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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해석의 문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언어적 유희가 아니다
기사입력: 2017/11/15 [07:4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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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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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봉 /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질문은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명자에 대한  강조적 질문이다.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해석의 문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언어적 유희가 아니다

 

필자가 신학교 시절에 교수님들에게 들었던 요한복음 2115절에서 17절의 내용으로 갈릴리 해변에서의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매우 지성적이고 언어학적인 것으로 들었었다.

 

요한복음 2115절에서 처음에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에서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파스 메”(ajgapa'/" me)로 물으시니까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를 친구간의 사랑인 필로 세”(filw' se)로 대답했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bovske ta; ajrniva mou.) 분부하셨으며, 2116절에서도 예수님은 똑같은 질문을 하시고 베드로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하였고, 그리고 2117절에서는 예수님은 처음과 두 번째에 물으셨던 아가파스 메가 아닌 필레이스 메“(Filei'" me)로 질문을 하셨고 베드로는 필로 세“( filw' se) 로 대답했는데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처음 두 번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파스“(ajgapa'/")로 물으셨으나 베드로는 아가파스“(ajgapa'/")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연거푸 친구간의 사랑인 필로 세“(filw' se)로만 대답하니까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필로 세“(filw' se)로 물으셨고 베드로는 다시 필로 세“(filw' se)로 대답했다는 해석의 내용이다.

 

이 장황스런 헬라어적 해석이 그럴싸하였고 매우 지성적인 기분이 들어서 필자도 굉장한 것을 터득한 것인 양 여기저기서 설교할 때 많이 써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베드로의 심령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이스 메”(Filei'" me)로 질문하실 일이지 왜 구태여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파스 메”(ajgapa'/" me)로 물으시다가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이스 메”(Filei'" me)로 바꾸셨을까? 예수님께서 베드로 하고 퍼즐놀이를 하시는 것도 아니시고 코믹한 연기를 즐기신 것도 아니실 것인데...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세 번 모두 베드로가 필로 세(filw' se)로 대답해도 세 번 모두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말씀에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것은 헬라어로 사랑을 구분할 때는 에로스(ρως)는 남녀 간의 사랑이고, 필리아(φιία)는 친구 간의 사랑이며, 종족 간의 사랑은 스트르게(στόργη) 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γάπη)라고 구분을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해석을 한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서 아가페와 필리아가 구분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1) 마태복음 10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의 비교급에서

JO filw'n patevra h] mhtevra uJpe;r ejme; 에서 호 필론”(JO filw'n)필레오의 분사로 필레오가 아가파오와 동급으로 사용되었음을 본다.

 

2) 요한복음 520아버지(하나님)께서 아들(예수님)사랑하사에서

oJ ga;r path;r filei' to;n uiJo;n, 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파오가 아닌 필레오3인칭 단수가 사용되여 필레오가 아가파오와 동급으로 사용되었음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 11:3; 20:2; 고전 16:22;; 3:19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고 세 번 답을 받아내신 것은 아가파오냐 필레오냐의 말의 유희가 아니라 3번이라는 질문과 3번의 대답에서 베드로의 목양 사역에 강조점을 두셨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3번 질문하고 세 번 답을 기다리시는 주님의 방법은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의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한 여인을 앞에 놓고 율법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어떻게 처리 하시는가 시험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먼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다음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마지막으로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고 나온다. 같은 내용을 글로 언어로 또 글로 세 번 표현하신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강조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1장의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내용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목양 사역을 세 번 강조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말장난을 하시는 예수님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목양 사역이나 복음의 핵심을 전파하실 때 주님이 사용하셨던 3번 강조 법을 배워서 모든 복음 사역에서 적용하고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석봉 목사 /
목회학박사요 철학박사이며 신학박사이다. 총회신학교와 총회연합신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했다. 총회신학교(학장/전 국회부의장 황성수 박사, 현 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5년,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하와이 브렌치(학장/티모씨 한 박사)에서 13년, 수원신학교(학장/이근구 박사)에서 10년간 성경원어교수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쳤다. 리폼드뉴스(www.reformednews.co.kr)의 논설위원이며 이석봉 목사 칼럼의 칼럼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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