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개혁주의 율법론 2
신현우(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신학)
기사입력: 2017/08/02 [09:4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     ©리폼드뉴스
이 글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신현우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개혁주의 율법론과 구분과 이해, 그 율법의 기능에 대해 연구하여 오늘 교회가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복음과 율법관을 제시하고 있다.


2. 사회 제도의 표준으로 기능하는 율법: 시민법

율법의 원리를 담은 도덕법을 구체적으로 사회에 적용한 것이 시민법(lex civilis)이다. 이형국은 시민법을 형사법, 민사법, 사회법으로 세분하기도 하였다. 개혁신학의 전통은 신약 시대에 민법이 폐지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다만 적용할 때 시민법의 문자가 아니라 당시 사회와 오늘날의 사회의 차이를 고려하여 이 법의 의도가 실현되도록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이스라엘 사회에 적용된 시민법의 지속적 규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 법을 다른 시대의 다른 사회에 적용할 때에는 당시 사회에 이 법이 적용된 의도를 고려하여 적용하는 모범을 이자금지법 적용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 그는 이자금지법의 의도가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므로 상업과 금융이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업적 이자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 법을 재해석하여 이 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은 이 법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자가 생활비로 사용해야 하는 빚의 경우에는 무이자로 빌려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이 법의 정신에 따라 제네바에서 행해지던 연리 10~20%의 고리의 이자율을 반대하고 연리 5% 이상의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였고 후에 6.67%까지 적용하는 결정에는 동의하였다.

바빙크는 (시민법을 포함하여) 율법을 어떻게 그 정신에 따라 적용할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를 예수의 산상설교에서 발견하였다. 산상설교 외에도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마가복음 3:4-5은 예수의 안식일 법 적용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해석하시고 병자를 고치신다. 바리새인들은 문자를 따라 율법을 적용하고자 했지만, 예수께서는 율법을 그 의도에 따라 적용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한다(막 3:6). 박형룡은 이스라엘 신정국에 적용된 법들을 국가적 율법이라 부르며, 이 법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특수 상황에 적용된 것이므로 다른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박형룡은 형벌을 정하는 구약의 율법들이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그 조항이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성이 계속 유효할 수 있다고 보면서 그 판단 기준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기준은 “그것의 계속적 권위가 신약에서 인정”되었는가 하는 것이며, 둘째 기준은 “어느 율법이든지 그 이유 혹 근거가 영구적이면 그 율법 자체가 영구하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면 어떠한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은 율법의 권위를 일점일획까지 전반적으로 인정한다.
 
마태복음 5:17-18은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며, 율법의 일점일획까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복음 16:17은 신약시대에도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고 한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한다. 여기서 ‘모든 성경’은 모든 구약 성경을 가리키므로 구약의 영감과 유용성이 인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일부인 시민법의 경우도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서철원은 시민법이 현대 사회 속에서 실행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서 교회가 이를 국가 시스템 속에서 실행할 물리적 힘이 없음을 들면서 시민법에 여전히 규범성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시민법이 단지 교회에 힘이 없어서 실행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으로서 박형룡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민법의 규범성을 주장하는 관점이다.

이상원은 시민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 해석학적으로 접근한다. 그에 의하면 시민법은 신약 시대에 문자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지만, 폐기되지 않았고, 그 법의 정신을 찾아서 사회와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의 시민법 적용 전통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관점이다.

김정우는 도덕법만이 신자에게 규범성을 가진다고 보는 오해는 시민법의 적용에 둔감하게 하여 결국 사회 윤리에 대한 둔감함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오해를 모든 성경이 범사에 유익하다고 가르치는 디모데후서 3:16을 통하여 정정하고자 했다. 그는 시민법이 사회 속에 구현할 공평하고 정의로운 제도의 모델을 제공해 준다고 지적하며 한국교회가 율법과 은혜를 대립시키는 세대주의의 틀을 벗어나 개혁주의적 율법관을 회복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김정우는 율법관이 기독교 사회 사상을 형성하는 세계관으로서 기능함을 잘 파악하고, 개혁주의 율법관을 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의 사회 정의 운동과 접목시키는 신학적인 기여를 하였다.

김정우는 한 편으로 시민법의 규범적 연속성을 지지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신율주의(theonomy)를 반대하면서 개혁주의적 율법론 전통을 잘 계승한다. 그러나 그는 신율주의를 비판하는 의욕에 넘친 가운데 시민법의 일부가 폐지된 것처럼 주해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구약의 재판법인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와 관련하여 예수께서 제시하신 복수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구약 재판법의 원리를 폐지하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빙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반대하신 것은 구약 재판법의 원리가 아니라 이 원리를 오용하여 복수의 원리로 가르치는 서기관들의 율법해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바빙크의 주해에 따르면 예수에 의하여 구약 시민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서기관들의 구약 시민법 해석이 비판된 것이다.

루터는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모세법은 세속 정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루터는 특히 희년법의 정신을 세속정부의 통치 원리의 하나로 제시한다. 그는 세속 정부가 희년법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좋은 통치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이 법을 모델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다.

개혁신학자 칼빈은 좀더 적극적으로 희년법을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는 희년법의 정신을 사회 질서를 위한 표준으로 제시하였다. 칼빈은 국가가 질서를 위해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하지만, 재산이 공공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하며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희생되면서 다른 일부가 재산을 획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정기적으로 토지를 재분배하고 빚을 탕감하여 재산이 사회적 억압의 토대가 되지 않도록 한 희년법을 인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칼빈은 땅을 처분해서라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누가복음 12:33을 해석한다.
 
칼빈에 의하면 누가복음 12:33의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는 소유를 전혀 가지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재산을 줄이고 땅을 처분하기까지라도 하라는 명령이다. 이러한 해석은 누가복음 12:33을 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희년법의 정신의 적용으로 본 것이다. 희년법은 토지 소유를 포기하는 법이 아니고, 토지를 영구히 빼앗기는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함으로써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이러한 희년법의 정신을 따라서 누가복음 12:33을 읽으면 이것은 사유 재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희년을 실행하여 토지 등의 가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까지 적극적으로 가난한 자를 돕는 원리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신약 시대에 희년법의 규범성이 여전히 지속됨을 믿는 루터와 칼빈의 입장은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이미 발견된다. 교부 암브로시우스(Ambrosius)는 희년법의 규범성을 계속 믿었다. 그는 『6일간의 천지창조』에서 희년의 가르침에 따라 토지의 경계표인 지계석을 옮기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크리소스토무스(J. Chrysostomus)은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희년법(레 25:23)의 정신에 따라 우리는 모두 토지나 집을 사용할 뿐 아무도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도 희년법의 정신의 적용하며 하나님의 법에서는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시편 24:1을 인용하며 이러한 신법의 원리를 주장하였고, 사람들이 토지를 자기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지 황제의 법의 의한 것일 뿐이므로 토지를 교회의 이름으로 자기의 것이라 함부로 주장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상원은 희년법의 정신을 기독교 윤리학에 적용한다. 그는 모든 토지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따라서 상업적 (영구) 거래 대상이 되어선 안 되게 하는 희년법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하여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희년법의 정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계의 방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김정우는 희년법을 도덕법으로 간주하는 것에는 불편을 느끼면서도 토지없이 자유가 없을 정도로 사회 경제적으로 토지가 중요한 점을 고려하여 희년법이 도덕법적 차원을 가짐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희년법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규범성을 가짐을 인정하는 입장을 반영한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희년법은 교부 전통과 유럽 및 한국의 개혁신학의 전통 속에서 그 규범성을 꾸준히 인정받아 왔다. 희년법은 시민법 중에서도 사회에 적용되어야 할 대표적인 법으로서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을지라도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정신과 그 정신을 실현하는 제도적 모델 속에 담긴 지혜는 우리 시대를 위해서도 여전히 규범성과 유용성을 가진다. 희년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신율주의를 피하고 희년법의 목적이 달성되고 효과가 달성되도록 그 법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 적용하는 노력은 지극히 개혁신학적인 전통 위에 서 있다.

3. 개인 윤리적 규범으로 기능하는 율법: 도덕법

보편적 원리를 담은 헌법적 율법조항들은 도덕법(lex moralis)으로 분류된다. 박형룡은 도덕적 율법의 권위가 영구적이라 보며, 십계명(출 20:1-17)과 두 개의 사랑의 계명(마 22:37-40)을 도덕법의 요약으로 분류한다. 십계명 중에서 안식일 계명은 칼빈의 경우에서처럼 의식법으로도 볼 수 있으나, 안식일 계명에는 시민법의 기초가 되는 도덕법적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박형룡의 분류에는 일리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에드워즈의 안식일 계명 이해에 거슬러 올라간다.
 
에드워즈는 의식법적 측면이 있는 안식일 계명의 도덕법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십계명의 제4계명인 안식일법의 도덕법적 측면을 부정하는 주장에 반대하여, 이 계명이 영속성을 가짐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위해 예수께서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하여 피난 가는 날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분부하셨음(마 24:20)을 증거로 제시한다. 예루살렘 멸망의 날은 분명히 신약시대 중에 위치하고, 이 분부의 대상은 기독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함을 예수께서 전제하고 계시므로 안식일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적인 규범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안식일의 규범성을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인 주일을 지킴으로서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박형룡은 십계명과 두 개의 사랑의 계명 외의 다른 조항들을 이 계명들에 담긴 원리의 설명 내지 표현으로 간주한다. 이형국도 도덕법 중에서도 기본법인 십계명은 다른 법들의 원리가 되는 헌법적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십계명이나 사랑의 계명의 적용에 해당하는 법들은 모두 도덕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동성 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레위기 18:22을 도덕법으로 간주하는 이상원의 해석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레위기 18장이 금지하는 근친상간, 월경하는 여인과의 성 관계, 간통, 동성 간의 성행위, 짐승과의 교접 모두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 조항의 세부적 적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철원은 신약시대에 도덕법을 윤리법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영속될 뿐 아니라 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후에도 일점일획의 가감도 없이 더 강한 요구로 그대로 지켜지되 더 과격히 지켜지도록 요구한다.” 이것은 도덕법의 영속적 규범성을 받아들이는 개혁신학 전통을 계승하고 이것을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발전시킨 것이다.

IV. 율법의 기능

개혁주의 율법론의 특징은 율법의 기능에 관한 이해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율법의 세 번째 기능(신자들의 삶의 기준을 제공하는 기능)에 관한 강조는 개혁주의 율법론의 특징을 형성한다.

1. 첫 번째 기능: 책망의 기능 (usus elenchticus)

칼빈은 율법의 첫째 기능이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이라고 지적한다. “첫째,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은 각 사람의 불의를 책망하며 그의 죄를 깨닫게 해준다.” 죄를 깨닫게 되면 죄로부터 해방시킬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의 첫 번째 기능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더 핑크는 도덕법이 이러한 기능을 한다고 본다. “도덕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2. 두 번째 기능: 정치적 기능 (usus politicus)

칼빈은 율법의 둘째 기능이 형벌의 공포를 통해 악한 사람을 통제하는 기능이라고 지적한다. 율법은 “무엇이 옳으며 바른 것인가에 관한 고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어떤 사람들을 형벌의 공포에 의해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억지로 강요된 의는 인간의 공공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법은 처벌의 정도를 담은 재판법들이다.

3. 세 번째 기능: 규범적 기능 (usus normativus)

칼빈은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기능을 함을 강조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인가에 대해 더욱더 엄숙한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이러한 기능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게 하는 기능이다. “여전히 율법에 의해 유익을 얻는 것은 율법으로부터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매일 더 철저히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율법의 제3의 용도를 주장하면서 율법의 저주는 사라졌어도 율법의 규범성이 영속됨을 지적한다.

“율법이 신자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도록 더 이상 명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자들에 대해 이전과 같은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서 그들을 놀라게 하고 겁나게 함으로써 그들의 양심을 정죄하고 파괴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이 용도를 “교훈적, 규범적 용법”이라 부르며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용법”이라고 한다. 디모데후서 3:16에 의하면 모든 구약 성경이 교훈에 유익하므로 도덕법만이 아니라 시민법, 의식법도 그 속에 담긴 정신의 규범성과 그 정신의 적용 모범에 담긴 지혜로 이러한 제3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핑크는 율법의 제3의 용도를 매우 강조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에 사용하시는 위대한 수단이 바로 그 율법”이다. 그는 율법폐기론을 강하게 반대한다.

“성자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 율법을 무효화시키거나 약화시키고 또 율법이 없이 사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신성모독적인 발언이며 악하고 무서운 짓인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핑크는 마태복음 5:20에 토대하여 “우리의 거룩하신 주님께서 율법을 느슨하게 하신다든지 혹은 그 율법에 완벽하게 순응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그는 복음의 은혜를 율법에 순종하는 성화의 삶으로 인도한다는 입장에서 율법폐기론을 경계한다. “복음의 은혜는 율법의 엄격한 집행을 누그러뜨리거나 혹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다스리심을 포기하게 하여 그가 몹시 싫어하는 원수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는 성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마귀적이라고까지 비판한다.

“성자께서 피 흘리신 것은 자기 법의 명예를 위하여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통치권을 느슨하게 구현하고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경건치 않은 삶을 살아도 무방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그 생각을 파괴하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악의적으로 중상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의로운 분노로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그런 생각은 그런 주장을 하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든 개의치 말고 마귀적인 짓으로 혐오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을 다 이루셨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는 그 같은 악한 생각은 그리스도를 죄와 하나님의 원수와 친구가 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율법폐기론을 통한 사단의 시험을 물리쳐야 한다고 권면한다. “우리 마음에 그 율법의 권위를 약화시키거나 편견을 가지고 행동하게 하려는 사단의 궤계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박형룡도 율법의 세 번째 기능을 받아들인다. 그는 성화를 위한 규범으로서의 율법의 기능과 관련하여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바울이 반대한 것은 율법을 구원의 방도로 보는 것이었으며, 율법 자체가 아니었음을 주장하며 박형룡은 갈라디아 6:2; 로마서 3:31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상원은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으로 보는 점에서 박형룡과 같은 입장인데, 로마서 7장에서 율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구원(칭의)과 관련된 맥락임을 지적한다. 이상원은 칭의를 받은 신자는 마태복음 5:17-20을 따라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문병호는 개혁주의 율법론의 전통을 따라 삶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을 지지하며, “주님은 자신의 의를 전가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대속의 의를 이루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성화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을 전제하고 대속 받은 성도의 성화를 대속의 목적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신자가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관점은 개혁신학의 전통 속에서 스위스에서 칼빈이 명확히 한 후, 네덜란드에서는 바빙크, 영미권에서는 핑크, 한국에서는 박형룡의 신학 속에서 지속적으로 견지되어 왔으며 이상원의 기독교 윤리학, 문병호의 기독론 속에서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율법폐기론은 이러한 개혁주의 전통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이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이나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교회는 개혁신학의 전통을 존중하여 율법폐기론을 배격해야 마땅하며, 그 외에도 성경을 신실히 따르고자 하는 모든 교회는 진지하고 균형 잡힌 성경 연구의 결과인 개혁신학의 율법론에 귀를 기울이고 반율법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현대교회의 윤리적 위기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V. 요약 및 결론

개혁신학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구약 율법과 유대인들의 율법 해석 및 적용 전통을 예리하게 구별해왔다. 그리하여 신약 성경이 유대인들의 율법 해석 및 적용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구약 율법을 비판한다고 오해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은 칼빈, 바빙크, 리덜보스 뿐 아니라 핑크에게서도 나타나고, 한국에서는 정훈택, 이상원에 의하여 계승된다.

개혁신학 전통은 그리스도인은 단지 믿기만 하면 되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율법주의를 비판하며 율법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삶의 기준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칼빈과 바빙크는 반율법주의가 영지주의 이단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칼빈은 아무 규율 없이 살고자 하는 반율법주의자들의 태도를 ‘개들의 뻔뻔스러움’이라고 부르며 비판하였다. 반율법주의를 비판하는 개혁주의 전통은 미국에서는 에드워즈에게서 다시 나타나며, 한국에서는 서철원, 김재성 등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다.

개혁신학은 율법을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제사제도와 관련된 의식법은 예표로서의 기능을 하므로 실체가 이루어진 후에는 이 법이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법도(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효과에 있어서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 개혁신학은 의식법의 적용에 관하여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상원은 의식법이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가 신약시대의 개인과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고, 서철원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의식법의 정신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며 주일성수나 십일조의 예를 들었다.

시민법은 이스라엘 사회 제도와 관련된 법인데, 개혁신학 전통은 이 법이 이스라엘 사회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된 의도를 파악하여 그 의도가 실현되도록 현대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서 개혁신학은 시민법을 좀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전통을 잘 계승 발전시켜왔다. 박형룡은 시민법이 신약시대에 규범성을 가질 가능성을 인정하였는데, 서철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법이 국가 시스템 속에서 실행될 규범성을 가진다고 보았고 이상원은 시민법의 정신을 사회와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우는 디모데후서 3:16을 통해서 시민법이 범사에 유익함을 주장하며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제도의 모델을 제공한다는 통찰을 제공하였다.

시민법 중에서 희년법은 특히 중요한 원리로 간주되어 왔다. 이 원리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와 크리소스토무스는 토지의 소유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으며 사람은 토지를 사용할 뿐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희년법의 정신이 세속 정부의 통치 모델을 제공한다고 보았고, 칼빈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재산이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공공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한국 개혁신학 전통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계승되었다. 이상원은 희년법에 담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생계의 방편을 보호하는 원리를 기독교 윤리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김정우는 토지가 없이 자유가 없을 만큼 토지가 중요하므로 희년법이 도덕법적 차원을 가진다고까지 보았다. 시민법은 도덕법에 담긴 원리의 적용이므로 이러한 관점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도덕법은 율법의 원리를 담은 헌법적 조항들이다. 도덕법의 요약은 십계명과 사랑의 두 계명이다. 십계명 중에서 안식일 계명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규범성을 가지는 도덕법으로 보는 관점은 에드워즈에게서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을 따르면 주일성수는 도덕법 준수의 차원을 가진다. 이상원은 사랑의 계명과 십계명의 적용법들을 도덕법으로 간주하여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부당한 성행위들을 금하는 레위기 18장의 법조항들을 도덕법으로 간주한다. 서철원은 신약시대에 도덕법을 구약 시대보다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개혁주의 율법론을 계승 발전시킨다. 이러한 모습들은 한국 개혁신학이 개혁주의 율법론 전통을 계승하면서 철저화하고 있는 측면을 보여준다.

개혁신학의 전통은 율법의 기능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고, 두 번째는 형벌의 공포를 통해 사람을 통제하는 기능이며, 세 번째 기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기준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이 세 번째 기능을 받아들임을 통하여 개혁신학은 반율법주의를 극복해 왔다. 이러한 전통은 스위스에서는 칼빈, 네덜란드에서는 바빙크, 영미권에서는 핑크, 한국에서는 박형룡, 이상원에게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계승되어 왔다.

율법이 성화를 위한 삶의 기준이라고 보고, 칭의가 되면 성화가 시작된다고 보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는(칼빈, 『기독교강요』, III.16.1 참조) 율법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율법은 칭의를 위해서는 아무런 능력이 없더라도, 성화의 기준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총신대 재단이사회 총회 흔적 지우기 정관변경 충격 /리폼드뉴스
총신대 총장 답변, “정관변경 나도 궁금하다” /리폼드뉴스
제102회 총회 총대 영구제명 건, '법원 판단받는다' /리폼드뉴스
법원, 충남노회 노회개최 금지 가처분 기각 /리폼드뉴스
폐당회 2년 유예기간 중 위임목사, 노회장 총회총대 자격유무 /리폼드뉴스
강도사 설교권, 목사의 설교, 및 치리권의 인허 임직식 /리폼드뉴스
울산남교회 소송의 경과 “남송현 목사 측 완승” /리폼드뉴스
사실확인 없이 금품수수 폭로자 명예훼손죄로 피소 /리폼드뉴스
총신대 재단 정관변경, 이사자격 ‘총회소속’ 삭제 꼼수 /소재열
마지막날 총회 회무 무효되면 총회재판국 판결이 확정 /리폼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