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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목사임직식 설교] 거룩한 부르심(딤후1:8-12)
김영범 목사, 선한목자교회 김영범 목사(함북노회 증경노회장, 총회 재판국 서기)
기사입력: 2017/10/30 [14:20]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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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산하 전국 가을 노회에서 목사임직식이 거행되었다. 해마다 600 여명이 목사를 안수를 받는다. 그런 목사 안수를 받는 자들에게 귀한 말씀을 김영범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확인해 본다(리폼드뉴스 편집부).

▲ 김영범 목사     ©리폼드뉴스
이 가을에 노회마다 목사임직 및 강도사 인허식 예배가 열립니다. 많은 목사들이 탄생 됩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뻐할 일이고 축하 할 일입니다. 오늘 먼저 목사로 임직을 받고 강도사로 인허 받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예배에 후배와 동역자가 되시는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이르도록 참으로 여러 가지 많은 훈련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과 연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바로 그 직분이 목사라는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계급적 직분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성경적 사실은 목사로 부르심은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그 임무에 있어서 특별한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다른 직분입니다. 바로 여기 여러분이 그런 특별한 임무를 오늘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르심 곧 소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목사로 부름 받음이 어떤 부르심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목사로 임직되는 여러분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한 특별한 임무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목사로 안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먼저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이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소명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거룩한 소명입니다. 여러분은 이 ‘거룩’의 경건성과 영적감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영적체험과 영적감각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부르심 앞에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내용적으로 ‘우리의 행위대로 부르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된 것이 아닌 것 곧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하고 임직을 받으셔야 합니다.
 
1) 여러분을 목사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와 계획이 있었다는 말입니다.내가 목사로 부름 받음이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와 계획에 의한 부르심이다! 우리의 목사 됨이 여기부터 시작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2) 여러분을 목사로 세우시기 위해 영원 전부터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차원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에서 이미 계획된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을 목사로 세우시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사로 영원 전부터 계획된 부르심 입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내가 한 행위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 행위를 보면 완전 무자격자입니다.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부르심 앞에 감격해야 합니다. 아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 감사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 오기까지 고생한 것 때문에 감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은혜의 부르심의 그 깊은 의미가 내 가슴에 깊이 들어와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절대 소명감에 의한 은혜의 감격으로 거룩한 부르심 앞에 서있는 거룩한 임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하여 설교자로 부르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내용에 대하여는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복음 없이는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설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 때문에 내가 있고 그래서 그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설교자로 임직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이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설교자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의지로 특별한 사람을 선택하고 부르시어 설교자로 사용 하십니다. 여러분 그동안 신학 수업을 하고 목회 현장에서 훈련을 받은 한 가지 목적은 설교자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목회적으로 다양한 사역이 있지만 한 사람의 설교자로 탄생하기 위해 그 많은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강도사 고시를 통과하여 강도할 수 있는 설교자로 인정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야말로 전적인 설교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은 목사로 임직되는 오늘부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자라는 위엄과 부담감을 느끼셔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조금 모자라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약간의 실수도 관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설교에 있어서 모자라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틀리면 용납이 안됩니다.

▲곧은 길    ©리폼드뉴스
설교가 완전해야 합니다. 한 편의 설교가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여야 합니다. 정말 설교 한편 한편에 모든 경건함과 지식을 동원하여 진액을 쏟아야 합니다. 복음적 설교에 대가라 할 수 있는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님이 생전에 고백한 말씀이 생생합니다. “나는 설교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다”라고 말했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설교하기 위해 설교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설교를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필립스 부룩스를 아시죠? 적어도 설교학 과목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이 분을 몰라서는 안됩니다. 이 분이 1877년 “예일 설교학 강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는 한 사람에 의해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진리의 전달이다.

가장 참된 진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인격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으로서, 결코 선포된 진리 자체가 아니다” 즉 신학적 교리적 지식 그 자체는 참된 설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지식이 인격화된 삶을 통해 선포될 때 비로소 참된 설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위 강단 위에서 보다 강단 아래서의 삶이 더 중요하는 말입니다. 경건생활에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4장 6절 이하에서 경건에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설교를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설교를 위해 성경은 아무나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의지와 계획으로 부르시고 훈련하시고 연단하시고 성경을 해석하게 하시고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설교자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바로 여러분을 그 설교자 부르셨습니다.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 안에서 모든 삶 자체가 설교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셋째 거룩한 부르심 앞에서 목사로 살기 위한 그 어떤 고난도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이제 여러분은 본격적으로 설교자뿐만이 아니라 영혼을 섬기는 목회자로 살기 위해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난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목사 됨이 세상에서 출세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전적으로 복음 설교자로 살기위해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위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도 합니다만 진정한 목회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위해 설교자로 살아가는 것과 아울러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세워지기 위해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성공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인내를 잘 배워야 합니다. 복음을 위한 인내, 영혼을 위한 인내, 교회를 위한 인내 등이 쌓여 훌륭한 목회자가 탄생됩니다. 잘 인내하는 선배 목회자를 배우셔야 합니다. 끝까지 잘 인내하는 목사에게 주님이 목회의 복을 주십니다. 반드시 인내로 부르심을 완성하는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몇 가지 경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여러분은 개혁주의 신학사상과 신앙을 배우고 따르며 실천하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사상의 역사성과 그 위엄성 그리 품격을 얼마나 깊이 아십니까? 금년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얼마나 깊이 섭렵하였는지요?

마틴 루터, 멜랑 히톤, 울리히 쯔윙글리, 존 칼빈, 존낙스. 17세기 이르러 존 리차드 백스터, 사무엘 루터포드, 윌리엄 거트리, 로저 위리엄즈, 윌리엄 펜.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요한 웨슬레, 죠지 화이트 필드, 요나단 에드워드, 에디브드 브래너드, 윌리엄 케리. 19세기의 촬스 스펄존, 요셉 파커,특별히 화란의 아브라함 커이퍼와 헤르만 바빙크 그리고 미국의 벤자민 B 워필드, 프랜시스 쉐퍼 등 같은 개혁주의 사상에 철저한 목회, 설교, 정치를 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교단의 위기는 이 개혁주의 사상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목사들이 많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개혁주의를 말하지만 개혁주의 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한번 읽지 않고 개혁주의 공부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재주로 교회를 부흥시키는 분들도 많기는 합니다만, 건전한 신학사상에 근거한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목회 현장에서 이 역사적이면 전통적이며 이 풍부하고 깊이 있고 품격이 있는 이 위대하고 훌륭한 개혁주의 목사로서 품격을 지키며 목회 현장에 반영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는 순간 이미 목사로서의 거룩성과 순결성은 상실되는 것입니다.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지 마십시오. 돈 없다고 사람 찾아다니거나 외부에 손을 내밀지 마십시오. 저는 개척할 때부터 일체 외부의 도움을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선교에 힘쓰고 나름대로 나누는 목회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릇대로 다 채워 주십니다. 확실히 목회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정생활에서 경건하십시오. 특히 사모와 함께 경건생활을 잘 하시고 사모와 함께 동반 성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모와 같이 성장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목회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모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목회적 정서적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목회가 호흡이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인 것을 잊지 말고 정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건전한 수단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막히면 반드시 사고가 터집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온전히 수행하시기는 성공적인 목사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역이 마칠 때 존귀와 권능 그리고 거룩하신 왕 앞에서 성공적인 사역의 보고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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