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교회갈등의 원인에 관한 연구 1
안은찬(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7/08/09 [10:01]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안은찬 박사
이 글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안은찬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교회갈등의 영적 원인과 신학적 원인, 심리 문화적 원인과 정치 행정적 원인, 법적 원인등을 살펴보고 교회의 갈등에 대한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Ⅰ. 들어가는 글

교회갈등(church conflict)이 일반적으로 보편적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목회자 후보생들은 자신이나 자신들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교회분쟁을 판결하는 사법 체계마저도 교회갈등의 보편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곤 교회분쟁을 일반 사회단체의 성격으로 판결해버리고 만다. 세상을 항해하는 교회(배)에 그리스도가 타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교회갈등의 풍랑이 일어난다고(마 14:22-33) 우리는 구경만 할 것인가?

한편 교회 안에서 갈등이 심한 이유는 교회갈등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수성은 원인에 있어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교회갈등의 보편적 측면은 교회가 특수하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성질에 기인한다. 물론 왜 교회가 일반 사회단체보다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갈등은 보통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인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은 갈등과 분쟁을 다루는데 있어서 결정적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인문사회과학의 자료를 원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성경과 신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전제에 입각한 간접적 추론 방식’(the indirect method of reasoning by presupposition)을 사용하기로 한다. 이에 대한 인정 여부는 과연 전제 없는 인문과학이 가능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갈등의 원인들을 밝혀내는 방식은 부분적으로만 사용하기로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현대교회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밝혀 보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갈등과 분쟁의 해결 방안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있다. 물론 본고에서 교회갈등의 각 원인들 간의 상호관계 변수 분석이나 교회갈등의 해결 방법 등은 본 논문의 범위를 넘는다. 하지만 교회갈등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그 예방과 해결의 선행 연구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교회갈등의 원인을 분류하여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Ⅱ. 교회갈등의 영적 원인

먼저 교회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적(靈的)이다. 물론 무신론자들은 이 부분의 원인을 과소평가한다. 사회학적 인간관계로만 교회갈등과 분쟁을 보게 되면 교회싸움의 근원적인 원인을 알 수 없다. 모든 갈등과 분쟁은 그 원인이 인간학적이고 사회학적 원인이 있지만5 교회의 분쟁은 깨어진 인간관계를 넘어 영적인 차원이 있다.

1. 여호와의 샬롬과 사탄의 궤계

교회갈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신정론(theodicy)의 입장에서 다양한 모델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의의 관점에서 일어나는 교회갈등 속에 존재하는 ‘고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교회갈등은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와 사탄의 궤계라는 차원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인간들 사이의 충돌이 있기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탄의 궤계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교회의 갈등과 분쟁이 이 원인으로부터 온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영적인 부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의 갈등과 분쟁은 ‘여호와의 살롬’(Johovah’ shalom) 개념을 이해할 때 보다 잘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샬롬’ 개념은 미디안과 전쟁하기 위해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삿 6:24). Hugh F. Halverstadt에 의하면 샬롬의 기독교적 비전은 다음과 같다.

“샬롬은 교회갈등에 있어서 선과 악의 표준을 넘어 모든 가치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의 샬롬의 비전은 하나님의 사랑, 정의, 구속, 자유, 진리 및 연민 등을 포괄하는 전체성(wholeness), 건강함(health) 그리고 안전(security)의 개념이다.”

Jack L. Stotts도 샬롬에 대한 총체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샬롬은 개인적인 평정을 의미하거나 마음의 평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샬롬’은 사회적 존재로서 특별한 상태이며, 그것은 모든 요구와 필요가 충족 되어지는 상태이며,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친교의 관계이며, 모든 창조물에 대한 충만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많은 신들 중의 한 분이 아니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영적 질서와 완전함의 회복은 구속의 역사에서 전쟁의 선포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의 ‘여호와의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 선민의 국경 분쟁이 아니다. 당연히 ‘여호와의 전쟁’은 이방민족과의 영토 전쟁이 아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적 전쟁이며 실제 이 역사 안에서의 전쟁이며 ‘여호와의 샬롬’을 성취하기 위한 진리의 프락시스이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와의 샬롬’이 신약교회로 이어지는 바 교회갈등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사탄의 궤계와 역사가 있다. 신약시대는 구약의 전쟁처럼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싸움이 실제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2. 영적 충돌의 필연성과 교회의 대적사역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영적 충돌(spiritual collision)의 필연성을 인정하여만 한다. 물론 그 영적 충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탄 혹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사탄이 일으키는 경우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함으로 일어나는 것이다(욥 1:12).

Halverstadt은 복음 자체 안에 교회갈등의 원천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갈등은 진리성의 추구와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야 하는 영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 12:49, 51)라고 말씀하셨다.

Jim Van Yperen은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엡 6:12)과 싸우는 우주적 전투에 임하는 자들이라고 평가하고 교회는 사탄의 힘을 너무 과소 평가하거나 그 존재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며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사탄의 영향력은 교회가 시험을 받는 것에서부터 완전히 귀신의 통치를 받는 귀신 들림의 현상까지 다양하다.

교회갈등과 분쟁은 하나님의 심판과 악에 대하여 교회훈련(권징)을 통해 진리와 목양을 보호하여야 하는 책무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목회자의 ‘대적사역’으로 나타난다. 목회사역에서 대적사역(confrontation ministry)은 ‘여호와의 샬롬’의 차원에서 사탄의 궤계와 전략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다. 이것은 교회의 목양적 차원을 넘어 목회를 방해하거나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그러므로 교회갈등과 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영적인 ‘여호와의 샬롬’ 개념에 유의하여야 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그 대적자 사탄의 궤계와 전술에 대해 조심하여야 한다. 교회 안에는 사탄의 궤계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교회갈등을 일으키는 소위 ‘목사 킬러들’(clergy killers)과 ‘적대자들’(antagonists)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교회 분쟁 시에 앤태거니스트들은 단순한 비평이나 건강한 건의의 차원을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목사 킬러들은 교회의 중요한 직분과 직책을 가진 교인일 수 있으며 오히려 교회에서 오래된 신자일 수도 있다. 심지어 종교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단들이 신분을 숨기고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처럼 숨어들어와 일정기간 잠복하고 있다가 다수의 세력을 확보한 다음 실정법의 허점을 노려 교회 재산을 뺏으려는 의도적인 적대자들이 있을 수 있다.

앤태거니스트들은 교회갈등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Speed Leas에 의하면 이들은 교회갈등의 수준과 발전단계에서 제3단계인 논쟁 단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3단계에서의 싸움은 문제 해결과 좋은 방향으로의 해결점보다는 자신의 방식대로 오직 승리를 원할 뿐이기 때문이다.

Kenneth C. Haugk은 회중 가운데 적대관계가 일어나는 이유는 앤태거니스트들의 적대적 본성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는 본성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기 쉬운 회중의 구조 때문이라고 보았다. 교회의 회중 구조는 앤태거니스트들의 온상이 되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다. 그들은 교회 밖에서 대개 성공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교회 밖의 구조는 모든 것을 참아주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인들의 구조는 반대자들을 적절히 참아주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대자들은 이러한 “가족감정”(family feeling)을 쉽게 남용한다.

3. 교회의 거룩성의 왜곡

위와 같은 영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교회갈등은 교회의 거룩성이 사라질 때 역동적으로 일어난다. 사탄의 궤계로 교회는 건전하고 바른 영성에서 벗어나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교회는 실천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의 통로인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만찬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힘으로 일어난다.

Yperen은 이런 영적인 측면을 지적했다. 지성적인 교회와 감정적인 측면으로 기울어진 교회들은 성령의 사역과 그 열매에 민감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거룩성이 왜곡되면 교회 안에서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적용하는데 실패하여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동행하며 사역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된다.

왜곡된 영성은 초기에는 경도된 쪽에서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신앙 공동체가 이끌려가지만 어느 지점에 오게 되면 교회의 거룩성은 사라지게 되고 영적으로 침체된다. 이때 사탄은 영적으로 교회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다. 즉 모든 분쟁은 즉각적으로 어떤 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죄들이 잠복되어 있다가 교회갈등의 어느 계기적 사건(triggering events)이 건들려짐으로 폭발적으로 증폭한다.

Ⅲ. 교회갈등의 신학적 원인

교회갈등의 신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교회갈등 연구가들이 끊임없이 지적하여 왔다. 교단 분열은 이미 너무나 큰 신학적 차이에 의해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지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처음에는 같은 신앙고백으로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신학적인 문제로 교회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갈등은 항상 문화적인 문제, 조직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그리고 신학적 문제와 함께 얽혀 일어난다.

Halverstadt은 교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추잡한 싸움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파트너의 감정과 행동을 형성하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갈등에는 당파의 핵심 정체성(core identities)이 위험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당파 핵심 정체성은 거의 신학적 요인과 결부되어 있다.

1. 인간의 죄악성과 창조성의 긴장

불법적인 분쟁에 대한 성경의 통렬한 비판은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고대시대부터 나왔다. 국내외 교회갈등 연구가들은 모두가 교회갈등의 원인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타락과 부패로 인한 시기심과 질투 등 인간의 죄악성을 강조하였다. 독사의 알이 밟혀 터지면 독사가 나오듯이 인간의 죄악성이 터지면 영적 독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사 59:4-5).

David W. Kale은 교회갈등의 원인 중 영적인 문제(spiritual problem)의 범주에서 질투심, 용서의 부족, 육욕, 시기심 등을 지적했다. 현유광은 신학적 원인으로 인간의 죄성과 발전 성장의 욕구 등을, 김선기는 죄성과 변화가 가져오는 성장 등을 제시했다.

위와 같은 인간의 죄악성은 그 반대편의 인간의 창조성에 의해 저항을 받아 교회갈등이 발생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창조성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창조성은 교회의 비전과 성취와 성장발전의 욕구를 자극함으로 인간의 죄악성에 기인한 시기와 질투와 모함과 정략을 불러일으킨다. 교회갈등은 가끔 현상 유지에 대해 도전하고 변화시키고자하는 기독교적인 창조성 때문에 일어난다.

2. 기독론적 인간관 및 교회관의 충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론과 관련하여 인간 존재의 목적 논쟁은 교회갈등의 신학적 근원을 말해준다. 그것은 Charles Hodge와 Nathaniel Taylor 간의 신학 논쟁에서 드러난다. 미국 장로교회에서 구학파(Old School)와 신학파(New School)의 논쟁은 미국 장로교회의 분열의 핵이다. 그들의 논쟁으로 미국 신학계는 진보와 보수로 양분되었고 교회도 분열되었다. 구학파와 신학파의 논쟁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속죄론과 인간 존재의 목적에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성결이냐 아니면 행복이냐이다. 찰스 하지는 테일러의 행복지향적인 인간 존재목적론에 대해 반대했다. 이 분열은 오늘날 지교회의 목회철학과 교회의 사역 지향점에 따라 교회갈등의 근원적 역할을 한다.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차이에서 실재론적 교회관(realism perspective)과 유명론적 교회관(nominalism perspective)이 문제가 된다. 실재론적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나 사역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실재적으로 교회에 그대로 적용한다. 그들에게는 보편(universalia)이 ‘개체보다 앞서서’(ante res) 실재하기 때문에 교회관에 있어서 보수적이다. 그러나 유명론적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은 보편의 실재성을 부정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개체이기 때문에 보편 개념은 ‘개체의 뒤에’(post res) 만들어진 기호나 이름(nomina)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다.

이러한 교회갈등의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성만찬 논쟁을 비롯하여 예배와 예식의 양식 등 전통적 예배관과 자유로운 예배관의 충돌을 낳게 하여 교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John M. Miller의 교회론적 분류는 갈등의 원인을 유추하게 한다. 그는 교회론적 견해 차이의 유형을 이상적인 교회 vs. 실재적인 교회(The Ideal Church vs. The Real Church), 강경파 기독교 vs. 온건파 기독교(Hard-Core Christianity vs. Soft-Core Christianity), 최전선 교회 vs. 요새 교회(The Fortress vs. The Front Line), 도착한 교회 vs. 도착중인 교회(The Arrived vs. The Arriving), 하나님의 민주주의 vs. 하나님의 관료주의(God’s Democracy vs. God’s Bureaucracy), 흠 없는 신부 vs. 사회 중재자 교회(The Spotless vs. The Arbiter of Society) 등으로 분류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을 논하였다.

3. 목회관과 목회 리더십의 충돌

교회갈등은 담임목사는 물론 회중들과 교회 안의 여러 기관들의 목회관의 충돌로 일어날 수 있다. Shelley는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인물로부터 목회자의 두 가지 다른 역할 모델이 존재함을 밝혔다. 그는 다윗과 솔로몬의 사역과 삶의 은유(a metaphor)를 통해 두 가지 목회자의 모델을 보여준다. 이 은유를 통해 목회자는 전사(a warrior)로서의 역할과 성전 건축자(a temple builder)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모델을 지향하는 목회자와 회중이 서로 조화되지 못할 때 교회갈등은 잠복되어 있다가 어느 결정적인 계기에 교회분쟁이 증폭될 수 있다. 교회갈등은 목회자와 장로 혹은 교회 중직자들 그리고 회중들이 지지하는 목회의 모델이 새로운 리더십이나 교회 지도자가 바꾸어질 때(특히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교회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목회의 모델은 그 외에도 목양 모델, 제사장 모델, 군사 모델, 봉건모델, 비즈니스 모델, 진단자 모델, 의사 모델, 종의 모델, 변화 모델 그리고 셀모델 등이 있다. 이러한 목회의 모델들은 현대 목회관의 다변화와 맞물리면서 교회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갈등은 일견 작은 사건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 목회신학적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충돌의 분석은 21세기 목회신학의 방향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또 모든 갈등은 지도자의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교회갈등의 핵심적 주체는 목회자와 그의 리더십이다. 목회자의 대인관계 능력과 리더십 유형은 교회갈등의 가장 일차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평신도신학의 보편화로 목회자의 단일 정상의 리더십 구조가 도전을 받으면서 교회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목회자의 왕의 리더십(King Leadership)이 종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조화되지 못한 머리쉽(headship)이 회중들과 혹은 장로들과 충돌하는 경우 등이다. 또 교회 안의 주도적 리더십(Leadership)과 도움을 주는 헬퍼십(Helpership)의 역할 혼동이다. 이 문제는 목회신학적으로 목사의 존재론적 지위와 기능적 지위의 본질적 관계가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또 목회 주체로서 목회자와 그 기관과 대응되는 목회 객체로서 교인 주권과의 본질적인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교회갈등은 목사의 지위와 본질의 혼동, 목회의 주체와 객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퍼스낼리티는 교회갈등의 봉인이다. 교회갈등의 중심에는 목회자의 도덕적 가치와 몸가짐이 문제된다(딤전3:1-16; 5:17-25). 이것이 터지면 분쟁은 격화된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인격의 부족, 빈약한 목양 관계, 진실을 기초로 한 성실성의 상실 그리고 소명감의 부족 등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를 바라는 회중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교회갈등을 일으키는 잠재적 원인이다. Ron Susek은 목사의 4대 힘의 기둥과 교인들의 4대 욕구인 진리(Truth), 관계(Relationship), 진실성(Integrity), 사명(Mission)의 차원이 충돌할 때 교회싸움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Ⅳ. 교회갈등의 심리 문화적 원인

Donald E. Bossart는 교회갈등의 원인으로 사회학적 역학, 심리학적 역학, 신학적 역학 등을 들었다. 그에 의하면 갈등은 불안(anxiety), 적대감(hostility), 공격성(aggression), 양가감정(ambivalence), 무의식적 의지와 의식적 의지(the unconscious and conscious will), 자아 정체성(ego-identity), 자아 인정감(selfacceptance),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 등 심리학적 요인이 사회적 요인과 결합되면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또 그에 의하면 갈등의 신학적 원인은 개인의 심리적 원인들이 하나님과 결부되어 일어난다고 보았다. 개인적인 적대감은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고 그 표적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목회자에게 표출되거나 교회 안의 반대 그룹을 향하여 표출된다.

1. 교회갈등의 잠재적 문화 요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회원의 입회와 퇴회에 대해 특별한 규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원의 다양성은 당연히 교회갈등의 문화적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남홍은 Keith Huttenlocker의 견해에 따라 교회갈등의 원인으로 잠재적 원인을 지적했다. 잠재적 원인은 교회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그 교회만의 독특한 문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Huttenlocker는 교회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잠재적 원인을 과접촉(high exchange), 과기대(high expectations), 과참여(high involvement), 저이해(low understanding), 저존경(low respect), 저신뢰(low trust) 등으로 제시했다.

과접촉은 예배와 교육 그리고 친교를 위하여 적절한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친밀한 문화 속에서 일어난다. 과참여는 교회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헌신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교회 살림살이에 대한 주인의식이 소유의식으로 발전되어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참여하려고 한다. 만약 교회의 건전한 시스템이 없는 경우 과참여하려는 중직자는 교회갈등의 중심인물이 된다. 특히 저존경 문화에서 목사에 대한 존경의 정도는 중요한 교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이다.

2.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 여부

먼저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와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수용되지 못할 때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지도자들은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교회에서 공동체를 매우 강조하고 있지만 과도한 공동체 중심은 역사회화(逆社會化 dys socializtion)의 문제가 발생함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로부터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보낸 로마서의 로마교회는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인들간의 갈등에 대해 연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이해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이다(롬 14:1-15:13). 형제들을 무시하고 판단하는 자세는 교회갈등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감성 중심의 왼손잡이 문화(left-handed cultures)와 이성 중심의 오른손잡이의 문화(right-handed cultures)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교회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양 문화는 분석적 사고방식(analytical thinking)과 해석적 사고방식(interpretive thinking)의 차이와 비슷하다. 해석적 사고는 보편 개념을 사용하면서 항상 전체를 고려하며 전통과 역사성과 통찰력과 관련된다.

주로 남성들이 해석적 사고를 한다. 분석적 사고는 시작과 관련되고 객관적이지만 해석적 사고는 전체성과 관련되고 주관적이다. 교회갈등은 이 두 문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일어난다.

3. 커뮤니케이션의 왜곡

교회를 가족으로 보고 가족치료학의 치료 모델 중 구조적 가족치료이론과 의사소통 가족치료이론을 원용하여 교회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Charles H. Cosgrove와 Dennis D. Hartfield는 교회갈등이 교회가족구조(Church Family Structure)의 문제나 의사소통의 문제로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물론 이 유형화는 구조적 가족치료의 창시자인 Salvador Minuchin의 가족치료이론을 원용한 것이다. 미누친은 가족을 전체체계와 부분체계간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체계간의 “경계선”(boundaries)의 형태에 따라 가족의 건강성이 측정되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이 경계선을 이상적인 가족 구조인 ‘분명한 경계선’(clear boundaries), 격리된 관계인 ‘경직된 경계선’(rigid boundaries) 그리고 밀착된 관계를 만드는 ‘혼란한 경계선’(diffuse boundaries) 등으로 구분하고 뒤의 역기능적인 관계에서 ‘분명한 경계선’을 세우는 가족치료의 한 모델을 세웠다. 이러한 모델은 교회가족구조의 갈등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나 모든 교회가 가족 구조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적용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총신대 재단이사회 총회 흔적 지우기 정관변경 충격 /리폼드뉴스
총신대 총장 답변, “정관변경 나도 궁금하다” /리폼드뉴스
제102회 총회 총대 영구제명 건, '법원 판단받는다' /리폼드뉴스
법원, 충남노회 노회개최 금지 가처분 기각 /리폼드뉴스
폐당회 2년 유예기간 중 위임목사, 노회장 총회총대 자격유무 /리폼드뉴스
강도사 설교권, 목사의 설교, 및 치리권의 인허 임직식 /리폼드뉴스
울산남교회 소송의 경과 “남송현 목사 측 완승” /리폼드뉴스
사실확인 없이 금품수수 폭로자 명예훼손죄로 피소 /리폼드뉴스
총신대 재단 정관변경, 이사자격 ‘총회소속’ 삭제 꼼수 /소재열
마지막날 총회 회무 무효되면 총회재판국 판결이 확정 /리폼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