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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대속물로 오신 예수님
막 10:45
기사입력: 2017/07/22 [18:1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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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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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목사     © 리폼드뉴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이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1-12).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려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들을 만져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13-16).

이어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 영생 얻는 비결을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구원 얻는 방도를 알려주십니다(17-31). 그리고 제자들에게 세 번째 수난에 대한 예고를 주십니다(32-34).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우편과 좌편에 앉는 영광을 달라고 합니다(35-4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주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1. 세베대의 아들들의 요구(35-44)

예수님의 제자 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나와서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합니다(35). 이는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분히 정치적 욕심, 세속적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왜곡된 메시야관입니다. 메시야가 정치적으로 구약 시대의 다윗 왕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올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모아 로마를 정복하고 강력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을 달라는 것입니다(36-37).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말씀합니다(38). 예수님의 잔과 세례는 대속의 어린양으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외에는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39-40).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한 잔과 세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10명의 제자들이 이를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십니다(42-44).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자, 왕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통치하는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라는 의미입니다.

2. 예수님의 오신 목적(4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론이 45절에 나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

인자는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예언을 근거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은 정치적 왕, 다윗과 같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가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를 정복해 버리고 전 세계를 통일하는 절대적 군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도리어 섬기려 오신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 도리어(알라)는 ‘반대로, 그러나,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입니다. 즉 강조를 위해 쓰인 접속사입니다. 섬기다(디아코네오)는 단어는 ‘종이 되다, 수행원이 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섬기는 자 즉 종이 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목숨도 버릴 각오를 하고 오신 분입니다. 제자들이 인식하는 그런 정치적인 왕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가진 메시야관과 하나님의 나라 혹 왕국관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왕으로 오신 분도 아닙니다. 로마를 정복하여 다윗의 나라와 같은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신 분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기운이 빠졌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나라에서 한 자리 얻기 위함입니까? 이 땅에서 부하게 살기 위함입니까?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입니까? 이 세상에서 명예와 권세를 쥐고 세상을 호령하기 위함입니까?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의 정체성(45)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여기 대속물은 무엇입니까?

대속물은 헬라어로 뤼트론입니다. 이 단어는 속전, 몸값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 몸값을 대신 지불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대속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사야를 통해 주신 예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0-12).

그 대속은 바로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어린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 1:19).

결론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세상의 기준,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고 죽으셨습니다. 정치적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바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속 중보자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날마다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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