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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시편의 종말론 3
오성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기사입력: 2017/06/28 [08:54]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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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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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성호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시편에 나타난 종말론을 연구하고 제시하고 있다.

4.2 제3권(시 73-89편)

제3권(시 73-89편)은 다윗의 시(시 86편)를 중심으로 교차대조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제3권은 다윗 왕 계보와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를 인하여 나라가 멸망에 이르는 비극적인 역사를 기술한다. 시 78편은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과 국가의 설립 이후에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를 그리고 있다. 또한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시 89편은 다윗 언약의 실패를 다루고 있으며, 바벨론 포로를 내다보고 있다.

시 78편에서 토라(내 율법, 1절)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의 율법을 가리킨다(5절). 시 78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음을 탄식한다(10절). 제3권에서 유일한 다윗의 시(기도)인 시 86편에서는 토라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동일시되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 위하여 주의 도를 가르치시고 주의 진리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드러낸다.

궁켈이 제왕시로 분류한,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시 89편의 첫 부분에서는 시 2편에서 왕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반복된다(1-37절). 이 시편은 “이전”(19-37절)과 “이제”(38-51절)를 통해 여호와께서 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이제는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 다윗을 버리셨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강하게 대조된다. 윌슨에 따르면, 서론부에 나타난 다윗 언약(시 2편)이 제1-3권의 결론부에서 무위로 돌아가며 다윗 자손들의 고뇌에 찬 절규로 귀결된다(시 89:46). 그러나 맥칸(J. C. McCann)은 특히 시 2, 72, 89편의 위치는 시편 제1, 2, 3권의 몸통에 다윗 언약의 실패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지만, 시편집 안에서 제왕시의 위치는 전체 시편에 미래적 정향성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시 89편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다윗언약을 버리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땅과 왕조가 사라짐으로써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이 위태롭게 된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서도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지 않다(46, 49절). 하우스에 따르면, 시인은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여호와의 성품에 달려있다고 이해한다(89:1-4, 5-18).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시므로(출 3:14, 신33:27), “여호와의 약속은 그의 성품에 근거하여 장차 성취될 것임에 틀림없다.” 시 89:50-51은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며 다윗의 고난에 대한 묘사가 미래적인 다윗 후손에게로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89:52절의 송영은 현재 다윗 언약이 위기에 처했으나, 하나님의 확실한 성품과 다윗의 고난 및 승리의 패턴에 대한 믿음 때문에, 궁극적으로 회복될 종말론적 전망을 함축한다.

시 89편에서는 언약은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통합적 개념임을 함축한다. 여호와는 그의 다윗 종에게 언약을 맺으며(3절),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다윗과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은 여호와의 토라(즉, “내 법”, “내 규례”, “내 율례”, “내 계명”)를 지켜야 할 것을 요구 받는다(30-31절).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셨으나(34절),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시고 그를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시고 그 종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신다(38-39절). 그들이 토라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시 78편). 결국, 제3권에서 토라를 통해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통합되며,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언약의 실패가 나타난다.

요약하면, 제3권에서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토라를 불순종하고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을 미워하시고 언약이 위기에 처했으나, 다윗 언약의 약속은 여전히 미래적 기대를 여운으로 남긴다.

4.3 제4권 및 제5권(시 90-106편; 시 107-150편)

제4권(시 90-106편)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도 하나님은 어떻게 신실한 자들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며 채워주시는지를 보여준다. 제4권을 마감하는 역사적인 개요인 시 105-106편은 바벨론 포로에서부터의 귀환을 비는 기도로 마무리된다(106:44-46). 또한 제5권(시 107-150편)은 포로귀환 이후의 삶을 다루며(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 120-134편), 온 세상의 창조자로서 세상을 다스리시며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예, 할렐루야 시편인 시 146-150편).

제4권의 첫 시편으로 모세의 시편(시 90편)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나라의 멸망 이후에 새로운 언약적 통치의 회복의 토대를 놓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시 90편이 89편과 신학적 조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89편은 다윗 언약의 실패를 애통하였으나(1-2, 28, 49절), 90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 후에 인자를 새롭게 베푸심으로 돌아오셔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주의 진노가 시 90편에서 새로운 요소로 나타나지만(7-12절), 시 89편의 맥락에서 이해할 때 그것은 언약의 실패로 인해 다윗에게 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90편의 인간의 유한성 및 죄성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언약적 실패를 함축하며, 결국 90편은 이사야 40장이 멸망 이후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처럼 89편에 나타난 멸망 이후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모세를 통해서 언약적 통치가 개시되었던 것이 또 다시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고로 제3권에서 토라와 언약의 실패가 나타났지만 제4권에서 토라가 회복되며 제1-3권에서의 개념을 유지한다.

시 105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이 여호와의 언약으로 언급된다(8-9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다. 또한 이것은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로서 이스라엘과 맺은 시내산 언약과 동일시된다(10절).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이 영원한 것처럼, 시내산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여호와의 구원은 거룩한 말씀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하심으로 인하여 베푸시는 은혜이다(26-42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토라 즉 여호와의 율례와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45절).

제5권에서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다(107:11).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기억하신다(시 111:5). 이는 언약(즉, 토라)에 약속한 축복들을 베푸심을 의미한다. 토라 찬가로 불리는 시 119편은 공동체적 그리고 개인적 행동의 기초로서의 율법을 재확증해 준다.

시 119편은 시편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이 시편은 제왕시와 토라시를 통합하므로 시편의 서론(1-2편)은 물론 또 다른 토라 시편인 시 19편 및 제왕시편인 시 18, 72, 89편과 제4권의 역사적 개관에 대한 송영을 나타내는 시 105-106편(105:45, 106:19-20) 및 대할렐루야 시편의 토라 찬가인 시 147편(19-20절)과도 핵심 주제에 있어서 연결되고 있다. 김정우에 따르면, 시 119편은 제5권의 첫 시편인 시 107편의 최종적 질문 “지혜자는 누구인가”(43절)에 대한 대답으로 볼 수 있다(98절). 또한 이 시편은 순례의 주제에 있어서도 107편(2-3절)과 118편(26절) 및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인 120-134편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역할을 한다. 시 119편에서 토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서 영원하며(160), 완전하며(96), 정직하며(137), 진실하며(142), 무한하다(96). 맥칸은 토라가 율법주의나 사변주의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시 119편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교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레벤슨(Jon D. Levenson)을 따라, 그는 시 119편의 토라가 (1) 구약에 포함된 성문서를 포함해서 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전통 (vv. 99-100), (2) 우주적 혹은 자연적 법칙(vv. 89-91), (3) 중개되지 않은 신적 가르침(vv. 26-29) 등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한 시 130편에서 시인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주의 말씀을 바란다(5절).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여호와와 동일시된다. 시 132편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상기시키며 다윗의 자손들이 지켜야 하는 여호와의 언약과 증거를 언급한다(12절). 시 136편은 여호와의 인자가 영원함을 반복적으로 찬양하는 언약 찬송이다. 시 147편에서는 자연의 질서를 그의 명령, 그의 말씀이라고 칭하며(15-18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토라 즉 율례와 규례도 그의 말씀이라고 칭한다(19절). 시 148편에서도 자연 질서를 명령과 여호와의 말씀으로 칭한다(6, 8절). 이는 시 19편의 주제의 명료화이다(위를 보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법도 즉 토라를 지키지 못하였다(20절).

제4권과 제5권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왕국에 대한 언급은, 만일 지상의 신적 왕이 하나님의 계획들을 지키기만 한다면, 지상 왕의 효과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시 89편에서의 왕에 대한 거절이 시 2편 및 다른 제왕시들에 나타난 왕권 이데올로기의 폐기를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여호와의 왕국이 강해질수록, 다윗의 왕국을 설립하고 재설립하는 기회는 더 좋아진다.”

맥칸은 윌슨의 분석을 따라 제4-5권이 제1-3권에서 제기된 문제 즉 특히 시 89편에 나타난 다윗 언약의 실패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제4권은 전체 시편집의 최종형태의 편집적 중심이며, 이는 제4권의 중심부에 전략적으로 위치한 즉위시편들(93, 95-99)에 나타난 것처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고로 그에게 즉위시편들은 시편집의 최종형태에 있어서 신학적 중심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그에게 시편집의 서론부에 있는 시 2편의 주제가 단지 다윗 왕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맥칸의 분석은 종말론적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

시 4-5권의 여호와의 통치와 그에 대한 찬양은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며, 여호와의 종말론적 통치는 메시야 왕의 통치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테일러는 시 4-5편에서의 여호와의 통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시 110, 132편에서 나타난 것처럼 메시야적 다윗적 왕권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빈센트는 제5권 시편의 저자의 관점에서 다윗이 매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관찰한다.

시 93편은 여호와 통치시 혹은 야훼 왕권 찬양시로서 시 95-100편에서 뒤따라 이어지는 여호와 통치시편들의 서주곡이다. 이 시편은 창조의 모티프 즉, 천지 창조에 나타난 여호와의 주권(1-2절)이 출애굽을 포함하는 혼돈 정복의 모티프 즉, 혼돈의 세력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3-4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한 성전에서 이러한 주님의 주권이 칭송된다(5절). 이런 혼돈 정복의 모티프 및 시온 주제는 시 2:1-6의 성취일 수 있다. 서론에서처럼 이런 주제들은 토라 주제와 연결된다.
 
시 93:5의 주의 증거(edut)들은 “주님의 통치의 핵심”으로서 “홍수를 정복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며, “주의 집에서 선포되는 법도”가 된다. 여호와의 인자는 그의 언약과 토라를 지키는 자에게 베풀어지므로, 그의 말씀과 토라를 행하는 자들은 언약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시 103:17-21). 시 94편은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편들 가운데서 일견 부자연스러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여호와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 94편은 정의를 왜곡하는 악한 인간 재판장들과 참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조를 그 특징으로 하며, 공동체 안에서의 미쉬파트의 상실이 시인의 고통의 원인이며 그곳에서 여호와의 통치가 일어나야 할 것을 말해준다.

하우스에 따르면,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편들(93, 95-100)은 시 89편에 나타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진리들을 선포한다. 이 시편들에 나타난 중요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통치(93:1, 96:10, 97:1, 99:1), (2) 온 땅의 심판자이신 여호와(96:11-13, 98:8-9), (3) 통치와 심판을 가져오는 창조주로서의 주권(93:1-15, 95:1-7, 100:3), (4) 여호와의 유일무이성과 비교불가능성(96:4-5, 97:6-7, 97:9). 이러한 여호와의 통치는 제3권에서의 언약적 실패로 인해 전에 가졌던 다윗적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회복될 것임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왕권은 종말론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제5권은 메시야적 기대를 여전히 새롭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에 나타나는 야훼 말락이 종말론적인 소망을 확증하는 것으로 본다.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이다 혹은 그 자신이든 그의 대리로서 미래의 메시야적 왕이든 올 것이다.” 알렌(Leslie C. Allen)은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가 제4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적 측면뿐만 아니라 미래적 측면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고 본다. 왕권 찬양시를 마무리하는 시 100편에서는 미래의 구원이 종말론적 공동체로 완성될 것을 함축한다(100:3).

시 110편에서는 왕의 신적 출생에 관한 진술이 반복되고 원수가 그의 발 아래 있게 될 것이 약속된다. 이 시편은 과거에 대한 반복적 진술이라기보다는 미래적 약속의 성격을 갖는다. 크라우스는 시 110편을 “예루살렘에 행해진 왕의 즉위 축제 때 있었던 상황 묘사나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메시야 예언시로 보며(어거스틴, 헹스텐버거, 박윤선) 종말론적 성취를 기대한다. 하우스는 제4권에서 다윗 언약이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시 110편이 여호와께서 다윗 언약을 버리셨을 것이라는 근심에 대해 응답하면서, 다윗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을 재확증하고 있다고 본다.
 
하우스는 시 110편이 다윗 언약의 중요성과 영속성을 재확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한시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다윗 언약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취를 위한 배경을 가져오므로, 왕이자 제사장인 메시야적 왕이 출현하여 영원히 존재할 것을 이 시편은 말하고 있다. 미첼은 시 110편에서 여호와의 왕권과 다윗의 왕권이 의도적으로 혼돈되어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을 이룬다고 본다. 왕을 말하는 1절에서의 주는 여호와를 말하는 5절에서의 주와 의도적으로 혼합된다.

이러한 융합은 메시야를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속성을 갖는 자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두 왕권이 “상호 배타적이 아니다.” 시 132편에서는 여호와와 그의 왕 사이의 언약에 관련된 약속들이 순종의 언어들과 함께 다시 취해진다. 시 144편도 주의 종 다윗을 언급함으로써 제왕시의 주제를 이어간다(10절).

대할렐루야 송영(시 146-150편)은 여호와의 통치가 완성을 이룸을 확신하므로 종말론적 기능을 갖는다. 고로 각 권 말미에 나타나는 송영과 시편 말미의 대할렐루야 찬양은 시편 전체에 종말론적 정향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요약하면, 제4권은 과거의 모세의 시대와 같이 새로운 언약 통치의 초석이 놓여질 시대를 기대한다. 제5권은 여호와의 왕권과 연합한 메시야 왕의 종말론적 통치를 기대한다. 토라가 새롭게 회복되며 여호와의 완전하고 영원한 통치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다윗 왕적인 메시야의 통치가 새롭게 나타남으로 여호와의 구원이 성취되고 시온의 통치가 회복될 것이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