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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총회와 총신대 재단이사회의 10년 투쟁사
10년(2008~2018) 동안,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기사입력: 2017/09/07 [06:2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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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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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당시의 총신대학교 운영, 재단이사회의 장들은 호남인이었다. 그 찬란했던 호남이 어떻게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충청권의 화려한 등장과 몰락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는 1912년에 설립됐다. 총회는 교단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교단내 전국 교회를 섬기고 운영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해 왔다.

그 신학교를 평양장로회신학교, 장로회신학교, 총회신학교, 총회신학원,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조선신학교는 교단의 신학적 입장과 멀어졌기 때문에 총회 역사 연혁에서 삭제시키고 있다.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총회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국가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하여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으로 하여금 신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근의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총회는 총신대학교 학교법인 재단이사회와 논쟁과 투쟁이 일어났다. 특히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총회의 결정에 순복하기보다는 사립학교법이란 미명아래 법인 독자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총회는 총회의 직할하에서 교단 내부적으로 법인 이사회는 총회 결의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법인 이사회가 총회의 결정에 따르기 보다는 총회결정에 반한 독자적인 법인의 운영과 학교를 운영하겠다고 하자 총회와 총신대학교 법인 이사회 사이에 투쟁이 일어났다.

그 투쟁이 2008년 부터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그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후손들에게 이 상황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10년 동안의 투쟁사를 집필하고 있다.

총회와 총신대학교 법인 이사회와의 최근의 투쟁 역사를 누군가가 기록하여 보존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찬란했던 과거 정규오 목사와 이영수 목사 시대의 영광과 몰락이 어떻게 총회와 총신대 재단이사회에 투영되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실명을 공개하면서 역사의 현장에 대한 1천 페이지가 넘는 기록이다. 2018년까지를 포함하여 기록할 것이다.

역사를 통한 교훈을 거부할 경우, 그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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