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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소고: 성경과 신조의 관계, 웨스트민스터대소요리문답 제1문을 중심으로 1
서요한(총신대학교, 역사신학)
기사입력: 2017/09/30 [09:2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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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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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이 글은 총신대 서요한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성경과 신조의 관계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표준문서들, 대소요리문답을 연구하여 교회로 하여금 이단들의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교훈을 주고 있다.

1. 서론

주지하듯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43년 7월부터 1649년 2월까지 영국 의회의 요청으로 수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회집된 151명(목회자 121, 평신도 30-귀족 10, 국회의원 20)의 위원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 파송 8명의 목사와 장로 위원들에 의해 작성된 고백서이다. 당시 신학자들은 약 6년 동안 총 1160회 모임을 갖고 신앙고백서 포함, 대소요리문답서, 예배 모범과 정치편람을 신앙의 표준문서로 채택하였다. 이 문서가 채택될 당시 영국은 시민혁명으로 극히 혼란하였다. 당시 감독파, 독립파, 장로파 등 여러 계파는 각각의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대립적 논쟁의 중심은 통치권 행사, 즉 국가와 교회의 권력을 둘러싸고 왕당파와 의회파 간에 왕권신수설(the divine right of kings)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통치(the divine right of Christ)냐, 감독제냐 장로제냐로 장기간 대립하였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제정한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후자인 그리스도의 통치, 즉 장로제의 통치를 신학적 표준문서로 제정하였다.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 곧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며 그 분께 복종해야 한다. 이 후 장로교회에서는 개교회와 노회, 총회에서 혹은 이런 저런 행사 때 각자의 믿는 바 신앙을 본 신앙고백서를 수용하는 것으로 확인해왔다. 이 문서는 성경에 기초한 성도들의 신앙과 가치관의 형성, 특별히 인격의 함양을 위해 그리고 그릇된 이단을 경계할 목적으로 교단적으로 가르쳐왔다. 이는 결국 격동의 17세기에 청교도들이 박해 중에 어떻게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했는지를 직간접으로 보여준다.

2. 성경과 신조와의 관계

(1) 성경의 구성과 내용: 성경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세우신 구원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구성되었다. A.D. 100년 경 유대인의 얌니야 회의는 구약 24권(39)을 정경으로 채택하였고, 신약은 사도 요한 사후 300년의 논쟁 끝에 397년 성 어거스틴 주도의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될 당시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서들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당시 여러 지역에 흩어진 교회에서는 검증 없이 회람되는 문서들 중에 이단적인 단체들, 예를 들면 영지주의나 마르키온 등은 성경과 유사한 책들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책들은 대체로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과 가경이다. 전자는 그리스어 성경 70인경에 포함된 15권의 구약성경을, 후자는 헬라어 성경(70인경)에 포함되지 않은 문헌들을 가르친다. 현재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외경 8권 총 73권을 Td(정경으로 공동번역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정통 교회는 올바른 신앙을 위해 몇 가지 원리를 기초로 정경을 채택하였다. 정경 채택의 기준 원리는 (i) 사도성: 예수님과 동거동락한 사도, 제자들이 기록하였는지의 여부이다. 복음서 특별히 사도 요한은 요일 1:1-4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ii) 내용성: 성경의 내용을 공적으로 낭독할 때 사람들의 신앙과 덕을 함양할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iii) 보편성: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교회의 보편적 의식과 여러 규례들이 포함되었는지 이다. (iv) 영감성: 사도가 저술한 것이거나 사도의 영향으로 기록되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를 기준으로 채택되었다. 성경은 어원상 라틴어 정경Canon의 번역으로 헬라어 카논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막대기 혹은 자를 가르치나 상징적으로 신앙생활의 규범 혹은 표준을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 생활에 유일하고 궁극적인 규범임을 말한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 계시 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구원의 책, 생명의 책, 영생의 책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 위엄과 권위, 지혜와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과 우주, 천지창조,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과 지음 받은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가르친다. 여기에는 이 세상과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가 포함되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이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에게 세상을 잘 관리하며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다(창 1:28-31). 아담은 창조주의 뜻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을 건설해야 하였다.
 
따라서 성경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지음 받은 인간을 보여주며, 특별히 인간에게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면, 43:21, 45:7,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셨다.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마 22:21; 막 12:13-17; 눅 20:22-25)고 하셨다.

(2) 신조의 필요성: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믿는 자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에 교회는 각각의 신앙을 확인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였다. 정통교회, 즉 장로교회는 초대 교회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을 제1경전, 신조를 제2경전으로 삼아 이를 신앙생활의 규범으로 믿고 실천해 왔다. 신조는 성경을 기초로 작성된 고백서로, 성경으로 인도하는 지도책이다. 따라서 성경과 신조는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는 그의 「신조사」(The 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8에서 성경을 기초로 작성된 신조(Creed, Rule of Faith, Symbol)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이라고 하였다. 사도 신경은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교회가 고백해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1907년 최초로 12신조를 채택하였고, 그 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25년 배위량 선교사가 번역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1959년 WCC 문제로 예장 교단 분열 후 1963년 예장 합동 총회에서 노진현 목사의 보고 후 채택하여 지금까지 고백해 왔다.

3. 신조의 정의

신조는 인간의 공적 활동을 위한 믿음의 고백이자 구원을 위해 또는 기독교회의 영적 유익을 위해 그 필요성을 확신한 내용들을 교회나 교단, 총회의 권위아래 공포한 말이나 언어의 형태이다. 그런데 신조는 여러 시대를 거치며 고백된는 바, 작성된 신조들은 각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였다. 신조 중에 최초의 사도신경은 대중적인 형식으로,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보통 에큐메니칼 신조로 불리는 325년 이후의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등이며,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와 그 후에 전 세계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목회자나 교사들을 위해, 신앙 교육을 목표로 고백되었다.
 
그러므로 신조는 성경의 가르침의 요약으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의 신앙을 하나로 통합한다. 또한 이단 사이비 같은 거짓 교훈과 생활을 막아내는 신앙의 공적 표준이요 방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형식화된 신조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신조를 잘 배워 마음에 새기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참된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 바른 신조는 올바른 신앙생활에 나침판이기 때문이다.

3.1. 신조의 권위

성경에 기초한 신앙의 규범(the rule of faith, regula fidei)으로 신적이다. 그러므로 공적,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성경은 목사와 평신도의 믿음과 행위일체를 지배한다. 따라서 올바른 신앙고백은 교리의 규범(the rule of doctrine, regula doctrina)으로 교회적이며, 상대적 권위를 갖는다. 또한 신조는 교회정치, 예배 의식, 찬송가 등과 관련된 교회 헌법과 같은 교회 직분자들의 공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끼친다.

3.2. 역사적 신조의 실례

(1) 성경의 사례: (구약): 출 19:7-9, 모세가 계명을 받았을 때,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신 31: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한편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수 24:14-18,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선포하였다.

(신약): 대표적으로 베드로와 도마, 그리고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다. 마 16:16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 20:26-29은 도마의 신앙고백으로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한편 사도 바울의 고백은 여러 서신에서 발견되는바 대표적으로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빌 1:19-21,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등이다.

(2) 역사 속의 신조들: 1517년 루터와 함께 시작된 종교개혁은 파죽지세로 약 2개월 만에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 내 개신교 개종자들에게 신앙고백이 요청되었다. 이후 유럽의 여러 지역 교회들은 각각의 형편에 따라서 급박한 변화의 와중에서 교단별, 교파별 교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중세의 해묵은 교회의 전통과 싸워 쟁취한 종교개혁의 신앙적 유산을 다양하게 적용하였다. 그 결과 종교개혁은 이제 교조주의 시대로 교리적 전성기를 개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각 교파의 교리와 교회조직을 통해 각 교파가 채택한 신앙고백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상기한 고백서들은 각자의 특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i) 교리적-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ii) 국가적-독일, 영국, 스위스, 스코틀랜드, 화란, 독일 등, (iii) 언어학적-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 등이다. 이 고백서들의 공통점은 모두 반 가톨릭적으로 칼빈의 제네바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이 고백서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그의 주되심, 성경의 권위, 윤리와 권징을 강조하였다. 그 중에 갈리안 신앙고백서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공동체가 그것을 함께 고백함을 강조하였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보다 객관적으로 성경의 계시와 영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며, 채택 후 지금까지 세계 개혁 장로교회에서 고백해 오고 있다.

4.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표준문서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모인 151명(평신도 30/10명은 군주, 20명은 하원의원)의 위원들은 1643년 7월부터 1649년 2월까지 약 5년 6개월 동안 1,163회 소집을 통해,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소집되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위원회별로 각각 모였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채택한 표준문서는 다음과 같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총 33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진리의 원천인 성경을 다루며, 제2장-제5장, 하나님의 주권과 동시에 기독교 신앙의 전체 개요를 논리적으로 배열하며,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다룬다. 제6장-제20장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한다. 제21장-제26장까지는 기독교의 삶과 윤리를 위해, 하나님의 율법, 양심의 자유, 교회와 국가, 결혼과 이혼 등을 서술한다. 마지막 부분인 제27장-제33장은 교회, 성례, 마지막 일들을 취급한다. 그러나 최종 입법 과정에서 20장 4(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에 관하여), 24장 4, 5, 6항(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30장(교회의 권징, 책벌들에 관하여), 31장(공의회와 협의회들에 관하여)은 수정 후 채택되었다.

(2) 대/소요리문답은 총 196문으로 사도신경, 십계명, 성례, 주기도문을 설명한다. 이는 안토니 터크니와 제임스 어서의 요리문답의 영향으로 1647년 10월 22일 의회에 제출되었고 1648년 9월 15일 승인되었다. 소요리문답은 총107문으로 사도신경, 십계명, 성례, 주기도문 구조를 설명한다. 1647년 11월 25일 의회에 제출, 1648년 9월 15일 승인되었다.

(3)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청교도적 예배 원리를 대부분 수용하였다(1645). 대신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주장한 퍼스 5개 조항과 오락의 책을 통한 주일성수, 그리고 1637년 윌리엄 라우드(William Laud)의 기도서 등 박해에 맞서 작성되었다. 내용은 서문, 예배의 태도, 성경낭독, 설교 전 기도, 설교, 설교 후 기도, 성례전, 주일, 결혼식, 환자 심방, 장례식, 공적 금식, 감사일, 시편찬송, 날과 장소 등이 포함되었다.

(4) 웨스트민스터 정치편람(모범): 1644년 12월 11일 제출되었고, 1647년 6월 29일 채택 전 독립파와 에라스티안파가 탈퇴, 장로파 중심으로 수용되었다. 내용은 서문, 교회, 교직자, 목사, 장로, 집사, 개교회의 규칙 및 모임, 노회, 당회, 목사 안수, 안수 시험 규칙서가 포함되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