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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예바레크카 아도나이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기사입력: 2017/06/13 [07:4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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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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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봉 목사    © 리폼드뉴스

필자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는 민수기 6장 24절에서부터 26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강복하여 주신다고 전하라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이 내용이 작곡까지 되어 노래로 널리 전하여지고 있으니 기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יְבָרֶכְךָ יְהוָה, וְיִשְׁמְרֶךָ
יָאֵר יְהוָה פָּנָיו אֵלֶיךָ, וִיחֻנֶּךָּ
יְבָרֶכְךָ יְהוָה, וְיִשְׁמְרֶךָ
יִשָּׂא יְהוָה פָּנָיו אֵלֶיךָ, וְיָשֵׂם לְךָ שָׁלוֹם


예바레크카 아도나이 뵈이쉬므레카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길 원하며)

야에르 아도나이 파나브 엘레카 뷔후네가
(하나님은 그의 얼굴 비추사 은혜 베푸시길 원하네)


예바레크카 아도나이 뵈이쉬므레카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길 원하며)


이싸 아도나이 파나브 엘레카 뵈야셈 레카 샬롬
(하나님은 그의 얼굴 향하사 평강 주시길 원하네)


여기의 내용은 기복주의가 아니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제사장을 통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강복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특별히 구별된 인물입니다.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양을 잡아서 속죄와 감사 그리고 헌신의 제사를 올렸던 직분자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속죄의 제사였습니다. 속죄제사란 죽을 자를 살리고, 멸망할 자를 영생하게 하며, 버려진 자를 하나님의 자식으로 바꿔 놓는 위대한 직분으로서 그런 위치에 서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백성에게 강복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최후의 제사장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 사역을 마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아론을 향한 강복은 몽땅 예수 그리스도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을 받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언된 구속사의 강복이라고 보아집니다.


제사장으로서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 이후에 제사장은 더는 필요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있을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제사장 직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는 '만인제사장직분'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구속사를 믿는 우리가 은혜로 제사장들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제사장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별되게 살아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날마다 속죄의 제사를 영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복음사적 기능을 이탈하여, 누리려고만 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강복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다워야 그 강복을 누린다는 원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누리려고만 하고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노회장이 되든지 총회장이 되든지 학장이 되든지 총장이 되든지 간에 하나님의 면전에서 거룩한 의무자의 길을 겸손하게 걸어간다면 그런 장 자리는 사치가 아니며 기복주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의무를 저버린다면 그 자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부딪치는 가림돌이 될 것입니다.


'예바레크카 아도나이(하나님은 님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원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의무를 다하는 데서 된다는 사실을 성경 해석학적 측면에서 구속사적으로 이해하고 행함 있는 믿음으로 실천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갈망해 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 : 아도나이

'아도나이'는 히브리어로 '주님'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아도나이가 아닌 여호와로 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히브리인들의 관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아도나이로 부르지 않고 그대로 부르는 습관은 영어권에서 상대방의 이름을 고하를 막론하고 부르는 습관에서 성경이 번역되면서 온 것이다. 서양권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동양권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버릇없는 자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호와 여호와 하게 된 것은 이미 전통적으로 관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석봉 목사 /
목회학박사요 철학박사이며 신학박사이다. 총회신학교와 총회연합신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했다. 총회신학교(학장/전 국회부의장 황성수 박사, 현 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5년,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하와이 브렌치(학장/티모씨 한 박사)에서 13년, 수원신학교(학장/이근구 박사)에서 10년간 성경원어교수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쳤다. 리폼드뉴스(www.reformednews.co.kr)의 논설위원이며 이석봉 목사 칼럼의 칼럼리스트이다.