chasing after the wind)이라고 하나님이 없는 삶을 간파하였다(1:14).

17. 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응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11:30-31).

의인은 지혜로운 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의인의 삶의 결실과 결과는 생명 나무에 비견할 수 있다. 잎사귀만 청청할 뿐 아니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어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쉼을 주며 그 영혼을 소성케 하는 삶을 산다. 신약의 표현으로 하자면 지혜로운 자는 성령이 충만한 자이며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만 생명 길을 갈 뿐 아니라 그와 접촉하는 자들에게 생명 나무 역할을 하며 생명 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이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얻는’(wins souls) 자이다.

김정우(2007, 387-88)는 본문의 ‘사람을 얻느니라’는 히브리어가 해석하기가 어려운 표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기본적으로 ‘목숨을 취하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있는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본문의 문맥상 ‘“죽을 사람의 목숨을 지혜로써 건져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주석하였다. 그런 점에서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낚는 어부와 같다.

의인은 이 세상에서도 영생을 이미 누리는 자이다. 반면 악인과 죄인은 이 세상에서도 이미 영원한 심판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둔 자들이며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끔 방임하신 자들이며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이미 받은 자들이다(롬 1:27, 28 참조).

III. 나가는 글

잠언 11장의 전체적인 윤곽을 현상학적으로 그리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제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속이는 저울과 공평한 추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1절), 교만하며 사악한 자 vs. 겸손하고 정직한 자의 결과(2-3절), 공의의 효과(4-8절), 악인과 의인의 말의 결과(9절), 의인이 사회 시스템에 미치는 선한 영향(10-11절),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지혜 없는 자(12절), 신실한 자의 비밀보장 능력(13절), 지혜자가 백성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14절), 보증의 위험성(15절), 덕스럽고 근면한 사람에게 오는 결과(16-17절), 공의로운 삶의 긍정적 결과(18-19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얻는 구원(20-21절), 내면이 추한 미인의 참 모습(22절), 의인의 소망과 악인의 소원의 결과(23절), 이기적인 부자 vs. 이타적인 부자의 결과(24-26절),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 vs. 보물을 땅에 쌓는 자의 결과(27-29절), 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응(30-31절). 의인과 악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정직한 자와 사악한 자의 삶의 단기적이며 장기적인 결과와 영향을 대조시킴으로써 잠언을 읽는 자가 이 땅에서와 저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가 되도록 하는데 잠언 11장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큰 주제로 부각된다.
 
의인은 단지 자기만 유익한 삶을 사는 결과를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백성들과 사회 시스템에까지 선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점도 부각되는 주제이다. 이 두 가지 큰 주제는 목회상담자들이 내담자들을 상담할 때 그들의 심리내면적인 영역 뿐 아니라 개인을 넘어서서 더 큰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는 ‘심리체계적 접근’(Graham, 1990 참조)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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