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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죽산 박형룡과 구례인의 천년기론에 대한 연구 1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7/07/15 [15:3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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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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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룡 박사가 귀국하여 부산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사를 하고 있다. 뒤에는 박윤선 박사가 보인다       ©리폼드뉴스
이 글은 개혁신학회에서 이상웅 박사가 발표한 논문으로 저자는 죽산 박형룡 박사와 구례인 선교사의 천년기론에 대하여 연구했다.


1 들어가는 말

평양신학교에서 그러했듯이 총신에서도 조직신학 과목 중 종말론은 재학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에 속한다. 본고에서는 해방이후 총신에서의 종말론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 보려는 관심에서 쓰여진 논문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사이비 종말론과 이단들이 준동했고, 한국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예장합동의 교단신학교에서 어떠한 종말론이 가르쳐져 왔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의 논문에서 종말론 전체를 논의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기 때문에 천년기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총신에 앞서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쳐진 종말론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이었느냐, 역사적 전천년설이었느냐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계속 이어져 왔다.

따라서 한 편의 논문에서 총신과 평신의 종말론적 전통을 함께 논의하는 것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신의 종말론적 전통에 대한 연구는 별도의 연구 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해방 이후 1948년 남산에서 세워졌던 장로회신학교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총신에서의 종말론 교육을 한편의 논문에서 다루는 것도 지면 제한상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본고에서는 총신의 설립 초기부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죽산 박형룡(1897-1978)과 구례인선교사(John C. Crane, 1888-1964)의 종말론적 입장을 논구하는 것에 논의를 제한하려고 한다.

해방이후 장로교회에는 조선신학교만이 존재했으나 김재준의 신학에 대한 51인의 진정서 사건으로 총회 인준을 받지를 못했다. 결국 중국에서 귀국한 박형룡이 중심이 되어 1948년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를 개교하게 되고, 1951년에 이르러는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을 받고 장로회총회 신학교로, 1959년 통합과의 분열 후에는 총회신학교로, 그리고 마침내 1969년에 이르러 총회신학대학으로 승격하게 된다. 죽산 박형룡은 1948년부터 1972년 은퇴하기까지 24년간을 조직신학교수로서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교장과 학장으로서 중추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증보작업을 거쳐 『교의신학』전집(전 7권, 1964-1973)을 한국교회에 선사하게 된다.
 
따라서 총신의 종말론 교육을 논의 하려면 죽산 박형룡의 종말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죽산의 종말론은 제자이자 동료 교수였던 정암 박윤선과 더불어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 Premillennialism)을 확고부동하게 취한 것이었다. 반면에 이눌서(William D. Reynolds) 선교사를 이어 1937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쳤고, 장로회총회신학교에서도 1954-1956년 어간에 가르친 적이 있는 구례인선교사의 경우는 무천년설을 가르쳤다.

따라서 평양신학교나 총신의 경우 적어도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이 양립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교수들 가운데도 두 가지 입장이 각기 계승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우선 서 본고에서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초기 대표자인 죽산 박형룡의 종말론적 입장을 논구해 보고자 하며(2), 이어서 무천년설의 초기 대표자로 구례인선교사의 무천년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3), 후대 학자들이 두 입장을 어떻게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논문에서 제시해 보려고 한다.

2 죽산 박형룡의 역사적 전천년설(1948-1972재직).

2.1 역사적 배경

박형룡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남침례교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난 후 귀국하여 1930년 9월부터 평양신학교에 부임하여 1938년 8월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전공이 변증학이었고, 당시 평신에는 이눌서선 교사가 조직신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변증학, 신학사상, 기독교 윤리 등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가 조직신학 7로치(7 loci, 서론에서 종말론에 이르기까지)를 가르치게 되는 것은 만주 소재 봉천신학교에서 1942년 9월부터 가르치게 되면서 부터였다.
 
1947년까지 계속된 만주에서의 조직신학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죽산은 구 프린스턴의 핫지 부자, 벤저민 워필드, 잔 그래스햄 메이천과 남침례교 신학자 어거스트 H. 스트롱, 스코틀랜드신학자 제임스 오르 등의 책들을 활용할 뿐 아니라, 특이하게도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941)을 강의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1947년에 귀국하여, 1948년 6월 남산 신궁 건물에서 개교한 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취임한 이래 1972년까지 총신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그의 강의 원고는 계속 증보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64-1973어간에 교의신학 전집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1973년에 출간되어진 『교의신학-내세론』뿐 아니라 1958년 경에 만들어진 『내세론』(등사본)에 의하면 박형룡이 취한 천년기설에 대한 입장은 일관되게 역사적 전천년설이었다. 래드와 박형룡에 이르러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구분하게 되었다고 하는 박용규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958년 강의안에서는 명칭적으로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죽산은 양자를 ‘천년기 전설’ 에서 다루고 나서 자신의 입장은 ‘단순화한 천년기 재림설’ 이라고 밝힐 뿐이다. 또한 그가 역사적전천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195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는 보완과 증보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3월 24일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회사 교수였던 폴 울리(Paul Woolley)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는데, 그는 ‘전천년설 입장에서 바라본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좋은 책이나 팸플릿 또는 잡지 논설들’ 혹은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서적’ 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요청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와 같은 요청에 대한 응답과 관련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침내 박형룡은 미국의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맞서 역사적 전천년설을 변호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던 풀러신학교의 조지 래드(George Eldon Ladd, 1911-1982)와 서신을 교환하게 된다. 그 서신 교환을 통하여 역사적 전천년설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을 업데이트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천년기론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러한 면학정진의 결과 마침내 1973년에 박형룡의 종말론은 완결된 형태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최종인쇄본 속에서 박형룡은 ‘천년기 전 재림론’ 을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 과 ‘시대론적 천년기 전 재림론’ 으로 양분하여 명시적으로 다루었다.

2.2 『교의신학-내세론』에 나타나는 전천년설

이제 박형룡이 천년왕국에 대해서 어떻게 최종 정리했는지를 그의 『교의신학-내세론』에서 논구해 보고자 한다. 논의 순서를 보면 박형룡은 『교의신학-내세론』에 있어서도 벌코프의 종말론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벌코프처럼 종말론을 개인적 내세론과 일반적 내세론으로 양분하여 다룬다. 그러나 그는 천년기를 다룸에 있어서는 무천년설자였던 벌코프와 달리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다룬다.

박형룡의 천년기 논의는 ‘제2편 일반적 내세론’ 중 ‘제2장 천년기’ 에서 다루어진다. 기본적인 논의 순서는 ‘무천년기 재림론’ , ‘천년기 후 재림론’ , 그리고 ‘천년기 전 재림론’ 순이다. 박형룡은 논의를 시작하면서 “계시록 20장 1~6절을 기초로 하여 말세 일을 구명(究明)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이나 후에 천년의 기간을 가진 그의 지상 통치가 있을 것을 믿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이런 대망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는 코멘트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 가지 입장을 구별하여 검토한 후에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의 입장에서 천년 왕국의 내용 성질을 약술’ 할 것이라고 자기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2.2.1 무천년설에 대한 검토

박형룡박사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일을 먼저 한다. 그는 먼저 “무천년기 재림론은 성경이 지상에 천년기 혹은 전 세계적인 평화와 의(義)의 시기가 세계의 종말 전에 있을 것을 예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종말관(終末觀)이다”라고 한 J. G. 보스의 정의를 소개한다. 그리고 무천년설은 천년기에 대한 성경적 기초가 없기에 부정적이라고 소개하고, “성경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현 시대 다음에 완성되고 영원한 형의 하나님 나라가 즉시 나타난다는 관념을 찬성(贊成)한다” 고 한 벌코프의 말을 소개한다. 또는 함일돈(Floyd E. Hamilton)선교사가 “천년기는 최종 심판 전 땅에서 그리스도의 문자적 통치의 지상적인 것이기 보다는 영적 혹 천상적 천년기”라고 말한 것을 인용 소개한다. 죽산이 보기에 무천년은 “천년기 전론에 대항하여 그들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성도들과 함께 다스리시는 왕정은 없다고 주장”하며, 박형룡이 중시하여 다룬 “이스라엘인의 민족적 회심에 대해서 혹은 긍정(함일돈 같이)하고 혹은 부정한다(벌콥 같이)”고 비판한다.

그러나 죽산은 이러한 무천년설의 입장이 개혁파 ‘신학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진 재림관’ 임을 인정한다. 어거스틴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힌 후에, 카이퍼, 바빙크와 같은 화란개혁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무천년설 입장에 있으며, ‘미주리 대회 루터교회,’ ‘기독개혁교회’ (Christian Reformed Church), ‘정통 장로교회’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등이 공식적으로 무천년설을 표방하며, “가장 보수적이요 학구적인 두 신학교 즉 칼빈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유능하게 해설되고 있다”라고 진술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신학적인 지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무천년설은 세 가지의 주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죽산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천년기에 대해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계시록 20장 1-6절에 대해서 ‘영해하고 지상 천년기의 실재성을 부정하려는데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법이 많이 포함’ 하고 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둘째, 밀과 가라지 비유(마 13장)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심판날까지 함께 살 것을 예시한다’ 고 하여 중간 천년기를 거부하는데, 박형룡이 보기에 “천년기가 끝난 때에 사단이 해방되어 지상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고 소집하여 전쟁을 붙일 것이라 하니(계 20:7) 그 때에 밀과 가라지의 혼잡은 다시 생길”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반박한다. 셋째, 죽산이 보기에 무천년설은 “말세에 관한 많은 예언들을 설명되지 못한 채로 무의미한 언설(言說)로 버려주게 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사탄의 결박(마 12:29)을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이 해설하는 바와 같이 보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지상 왕정의 기간에 있을 사단 활동의 제지(制止)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답한다.

2.2.2 천년기 후 재림론에 대한 검토

죽산은 이어서 ‘천년기 후 재림론’ (Postmillennialism)에 대해서 다룬다. 우선 이 명칭에서 볼수 있는 대로 후천년설은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재림보다 앞선다고 믿는다”고 해설하고, 이어서 “재림 전에 복음 전도와 그것의 성과의 특별한 시대가 있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며 평화와 창성(昌盛)의 영광스러운 치세(治世)가 될 것이라 한다(사 11:9).”고 상술한다. 이어서 죽산은 후천년설의 두 형식을 구분해서 소개한다. 하나는 ‘천년기가 성령의 초자연적 감 화를 통하여 실현될 것을 기대’ 하는 ‘초기 보수형’ 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의 자연적 과정에 의해서 오리라고 생각’ 하는 ‘후기 자유형’ 이다.

‘초기 보수형’ 이란 16, 17세기 네덜란드 신학자들 일부와 다른 면에서는 죽산이 존경하고 따랐던 19세기의 수많은 장로교 신학자들(찰스 핫지, A. A. 핫지, 캐스퍼 위스타 핫지, 쉐드, 댑니, 헨리 스미스, 벤저민 워필드 등)과 그가 지속적으로 참조한 신학교본의 저자중 하나인 어거스트 스트롱(August H. Strong)이 취한 입장이기도 하다. 이 입장에 의하면 “천년기는 이 현시대 기간에 즉 교회 시대 동안에 있을 영적 창성의 황금시대니 지금 세계에 활동하고 있는 복음의 감화력을 통하여 도입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천년기는 문자적으로 보기 보다는 ‘절대적 완전과 완성을 상징’ 하는 것으로 보며, 그러한 황금시대 끝에는 ‘세계적 배교’ 가 있을 것도 믿는다.

반면 ‘후기 자유형’ 에 의하면 복음의 역사가 아니라 “자연적 과정에 의하여 인류가 개량(改良)되며 사회의 제도들이 개혁(改革)되어 문화와 능률(能率)이 보다 더 고등(高等)한 수준(水準)에 달(達)하므로 지상 하나님 나라가 성립되리라”고 가르친다. 이는 자유주의 형이요, 미국의 사회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한 이론인데, 죽산이 보기에 이런 천년기론은 ‘하나님 나라를 진화적 과정에 자연법칙의 산물(産物)’ 로 보는 ‘가짜 천년기 후론’ 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같은 소개를 한 후에 죽산은 곧 바로 이의를 제기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는 “천년기 후론에 대하여 매우 중대한 반대 몇 가지가 있다.”라고 말한 후에, 다섯 가지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계시록 20장 1-6절을 문자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영해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법’ 이라고 비판한다. 둘째, 계시록 19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재림 사건을 초림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이 장은 사실상 승리(勝利) 영화(榮化)한 그리스도, 적그리스도의 멸망을 제시하여 재림 때의 광경을 말하고 있다”라고 반박한다. 셋째, “재림 직전에 교회가 비류(比類)없는 창성을 경험하리라”는 후천년설의 기대와 달리 성경에 의하면 ‘재림 직전에 올 시기는 큰 배교, 환란, 핍박의 때’ (마 24:6~14,21,22; 눅 18:8; 21:25~28; 살후 2:3~11; 계 13장)가 예고되고 있다고 논박한다. 넷째, “현 시대가 큰 격변으로 종결될 것이 아니라 거의 지각(知覺)되지 않을 정도로 평이(平易)히 내 시대에 과도하리라”는 주장도 성경에 맞지 않다고 반박한다(마 24:29~31,35~44; 히 12:26,27; 벧후 3:10~13). 다섯째 비판은 ‘후기 자유형’ 에 대한 것으로 “중생(重生)없는, 심정의 초자연적 변화 없는 문명은 도무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통치로서의 천년기 지복시대를 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2.2.3. 천년기 전 재림론

이처럼 죽산은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다룬 후에, 자신의 확고한 입장인 ‘천년기 전 재림론’ (Premillennialism)을 상술하는 데로 나아간다. 일단 죽산은 천년기 전 재림론의 주요 요지가 무엇인지를 J. G. 보스의 글로 대신하여 소개한다.

천년기 전 재림론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뒤따라 세계의 종말 전에 천년기 혹은 하나님의 왕국이라 칭하는 세계적 평화와 의의 시기가 있어 그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친히 왕으로서 통치하시리라고 주장하는 종말관(終末觀)이다. 천년기 전 재림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변의 순서에 관한 그들의 견해들의 차이에 의하여 다양(多樣)의 무리로 분열(分裂)되나 그들은 다 그리스도의 재림 후 세계의 종말 전에 지상에 천년기가 있으리라고 주장함에서 동의한다.

이어서 초대 교회로부터 존재했던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 과 최근에 등장하여 성행하는 ‘시대론적 천년기 전 재림론’ 으로 양분하여 소개한다. 전자는 이미 초대교회 때 존재했으며 유스티누스,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락탄티우스, 힙폴리투스 등 교부들이 견지했던 바 ‘모든 점에서 간이(簡易)하고 단순’ 한 재림론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주님의 재림전에 ‘모든 민족에게 전도(傳道), 대배도(大背道)와 대환란, 불법의 사람의 나타남 같은 사변들’ 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죽산은 ‘최근 도안’ 이라는 항목을 따로 마련하여 ‘역사적 천년기 전론의 신진 변호자인 미국 풀러신학교 래드 교수’ 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죽산은 이어서 같은 천년기 전 재림론이긴 하지만 내용상 동의하기 어려운 ‘시대적 천년기 전 재림론’ 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는 Dispensationalism이라는 영어 단어를 ‘세대주의’ 가 아니라 ‘시대론’ 이라 번역한다. 그리고 이 시대론은 존 넬슨 다비와 스코필드의 관주 성경에 의해서 제시된 ‘그릇된 성경해석의 법식’ 이며, 이 입장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를 일곱 판연(判然)한 시기들 혹 「시대들」로 나누고 각 시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특수한 원리를 기초로 하여 인류와 대처하신다는 것을 긍정한다.”고 한다. 시대론자들이 7세대를 주장하고, 교회시대를 왕국과 관련 없이 은혜시대 일뿐이라고 보는 것과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로 그리스도의 이중재림, (7년간의) 대환난, 천년왕국 등 세밀하게 제시한 점을 소개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천년왕국은 ‘가견적, 차세적, 물질적인 유대인의 왕국이며 다윗 왕위의 재 설립을 포함하는 신정국의 회복’ 이 될 것이라고 하는 점 등을 소개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죽산은 이러한 시대론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시대론자들이 스코필드 관주성경의 주석들에 의지하되, 교회와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말씀들로 나누어 해설하는 것은 오류를 낳게 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둘째, 죽산은 그들이 주장하는 7시대론이 비성경적임을 비판한다. 셋째, 죽산은 시대론이 ‘말세사변들의 수를 격증’ 시켜서 두 번의 재림(공중 재림과 지상현현), 2회의 부활, 7년 대환난도 2부분으로 나누어 말한다고 비판한다. 넷째, 시대론의 오류중 하나는 예수께서 선포한 천국이 ‘유대인의 신정국가의 회복’ 을 염두에 둔 것이었고, 유대인이 거절하자 ‘왕국의 설립을 그의 재림 때로 연기’ 하셨다고 하는 ‘왕국 연기론’ 이다. 죽산은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통일성과 하나님의 백성의 통일성’ 을 깨트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섯째, 스코필드 성경을 추종하는 시대론자들은 기성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한다. 여섯째, 이러한 여러 가지 시대론의 주장들이 개혁파신학과 표준문서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논박하면서 신도 게요(=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5장 2조)와 소요리 문답(26)을 증거로 들었다.

시대론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끝내고 나서 죽산 박형룡은 ‘역사적 천년기 전론'의 입장에서 ‘천년 왕국의 내용 상태’ 를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상술한다. 우선 그는 ‘본래의 묘사’ 라 하여 다음과 같이 종합적인 정리를 해준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옛적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하나님 나라가 완성한 상태로 지상에 건설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중건될 것이요 이방인들은 절대한 다수로 그 왕국에 편입될 것이다. 천년 동안에 그리스도는 그의 왕정을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시행하실 것이다. 부활, 변화한 성도들이 그의 통치에 참여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전체로 주께 돌아와서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평화와 의의 상태는 전 세계에 충만할 것이다. 땅은 과실을 풍부히 낼 것이요 부활 혹은 변화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도 장수와 안락한 생활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근년의 묘사’ 라 하면서 조지 래드의 견해를 소개한다. 그러고 나서 죽산은 이 입장에 의하면 천년기를 매우 간단하게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즉, 천년왕국 시기를 ‘지상 역사의 한 시기’ 로 보고, 이스라엘의 ‘회심’ 을 우선하고, 그들의 ‘정치적 회복’ 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나, 시대론과 달리 ‘구약 제사 제도의 회복을 부정하는 것’이나 ‘왕국의 복음과 은혜의 복음을 동일시하는 것’ 등을 예거하면서 죽산은 이 견해가 ‘매우 단순 또는 신중함’ 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죽산의 천년기론에 대한 논의의 결론은 ‘三論의 鼎立’ 이라고 하는 제목 하에 주어진다. 앞서 소개한대로 천년기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이 존재 하는데, “대교파들의 신경들은 이 삼론에 대하여 취사(取捨)를 행하지 않은 고로 아무라도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이것들의 시비를 경정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는 없는 관계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이 삼론의 하나를 자유로이 취하되 다른 이론을 취하는 자들에게 이해와 동정으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관용적으로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분명히 밝히는데, 천년기 전 재림론 중 ‘간단한 역사적인 형(型)의 입장’ 을 선택 했다. 그리고 죽산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코멘트로 천년기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신학적 전통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이다. 구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오랜 세월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친 이율서(李訥瑞)(W.D. Reynolds)박사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강의하였다. 8.15 광복 후 남한의 장로회 신학교와 총회 신학교에서 여러 해에 걸쳐 조직신학을 강의한 필자도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전하였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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